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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준비(2) (25/107)

24. 준비(2)

“으아아아!!!!!”

비명이 메아리치는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

화르륵-

이철영의 전신으로 불꽃이 피어오른다. 피부가 녹아내리고, 시뻘건 근육이 익어가며 수축한다.

처음엔 오직 비명만이 가득했다.

띠링-

[이철영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이철영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미친 듯이 발버둥 치던 숯덩이가 멈추자, 주변으로 가득하던 불꽃이 스르륵- 사라진다. 

이윽고.

“허억-”

이철영이 깊은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장기 밀매] [노예 거래] [살인 사주] [사기] ······

그의 머리 위론 여전히 죄목이 적혀있다. 분명 죽어서 선악 수치는 초기화됐을 텐데. 아무래도 저지른 악행은 지울 수 없는 듯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발. 그만 하세요. 죄송합니다.”

이철영이 우빈을 발견하곤, 바닥을 기며, 애원한다. 

띠링-

『제발··· 이제 그만.』

그의 앞으로 속마음이 떠올랐다.

처음엔 저 광경이 신기했다. 

첫 만남 당시, 도와달라며 눈물을 흘릴 때조차 민주희를 보며, 쓰레기 같은 생각만 가득했다.

친절하게 음료수라며 선의를 베풀 때도 블랙 마켓을 떠올리며 앞날을 그렸다.

거리낌 없이 타인을 속여, 시장에 팔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제발요.”

분명 밖에선 겉과 속이 달랐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애절하게 비는 말과 속마음이 일치한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걸 말하는 거겠지.

우빈 역시 저 사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너무 잘 알았다. 

띠링-

[파열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콰직! 

이철영의 육체로부터 핏물이 왈칵 터져 나온다. 

어김없이 지옥 같은 고통이 시작됐다. 처음엔 4번째 시련까지 버텼지만, 초기화된 레벨 때문인지. 두 번째 시련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띠링-

[이철영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이철영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허억-”

또 다시 깊은숨을 들이켜 마시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씨발! 나한테 왜 그러는데!”

애절함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수면제는 그렇다치고 독약까지 넘겨놓고는 양심도 없는지, 뭘 잘못했냐고 묻고 있었다. 

우빈은 별다른 대답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뭐부터 할까.’

이 녀석은 아주 중요한 실험 대상이었다. 

처음 확인할 건, 과연 크로노스의 작업실의 첫 번째 효과였다.

[크로노스의 축복]

종류: 버프

등급: L

형태: 액티브

효과

-시간의 흐름이 10,000배 가속됩니다.

-죽음에 도달하면 육체를 복구합니다. (*복구된 육체는 초기화됩니다.)

-스킬 숙련도가 10,000배 증가합니다.

-일정 간격으로 랜덤한 시련이 시작됩니다.

진짜 안과 밖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갈까? 

띠링-

[화마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으악!!!!”

우빈은 비명을 뒤로한 채, 굳게 닫힌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철컹-

문을 닫자 고요함이 찾아왔다. 

처음으로 확인한 건 안에 타인이 들어가 있어도 문을 제거할 수 있느냐였다.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과 연결된 문을 제거합니다.]

별다른 제약 없이 문이 스르륵 사라져간다.

상태창의 효과만 읽어보자면 밖의 1초는 안에서의 10,000초이다. 과연 진짜로 그렇게 흘러가고 있을까?

만약 진짜라면 저 사내는 지금쯤이면 대략 500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지금도 죽은 횟수는 제곱으로 늘어나고 있을 거고.

우빈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주희와 NPC 꼬맹이가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여기선 실험을 진행하기 힘들어 보였다. 

앞으로 이철영을 끌고 나와 혼자서 문을 열 수 있는지, 열려있는 상태에선 들어갈 수 있는지 실험을 해야 했으니까.

판단을 내린 우빈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문을 활짝 열자 익숙한 사내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정훈이었다. 

우빈의 시선이 이정훈의 머리 위로 향한다.

[동료 배반] [무자비한 폭력]

새롭게 얻은 특성 때문인지, 두 가지 문구가 보였다. 폭력은 그렇다고 치는데, 동료 배반은 또 뭐야.

배신했던 그 새끼들처럼 비슷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일까. 기분이 더러워지려는 그때였다.

이정훈이 안을 슬쩍 들여다보더니, 나지막하게 입을 뗀다.

“피곤하셨나 보네요. 조용한 장소에서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빈은 이정훈을 따라가며, 일러둔 계획을 떠올렸다. 내용은 심플했다.

-위쪽에서 그쪽을 소환할 겁니다. 상황 보고를 하면서 이 아이템의 효과를 읊으세요. 반드시 누군가는 반응해 올 겁니다. 그 사람이 배후일 가능성이 제일 크죠.

우선 이 일을 일으킨 배후를 찾는 것.

-배후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템을 빼앗고 싶을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 오늘 내로 승부를 보려고 하겠죠. 그때, 약속과 장소를 정하세요. 함정을 파는 겁니다.

과연 계획대로 흘러갔을까. 표정을 보아하니, 누군가 찾기는 한 거 같긴 한데.

어느샌가 아무도 없는 복도에 도착했다. 

“우빈씨의 예상이 정확했습니다. 마정석을 보여주니까, 한 고위관계자로부터 반응이 바로 오더군요.”

“······.”

“생각보다 더 위험한 사내가 배후였습니다.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요.”

“그래서 그게 누군가요?”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우빈의 어깨를 두드리며 발걸음을 옮길 뿐.

“우빈씨는 여기까지만 하시죠. 나머지는 저희 쪽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나름의 배려일 것이다. 만약, 배후를 잡지 못하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하지만 저 배려는 우빈에게 있어 쓸데없는 참견이자, 필요 없는 오만이었다.

우빈은 멀어져가는 이정훈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역시 이렇게 나오나.’

애초에 저렇게 나올 것쯤은 대충 예상하였다. 

원래라면 뒤를 밟아, 미행할 생각이었지만, 그럴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20분 뒤라···’

새롭게 얻은 특성으로 정훈의 속마음이 전부 보였기 때문이다.

장소는 후문 쪽 버려진 교회. 배후는···.

‘정현태.’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개새끼였다.

***

은은한 달빛이 주변을 밝힌다. 부신 특유의 건물과 수천 개의 별이 어우러지자, 제법 볼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평화롭다 못해 아름다운 장관이었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주변의 공기를 짓누른다. 

폐교회와 제법 떨어진 장소에 우빈은 있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이철영이 우빈의 앞에서 울며불며 애원한다. 

쉿- 

흠칫-

우빈의 간단한 동작에 이철영이 바닥에 넙죽 엎드려, 숨을 죽인다.

모든 확인은 끝났다.

결과는 실로 만족스러웠다. 

우선 가장 궁금했던 문의 출입 여부는 단순했다.

‘안에서는 못 연다 이건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건, 누구나 가능했다. 다만, 안에 들어간 이상, 이철영은 스스로 문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열린 문으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궁금증인 시간의 흐름 역시 궁금증을 해소했다.

“제발··· 제발···”

이정훈과 대화를 하느라, 대략 10분가량을 혼자 두었다. 그 결과가 지금 이것이다.

『제발··· 다시는 들어가기 싫어. 빌어야 돼.』

마음이 꺾이다 못해,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분명 죽을 때마다, 정신은 초기화될 텐데 이 정도로 망가지다니. 정신력이 썩어빠진 놈이었다.

“살려주세요···”

우빈은 이철영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 위로 많은 악행이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수배자는 아니다. 

죽이면 선악 수치가 크게 깎여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풀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귀찮네.’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을 생성합니다.]

철컹-

우빈의 손짓에 허공으로 문이 생성된다.

“히이익!!!”

문을 보는 것만으로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벌벌 떤다.

“들어가.”

“네?!”

“들어가라고.”

“제··· 제발.”

“평생 갇혀있기 싫으면 지금 당장 들어가. 잘 버티면 다음에 풀어줄 테니까.”

그 말에 공포로 가득하던 이철영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간다. 

저 사내가 어떤 감정일지 너무 잘 알았다. 죽기보다 들어가기 싫을 것이다. 

하지만 이철영은 우빈의 말에 바로 입을 닫더니, 문을 향해 다가갔다.

“정말 다음번에 풀어··· 아닙니다.”

뭔가를 말하려다, 망설임 없이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방을 본 이철영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린다. 오줌도 쪼르르 흐를 정도로 공포에 질린 게 보였다.

『버티면 다음에···.』

그러나 철영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쾅!

우빈은 닫힌 문을 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쓸만한데.’

딱 한 마디뿐이었다.

[평생 갇혀있기 싫으면 지금 당장 들어가. 잘 버티면 다음에 풀어줄 테니까.]

저 말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고통이 끝날 수 있다는 희망과 평생 가둬놓겠다는 절망.

그런데 저렇게까지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을 줄이야.

‘벌써 궁금한데.’

과연 정현태는 어떻게 반응할까. 

두근-두근-

복수의 순간을 떠올리며, 우빈은 기다렸다.

정훈이 잡은 약속 시간까지는 대략 5분이 남은 시점.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문구가 우빈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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