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첫 번째 복수(1)
우빈은 갑작스럽게 떠오른 메시지에 바로 스킬 카드를 확인했다.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
종류: 스킬 카드
등급: L
레벨: 2
형태: 액티브
효과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과 이어진 문을 생성합니다.
추가 효과
-설정 기능 활성화
“설정 기능?”
설정이라니, 어떤 기능이 생겨난 거지.
당장이라도 방에 들어가 새로 개방된 효과를 확인할까도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딴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지금 신경 쓸건 오직 하나. 그 새끼를 잡는 것뿐이었으니까.
우빈은 자세를 낮추곤, 정면을 응시했다.
척결 길드로 보이는 3명의 인물이 정현태를 기다린다. 상황 자체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정현태를 살려서 제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런데 이정훈의 도움을 받는다면 모든 게 쉬워졌다.
정현태의 특기는 탐색과 분석. 파티에서 주로 하는 역할은 아이템을 강탈하는 것이 전부였다.
우빈의 뒤통수를 때리던 그 시점에도 그 잘난 특성으로 핵심 아이템을 뜯어가지 않았던가.
정현태는 절대 이정훈을 이길 수 없었다. 제대로 된 발버둥 한번 못 치고 제압당할 것이 분명했다.
‘5년 전이었으면 그랬겠지.’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정현태의 전력을 알지 못했다.
과연 얼마나 강해졌을까.
꽈드득-
우빈은 차오르는 분노를 꽉 누르며, 기회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
찌르르르-
밤 벌레 소리가 가득한 폐교회.
3명의 용사가 의자에 앉아 정현태를 기다린다.
“선배님, 진짜 할 거예요?”
“쉿- 쓸데없는 소리할 거면 그냥 가.”
3명 중 가장 막내인 여성 채수연이 이정훈에게 한 소리를 듣곤 입을 다문다.
‘칫- 괜히 나한테 그래.’
채수연은 조금 전 정훈의 말을 떠올렸다.
-이제부터 우리는 정현태를 친다. 질문은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에 받겠다.
이유 따위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정현태를 붙잡겠다는 말과 함께, 장황한 계획을 설명해주실 뿐.
‘정현태면 세이버의 실세잖아···’
소문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세이버를 키운 원년 맴버로서 엄청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실물로 본건 4년 전 딱 1번 본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선배는 왜 정현태를 잡는다고 하는 것일까.
‘이거 잘못하면 전쟁 나는 거 아니야?’
길드에 속한다는 건 단순히 직장에 들어간다는 개념과는 달랐다. 굳이 비유하자면 조직이라고 해야 할까.
길드는 길드원을 지킬 의무가 있고 길드원은 길드를 위해 헌신한다.
지금의 행동은 매우 위험했다.
정현태를 친다는 건 세이버에게 칼을 겨눈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궁금해 미치겠네.’
당장이라도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채수연은 꾹 참았다. 묻는다고 알려주지 않을 걸 알았기 때문이다.
‘왜 안 와?’
이정훈의 말에 따르면 10분 안으로 정현태가 이 장소에 온다고 했다. 하지만 15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설마 함정인 걸 눈치채고, 도망간 건가?
“선···”
채수연이 이정훈에게 질문을 던지려는 그때였다. 이정훈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오셨군요.”
이정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르륵-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한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정훈의 계획은 간단했다.
-내가 정현태를 무력으로 제압한다. 운성이는 정현태가 발버둥 치지 못하게 바로 마비 독을 주입하고, 수연이는 구속 장치를 입혀. 시작 신호는 악수다.
두근-두근-
채수연의 심장이 요동쳤다. 용사를 제압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런 거물을 건드리는 건 처음이었다.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실패할 리가 없잖아.’
애초에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이정훈의 랭킹 181위인 괴물이지만 정현태가 가진 타이틀은 세이버의 원년 맴버라는 사실 하나뿐이었으니까.
꿀꺽-
그렇게 채수연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던 그때, 이정훈이 정현태에게 악수를 건넨다.
채수연은 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모든 감각을 끌어올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급히 준비할 일 있어서요.”
“아닙니다.”
정현태가 별다른 의심 없이 이정훈의 손을 붙잡는다.
두근-두근-
이제 정훈 성배가 정현태의 팔을 꺾으며, 몸을 제압할 거라고 예상했다. 분명 그랬어야만 했다.
“어?!”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정훈의 등 뒤로 스르륵- 검은 무언가가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콰직! 바닥으로 핏물이 왈칵 쏟아져 내린다.
“윽!”
이정훈이 그대로 힘을 잃으며 쓰러지자, 옆에서 큰 외침이 들려왔다.
“수연아! 도망쳐!!!!”
“네?”
사고가 상황을 따라가기도 전.
퍽!
짧은 타격이 후두부를 강타하였고, 스르륵- 채수연의 시야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
띠링-
[정현태님이 강탈을 사용했습니다.]
[아이템을 빼앗겼습니다.]
[정현태님이 강탈을 사용했습니다.]
[아이템을 빼앗겼습니다.]
........
.....
....
.
시끄러운 메시지가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선%! $배!!! 정&$려&! 선@!”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끄러워···’
계속해서 자고 싶은 욕망이 몸을 지배하던 그때였다.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선배!”
이정훈은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윽!”
복부로부터 뜨거운 통증이 밀려온다.
“선배! 정신 차려요!”
양손을 뒤로 묶인 채수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정훈은 이를 바득 갈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정현태에게 악수를 하고난 뒤,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는 찰나.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악수로 붙잡힌 손이 이정훈의 행동을 제약했기때문이었다.
그 이후론 기억이 없었다.
‘당했다.’
함정인 걸 눈치채고 있던 건가. 아니면 애초에 이럴 생각으로 약속을···.
꽈드득-
복잡하던 머리가 차갑게 식어갔다.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고 한들, 정훈은 뒤를 잡힐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복부를 찔렸다고 기절할 정도로 무르지도 않았고.
그런데 너무나도 쉽게 제압당해버렸다.
그만큼 공격한 상대가 실력자라는 의미겠지.
‘침착하자.’
이정훈은 빠르게 몸 상태를 파악했다.
철그럭-
양손과 다리가 기둥이 묶여 꼼짝도 할 수 없다. 원래라면 단숨에 끊어버릴 수 있었을 텐데. 이상하리만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씨발, 없잖아. 어떻게 올린 선악 수치인데, 다 날렸네. 구라라 이건가.”
앞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옮기자, 정현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닥으로 익숙해 보이는 장비가 가득하다.
정현태는 무언가를 찾는 듯 아이템을 이리저리 헤집더니, 깨어난 정훈을 발견한다.
“아, 일어나셨구나. 몸은 좀 괜찮으세요?”
정현태가 여유롭게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정훈을 향해 다가간다.
“이게 뭡니까! 안 풀어요?!”
이정훈이 버럭 소리쳤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날카로운 단검을 허공에 휘두를 뿐.
‘저건···’
아주 익숙한 단검이었다.
“공격시 100%의 확률로 출혈에, 출혈 데미지 100% 증가라. 엄청 좋네요.”
정훈의 메인 무기인 혈극단도였다.
“그걸 어떻게···.”
이정훈은 다급히 상태창을 확인했다. 고급 아이템으로 가득하던 인벤토리가 텅 비어있었다.
어느샌가 이정훈의 앞으로 다가온 정현태가 나지막하게 입을 뗐다.
“왜 있지도 않은 아이템을 있다고 했는지, 궁금하네요.”
“네? 그게 무슨···”
인벤토리를 전부 확인해, 아드로스의 부속품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말하는 걸 보면 이미 그런 아이템이 없다는 것도 알아버린 것 같고.
“제가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요. 성실하게 답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무슨 개소리입니까! 이거 풀라고요!”
“첫 번째 질문입니다.”
정현태의 입술이 달싹인다. 차가운 살기가 공기를 짓누른다.
“오늘 점심에 부신을 침략했던 몬스터, 누가 처치했죠?”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냉기가 감돌았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음성은 소름 끼치도록 섬뜩했다.
“누구긴 누굽니까! 제가, 죽였다고요!”
“다시 한번 묻죠.”
하지만 정현태는 믿지 않았다.
“오늘 점심에 부신을 침략했던 몬스터. 누가 처치했죠?”
또다시 같은 질문을 하곤, 무미건조하게 이정훈의 눈을 응시한다.
“내가 잡았다고···.”
똑같은 답을 하는 그 순간이었다.
“으아악!!!”
“운성아!!!”
사내의 비명과 함께, 채수연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돌린 시야로, 직속 후배인 지운성이 보였다.
“씨발 새끼야!!!!”
지운성의 눈으로 붉은 핏물이 흘러내린다. 그 옆으로 처음 보는 사내가 지운성의 안구를 든 채,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이윽고, 콰직- 주먹을 꽉 쥐자, 안구가 그대로 터지며 진득한 액체가 바닥을 적신다.
“도대체 왜 이러는데!”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여전히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누가 처치했죠?”
그저, 똑같은 질문을 계속해올 뿐.
‘젠장.’
이정훈은 이를 바득 갈며, 지운성의 눈알을 뽑은 개새끼를 노려봤다.
‘저 새끼구나.’
이정훈의 등 뒤를 기습한 놈이 확실해 보인다. 머리 위로 아무런 표식이 없다.
흘러나오는 기운 또한 용사가 가지는 전형적인 마력. 그렇다는 건 평범한 용사라는 건데. 수배에 오르는 게 두렵지도 않은 건가.
‘우선 시간을 벌어야 돼.’
꽈드득-
판단을 내린 이정훈은 화를 가라앉히며, 소리쳤다.
“이러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내일이면 마스터가 이곳에 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 새끼가! 미쳤어?!”
“누가 죽였나요?”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어떠한 말을 해도, 같은 물음을 되풀이할 뿐.
“말했잖아. 내가 죽였다고!”
서걱-
“으아악!!!!!”
지운성의 오른 팔목이 썰려 나간다.
“씨발 새끼야! 그만해! 내가 죽였다니까!”
“으아악!!!!!”
이정훈의 호소에도 칼은 멈추지 않았다.
지운성의 피부가 벗겨지고, 귀가 뜯겨나가며 결국엔 나머지 눈알까지 뽑혀 나간다.
“제발, 그만 하세요···제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채수연이 눈을 질끈 감곤 흐느낀다.
“허억···허억···”
지운성은 비명을 지를 힘조차 빠진 듯 거친 숨을 허덕인다.
“이제 여자 쪽으로 넘어가죠.”
정현태의 말에 지운성을 고문하던 사내가 채수연을 향해 걸어 나간다.
[김혁재]
어느샌가 사내의 머리 위로 붉은 이름이 떠올라있었다.
고문으로 선악 수치가 개판이 돼 수배지에 오른 것이다.
“히익!”
채수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참다못한 이정훈이 나지막하게 입을 뗐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만해···”
정현태의 손바닥이 올라가자, 김혁재가 멈춘다.
“자 말씀하세요. 누군가요.”
“처음 보는 남자였어.”
이정훈은 이를 갈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김백청과 마찰이 있던 인물, 마스터의 관심을 받은 사내.
“그 사람이 주먹 한 방으로 괴물을 터트려 죽였어. 진짜야! 그러니까 그만해.”
계속해서 주장하던 이야기보다 더 신빙성이 낮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게 누구인데.”
하지만 정현태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곤 물었다. 아무래도 진실을 체크하는 스킬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젠장···’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린 이정훈은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강···.”
떨리는 입속으로 단어가 흘러나오던 그 순간이었다.
띠링-
[뇌섬격을 사용하였습니다.]
콰과과과과과과-
어두운 대기를 하고 하나의 선이 쏘아진다. 스르륵- 그 선이 도달한 착지점은 고문을 자행하던 김혁재.
미친 듯한 속도에 김혁재는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띠링-
[주먹 강타를 사용하였습니다.]
퍽!!!
그대로 폭사한다.
후두둑-
핏물이 왈칵 터져 나온 그 위로한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너무나도 순식간이라, 못 알아볼 법도 했다. 하지만 정현태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무려 10년, 아니 지구에서조차 알고지냈던 지독한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강우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