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첫 번째 복수(2)
띠링-
[타락 용사 김혁재을 처치하였습니다.]
[60,000,0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800,000룬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후두둑-
내장과 뼛조각이 나뒹군다. 쾌쾌한 오물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고요한 숨소리조차 증폭되어가던 그때 정적을 깬 건 정현태였다.
“우빈이 형? 뭐야··· 잘못 본 거 아니지? 형 맞지?”
정현태의 표정이 싹 바뀐다. 좀 전까지 품던 살기는 온데간데없었다. 눈을 비비적거리더니, 마치 오래된 친우라도 만난 듯 밝게 웃으며 양팔을 펼친다.
“다행이다. 살아 있었구나! 주성이 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고 엄청 힘들었었는데.”
애써 침착하게 떠들고 있었지만, 정현태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분명 제물로 바쳤었는데, 어떻게 살아있지. 진짜 강우빈 맞아?’
손수 직접 보내지 않았던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는 걸까.
“뭐라고 말 좀 해봐? 아! 맞다. 우리 이제 1등이야 주성이 형님도 형 돌아온 거 알면 좋아하겠다. 같이 갈래?”
정현태는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였다.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떻게 혁재를 한방에···’
조금 전 폭발해 사망한 김혁재는 정현태가 공들여 키운 히든카드였다.
단순한 무력만 보면 랭킹 100위 권에 들 정도로 뛰어났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비밀 병기.
‘씨발···’
단순히 저놈에게 들어간 아이템의 값만 해도 수백만 룬을 호가한다.
그런 보물이 단 한 방에 터져 나갔다.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났지만, 정현태는 애써 화를 꾹 눌렀다.
‘능구렁이 같은 놈이 그냥 왔을 리가 없어.’
무려 10년 이상을 같이한 동료였다. 마스터인 차주성에게 찍혀서 버림받긴 했지만, 정현태는 그 누구보다 우빈을 잘 알았다.
오롯이 실력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차주성이 우빈을 파티에 받아드린 것만 봐도 우수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5년 동안 뭘 한 거지.’
던전에 버린 지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왜 지금에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복수한다. 이건가.’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뭐라고 말 좀 해봐? 무서워지려고 하네. 미안하다니까?”
정현태는 정훈의 단검을 바닥에 버리곤, 우빈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우빈의 행동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그저 살기 가득한 눈으로 정현태를 죽일 듯이 노려볼 뿐.
병신이 아닌 이상 저 적의를 못 느낀다면 이상할 지경이었다.
“하아···”
정현태가 한숨을 푹 내쉬며 다가가는 걸 포기한다. 뒷머리를 벅벅 긁적이더니, 표정을 바꾼다.
‘안 통하네.’
날이 선 표정으로 우빈을 노려본다.
“이제 와서 뭔 친한 척이냐. 그렇지?”
“·········”
“그냥 거기서 죽지 그랬어. 괜히 사람 민망하게.”
정현태는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계획을 바꿨다.
‘약좀 올려 볼까.’
우빈을 버리던 그 당시가 언제나 아쉬웠다.
밝은 척하며 위선을 떨던 우빈은 언제나 같잖았었다.
현실에선 차 한 대조차 사지 못하던 거지새끼가 엘리드에선 기세 좋게 떵떵거리는 게 아니꼬웠다.
딱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다.
저 새끼가 절망에 무너지는 모습을. 어떻게 해야, 반응할까.
“아, 맞다. 형 유주알지?”
마침 우빈에게 알려줄 좋은 소식이 있었다.
오유주. 길드에서 유독 우빈을 따르던 여자애이다. 얼굴도 반반한 게 길드에서 인기가 많았지만, 이상하리만큼 우빈을 따랐다.
“형 죽었다고 하니까 어찌나 울던지, 너무 불쌍해서 내가 던전 앞에 데려다줬었잖아.”
그 말에 우빈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정현태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쐐기를 박았다.
“뭘 했을지 예상이 가지? 그냥 죽기는 아깝잖아. 유주도 가기 전에 한번은 해봐야 할 거 아니야.”
키득거리며 천천히 우빈을 향해 다가간다.
“그런데 재미가 없더라. 그래서 고블린한테 던져줬지.”
정현태의 표정이 내려앉는다. 마치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 섬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좀 볼만하더라고. 살려달라고 우는데. 어느샌가··· ”
“닥쳐.”
“뭐야? 말할 줄 알았구나. 나는 충격으로 벙어리라도 된 줄 알았지.”
정현태는 우빈의 표정을 관찰했다. 무미건조하던 딱딱함에서 강렬한 분노로 변질되어간다.
살짝만 건드려주면 더 멋진 표정이 될 것 같았다.
“왜 형도 걔한테 마음 있었어? 진즉 말하지. 그러면 고블린 새끼까지는 베게 하진 않았을 텐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콰지지직- 강렬한 전류와 함께, 펑- 우빈의 신형이 쏘아졌다.
콰과과과- 우빈의 신형이 지나간 대기가 폭발하듯 일그러지더니, 후웅! 순식간에 정현태의 육신에 도달한다.
“오?!”
순간 모습을 놓칠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띠링-
[토룡의 가호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정현태의 주변으로 투명한 막이 생성되는가 싶더니, 가가가각- 우빈의 검이 그대로 멈춘다.
“그래도 놀지는 않았나 보네?”
꼴을 보니, 제대로 된 장비는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게 있다면 무기 정도인데.
‘어? 저거 마검 아니야?’
핏줄이 솟구친 듯 오톨도톨한 디자인. 마검 특유의 검은 오오라와 검에 박힌 눈알은 그야말로 전설이라 불릴만한 모습이었다.
‘와···.’
정현태는 마검을 보곤 넋을 놓고 말았다.
분명 마검은 4년 전 어떤 미친놈이 검성에게서 빼앗곤 사라졌다고 들었었는데, 어떻게 저걸 가지고 있는 거지?
이유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었다.
‘마검···.’
가지고 싶었다. 빼앗고 싶었다.
마검은 10년 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컬렉션 중 하나였으니까.
콰과과과과- 카드득-
우빈의 신형이 정현태의 주변을 갈아낸다.
콰직- 바닥이 갈려 나가고 대기가 휘청거린다.
그때마다 보호막이 조금씩 갈라지며 금이 간다.
‘파괴 속성인가?’
토룡의 가호는 월드 보스의 즉사기급 공격기까지 완벽하게 막아낼 정도로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딴 칼질에 금이 간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파괴 속성으로 인한 디버프뿐.
‘역시 마검인가.’
마검에 붙은 효과가 확실해 보였다. 설마 토룡의 가호에 이런 흠집을 낼 수준이라니.
두근-두근-
참을 수 없었다.
원래라면 적당히 놀아주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뚫릴 것 같냐? 이건 주성이형도 못 뚫어.”
적당히 대꾸해주며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띠링-
[마비의 독니]
종류: 완드
등급: S
내구력: 140/140
공격력: 8
지력:+5
체력:+3
효과
-공격 시 마비 효과 부여.
-마비 중독확률 70% 증가.
-마비 중독 저항력 70% 증가.
괴물 같은 필드 보스조차 30분은 묶어둘 수 있는 히든 장비였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듯 과한 면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내꺼야.’
이미 정현태의 머릿속엔 이미 마검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띠링-
[검은 연기 포션]
종류: 포션
등급: A
효과
-병을 깨트릴 시 짙은 연기가 적의 시야를 가립니다.
정현태는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원래라면 적의 눈을 가리고 교란용으로 쓰는 잡아이템이다.
캉그랑-
하지만 마비의 독니랑 만나면 효과는 달라진다.
파스스스- 주변으로 짙은 녹빛 연기가 자욱하게 퍼져나간다.
강렬하게 번쩍이던 우빈의 검격이 멎는다.
앞이 보이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마비에 빠졌을 것이 확실했다.
5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 찾아왔다. 이번엔 그때처럼 시간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괴롭혀주지.
‘유주나 보여줄까?’
조금 전 화내는 모습을 보아하니, 오유주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다.
과연 변한 유주를 보여주면 어떻게 반응할까.
‘재미있겠는데.’
정현태의 표정이 악귀처럼 변한다.
‘그래도 값은 치르고 데려가야지.’
무려 5년간 키워놓은 혁재를 죽인 값은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우선 이빨부터 다 뽑고 시작할까?
뿌옇게 피어오른 연기가 조금씩 걷힌다.
분명 바닥에 쓰러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곤 바닥을 훑었다.
“뭐야? 어디 갔어?”
그러나 연기가 걷힌 바닥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구속해놓았던 병신 3인방만 입에 거품을 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설마 토꼈나?’
의문이 가시도 전.
탁-탁-탁-탁-탁-
저 멀리서 발소리와 함께, 우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전력으로 달린다.
‘병신 새끼.’
정현태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복수하겠다고 나선 주제에, 안 될 걸 알곤 바로 도망친다.
원래 저렇게 추했었나? 실소가 절로 튀어나왔지만, 우선 쫓아가야만 했다.
“야! 거기 안 서!”
전력을 다해서 뛰는데 거리가 점점 더 멀어져갔다.
체감상 A급 탈것보다 빠른 느낌.
“씨발!”
이를 바득 갈며 뛰어가다, 탈것을 부르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처벅-
우빈의 걸음이 멈춘다. 더 이상 도망칠 길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퇴로는 정현태가 지나온 길 하나뿐.
“하아··· 진짜, 안 쪽팔리냐? 나 같으면 그냥 싸우다 죽겠다.”
키득거리며,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검을 꺼냈다.
“아, 맞다. 이건 돌려줄게.”
캉그랑-
검 한 자루가 우빈의 앞으로 팽그르르르 떨어진다.
“아끼던 무기 맞지? 뺏길 때 눈물까지 글썽거리던데. 이제는 쓰레기여서 아무도 안 쓰거든.”
우빈이 아무 말 없이 그 검을 주워든다.
“왜? 좋아?”
“현태야.”
“?”
“너 참 말이 많아졌구나.”
“······.”
“일단 한번 죽고 시작하자.”
“뭐?”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함께.
끼이이익-
불길한 소음이 뇌를 긁는 듯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철컹-
거대한 충격이 대지를 타고 흘러나왔다.
“뭐야?!”
재빠르게 돌린 등 뒤로 이해할 수 없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5M 육박하는 거대한 문이 굳게 닫혀있다. 분명 지나온 길은 통로였는데···
그러고 보니, 바닥부터 원래 있던 지하실관 묘하게 달랐다.
‘함정?’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띠링- 하나의 문구가 정현태를 반겼다.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에 입장하였습니다.]
띠링-
[화마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화르륵-
주변으로 강렬한 불꽃이 치솟는다.
뜨겁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띠링-
[토룡의 가호가 당신을 수호합니다.]
이 보호막은 심해에서조차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정을 준비한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만,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
냉정함을 찾은 정현태는 실소를 터트렸다.
“한번 죽여? 개 웃기네.”
배를 붙잡으며, 끄윽-끄윽- 웃음을 흘린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중이병이라도 도졌나.”
이윽고 표정이 싹 가라앉으며,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너야말로 일단 좀 맞자.”
띠링-
[고통의 속죄]
종류: 창
등급:S
내구력: 143/150
공격력: 8
생명력: +3
기량: +6
룬석: [착란] [마비] [증폭]
효과
-통증 100% 증가.
-관통력 80% 증가.
-공격력 50% 증가.
재미용으로 구해놓은 S급 무기였다.
이 아이템은 토룡의 가호와 시너지가 좋았다.
토룡의 가호는 무적 같은 방어력을 보여주는 대신, 일정 범위 가진 조건부 스킬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창만 있다면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할 수 있었다.
“뭐해? 열심히 준비했는데, 뭐라도 해봐야지?”
정현태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우빈을 도발했다.
토룡의 가호에 체력을 소모할 때, 고통의 속죄로 조금씩 괴롭혀준다.
수년간 필승으로 먹히던 전략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린다.
또 뭘 알려주면 좋아하려나.
씨익-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 정현태의 표정에 흥미가 감돈다.
그렇게 천천히 입을 떼는데, 처벅- 우빈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마검을 이용해 공격할 줄 알았는데, 뭐지?
갑자기 마검을 바닥에 버리곤, 주먹을 쥐고 다가오는 게 아닌가.
‘이게 날 병신으로네.’
장난기 가득하던 정현태의 표정이 굳는다.
적당히 가지고 놀면서 절망을 주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제대로 밟아주마.’
그대로 자세를 낮추곤, 창을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때마침 우빈의 주먹이 토룡의 가호를 향해 뻗어져 간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마지막 발악같았기 때문이다.
정현태는 그 모습을 보며, 망설임 없이 창을 내질렀다.
그대로 주먹과 함께, 팔을 꿰뚫고 어깨까지 짓누를 생각으로.
그렇게 정현태의 창이 토룡의 가호를 지나, 후웅- 연약한 우빈의 주먹과 톡- 부딪히는 그 순간이었다.
띠링-
[주먹 강타를 사용하였습니다.]
짧은 충격과 함께.
콰직-
정현태의 기억은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