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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척결(3) (33/107)

32. 척결(3)

어수선한 분위기 속, 민주희가 구세주라도 발견한 듯, 우빈에게 다가갔다.

“우빈씨! 저 좀 도와주세요.”

“뭐 하는 거예요?”

“무슨 내기를 한다고 해서요.”

“내기요?”

우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로 향한다.

[최고의 용사 선택해주세요.]

[윤지아]-4명

[김호준]-33명

[조기훈]-28명

[민주희]-0명

[배팅 룬: 650,000룬]

‘투표?’

소위 말해 배팅이라는 시스템이었다. 

경마처럼 우승할 대상을 고르고 맞춘 사람이 룬을 가져가는 방식.

‘이런 걸 왜 하는 거야.’

그동안 못했던 스킬 카드나 업그레이드하러 왔더니, 뜬금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우빈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척결로 이철영을 처치해 작업대의 능력을 확인하면, 바로 그 새끼가 있는 장소로 출발할 계획이었으니까.

우빈이 오자 주변의 시선이 주희와 우빈에게 쏠린다.

“저 새끼냐? 도민준을 처치하고 운성이까지 치료해줬다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래도 운성이를 살려주신 분인데 새끼는 쫌···”

“뭐?! 이 새끼가 내가 말 한마디 하는데 너한테 허락 맡아야 돼?!”

“아, 아뇨···”

그중 한 사내가 우빈은 뚫어져라. 응시했다.

터질듯한 근육질의 마초남이었다.

어깨를 쫙 피고있는 것이, 서열이 제법 높아 보인다.

“뭘 봐?”

우빈과 눈이 맞추진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좁힌다.

“······.”

우빈이 아무런 대꾸 없이 계속해서 바라보자, 눈썹을 꿈틀거리며 반응한다.

“저 새끼가 처 돌았나. 한번 해보자고?!”

“선배! 손님이잖아요! 또 그러신다. 죄송해요. 화가 많으신 분이라.”

“씨발, 아까부터. 너 누구 편이야!”

“아파요! 아파!”

용사들은 대개 저런 부류가 많았다. 

단순히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상대의 눈을 내리깔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월주의자.

굳이 어울려줄 필요도 없었다.

“칫.”

우빈이 시선을 돌리자,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시선을 옮긴다. 그 대상은 사내가 투표한 조기훈.

사내가 조기훈의 어깨에 두꺼운 팔을 올리며,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저년은 꼭 이겨라. 지면 앞으로 존나 괴로울 줄 알아.”

“네? 갑자기요?”

“남자 새끼가 왜 이렇게 배짱이 없어. 이길 거야 말 거야?”

“이, 이길게요.”

대놓고 무시하는 건 저 사내뿐이었지만,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우빈과 주희를 경계하는 듯한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주희가 무시를 당하든 말든 굳이 신경을 쓸 이유는 없었지만, 거슬렸다.

‘저놈들이랑 경쟁하는 건가.’

우빈의 시선이 김호준과 조기훈, 윤지아에게 향한다. 2일전, 화민서를 따라갔던 신입 용사들이었다. 

아직도 표정이 얼빵한게, 몬스터 한 마리 잡아보지 못해 보인다. 하지만 민주희는 달랐다.

목숨이 달린 자이언트 오우거와 싸워 승리를 거머쥐었다.

띠링-

[민주희][LV.83][HP:1,300/MP:130]

거기다 민주희의 레벨은 이미 8개월 차 용사와 비등한 수준. 애초에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내기였다.

‘마침 잘됐네.’

그래도 이왕 경쟁하는 거 화끈하게 이기는 게 좋지 않은가.

마음을 정한 우빈은 민주희에게 속삭였다.

“스킬 카드좀 잠깐 줘보시겠어요?”

“네? 스킬 카드요? 그건··· 알겠습니다.”

민주희가 고민하더니, 우빈에게 스킬 카드를 건넨다.

“여기 있습니다.”

우빈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돌아와, 스킬 카드를 건넸다.

스킬 카드를 다시 받은 주희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오른다.

“이, 이건.”

단출했던 스킬 카드의 효과가 많이 바뀌어있었기 때문이다.

“와···”

게임을 잘 모르는 민주희조차 읽는 순간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효과였다.

띠링-

[스킬 카드: 파괴 광선]

종류: 스킬 카드

등급: S

레벨: 10

형태: 액티브

효과

-강렬한 빛을 모아 모든 것을 분쇄합니다.

추가 효과

-파괴 광선 데미지 10% 증가

-파괴 광선 범위 10% 증가

-파괴 광선 데미지 20% 증가

-파괴 광선 범위 20% 증가

-즉발 시전 개방

-마력 소모 50% 감소

-파괴 광선 데미지 50% 증가

-파괴 광선 범위 50% 증가

-10% 확률로 이중 시전

***

“씨발! 비켜!”

이철영이 미친 듯이 달려 나간다. 수레를 끌고 짐을 나르던 주민을 어깨로 그대로 밀친다.

“이봐요! 거기 안 서!

“꺄악-””

길을 막는 여성의 몸통을 그래도 후려치며 앞으로 튀어나간다.

‘도망쳐야 해. 도망쳐야 해!’

이철영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에 온통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반쯤 무너진 사무실.

있는 힘껏 구겨진 문을 잡아당긴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씨발! 열려!!!!”

쾅! 쾅!

발로 차고 어깨로 밀치기를 10분.

끼리릭-

문이 조금씩 열리더니, 쾅! 그대로 이철영의 몸이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허억-허억-”

원래도 체력이 안 좋았지만, 지금은 더욱더 최악이었다.

띠링-

[이철영]

레벨:1

어렵게 올려놓았던 레벨 1로 초기화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선악: 100

그나마 마음에 드는 요소가 있다면 0을 향해가던 선악 수치가 다시 100으로 돌아와있다는 건데.

“어디 있어!!”

지금 이철영에겐 하나도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다급하게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흡!”

치우지 못한 시체가 부패해 썩은 내가 진동한다. 코를 찌르다 못해, 어지러울 정도로 심각했다.

이철영은 숨을 참으며 무너진 건물 잔해를 이 잡듯이 뒤졌다. 무너진 잔해를 들추고 돌을 나르기를 20분.

“찾았다!”

굳게 닫힌 철제 냉장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철컹-

다행히도 철제 냉장고의 문은 쉽게 열렸다.

문을 활짝 열자, 수십 개의 병이 모습을 드러낸다. 스산한 냉기가 피부를 찌를 정도로 내부는 차가웠다.

안구를 시작으로 간, 심장, 콩팥 심지어는 뇌까지 들어있는 장기 보관소였다. 

지금 이딴 것을 챙길 시간에 당장 부신을 떠나고 싶었지만, 살아가려면 최소한의 자금은 필요했다. 

굳이 전부 챙길 필요도 없었다.

이철영은 하나의 병을 집어 들었다. 

두근-두근-

적출한 지 수년이 넘었음에도 강렬하게 뛰고 있는 심장이었다. 

용사만이 지니는 강렬한 고동이 유리병을 뚫고 손끝을 울린다.

‘이거면 다른 도시에서 새출발하기엔 충분하지.’

이 심장은 이철영의 동포. 용사의 심장이었다. 

이 심장을 이식하면 용사와 같은 힘을 낼 수 있다는 미신에 고위 귀족에게 비싼값에 거래된다.

하지만 이 장기는 쉽게 팔수 없었다. 거래했다는 기록 하나만으로도 용사들의 표적이 돼 암살당할지도 몰랐으니까.

‘씨발 새끼. 어떻게든 갚아주마.’

그러나 지금은 그딴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든 당했던 수모를 꼭 갚아주어야만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어?! 그러고 보니까. 뭐지?’

그 지옥 같던 고문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십년은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무너진 사무실의 상태 하며 썩고 있는 시체의 부패상태 하며 아무리 길게 잡아도 7일도 채 지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씨발, 뭔 상관이냐.”

마음을 굳힌 이철영이 심장을 보관함에 집어넣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성이··· ’

앞으로의 나날을 그리며 계획을 세워가던 그때였다.

“쓰레기 새끼.”

“어?!”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스릉- 툭-

의사를 잃은 이철영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띠링-

[민주희 용사님에게 배팅하시겠습니까?]

[10,000룬을 배팅하셨습니다.]

[당첨 시 획득 룬의 20%가 민주희 용사님에게 전달됩니다.]

배팅할 수 있는 룬은 1만 룬으로 설정돼 있는지, 더 걸 수 없었다.

우빈은 민주희를 선택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세요?!”

민주희가 애처롭게 우빈은 부른다.

우빈은 가볍게 말을 무시하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미 볼일은 전부 끝낸 지금. 굳이 여기서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애초에 결과가 뻔히 그려지기도 했고.

“알아서 하세요. 저는 할 일이 있어서.”

“그, 그래도··· 응원해주시지···”

민주희가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리던 그때였다.

“이제 시작하죠. 누구부터 하실래요?”

“주희씨 일로 오세요!”

“아! 네!”

내기가 시작되었다. 민주희가 하는 수 없이 경기장으로 뛰어나간다. 

우빈은 주희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타 발걸음을 옮겼다.

우선 민주희의 특성으로 얻은 새로운 스킬 카드를 확인했다.

띠링-

[뇌섬격[S]] → [뇌광섬[L]]

[스킬 카드: 뇌광섬]

종류: 스킬 카드

등급: L

레벨: 1

형태: 액티브

효과

-초월적인 전류로 전방의 적을 파멸시킵니다.

원래 S급 스킬 카드였던 뇌섬격은 별다른 리스크 없이 L등급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었다.

효과만 보자면 큰 차이점은 없어 보였지만, 엄청난 것이 바뀌어있었다.

검으로 국한돼있던 발동 조건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다는 건 맨 손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데.

‘써볼까?’

당장이라도 사용해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뇌광섬이 아니었다.

[스킬 카드: 초진동+10]

등급: L

원래부터가 L등급이었던 초진동의 변화였다.

[초진동[L]] → [빅뱅[UL]]

[스킬 카드: 빅뱅]

종류: 스킬 카드

등급: UL

레벨: 1

형태: 패시브

효과

-타격 시 초월적인 충격으로 대상을 붕괴시킵니다.

“UL등급···.”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새로운 등급의 스킬 카드였다.

다만, L등급 이상의 대상을 업그레이드할때는 약간의 조건이 필요했었다.

띠링-

[초월의 의지를 사용하였습니다.]

[대상의 가치가 너무 높습니다.]

(주의! 초월의 의지 부여에 실패시 아이템이 소멸합니다.)

정확한 확률을 모르겠으나, 도전한 결과 실패없이 스킬 카드를 얻을 수 있었다.

‘궁금하네.’

안그래도 초진동은 제법 유용했다. 

정현태의 보호막에 기스를 냈으며 간단한 주먹질과 발길질을 강화해주는 효과를 보여줬다.

과연 UL등급의 스킬은 어떤 효과를 보여줄까.

우빈이 새롭게 얻은 스킬 카드에 흥미를 느끼고 있던 그때였다.

우빈의 앞으로 인기척이 느껴졌고, 스르륵- 이정훈의 모습이 드러난다.

“부탁하신 겁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이정훈이 손에 들린 검은 보자기를 건넨다. 굳이 열지 않아도 저기 뭐가 들어있을지 예상됐다.

“그러죠.”

우빈은 무덤덤하게 보자기를 펼쳤다. 비명을 지르고 즉사한 이철영의 머리가 담겨있었다.

아무리 못해도 10시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부탁한 지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아 원하는 결과를 이뤄냈다. 

단순한 정보력은 물론이거니와 색적과 기동력은 가히 미친 수준으로 뛰어났다.

‘나쁘지 않은데.’

우빈이 흡족한 표정을 짓자, 이정훈이 바로 말을 이었다.

“마스터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가실까요?”

“그러죠.”

우빈은 이정훈을 따라 이동했고, 하나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식사했던 장소와는 달랐다.

깔끔한 회장실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화민서는 쇼파에 앉아 차를 따르고있었다. 

우빈은 그 시선을 느끼며 맞은 편 쇼파에 앉았다. 그러자 화민서가 차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아까 드렸던 제안부터 다시 이야기할까요?”

동맹에 관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척결의 우수한 능력을 확인하기도 했고.

“저야 영광이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빈의 긍정적인 반응에 화민서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든다.

“계약서라도 쓰나요?”

“아뇨. 서로에 대한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화민서가 자세를 낮추곤 양손을 깍지 낀다.

“서로 원하는 질문 하나씩. 번갈아 가면서 묻기로 하죠. 괜찮을까요?”

“좋습니다.”

“우선 저부터 하겠습니다.”

화민서의 붉은 입술이 달싹인다.

“정현태의 행방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제 손으로 처리했습니다.”

“네? 처리라면 죽였다는 건가요? 어떻게···.”

“하나씩 질문하기로 한 거 같은데요.”

“아, 네. 너무 놀라서 그만. 뭐가 궁금하신가요?”

우빈이 물은 건 딱 하나뿐이었다.

“세이버 핵심 인력. 차주성, 곽정수, 함지연, 이세현. 네 명의 세부 정보를 알고 싶습니다.”

그 말에 화민서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세부 정보라 하면 정확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현재 레벨, 착용 아이템, 현재 위치, 앞으로의 계획, 주력 스킬 정도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우빈은 저 4명의 전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엘리드에서의 5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당장 정현태만 하더라도 그렇다. 5년 전엔 없었던 스킬과 아이템으로 중무장을 한 상태였다.

과연 다른 놈들은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

우빈의 첫 질문에 화민서의 입이 닫힌다.

“곤란하네요. 저도 알지 못하는 정보들이라.”

“·········.”

“지금부터 모든 인원을 쏟아 원하시는 정보를 모아드리겠습니다. 이걸로 답변이 됐을까요.”

바로 답하지는 못 할거라는 걸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아뇨. 정보를 얻게 되면 그때 다시 대화하죠”

“잠시만요!”

화민서가 다급히 우빈을 불러세운다. 

묻고 싶은 게 많을 것이다. 정현태와 도민준을 어떻게 처치했냐를 시작으로 왜 세이버의 정보를 캐묻느냐까지.

그러나 굳이 답해줄 의무는 없었다. 

아무리 동맹을 추구한다해도, 기브엔테이크가 원칙이었으니까.

그래도 너무 숨기는 건 신뢰가 형성되기도 전 관계에 금이갈수도 있을기에. 우빈은 화민서에게 하나의 정보를 던저주었다.

“일주일 내로 부신에 뭔 일이 터질 겁니다.”

“네?”

“세이버의 짓이라는 것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화민서의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쾅!!!!!!!!

거대한 충격에 대지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띠링- 우빈의 앞으로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민주희 용사님이 최고의 용사로 선정되었습니다!]

[배팅 상금 632,000룬을 획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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