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 뜻밖의 보상(1) (34/107)

33. 뜻밖의 보상(1)

“이번 기수는 영 별로네.”

내기의 게임 방식은 연승전. 

첫 도전자가 10레벨의 영체와 싸우다 지면, 다음 차례는 10레벨의 영체와 바로 전투를 벌인다.

그렇기에 항상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우수한 한 명이 레벨 40대의 영체까지 도전한 뒤, 패배. 그다음 차례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개박살이난다.

지금도 역시 그러했다. 

레벨 44단계까지 올라간 조기훈의 탈락을 시작으로 김호준, 윤지아가 줄줄이 떨어져 나갔다.

“죄송해요. 50까지는 가고 싶었는데.”

“남자 새끼가 고개 안 들어?!”

조기훈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자, 그를 전적으로 밀어주던 척결의 부길마. 고지태가 거대한 손바닥으로 조기훈의 등을 툭 친다.

“으악!”

조기훈이 고통에 바닥을 뒹굴며, 아파한다.

고지태는 아파하는 조기훈을 뒤로한 채, 차가운 표정으로 스테이지에 오르는 여인을 바라봤다.

‘마음에 안 들어.’

얼굴은 이쁘장했다. 혼자서 아등바등 연습하는 모습은 나름 똘똘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만, 저 여자와 같이 온 남자가 문제였다.

‘도민준을 죽였다고···’

고지태에게 있어 도민준은 목표이자 화민서에게 꼭 이뤄주고 싶은 선물이었다. 

그런데 저 새끼 때문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수년간의 노력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박은 기분이었다. 

‘씨발.’

기분이 더러웠다. 

어떻게 도민준을 처치한 걸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호승심이 샘솟았다.

얼마나 강한지, 그 잘난 실력을 한번 보고 싶었다.

‘어디 갔어?’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저 여자와 동료 사이라고 들었는데, 어디 간 걸까. 개 처발릴 걸 알고 미리 자리를 피한 건가?

“빨리 시작해. 가서 좀 쉬게.”

“재미 없다. 이런 건 비등비등해야 재미있는데.”

초반에 훈수질로 흥미를 느끼던 길드원들이 하나둘씩 하품을 하며 지루해한다. 이미 끝난 게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러면 시작할게요.”

사람들의 아우성에 채수연은 바로 시작을 알렸다.

-끼에에엑

채수연의 조작에 소환한 영체가 기괴하게 울부짖으며 민주희를 향해 달려 나간다.

흡사 고블린을 연상케 하는 외모였지만, 고블린보다는 긴 다리와 송곳니를 지닌 트롤이라는 개체였다. 

트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순식간에 민주희의 지척에 도달한다.

조기훈을 포함 전원이 첫 타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당연하게도 민주희 역시 첫 타를 버티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그를 증명하듯, 민주희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어 서 있을 뿐이었다.

-끼이에엑!

트롤이 긴 창을 민주희를 향해 내지른다.

날카로운 창격이 그대로 민주희의 몸통을 관통할 것처럼 허공을 가른다. 

원래라면 약간의 움직임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무서워도 바닥에 주저앉거나 눈을 질끈 감는 등 반응이 있어야 정상이니까.

하지만 민주희의 행동은 애매했다. 반응을 못 한 건지,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어떻게 하지.’

트롤을 통제하던 채수연은 고민에 빠졌다. 

영체를 멈춰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대로 계속해? 

‘멈추자.’

어차피 이벤트성으로 시작한 게임이지 않은가. 쓸데없는 부상보다는 게임을 멈추는 편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였다.

민주희가 완드가 트롤의 창을 향하자.

띠링-

[파괴 광선을 사용하였습니다!]

[10%의 확률로 이중 시전이 발동되었습니다.]

[파괴 광선을 사용하였습니다.] 

콰과과과과과과과-

거대한 광선이 포탄처럼 모든 걸 갈아내며 쏘아졌다.

콰과과과과-

흡사 10M에 육박하는 트럭이 포탄처럼 쏘아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후웅- 강렬한 열기에 대기가 휘청거리며 지면이 요동친다.

건물의 내벽이 녹아내리고 전방의 모든 것을 갈아내며 하늘을 꿰뚫는다.

펑-

10초가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거대한 에너지가 파스스 소멸하며 후끈한 열기만이 주변을 가득 메운다.

“와···.”

수십 명의 길드원이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뻥 뚫린 건물 너머로 구름이 원형을 이루며 뒤틀린 그 광경은, 흡사 드래곤의 브레스를 떠올리게 할 파괴력이었기 때문이다.

“뭐냐? 이게 말이 되냐?”

“특성이 뭐길래, 온 지 일주일도 안 됐다며.”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하던 그때, 파괴 광선을 가장 가깝게 접한 고지태의 동공이 당황한 듯 파르르 떨렸다.

고지태의 방어력은 차주성과 견주어도 꿀리지 않는다 자부했다. 실제로 고지태의 랭킹은 5위로서 엄청난 능력을 갖춘 실력자였으니까.

그런데, 조금 전 쏘아졌던 스킬. 맨몸으로 맞았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꿀꺽-

파괴 광선의 여파가 꿰뚫은 귀 끝으로부터 핏물이 흘러내린다.

“씨발···”

안 그래도 다운돼 있던 고지태의 기분이 더 가라앉던 그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화민서가 다급히 뛰어왔다.

***

똑-똑-

물방울이 바닥을 두드리며, 떨어진다. 축축한 바닥 위로 한 사내가 자세를 낮춘다. 

눈매를 좁히며 검지로 바닥을 훑는다.

진득한 피와 살점이 바닥으로 쭈욱 늘어지며 손에 착- 달라붙는다.

“척결 사람들이 여기서 무슨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만 보고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이 불구로 실려 가고 사망자는 따로 없다고 들었습니다.”

뭔가를 열심히 말하던 사내는 불안한 듯, 뒷걸음질 쳤다.

“그러면 이제 가봐도 되죠? 급한 일이 있어서.”

망설임 없이 도망치려는데, 아무것도 없었던 허공으로 무언가가 튀어나오더니, 사내의 앞을 가로막는다.

2M는 가뿐히 넘을 거대한 체구의 남성이었다.

“히익!”

사내가 깜짝 놀랄 겨를도 없이. 콰직- 사내의 복부로부터 거대한 파육음이 터져 나왔다.

쿨럭- 사내는 피를 토하며 그대로 즉사했다.

“불쌍하게 왜 죽여.”

“입이 가벼운 놈입니다. 우리가 조사하고 다녔다는 걸 떠들고 다니면 곤란합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선악 수치 조절 잘해라. 나중에 머리 아파지니까.”

“네.”

검지로 바닥을 훑는 사내의 이름은 곽정수. 사내의 복부를 꿰뚫은 인물은 곽정수를 따르는 김희조였다.

둘은 살점과 피가 자욱한 바닥을 훑으며 무언가를 찾았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김희조가 뭔가를 찾을 듯 상체를 숙이며 뭔가를 집어 들었다.

고급스러운 방패와 검이 새겨진 배지.

“정현태님이 이 맞는 것 같습니다.”

“······.”

이 배지는 정현태가 운영하는 상단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언제나 배지를 몸에 지니고 다녔으니, 이 살덩어리가 정현태라고 생각하는 건 틀리지 않은 추측이었다. 

다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지금 바닥에 있는 건 살덩어리와 아이템의 파편뿐. 이 시체가 정현태라는 보장은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몇 가지 있었다. 

어제까지 이곳에 정현태가 있었고, 척결 새끼 3마리가 생존했다는 것이다.

“척결이라···”

척결을 조사하다 보면 정확한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당장이라도 척결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마땅했지만, 그 전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 계획대로 진행해.”

“네.”

곽정수는 차갑게 눈매를 좁히며, 작게 속삭였다.

“척결이라···”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꾸벅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는 민주희를 뒤로한 채, 우빈은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려나.’

우빈이 척결에게 원했던 건 대신 정보를 모아줄 노동력이었다.

이제 직접적인 동맹을 맺었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확실한 정보를 얻어올 터.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바로 떠나도 상관없지만, 우선 확인해야 할 요소가 있었다.

‘어떻게 됐으려나.’

우빈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과 연결된 문(룸3: 마이룸)을 생성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문 하나가 턱하고 튀어나온다.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에 입장하였습니다.]

방에 들어서자 스산한 냉기와 함께, 주변의 풍경이 변한다. 

지금 있는 장소는 작업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시련이 없는 3번째 방.

원래라면 고요함에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하지만 그 방의 중심 인기척이 느껴졌다.

“흐윽-흐윽-”

급박한 숨소리. 공포에 질린 흐느낌. 쪼르르르- 우빈을 발견하곤 바로 찌리는 게 누군지 바로 알 수밖에 없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풀어주신다고 했잖아요···”

이철영이었다.

‘되는구나.’

이철영은 양팔과 다리가 작업대에 구속된 상태로 매달려있었다.

분명 밖에서 이철영의 시체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여기 이렇게 살아있다는 건.

‘쓸만한데.’

전부 이 아이템의 능력 덕분이었다.

[작업대]

종류: 제작대

등급: L

내구력: 100/100

설명: 크로노스가 사용하던 작업대입니다. 다양한 실험이 가능해집니다.

[이철영 용사님을 고정합니다.]

작업대.

100만 룬을 잡아먹은 아이템이었다. 

이철영을 처음 올려놓을 때까지만 해도 쓸모없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아이템은 엄청난 부수적인 효과가 있었다.

우빈은 이철영을 작업대에서 꺼내, 옆 방에 집어 던진다.

“제발. 제발!!!”

철컹- 

문이 닫히고, 1분도 채 되지 않아.

“허억-”

이철영이 작업대로 돌아왔다.

‘고정한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이철영을 처음 작업대에 올릴 때 이런 문구가 떠올랐었다.

[작업대에 이철영 용사님을 고정합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넘겼는데, 이철영은 작업실에서 죽을 때마다 작업대에서 부활했다.

즉, 작업대는 그냥 육체의 구속뿐만 아니라 영혼을 구속하는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우빈은 하나의 실험을 진행했다. 

과연 이철영이 작업실 밖에서 죽어도 작업대로 돌아올지를.

만약,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빈의 존재를 아는 이철영을 처리할 수 있어서 좋았고, 되돌아오면 작업대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어서 이득이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설마 밖에서 죽어도 작업대로 돌아올 줄이야.

우빈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작업대를 선택했다.

띠링-

[작업대]

-주입

-분해

-변환

어김없이 3개의 항목이 떠올랐다.

원래라면 흥미가 없었지만, 작업대의 성능을 봐서 그런지, 궁금했다. 

특히 분해와 변환. 누르면 이철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호기심이 들끓어올랐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다.

“히익-”

이철영에겐 꼭 해줘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우빈은 겁에 질린 이철영의 뒷머리를 움켜쥐며 읊조렸다. 

“부탁 하나만 하자.”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민주희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한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저희 쪽에서 제안한 게임이라면서요? 척결에서 전부 처리하겠습니다.”

화민서는 별다른 말 없이 뒷수습을 이어나갔다.

다행히도 사상자는 없었다. 부신의 주민들 역시 다친 사람은 없었고. 

다만, 건물 수십 채가 박살 난 건 제법 피해가 컸다. 

“와··· 언니 조금 전 어떻게 한 거예요?”

윤지아가 먼저 와서 질문을 한다. 그 일을 당하고 나서 이렇게 밝은 표정은 처음이었다. 

윤지아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 무슨 스킬이에요? 이렇게 센 스킬은 처음 봐요!”

“와··· 주희씨. 엄청 세구나. 어떻게 한 거예요?”

수많은 관심에 민주희를 향했다.

“어, 저 그게···”

주희는 수많은 질문에 당황한 듯 제대로 된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어떻게 답해야 할까. 생각보다 스킬의 위력이 너무 화려해 일이 커져 버렸다.

“어···”

민주희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였다.

“꺼져봐.”

“으악!”

주희를 둘러싸고 있던 인파를 밀치며 한 사내가 주희의 앞으로 다가왔다.

고지태였다.

고지태는 험악한 얼굴을 들이밀며, 민주희의 손에 들린 완드를 빼앗았다.

사나운 눈빛이 좁아지며 살기가 떠오른다.

“S급 무기잖아.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네? 저··· 그게.”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만 같은 압박감에 민주희는 주눅들었다.

“선배님! 손님이라니까요. 좀 더 친절하게···”

“씨발! 닥쳐! 그거 제대로 맞았음. 넌 여기 못 서 있었어.”

“아, 아무리 그래도.”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해? 넘어온 지 7일도 안된 년이 도시 하나 정도는 없앨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게?”

“그게, 무슨···”

“뒷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수배자 새끼들한테 사주를 받았을지도 모르고.”

민주희가 거듭되는 억측에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다.

“지원 상자에서 얻었어요.”

“지원 상자? 무슨 지원 상자?”

“18회차 지원 상자라고 인벤토리에 들어있었어요.”

그 말에 고지태의 시선이 옆에 있는 동기 용사에게 향한다.

“맞아요. 확실히 인벤토리에 그런 아이템이 있었어요.”

“그런데 너넨 왜 없어?”

“저희는 전부 빼앗겼어요.”

“누구한테?”

“도민준입니다. 그만하시죠. 오늘같이 좋은 날 얼굴 붉힐 필요 없잖아요?”

계속되는 겁박에 화민서가 고지태의 앞에 나섰다.

“도민준이 이분들의 아이템을 빼앗는 걸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화민서의 단호함에, 고지태가 미간을 좁히며, 이를 악문다.

“하아··· 알겠습니다.”

이내, 체념한 듯, 민주희의 앞에 완드를 집어 던지며, 발걸음을 옮긴다. 

“죄송해요. 원래 저런 분이 아닌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소란스러웠던 상황은 그걸로 종료됐다.

다들 민주희에게 호기심이 많았지만, 더는 묻지 않았고, 무너진 건물 수습에 열을 올렸다.

한편.

쾅!!!

주먹질에 벽이 움푹 파이며 부서진다.

고지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요동쳤다.

‘씨발! 씨발!’

조금 전 파괴력에 애써 참고 있던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아드레날린이 들끓어 오르며, 이성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꽈드득-

당장이라도 무언갈 박살 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안 되겠다.’

고지태는 마음을 정한 듯 발걸음을 옮겼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길드고 뭐고 전부 부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사냥으로 몬스터를 곤죽으로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대로 성 박을 향해 나가려는 그때였다.

저 멀리서 이 감정의 모든 근원인 새끼가 모습을 드러냈다.

“씨발, 너 오늘 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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