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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인체 실험(4) (43/107)

42. 인체 실험(4)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이세현의 눈꺼풀이 차갑게 내려앉으며 한 사내를 쏘아본다. 

“강우빈?”

이세현의 의문에 우빈이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주성이 형 말고는 아무도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기억하고 있었구나. 고마운데?”

이세현은 그런 우빈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어떻게 여기에···’

나름 준수한 외모,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눈동자. 

5년 전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완전 딴판이었다. 

마치 지옥에서 탈출한 살인귀 같다고 해야 할까. 하긴 아이템까지 전부 빼앗곤, 던전에 버렸는데, 아무렇지 않은 것이 더 이상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이세현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입을 뗐다.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아니다. 애초에 살아있으면 진즉, 우리를 찾아오지, 그랬어. 다들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진짜? 너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어? 감동적이네. 현태도 비슷한 말을 하던데.”

그 말에 이세현의 미간이 꿈틀거린다.

“현태?”

“어, 현태.”

“설마, 현태. 네가 죽였어?”

“섭섭한데.”

“······”

“내가 현태를 죽일 리가 없잖아.”

우빈이 등 뒤에 있는 문을 활짝 연다. 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이세현의 앞으로 집어 던진다.

철벅- 

“허억-허억-”

이세현의 앞으로 날아온 무언가가 가쁜 숨을 내쉰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전신이 새까맣게 타버린 그 모습은 흡사 불에 타 죽어가는 고블린을 떠올리게 했다.

“현태야, 뭐해? 누나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숯덩이가, 우빈의 말에 반응한다.

“사려···주ㅅ ㅔ 요. 사 려 주세여···.”

폐까지 타버렸는지, 제대로 된 호흡조차 하지 못하는 몸을 이끌곤, 열심히 바닥을 기며 애원한다.

“이, 이게 현태라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애초에 우빈이 현태를 제압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정현태의 전력은 세이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했으니까.

‘어디서 거짓말을.’

판단을 내린 이세현은 풋 실소를 터트렸다.

“재미있네. 이러면 내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어?”

거대한 지팡이를 꺼내 움켜쥔다.

웃던 표정이 싹 가라앉더니, 콰직- 숯덩이의 머리를 으깬다.

“준비할 거면 얼굴이라도 비슷한 놈으로 준비하지, 그랬어. 가짜인 게 너무 티 나잖아.”

“그래? 가짜같아?”

우빈이 다시 한번 등 뒤에 있는 문을 활짝 연다. 이번에는 숯덩이가 아니었다.

한 사내의 머리채를 붙잡곤, 끌고 와선 그대로 등을 발로 찬다. 끌려 나온 사내가 꼴사납게 이세현의 앞을 뒹군다.

“세, 세현이 누나?!”

“······”

누가 봐도 정현태의 모습이었다.

“세현이 누나!!!”

정현태의 눈가로 눈물이 고인다. 

“현, 현태라고?!”

현태가 설립 맴버 중에선 어리기는 해도, 나름 어른스러운 면이 있는 녀석이었다. 이렇게 애처럼 울 녀석이 아니었다.

“누나! 뭐해, 우빈이 형한테 빨리 무릎 꿇고 빌어.”

정현태가 몸을 덜덜 떨며, 이세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퍽!!!

이세현은 망설임 없이 정현태의 복부를 발로 찼다.

“허억-”

레벨이 1로 초기화된 정현태는 엄청난 충격에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군다.

“내가 병신처럼 보여? 안 속으니까, 적당히 해.”

이세현은 아직도 정현태의 존재를 부정했다. 애초에 못 믿는 게 당연했다. 

정현태의 레벨은 190에 육박했고, 고작 이런 발길질에 아파한다는 것 자체가 가짜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빈에게 있어, 이세현이 정현태의 존재를 믿고 안 믿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필요한 건 단 하나.

“강탈한 아이템 하나당 시련 주기 1초 증가.” 

이세현에게 절망을 선사하는 것뿐.

우빈의 말에 고통에 허덕이던 정현태의 표정이 싹 굳는다.

“뺏어.”

우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타다다닷- 정현태가 미친 듯이 이세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정현태의 허우적거리는 손가락이 이세현의 살갗을 툭 두드린 그 순간.

띠링-

[정현태님이 강탈을 사용했습니다.]

[아이템을 빼앗겼습니다.]

이세현의 손에들린 지팡이가 스르륵- 정현태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어?!”

이세현이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형! 여기 빼었어! 나 잘했지?”

정현태가 개처럼 네 발로 강우빈에게 지팡이를 조공한다.

“뭐해? 아이템 하나당 1초씩이라니까?”

실실 웃으며 잘 보이려고 애쓰던 정현태의 표정이 싹 바뀐다.

마치 이성을 잃은 개처럼 다시 한번 이세현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한다.

‘말도 안 돼.’

이세현은 다급히 자세를 낮추며,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없어.’

인벤토리 그 어디에도 조금 전 착용했던 아이템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정말 아이템을 빼앗겼다는 이야기인데.

“저게 진짜 현태라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스러웠지만, 순순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우웅-

이세현이 손바닥을 펼치곤, 스킬을 사용한다.

검은색 구체가 손바닥 앞으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콰과과과과- 강렬히 쏘아진다.

콰드득- 정현태의 어깻죽지가 그대로 뜯겨나가며, 상체의 절반가량이 소멸한다.

하지만 정현태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이세현을 향해 다가와, 툭- 이세현의 육체를 터치했고,

띠링-

[정현태님이 강탈을 사용했습니다.]

[아이템을 빼앗겼습니다.]

다시 한번 이세현의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이 하나 사라졌다.

치명상을 입은 정현태의 움직임이 멈춘다. 

고약한 적막 속, 강우빈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이제 믿겠어?”

“어떻게 한 거야.”

“뭐가?”

“현태를 어떻게 한 거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이세현을 보며 우빈은 천천히 굳게 닫힌 문꼬리를 움켜잡았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끼이익-

다시 한번 닫혔던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얼마 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타다다닷-

어둠 너머에서 정현태가 미친 듯이 이세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정현태의 다리가 폭발한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조금씩 이세현을 향해 다가간다. 

콰직-

이세현은 그대로 정현태의 대가리를 밟아 즉사시킨다. 

띠링-

[정현태님이 강탈을 사용했습니다.]

[아이템을 빼앗겼습니다.]

이세현의 스킬에 정현태의 복부가 그대로 터진다. 내장이 왈칵 쏟아져 내리며, 상·하체가 분리된다. 

철벅- 하체가 그대로 뜯긴 정현태가 손바닥으로 바닥을 쓸며 이세현에게 다가간다.

“미친 새끼야!!!!”

이세현은 어김없이 발길질을 내질렀다. 빠각- 강렬한 타격에 정현태의 두개골이 함몰된다.

띠링-

[정현태님이 강탈을 사용했습니다.]

[아이템을 빼앗겼습니다.]

띠링-

[정현태님이 강탈을 사용했습니다.]

[아이템을 빼앗겼습니다.]

........

.....

....

.

주변으로 정현태의 사체가 바닥에 하나둘씩 쌓여간다. 

그때마다 인벤토리에 가득하던 아이템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형! 이게 다야. 이제 없대. 나 잘했지?”

문에서 나온 정현태가 우빈의 손에 주황빛으로 가득한 포션을 건낸다.

조금 전 생성한 [혼탁한 종언 아드로스의 정기]였다.

“이 새끼들이!!!”

이세현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진다. 이를 바득 갈며,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눈을 뜨고 코를 베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조롱하는 듯한 반복되는 상황이 화를 돋웠다.

하지만 상황은 최악이었다.

띠링-

[MP가 부족합니다.]

MP회복 아이템을 포함, 스킬 카드까지 전부 빼앗긴 지금, 이세현에게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왜 열받아? 열받겠지. 내가 그 마음 잘 알아.”

우빈은 천천히 이세현을 향해 다가갔다. 

“정현태 개새끼야. 감히 우리를 배신해?!!! 이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이세현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우빈을 향해 달려든다. 있는 힘껏 주먹질해보지만, 

“커헉-”

그대로 우빈의 거대한 손바닥이 얇은 이세현의 목을 움켜쥔다. 

가냘픈 이세현의 육신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이제부터 재미있어질 테니까. 천천히 즐겨.”

우빈은 그런 이세현을 십자가 위에 내다 꽂았다.

띠링-

[작업대에 이세현 용사님을 고정합니다.]

이세현의 양손과 다리가 작업대에 착 달라붙는다.

“이거 뭐야!!! 안 풀어!!”

이세현이 악바리를 쓰며 저항한다. 우빈은 조용히 방 한쪽에 있는 한 사내를 불렀다.

“너 일로 와.”

“네?! 네!”

그 사내는 다름 아닌 이상혁이었다. 이상혁은 우빈에게 완벽하게 넘어온 상태였다.

애초에 명령이라는 명분으로 일면식이 있던 주민들을 실험체로 쓰려던 개새끼이다. 

마음만 같아선 작업실에 10분 정도 방치해 교육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세현을 이 장소로 끌고 오려면 길드에서 탈퇴하는 이상 점을 만들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혁을 조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저 보여줬을 뿐이다. 정현태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내 말 안 들으면 너도 이렇게 될 거야.

딱 이 말 한마디로 이상혁은 우빈의 충실한 개가 되었다.

우빈은 다가온 이상혁의 뒤통수를 움켜쥐며 입을 뗐다.

“여태까지 실험했던 약물 전부 가져와.”

***

달그락-달그락-

수천 개의 병이 작업실 내부에서 찰랑거린다. 

[A-1][A-2][A-3]··· [AAA-91]

병 외부엔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있는지 기록되었었다.

우빈은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곤 입을 뗐다.

“시작해.”

명령에 이상혁이 A-1이라고 적힌 병에서 액체를 추출한다.

“미친 새끼야!!!!! 이거 안 풀어!”

이세현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쓴다. 그러나 이상혁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대로 이세현의 가냘픈 손목에 액체를 주입한다.

“그건 초창기 약물이라 농도가 너무 높아서 용사들도 못 버틴다고!!!!!!!!”

뭔가를 설명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이를 악 다문다.

덜그럭-덜그럭-

이세현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린다. 

“허억-허억-”

호흡을 들이켜 마시더니, 흰자를 까며, 눈이 뒤집힌다. 

액체를 투입한 손목을 중심으로 핏줄이 주황빛으로 차오른다. 이윽고, 이세현의 심장 부근으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온다.

퍼억-

그대로 이세현의 육신이 폭발한다.

[이세현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이세현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허억-”

이세현이 가쁜 숨을 내쉬며 작업대 위에서 정신을 차린다.

“뭐, 뭐야?!”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그런 모습에 우빈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계속.”

우빈의 명령에 이상혁은 A-2의 액체를 집어 들었고,

“그만!!!!!!!!!”

이세현의 절규가 작업실 내부로 가득 메아리쳤다.

***

띠링-

[시간의 흐름 가속이 1,000배로 설정되었습니다.]

[시간의 흐름 가속: 1배] → [시간의 흐름 가속: 1,000배]

우빈은 설정을 바꾸곤,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만!!! 제발 그만!!!!!!!!!!!”

이세현이 발악하듯 소리친다. 손톱이 빠지고, 눈코입, 구멍이란 구멍에서 핏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세현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이세현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허억-”

어김없이 되살아난, 이세현을 보며, 우빈은 이상혁에게 일러두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 진행해. 기록하는 것도 잊지 말고.”

“네!”

우빈의 명령에 이상혁이 군기가 바짝 들은 이등병처럼 답한다.

철컹-

우빈은 밖으로 나와, 한 장소를 향해 이동했다. 이세현을 괴롭히는 동안 그녀의 모든 기억을 훑어보았다.

각종 끔찍한 실험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그중 짜증 나는 장면이 있었다.

철컹-

굳게 닫힌 문을 열자, 피와 오물이 썩어가는 듯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화르륵-

옆에 놓은 횃불을 들곤, 방 안에 들어선다.

【흑···흑···흑···】

쇠를 긁는 듯한 음성이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걸어가자, 쇠사슬 소리와 함께, 한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흑···흑···】

흡사 트롤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야 할까. 검은 피부는 녹아내리듯 흐르고 있었으며 전신으론 진득한 점액질이 가득하다.

그 존재는 횃불의 빛이 너무 밝은지, 거대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우빈은 그런 괴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득한 점액질이 손바닥에 들러붙었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유주야. 이제 끝났어.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 존재는 다름 아닌 오유주였다.

【······】

우빈의 물음에도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우빈의 손짓에 몸을 움찔 떨며 공포에 질려있을 뿐.

우빈은 이미 유주의 상태를 알았다.

이세현의 기억 속에 유주의 모든 정보가 담겨있었다.

1년 차까지만 해도 유주는 자아가 있었다. 

살려달라고 그만하라고 매일매일 애원하고 또 빌었다. 하지만 이세현의 연구는 멈추지 않았다. 

거듭된 실험과 고문 끝에 유주의 자아는 붕괴하였다. 

‘어떻게 하지.’

우빈을 유일하게 걱정해주고, 찾아준 사람이다. 

결국, 이런 지옥을 겪은 것도 전부 그 걱정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떻게 해주는 게 유주를 위한 일일까. 

죽음이라는 안식으로 끔찍한 지옥으로부터 해방해주어야 할까. 아니면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게 맞을까.

고민이 되었다. 

작업실의 효과로 다시 육체를 복구시킨다 해도, 자아가 붕괴할 정도로 끔찍했던 기억을 전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수십분의 고민 끝에 우빈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애초에 내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잖아.’

판단을 내린 우빈은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뻗었고,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에 입장하였습니다.]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의 특별한 효과가 활성화합니다.]

차갑기만 하던 작업실이 오늘따라 나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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