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버림받은 주민(4)
띠링-
[암흑기가 도래했습니다.]
[세계수의 힘이 감소합니다.]
[몬스터가 더욱 강해집니다.]
[추가 경험치가 부여됩니다.]
[추가 룬이 부여됩니다.]
[최대 레벨이 상승합니다.]
[2차 각성이 해금되었습니다.]
........
.....
....
.
용사와 관련된 시스템을 시작으로.
[곡식의 수확량이 감소합니다.]
[저장 식량의 50%를 제거합니다.]
[면역력이 감소합니다.]
[대기가 탁해집니다.]
........
.....
....
.
주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메시지까지.
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정신없이 떠오른다.
전부 읽어 이해하기도 힘든 와중.
스르륵-
우빈의 손에 들린 고기가 썩어 문드러지듯 녹아내리더니, 바닥을 적신다.
우빈이 든 고기뿐만이 아니었다.
모닥불 앞에 익히던 고기 중 절반가량이 녹아내리며 소멸한다.
“갑자기 뭐예요 이게?”
“저도 이런 건 처음 봤어요. 시스템이 직접 사회에 개입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주희의 물음에 유주가 답해준다. 짧은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둘은 제법 친해진 상태였다.
하늘이 혼탁해지더니, 주변으로 뿌연 안개가 피어오른다. 저 멀리 우뚝 솟은 세계수의 빛이 조금씩 옅어져 간다.
그 광경을 본, 우빈의 표정이 내려앉는다.
10년 넘게 엘리드에서 살아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상쾌할 정도 맑은 공기가 탁해지는 것을 넘어 들이켜 마시면, 답답해질 정도로 질이 안 좋아졌다.
‘뭐야···’
유주의 말 그대로, 시스템이 직접적으로 엘리드의 환경을 건드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시스템이 개입해온 것일까.
‘너무 무난하다 이건가.’
용사들의 성장을 계속되는 반면, 몬스터의 수준은 멈춰있었다.
그로 인한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세계수의 힘은 점점 강해졌으며 5대 왕국은 평화를 누렸다.
그 과정에서 월드 보스가 무려, 3마리나 공략당하지 않았던가.
이 정도 속도라면 1년 내로 모든 월드 보스를 처치하고, 세계의 끝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난이도 조정은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환경을 건드린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인 식량을 건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숨 쉬는 것조차 페널티를 부여하다니.
우빈은 흥미롭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장난 아니겠는데.’
앞으로 5대 왕국에서 어떻게 나올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성을 가진 왕국 정도야 50%의 식량이 사라져도 당장은 먹고살 만할 것이다. 하지만 자급자족을 이어나가는 소규모의 성이라면 어떨까.
안 그래도 저장한 식량이 부족한데, 수확량까지 감소해버렸다.
그런 와중 왕국에선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식량과 돈을 요구할 것이다.
불만이 쌓이는 걸 넘어 당장 내일을 버틸 미래를 그릴 수 없다면, 어떻게 나올지 뻔했다.
나름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될 것 같았지만, 우빈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성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던, 5대 왕국이 전쟁을 벌이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우빈에게 중요한 건 그 녀석이 얼마나 처절하게 무너질지가 제일 중요했으니까.
차주성을 떠올린 우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지금쯤이면 머리가 많이 아파질 것이다.
계획의 첫 단추가 틀어진 것은 물론, 사건의 중심에 놔뒀던 화민서가 떡하니 살아있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아마 화민서가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기 전에 빨리 처리하고 싶겠지.
‘아직 짜증 내긴 이르지.’
우빈이 앞으로의 계획을 그리며, 남아있는 고기를 들었다.
크게 한입 베어 물자. 육즙이 왈칵 터져 나온다.
‘나쁘지 않네.’
******
찌르르르-
쏴아아-
풀벌레가 울어댄다, 바람에 낙엽이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가 메아리친다. 원래라면 정겨웠을 그 소리가 오늘따라 섬뜩하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숨을 쉬기 힘들어졌다. 아껴먹던 식량도 절반가량이 썩어, 문드러졌고,
안 좋은 상황이 더욱 최악으로 변해만 갔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부신으로 다시 돌아가야지.”
“거기 가면 뭐가 달라져요? 음식도, 잘 곳도 없잖아요.”
수천 명의 표정에 절망이 떠오른다.
“쿠반 씨,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쿠반 씨 생각을 따를게요.”
빛을 잃은 눈빛이 한 사내를 응시한다.
부신의 전 기사단장이었던 쿠반 에델론이었다.
‘운이 좋았어···’
쿠반은 주민들의 시선을 느끼며, 한숨을 돌렸다.
하몬의 기사들에게 공격을 받지 않았던가.
꼼짝없이 학살을 당할 줄 알았는데, 처음 쏜 화살 말고는 공격하지 않았다.
애초에 경고만 하려고 쏜 화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여러 차례 경고하기도 했고.
다행히도, 화살을 맞아 죽은 사망자는 없었다. 전부 그 사내가 준 이 구슬 덕분이었다.
도마뱀을 소환함과 동시, 거대한 화염으로 날아오는 화살을 전부 불태웠다.
그 결과가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더 이상 쿠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과거처럼 우러러보며, 의지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지······’
쿠반은 고민에 잠겼다. 다른 사람들처럼 선 듯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사내가 준 짐승을 타고도 꼬박 하루가 넘게 걸려 도착한 곳이 바로 이 장소이지 않은가.
걸어서 돌아가기엔, 상황이 너무 열악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거기다 오랜 시간동안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했다. 마실 물 또한 바닥난 지 오래고.
그중 가장 문제는 다시 돌아간다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성은 무너졌고, 식량은 전부 싹 쓸어 가져왔다. 시체만 가득한 성에 돌아간다 해서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아, 몰라. 일단 좀 쉬자.”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용사님 따라갈걸.”
“애초에 성에 남아있을 걸 그랬나 봐···”
쿠반이 고민에 잠긴 그때, 사람들의 표정에 후회가 가득 떠올랐다.
더 이상 우빈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민들은 깨달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믿고 경배하던 국왕조차 이들을 버리지 않았던가.
문제는 용사가 아니었다.
힘을 가진 권력을 취한 강자는 전부 똑같았다.
그래서일까.
수천 명의 머릿속으로 지워지지 않은 장면이 계속 맴돌았다.
쏴아악-
폭우가 쏟아지는 지옥 속, 유일하게 빛을 쏘아 받으며 우뚝 선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의 등 뒤론 성 하나쯤은 가볍게 지워버릴 거대한 용과 불사조가 비대한 날개를 펼치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만약, 그분이라면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실제로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이곳까지 데려와 주시지 않았던가.
“돌아가면 어떻게든 해주시지 않을까?”
“맞아, 그분은 뭔가 달라 보였어.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다고 하셨잖아?”
절망 속에서 떠오른 희망에 주민들의 판단이 견고해진다.
쿠반 역시 저들과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
부신으로 돌아가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오늘 밤은 여기서 야영을 하고, 날이 밝는 대로, 부신으로 되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네!”
쿠반에 판단을 내리자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우선, 불을 때우고 터를 잡겠습니다. 주변 먹을 음식이나 물이 있는지 수색조를 꾸리고 찾아보죠.”
상황이 최악이긴 했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쿠반의 결단력에 빛이 꺼져가던 사람들 역시 기운을 차렸다. 그렇게 하나둘씩 몸을 일으켜, 뭐라도 해보려는 그 순간이었다.
마치 그 발악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불이야!!!!!”
한 사내의 외침을 시작으로, 화르륵- 숲속 가득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
뜨거운 불길이 숲속 가득 피어오른다.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얼굴이 익는 듯 찡그려지던 그때, 한 사내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읊조렸다.
“명령하신 대로 전부 처리해두었습니다.”
“자리에서 기다려, 쥐새끼 한 마리라도 놓치면 너나 나나 다 끝이니까. 절대 방심하지 말고.”
“네!”
우렁차면서도 간결한 답이 귓가를 때린다.
돌아가는 부하를 보며, ‘다르긴 알포스’는 조금 전 떨어진 명령을 상기했다.
-반란을 꾀하는 집단이 하몬 성 부근까지 도착했다. 한 명도 남김없이 사살하도록.
짧으면서도 간결한 명령이었다.
안 그래도 부신이 함락돼서 어수선한 지금, 감히 반란을 꾀하는 놈들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렇게 발견한 반란군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인원을 보여줬다. 아무리 적게 측정해도 수천을 넘어가지 않는가.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반란군이라.’
제대로 된 쇠붙이는 고사하고, 넝마가 된 옷과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절반 이상은 여자와 어린아이들.
정말 이들이 반란군이라고? 의문이 들었지만, 다르긴에겐 생각하고 결단을 내릴 자유가 없었다. 그저 내려온 명령을 충실하게 행할 뿐.
각오를 다지며, 마음을 다잡던 그때였다.
“여기 길이 있습니다! 전부 저를 따라오세요!!!”
강렬한 불길의 중심으로 수천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보다 단순한 놈들이네.’
이 불길은 수천 명의 적을 한 장소로 몰아넣기 위한 장치였다.
조금이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만 있다면 안 걸릴 함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덥석거릴 줄이야. 차선책을 마련해둔 게 민망할 정도이지 않은가.
그나저나 가까이서 보니, 몰골이 더욱 처참했다.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지, 얼굴이 시커멨으며, 제대로 된 밥조차 먹지 못한 듯, 야윈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절망적인 몰골에 망설일 법도 했다. 하지만 다르긴의 명령엔 자비가 없었다.
“전원 준비!!!!!!!”
다르긴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 선두론 기다란 창을 내지른 창병이 거대한 방패를 들곤, 전열을 갖춘다.
그 뒤로 꽈드득- 거대한 활을 든 궁병과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가 당장이라도 공격을 쏘아낼 준비를 끝낸다.
“저, 저게 뭐야.”
“함정이다!”
“도망쳐!!!!”
그 모습을 본 반란군들이 당황하던 그 순간.
“공격!!!”
다르긴의 말과 함께, 쒜에엑- 화살이 쏘아진다. 펑!!! 불꽃 구체가 모든 것을 태울 기세로 발사된다.
대상을 완벽하게 말살할 전력을 담은 폭격이었다.
제법 숫자는 많지만, 수 시간 이내로 명령을 수행할 수 있을 거라 판단됐다.
하지만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띠링-
[드래고를 소환하였습니다.]
반란군의 선두로 푸른 빛을 머금은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콰과과과- 강렬한 불꽃을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화살이 불에 타고 화염구가 염화에 잡아먹힌다.
도마뱀처럼 생긴 괴물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크르릉- 거린다.
그걸 본 다르긴의 표정이 차갑게 내려앉는다.
‘보물인가.’
보물. 용사들이 사용하는 아이템을 주민들이 일컫는 용어였다.
‘푸른 빛을 머금은 괴물이라면, 영혼석이군. 어디서 난거지?’
다르긴이 이끄는 부대는 대용사전을 위해 훈련받은 특수 집단이다.
당연하게도 용사가 사용하는 아이템을 잘 알았고, 저 존재를 어떻게 하면 처리할 수 있는지 역시 잘 알았다.
“계획을 약간 수정한다. 반란군 진압 이전에 영체 제압을 우선시하겠다.”
다르긴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두에 창을 들이밀던 창병이 방패와 창을 내려놓곤, 허리춤에 있는 짧은 막대기를 꺼낸다.
투척하는 사냥꾼처럼 막대를 역수로 쥐곤, 집어던진다.
휘이익-
섬뜩한 소리를 내며, 막대기가 허공을 가른다.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지만,
-끼에에엑!!!
거대한 도마뱀은 바로 반응을 해왔다.
뜨거운 불꽃을 쏘아내며, 다시금 쏘아진 모든 것을 불태웠다.
원래라면 형체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어야 정상이었다.
상급 마법사의 화염구조차 일격에 소멸시킨 강렬한 불꽃이지 않은가.
툭-툭-툭-툭-툭-툭-
그러나 막대기는 검게 그을렸을 뿐,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히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거대한 도마뱀은 원형을 그린 막대기의 중심에 서 있었다.
우웅-
바닥에 박힌 막대기로부터 푸른 빛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콰지지지지직!!! 파멸적인 전류가 도마뱀을 직격한다.
-끼에에엑!!!!!!
푸른 빛을 머금은 도마뱀이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10초도 되지 않아. 쿵 거대한 육신이 힘을 잃곤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이, 이게 무슨···”
반란군의 대장으로 보이는 기사가 그 모습에 당황한 듯 주춤거렸다.
그 모습은 본, 다르긴의 표정에 만족감이 떠오른다.
영체는 이런 식으로 제압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영체는 힘들게 처치해도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불사신 같은 존재였으니까.
“공격 준비!!!!!!”
거슬리는 존재를 제압한 다르긴은 바로 명령을 내렸다.
꽈드득-
궁병의 활 위로 날카로운 화살이.
우웅-
마법사의 손아귀 앞으로 강렬한 마나의 흐름이.
당장이라도 저들을 분쇄할 준비를 끝마친 그 순간이었다.
처벅-
경악에 질린 반란군들의 앞으로 한 사내의 신형이 내려앉았다.
“첫 번째 명령부터 지랄 같네.”
그 사내의 낮은 음성과 함께,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짧은 스포츠머리, 육중한 근육이 두툼하게 자리 잡은 거구.
용사 특유의 반짝거리는 갑옷과 전신으로 뿜어져 나오는 마나는, 저 사내의 존재를 증명했다.
그 사내를 바라보는 다르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
저 사내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년 용사들은 힘겨루기를 통해 강함을 증명했다. 그때마다 5대 왕국은 그들의 순위 경쟁을 주시했다.
강자를 알아야, 경계를 할 수 있을 것이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할 수 있었으니까.
다르긴 역시 그 경합을 본 것이었다. 물론, 출전하는 용사를 전부 알지는 못했다.
얼굴을 전부 기억할 정도로 시간이 남아돌지도 않았을뿐더러, 어중이떠중이는 기억할 필요성조차 없었다.
그러나 저 사내는 아니었다.
작년, 최고의 용사를 결정하는 경합 최후의 10인에 든 괴물이자, 랭킹 5위에 기록된 실력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