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결전(2)
촤좌좌좌좌좌-
레이핀의 육신이 폭발해 장기와 내장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
후웅-
떠오른 육신이 중력에 의해 아래로 고꾸라진다. 우빈은 바로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띠링-
[다크 피닉스를 소환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거대한 육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빈은 피닉스 위에 올라타 아래를 내려다봤다.
구우우우우-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우빈의 뒤를 따라 요란하게 이동한다.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다. 이건가.’
지금 우빈을 뒤따르는 존재는 영체도 아니었으며 탈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영체나 탈것은 한 마리씩 밖에 소환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부신의 피난민을 얻기 위해 귀찮을 일을 진행한 거기도 하고.
하지만 이 아이템만 있다면 귀찮게 주민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띠링-
[로얄 고블린 카탈로그]
종류: 카탈로그
등급: S
레벨: 100
효과
- 로얄 고블린을 소환합니다.
(!경고: 소환 몬스터가 비정상적으로 강합니다.)
바로 카탈로그라는 시스템이었다.
우빈의 시선이 수백 마리의 무리 중 선두에 선 존재에게 향한다.
고르르르-
1M 남짓으로 작은 키. 빈약하다 못해, 얇은 팔과 다리.
어딜 봐도 보잘것없는 고블린의 모습이었지만, 내뿜는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머리 위론 황금빛 왕관을, 털이 복슬복슬하게 피어난 망토를 두른 것이 딱 봐도 왕을 상징하는 모습이지 않은가.
‘효율이 떨어진다 이건가.’
우빈은 카탈로그를 처음 만들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아드로스의 정기]+[로얄 고블린 영혼석]
저 재료를 가지고 이세현의 연금을 통해 제작된 게 바로 카탈로그이다.
아드로스의 정기 같은 경우는 이세현의 연금만 있다면 무한정 생성이 가능하니까, 그렇다고 치는데.
띠링-
[로얄 고블린]
분류: 고블린
등급: S
레벨: 100
HP: 5,800/5,800
MP: 310/310
스태미나: 300/300
생명력: 400
정신력: 210
지구력: 200
근력: 206
기량: 154
체력: 328
지력: 112
감각: 219
행운: 301
특성: [비굴한 왕]
스킬: [생존 본능] [익살스러운 통치] [카리스마] [고블린 병사 소환] [고블린 궁사 소환][-]
소모된 영혼석 같은 경우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과연 카탈로그는 영혼석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가.
답은 이세현의 지식 속에 담겨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소환 제한이 없다는 거랑 죽으면 탈것처럼 끝이라는 거야.
영체의 경우, 죽음에 도달하는 충격을 받아 소멸해도 얼마든지 다시 소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탈로그의 경우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세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카탈로그는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소모된 영체와 똑같은 성능을 내는데, 죽으면 끝이다?
굳이 엄청난 리스크를 만들면서까지, 카탈로그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거기다, 카탈로그로 소환된 몬스터는 영체와 다르게 자아를 가지고 있어, 말을 잘 안 듣는다는 단점도 존재한다고 했다.
실제로 소환한 새끼 중, 몇몇은 우빈을 따라오지 않고, 던전에 낙오되어 떠돌고 있었다.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영체를 소모해 카탈로그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영체가 아까우니까. 안 만드는 걸 추천해.
이세현 역시 우빈에게 카탈로그를 만드는 걸 추천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빈의 생각은 달랐다.
‘쓸만하겠는데.’
원래라면 민주희와 유주를 어느 정도 성장시킨 뒤, 던전을 폭파할 생각이었다.
던전이 붕괴하면, 안에 살던 몬스터는 본능에 따라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게 일반적인 행동이지 않은가.
밖에서 함정을 파고 있을 그놈들에게 빅 엿을 줄 계획이었다.
다만, 이 방법은 약간의 리스크가 있었다.
던전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갇힐 위험성과 던전을 탈출할 몬스터의 숫자가 랜덤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탈로그만 있다면 비슷한 효과를 리스크 없이 이뤄낼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었다.
‘어떻게 나오려나.’
우빈은 앞으로의 일을 떠올리며 씨익 눈웃음을 지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과 이어진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쏴아아아-
요란한 소리가 메아리치며, 상쾌한 바람이 주변을 가득 메운다. 꽃향기가 가득했으며 달콤한 꽃내음이 후각을 자극한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장소인 세계수의 정원.
“이게··· 태양 씨라고···”
황금빛으로 가득한 꽃밭의 중심으로 숯덩이가 된 무언가가 처량하게 놓여있었다.
하선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존재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조금 더 빨랐더라면···”
“······.”
두 사내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인상을 찌푸린다.
저 둘은 하선율을 포함, 긴급회의에 참여한 용사들을 이 장소로 부른 장본인이자, 이태양의 죽음을 발견한 김씨 아저씨와 하경수였다.
“어떻게 된 건가요? 최수호 그 새끼는 어디 있어요?”
하선율의 떨리는 손이 숯덩이가 된 이태양을 향한다. 흰 천으로 이태양의 얼굴을 덮곤, 주먹을 꽉 쥔다.
그녀의 분노가 느껴졌다. 강렬한 살기에 절로 마름 침이 삼켜질 정도로 오싹했다.
하선율의 다그침에 김씨 아저씨가 천천히 입을 뗐다.
“주변을 탐색하던 와중, 동쪽 부근에서 거대한 불길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그 장소로 갔는데 그 장소에 이상한 괴물이 태양씨 앞에 있었습니다.”
“······”
이야기를 듣던 하선율의 표정이 차갑게 내려앉는다.
“그러니까, 부신에서 본 화민서와 유사한 무언가가 태양씨 시체에 서 있었고, 그 괴물에게 갑작스럽게 공격을 당해서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고요?”
“네. 정신을 차린 그때 강우빈 씨와 화민서 씨가 저희 앞에서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상황 보고를 하던 와중 갑자기 도주해서 여기까지 쫓아온 거고요.”
“최수호는요?”
“네? 최수호요?”
하선율의 다그침에 김씨 아저씨가 그 당시를 떠올린다.
‘그러고 보니까···’
강우빈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정신이 없던 터라, 기억이 흐릿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선율은 고개를 내리깐 김씨 아저씨와 하경수를 뒤로한 채, 몸을 돌렸다.
‘젠장···’
하선율의 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수배지를 활성화했다.
띠링-
[현상금 수배지]
-샤이어 고블린
-히드라
-아퀼레오스
-밀버튼
........
.....
....
.
원래라면 수배지엔 악행 수치가 높은 오른 타락 용사의 이름이 등록되어있다. 하지만 최수호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유해 기간이라는 요소 때문이었다.
수배에 오르고 시스템에 등록되기까지 7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즉, 지금으로선 그 새끼를 찾을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선율의 흰 이마로 붉은 핏줄이 솟구친다.
김씨 아저씨와 하경수는 죽음과 가장 가까웠던 인물들이지 않은가.
중요한 정보 하나쯤은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쓸만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저들에게 뭐라 다그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하선율 역시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태양의 사망 소식에, 폭주해서 차주성을 구타한 뒤, 제압당하고.
놈들에게 이 사건의 배후로 차주성을 지목한 것까지는 기억났다.
그러나 차주성에게 끌려간 뒤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왜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차주성···’
하선율이 이를 바득 갈며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저기 들어갔다고요?”
“저거 세계수 히든 던전 아니야? 어떻게 들어간 거지···.”
“보면 몰라? 부수고 들어갔잖아.”
“그러니까. 저거 레이핀이 후려쳐도 꿈쩍도 안 하던 문이잖아.”
수백 명의 용사는 긴장 가득한 표정으로, 한 장소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질적으로 거대한 문, 한쪽이 박살 나 어둠으로 가득하다.
여기 있는 이들은 엘리드에서 난다긴다하는 상위 용사들이지 않은가.
대부분이 1~5회차 용사들이었으며, 엘리드의 역사를 몸으로 체험한 숙련자들이었다.
당연히도 저 문의 존재를 너무 잘 알았다.
이들 중 90% 이상이 저 문을 도전한 장본인이자, 레이핀이 문을 후려치는 걸 본 산 증인들이었으니까.
그 당시를 떠올리면, 아직도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충격적인 위력이었다.
그런데 저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다?
‘도대체 뭐하던 새끼야.’
별생각이 없던 이들조차 진지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모두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 긴장감을 높여가던 그때, 무너진 문 앞으로 이 인원을 대표하는 존재들이 원을 그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토론했다.
“진짜, 언제까지 기다리자는 거야. 그냥 들어가서 끌어오자고.”
긴급회의 당시 전신으로 피칠갑을 하고 있던 사내, 김강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불만을 표시했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더 이상 핏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우람한 근육이 불끈거릴 뿐.
“저도 강준씨 말에 동의해요. 벌써 하루가 지나갔잖아요. 언제까지 기다려요.”
“함정이면요?”
“함정인 게 뭐가 중요해? 지금 안 보여? 이 인원이면 월드 보스도 공략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의견을 종합해보자면 두 가지 파로 나뉘었다.
던전에 들어가 강우빈을 생포하자는 의견과 어차피 나올 테니, 준비하자는 의견이었다.
“저 구멍 안 보여요? 레이핀도 못 부신 걸 부수고 던전으로 들어갔잖아요. 거기다 부신을 멸망시키고 이태양까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그냥 길드 탈퇴한 것뿐이라며, 이태양 시체 네가 봤어? 진짜 죽었는지는 봤냐고. 그리고 문을 못 부순 건 거의 5년 전이잖아. 지금 우리 힘이면 저 정도는 부술 수 있을걸?”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
똑같은 대화로 여기까지 흘러온 상태이지 않은가.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차주성이 행동에 나섰다.
세계수를 향해 걸어가며, 거대한 방패와 긴 장검을 꺼내 든다. 회의를 기다리던, 서희빈에게 읊조렸다.
“10분 뒤에 던전으로 들어가겠다고 전해줘.”
“네? 아. 네!”
차주성의 말에 서희빈이 다급히 뛰어가자, 둘의 대화를 듣던 대표자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던전에 들어간다고요? 아직 회의 안 끝났어요.”
“역시 화끈해서 마음에 들어. 나도 같이 가.”
“잠깐만요! 이렇게 독단적으로 따로 행동할 거면, 유엔 같은 조직은 왜 만든 건데요!”
“차라리 다수결이라도 하던가.”
1위 길드로서 유엔이라는 귀찮은 조직을 만들고, 강제로 이 자리까지 불러드린 게 바로 차주성이다.
그런 대표자가 무책임하게 회의를 그만두고 던전으로 들어가겠단다. 불만을 표출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 자리까지 모인 거면 유엔을 만든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차주성은 이렇게 나올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씨익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네?”
“언제부터 우리가 다른 사람들 눈치 보면서 행동했어?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난 들어갈 거니까. 따라올 사람들은 따라오고, 밖에서 준비할 사람들은 준비해. 상대는 5명도 안 되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그래! 말 한번 잘한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단순한 말에 모두가 벙쪄있던 그 순간이었다.
구우우우우우-
미묘한 진동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어?!”
수백 명의 시선이 진동의 근원지로 향했다. 그러자 볼 수 있었다.
고르르르-
박살 난 문 너머로 비집고 나오는 작은 고블린을 기점으로,
끼리릭-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그 광경을.
***
구우우우우우-
미묘한 울림이 대지를 두드린다.
“공격해!”
“한 마리도 놓치면 안 돼!”
쾅!!!!
거대한 폭발과 불길이 여기저기 치솟는다.
황금빛 식생이 가득하던 세계수 주변이 파괴되며 삭막한 지형으로 뒤바뀐다.
히든 던전이라 불리던 거대한 문으로부터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길 1시간.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등장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대부분의 용사는 능숙하게 사냥을 이어나갔다.
그 결과 순조롭게 숫자가 줄어들었다.
다만, 몇몇 개체의 몬스터는 비정상적인 강함을 보여주었다.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가장 처음 던전에서 나온 고블린이었다.
고르륵-
크기는 평범한 고블린처럼 아주 작았다. 하지만 능력은 남달랐다.
“뭐해! 빨리 메즈기 걸어!”
“왜 이렇게 안 맞아!”
각종 제압 스킬을 시작으로 전력을 담은 원거리 공격까지.
그 고블린을 향해 쏘아댔지만, 단 하나의 스킬도 적중할 수 없었다.
고르르륵!!!
고블린은 폭발에 이리저리 구르며, 바닥을 뒹굴더니, 배를 잡곤 꺄르르 웃는다.
그리곤, 손에 들린 황금빛 지팡이를 휘두른다.
띠링-
[로얄 고블린이 고블린 궁사를 소환하였습니다.]
[로얄 고블린이 고블린 병사를 소환하였습니다.]
[로얄 고블린이 고블린 궁사를 소환하였습니다.]
[로얄 고블린이 고블린 병사를 소환하였습니다.]
........
.....
....
.
수십 마리의 고블린이 모습을 드러내며, 로얄 고블린의 주변을 에워싼다.
만약, 저 능력을 드래곤 같은 괴물이 사용했다면,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는 고블린이지 않은가.
아무리 많은 고블린을 소환했다 해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내가 어그로 끌테니까, 일단 궁사부터 조져!”
그러나 그건 큰 착각이었다.
“잠, 잠깐만! 으악!!!!”
자신 있게 선두를 지키던 용사가 고블린 병사에게 처참하게 짓밟힌다.
“누가 좀 도와줘!”
“일단, 후퇴해!”
로얄 고블린을 공략하던, 10여 명의 용사가 격양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친다.
“뭐 하는 거야. 저런 거 한 마리도 못 잡고.”
그 광경을 보던, 김강준이 우람한 근육을 불끈거리며, 행동에 나섰다. 그대로 앞으로 나서려는데, 누군가가 김강준의 손목을 붙잡았다.
“돌발 행동은 삼가세요. 계획 세운 거 벌써 까먹었어요?”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듯 눈을 반쯤 감고 있는 가우희였다.
김강준의 옆으로 랭킹 1위인 강범태를 시작으로 차주성까지. 상위 랭커 수십 명이 모여있었다.
이들은 전장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상위 0.1%의 괴물들이지 않은가.
이들이 직접 전투에 나섰다면, 진즉 상황이 정리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김강준의 돌발 행동에도 십여 명의 시선이 한 장소를 향했다.
어느샌가 활짝 열린 세계수의 히든 던전 입구였다.
“이제 나올 것 같으니까. 준비해.”
지금 이 사달을 일으킨 주범, 그 녀석을 제압해야만 했으니까.
“알겠다고.”
심각한 분위기에 김강준이 체념한 듯, 활짝 열린 문을 응시하였고, 비명과 폭발의 소음이 가득 울려 퍼지던 그 순간이었다.
콰지직-
히든 던전의 존재감을 나타내던 게이트가 일렁거리는가 싶더니.
스르륵-
한 사내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 저건···”
모두가 뜻밖의 인물에 황당해하고 있던 그때, 히든 던전에서 나온 사내는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이쪽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주성이 형! 시킨 대로 전부 끝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