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배드 엔딩(1)
후웅- 콰직!!!
깔끔한 호선이 허공을 가를때면 고기를 으깨는 파육음이 터져 나온다.
“살, 살려줘! 범태 씨!!!!! 으악!”
콰직!
간결한 칼질에, 우람한 사내의 두개골이 박살 난다.
지금 즉사한 사내는 랭킹 10위에 오른 용사로서 달빛이라는 길드를 운영하던 거물이었다.
분명 30분 전만 해도, 수백 마리의 몬스터와 용사들이 한 대 엉켜 전쟁터를 방불케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살아있는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서 있는 용사도 없었다.
전부 강범태의 손에 맥없이 나가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고요한 침묵 속, 사람들의 단말마만이 터져 나오던 그때였다.
“이게 누구야? 5년만인가.”
차주성이 우빈을 발견하곤, 양팔을 활짝 펼쳐보인다.
“살아있었으면, 빨리 찾아오지, 그랬어. 그랬으면 식사라도 대접했을 텐데.”
여유롭게 우빈을 향해 다가간다.
우빈은 차주성의 모습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럴걸 그랬네. 현태도 그렇고 세현이도 그렇고. 보고 싶었다고 하더라고 그렇지? ”
“어! 맞아. 엄청나게 보고 싶었어.”
“나도! 보고 싶었어. 세현아. 내가 맨날 말했었잖아. 우빈이 있었을때가 더 재미있었다고. 그렇지?”
“어? 어···”
우빈의 말에 정현태가 긍정적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함지연은 우빈의 입에 언급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이세현의 동의를 구했다.
‘거슬려···’
차주성은 그런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세현와 정현태, 함지연의 표정을 보아라.
차주성의 눈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우빈의 행동과 표정을 보며, 눈치를 보기만 할 뿐이었다.
‘왜지. 어떻게 한 거야?’
차주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범태를 이용해 여기 있는 전원을 제압했다.
이 순간만큼은 차주성 본인이 가장 눈에 띄었고, 누구보다 두려워해야 할 존재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저 세명은 차주성에게 눈길 한번, 두려운 기색 한번 내비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저렇게까지 충성을 다하는 것일까.
“어때? 내가 준비한 선물은 마음에 들었어?”
우빈이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대검을 꺼내 들며 차주성에게 묻는다.
우빈이 꺼낸 검으로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것이 딱 봐도 상급 아이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물이라···’
우빈의 말에 차주성의 눈매가 좁아진다.
선물이라면 뭘 말하는 것일까.
부신을 작업하던 정현태를 빼앗아 계획을 방해한 거? 아니면 아드로스를 실험하던 이세현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연구하던 시설을 전부 박살 낸 거?
“너무 받은 게 많아서. 정신을 못 차리겠네.”
짜증이 치솟다 못해, 이가 갈릴 수준의 일들이었지만, 상관없었다.
회중시계만 있다면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으니까.
차갑게 굳어가던 차주성의 표정으로 미소가 떠오른다.
‘부신부터 싹을 자를까? 아니야. 조금은 즐기게 놔둬야지.’
회중시계로 되돌아간 그 순간 무엇을 할지 우선순위를 떠올리던 그때였다.
“그래서였구나.”
순간 우빈의 눈썹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뭐?”
“너무 막장으로 행동하길래, 궁금했었거든.”
“막장? 무슨 소리야?”
차주성의 물음에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우빈의 손에 들린 대검이 액체처럼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손바닥으로 응축되어갈 뿐이었다.
오싹하면서도 소름이 끼치는 살기가 전신을 짓누른다.
차주성은 그런 우빈을 보며, 씨익 눈웃음을 지었다.
수많은 강자와 목숨을 겨뤄가며, 살아온 그이지 않은가. 이렇게 마주하는 것만으로 대상의 전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랑 비슷하네.’
5년 전이었던가. 아드로스를 공략하던 그때, 강범태가 내뿜던 느낌이 딱 저랬다.
감히 싸운다는 선택지를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운이 본능을 짓누르는 이 기분.
감범태가 내뿜던 살기와 똑 닮지 않았는가.
그렇다는 건 강범태와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졌다는 의미일까?
‘그럴 리가 없잖아.’
차주성은 강범태에게 무려 3번의 죽음을 경험했다.
미래를 알고, 강범태가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 알았지만, 순수할 정도로 파괴적인 무력은 제압하기 힘들었다.
실제로 지금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고작 한 명의 무력으로 엘리드를 대표하는 수십 명을 짓밟는 힘이라니.
‘궁금하네.’
차주성의 표정에 흥미가 떠오른다.
“밟아.”
우빈이 고통에 허덕이며 울부짖는 표정을 떠올리며, 읊조렸다.
스르륵-
차주성의 명령에 강범태의 시선이 우빈을 향한다.
망설임 없이 대지를 짓밟으며 앞으로 쏘아진다.
펑!!!
대기가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강범태의 육신이 우빈의 앞으로 생성된다.
너무 빨라서 제대로 움직임을 포착할 수도 없었다.
차주성만이 강범태의 움직임을 놓친 게 아니었다.
지금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강범태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끝났다.’
당연하게도 첫 일격에 싸움은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1초도 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어?!”
강범태의 검이 후웅- 호선을 그리며 우빈의 육신을 내려치는 그 순간.
띠링-
[주먹 강타를 사용하였습니다.]
퍼억-
강범태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
촤좌좌좌좌좌좌-
강범태가 서 있던 장소로부터 핏물이 왈칵 쏟아져 내린다.
살점이 이리저리 튀었으며, 장기와 뼛조각이 바닥을 두드린다.
“뭐야?”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에 사고가 따라오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려 노력하던 그때였다.
띠링-
[엘리드를 위협하는 현상금 수배자: 강범태가 사망하였습니다.]
공허한 하늘 위로 거대한 시스템 창이 떠올라있었다.
“범태가 죽었다고···?”
어떻게 한 걸까. 폭발 스킬이라도 쓴 건가? 아니면 저것조차 함정? 그렇다고 하기엔 주먹으로 때린 것 같았는데.
여러 의문이 차주성의 머릿속에 떠오르던 그 순간이었다.
덥석-
목으로부터 강렬한 압박이 찾아왔다.
“커헉-”
차주성의 육신이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차주성의 시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우빈의 얼굴이 보인다.
건방지다 못해, 졌다는 패배감에 이가 갈렸다. 하지만 어떻게든 알아내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강범태를 죽였는지, 아니 저 새끼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어떻게 한 거야.”
“뭘?”
“범태를 어떻게 죽인 거냐고.”
“못 봤어? 주먹으로 때렸잖아.”
꽈드득-
우빈의 말에 차주성의 미간이 구겨진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말해줄 생각이 없다, 이건가.
하긴 개처럼 버려지고 아이템까지 빼앗겨 던전에 버려지지 않았던가.
“죽여.”
무력하게 조롱당할 정도로 성격이 좋지 못했다.
“왜? 빨리 죽고 싶어?”
“죽이라고.”
1초라도 빨리 과거로 돌아가 저 새끼를 짓밟고 싶었다.
“왜? 살려달라고 빌어봐. 그간 봐온 정이 있는데, 살려줄 수도 있어.”
우빈이 정현태와 이세현이 있는 장소를 턱짓하며, 히죽 입꼬리를 올린다.
꽈드득-
여유롭던 차주성의 이마로 핏줄이 솟구친다.
“적당히 해. 난 저 새끼들이랑 달라. 미련 없으니까. 죽이라고.”
“그래? 달라? 미련이 없어?”
우드득-
“으악!!!!!!!!!!”
무릎으로 기괴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무릎이 연골 채 뽑혀 나간다.
“이래도?”
우드득-
“으악!!!!!!!!!!”
이번엔 어깨였다. 어깨뼈가 탈골되며, 붙어있던 근육이 찢겨나간다.
“아직도 죽고 싶어?”
“씨발!!! 죽이라고! 그래. 즐길 수 있을 때 얼마든지 즐겨. 네 머리를 씹어 먹어줄 테니까. 나중에 살려달라고 빌어도 소용없어.”
차주성이 실소를 흘린다.
“기억조차 못 하려나.”
이성이 마비된 듯 헛웃음을 짓기 시작한다.
“그래? 빨리 죽고 싶다고···”
차주성의 엄포에 우빈의 머리가 차주성의 귓가로 내려간다. 우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차주성의 뇌리에 꽂힌다.
“빨리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고?”
“뭐?”
우빈의 말에 차주성의 동공이 파르르 떨린다.
우빈은 차주성의 표정을 보곤, 오싹할 정도로 입꼬리를 올리며 시선을 돌렸다.
“현태야.”
“어! 형!”
“뭐해. 빨리 안 하고.”
우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현태가 개처럼 네발로 기어 차주성에게 다가온다.
“잠깐만!”
차주성은 다가오는 정현태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현태의 특성이라 하면,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강탈하는 능력이지 않은가.
띠링-
[크로노스의 회중시계]
종류: 액세서리
내구력: 5/10
등급: UL
효과
-사망 시 10일 전으로 되돌아갑니다.
(호출 시간: 10일)
만약, 크로노스의 회중시계를 빼앗긴 채,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소지하고 있어야 발동된다.
즉, 빼앗긴 채로 죽으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 안 돼.’
판단을 내린 차주성은 있는 힘껏 입을 악다물었다.
그대로 혀를 씹으려는데, 쑤걱- 입속으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왔다.
“왜? 죽으려고?”
우빈이 차주성의 아가리 속에 주먹을 넣은 것이었다. 이윽고, 우빈의 검지가 퍽- 차주성의 목을 꿰뚫는다.
“허억- 허억-”
굳이 숨을 쉬려고 하지 않아도, 꿰뚫린 구멍으로 공기가 들어온다.
“편하게 가면 안 되지.”
“자, 자까마!!! 아대 아대!!!!”
차주성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입으로 처절하게 울부짖었지만, 정현태의 손길은 막을 수 없었다.
띠링-
[정현태님이 강탈을 사용했습니다.]
[아이템을 빼앗겼습니다.]
[정현태님이 강탈을 사용했습니다.]
[아이템을 빼앗겼습니다.]
........
.....
..
.
***
“허억···허억···”
호흡이 약해지며 빛이 꺼져간다.
목을 잃은 육신이 여기저기 나뒹군다.
“누가 좀 도와줘···”
피와 살점이 낭자하는 지옥의 중심.
“말도 안 돼···”
하선율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의심했다.
여기 모인 수백 명은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상위 1%의 인재들이다.
실제로 하선율 본인조차 랭킹 3위에 등재된 천재였다. 그런 존재들이 고작 1명의 사람에게 처참하게 짓밟혔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을 텐데 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것일까.
“·········.”
하선율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한다.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폭사한 강범태의 시신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강범태의 무력에 놀랄 새도 없이, 더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막연하게 무언가를 가졌다는 것 정도는 알았는데, 이 정도로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을 지녔을 줄이야.
“현태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태양을 죽인 장본인이 처절하게 애원한다. 통쾌할 법도 했지만, 하선율의 표정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아저씨, 경수야···”
하선율을 따르던 김 씨 아저씨와 하경수를 포함 이 장소에 따라온 전원이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복수했다 한들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처참히 죽어 나간 수백 명은 엘리드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인물들이다.
그런 윤활제 같은 존재들이 순식간에 소멸했다. 과연 엘리드의 사회가 이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하선율의 눈으로 절망이 차오르던 그때였다.
“괜찮으세요? 살아있어요!”
“이것 좀 마셔보세요.”
오유주와 민주희가 분주하게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
손바닥에 착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회중시계가 반짝인다.
은빛으로 가득했으며,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져 있다.
‘전부 이것 때문이었나.’
우빈은 차가운 눈매로 회중시계를 응시했다.
띠링-
[크로노스의 회중시계]
종류: 액세서리
내구력: 5/10
등급: UL
효과
-사망 시 10일 전으로 되돌아갑니다.
(쿨타임: 10일)
이 아이템은 정현태의 기억 속에도, 이세현의 정보 속에도 없던 아이템이다.
우빈은 이 아이템을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크로노스······.’
우빈을 던전에 제물로 바치고 얻은 아이템이라는 그 사실을.
꽈드득-
회중시계를 쥔 우빈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고작 이딴 아이템 하나 때문에 10년을 함께한 동료를 버리다니. 이 물건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우빈의 분노가 점점 차오르던 그때였다.
“형! 전부 뺏었어. 나 잘했지?”
정현태가 아이템을 한가득 챙겨서 우빈에게 찾아왔다.
“정현태 이 개새끼야!!! 감히 날 배신해?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저 멀리서 어깨와 무릎을 뜯긴 차주성이 버럭 소리친다.
그동안 빨리 죽이라며, 여유롭게 굴던 행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부 이 회중시계를 가지고 있어서 보여준 여유였겠지.
‘저 새끼는 얼마나 버티려나.’
우빈의 표정이 얼음장같이 내려앉는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차주성만은, 저 새끼만은 특별히 더 이뻐해 줄 필요성이 있었으니까.
“데리고 와. 돌아간다.”
“응!”
우빈의 말에 함지연이 차주성의 머리채를 움켜잡곤, 끌고 온다.
“이거 안 놓아?! 하지 마, 뭘 하려고! 야!!!!”
차주성이 강렬하게 저항하지만, 함지연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우빈은 천천히 손바닥을 들어 올려, 작업실과 이어진 문을 생성하려던 그 찰나였다.
우웅-
작은 구체가 우빈을 향해 날아왔고.
“어?!”
반응을 채 하려는 그 순간.
펑!!!!!
강렬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띠링-
[정현태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정현태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띠링-
[이세현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이세현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띠링-
[함지연 용사님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크로노스의 축복이 함지연 용사님에게 깃듭니다.]
[처음으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