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귀환(3)
쩡!!!!!!!!!!!!!
운석이 터진 떨어진 듯한 거대한 충격에 대지가 요동친다.
촤좌좌좌좌-
레이핀의 육신이 그대로 폭발하며, 장기와 오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
우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화아아악-
수백 일 동안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로 강렬한 햇볕이 가득 차올랐다.
우빈의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 새끼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지옥 같은 고문을 당한 그 순간. 우빈의 목표는 오직 복수 하나뿐이었다.
감옥에서 탈출해 더 이상 시련의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도, 과거라면 상상도 못 할 성장과 보상을 얻었을 때도, 성취감이나 기쁨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나쁘지 않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우빈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떠오른다.
어둠으로 가득하던 구름이 원형으로 소멸하며 맑아진다.
구름 틈으로 새어 나온 햇볕이 대지를 내리쬘 때면, 지옥 겁화로 타오르던 바닥으로부터 불꽃이 소멸하며, 열기가 사그라든다.
어느샌가 불길은 사라진 상태였다.
이상할 정도로 화창한 푸른 하늘 아래, 고요함이 찾아왔다.
철벅-
우빈은 레이핀의 핏물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띠링-
[스킬 카드: 뇌룡포를 획득하였습니다.]
[레이핀의 보옥을 획득하였습니다.]
[레이핀의 단검을 획득하였습니다.]
........
.....
....
.
무수히 많은 보상이 인벤토리로 들어왔지만,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 보상이 있었다.
우우웅-
오물과 내장으로 가득한 시체 산의 중심, 이질적으로 떠오르는 사물이 있었다.
찹쌀떡을 연상케 하는 외형의 물체가 은은한 우윳빛 광체를 내뿜으며 두둥실 떠오른다.
띠링-
[레이핀의 알을 획득하였습니다.]
“알?”
뜬금없이 알이라니, 설마 레이핀을 키울 수 있다는 건가?
우빈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양손으로 레이핀의 알을 집어 들었다.
손바닥으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는 아이템인지, 상태창이라도 확인하려는데 눈앞으로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히든 퀘스트 감염된 레이핀을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
[···]
찌이잉-
[제한 시간을 초과하여 보상을 지급할 수 없습니다.]
[히든 퀘스트의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변경 전
[감염된 레이핀][히든]
난이도: UL
제한 시간: 10분
설명: 세계수의 정령 레이핀에게서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감지되었습니다! 엘리드의 위협이 되는 레이핀을 처치하여, 엘리드의 평화를 유지하세요!
보상: ???
↓
-변경 후
[감염된 레이핀][히든]
난이도: UL
설명: 세계수의 정령 레이핀에게서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감지되었습니다! 엘리드의 위협이 되는 레이핀을 처치하세요.
보상: ???
[특별한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을 획득하시려면 게이트에 입장해주세요.]
화아아악-
우빈의 눈앞으로 공간이 찢어지는 듯하더니, 무지갯빛 광체를 머금은 게이트가 생성된다.
“뭐야?”
우빈은 연속적으로 떠오르는 시스템창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히든 퀘스트라 하면, 레이핀이 아드로스의 정기에 감염된 그 시점에 나온 퀘스트이지 않은가.
분명 제한 시간을 넘겨, 퀘스트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데 왜 갑자기 퀘스트 완료 알림이 떠오른 것일까.
‘이상한데.’
한가지 문구가 우빈의 심기를 건드렸다.
찌이잉-
[제한 시간을 초과하여 보상을 지급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 역시 퀘스트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퀘스트의 내용을 변경하면서까지 보상을 지급하려는 것일까.
‘들어오라 이건가.’
시스템의 의도가 느껴졌다.
우빈을 게이트 너머로 부르고 싶은 것이다.
게이트를 바라보는 우빈의 표정이 사늘하게 내려앉는다.
엘리드라는 이세계로 납치당한 지 십수 년. 아니 던전에 갇힌 시간까지 합치면 숫자로 고려할 수 없는 세월을 이 지옥에서 보냈다.
살아남는 행위에 급급해서 본질을 잊었지만, 여기까지 오자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누가 왜 이곳에 우리를 부른 걸까.
아마도 답은 저 너머에 있겠지.
굳이 어울려줄 이유는 없지만, 궁금했다.
우리를 개처럼 굴린 개새끼의 얼굴이 말이다.
우빈은 판단을 내린 듯 거대한 게이트로 발걸음을 옮겼고, 빛무리 너머로 발걸음을 옮긴 그 순간, 화아악- 강렬한 빛이 몸을 가득 감싸 안았다.
띠링-
[절대자의 알현실에 입장하였습니다.]
***
찌르르르르-
교내 안으로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진다.
캠퍼스 생활을 즐기는 연인, 수업을 들으러 가는 학생들. 다들 저마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 목적은 모두가 달랐지만, 수십 명의 시선은 한 장소로 쏠렸다.
“와··· 개 잘생겼다.”
“누구야? 여기 학교 학생인가?”
“에이 아니겠지. 저 얼굴로 돌아다녔는데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다들 입을 쩍 벌리며, 한 사내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신경이 쓰일 법도 했지만, 사내는 익숙하다는 듯 갈 길을 갔다.
그 사내는 다름 아닌 도민준이었다.
도민준은 조금 전 있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아직 안 돌아왔다고.’
도민준은 엘리드가 마음에 들었다.
기존의 상식과 규칙을 박살 내는 시스템. 그 시스템을 바탕으로 돌아가는 사회.
오직 힘만 있다면 무엇이든 통용되는 질서가 좋았다.
하지만 그 사내의 등장으로 모든 게 끝나버렸다.
수십 년간 노력해 얻은 권력, 무력, 재력. 전부를 잃어버렸다.
설마, 수배에 오르면 귀환 시 가진 아이템과 룬을 전부 잃어버리는 시스템이 있었을 줄이야.
그 덕에 도민준은 지구에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수모를 겪었다.
엘리드였다면 감히 눈도 못 마주쳤을 벌레 새끼들이 승승장구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강우빈···’
단 하루도 그 새끼의 얼굴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찾아내서 복수한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다.
어떻게 하면 그 새끼에게 절망을 선사할 수 있을까.
도민준의 표정이 차갑게 내려앉는다.
‘동생이라고 했던가.’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강우빈의 가족은 여동생과 어머니가 전부였다.
만약, 어렵게 돌아온 지구에 남은 가족이 죽어있다면 그 새끼의 표정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네.’
도민준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가던 그때였다.
“잠시만요!”
도민준의 등 뒤로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아··· 언제 여기까지 오셨데요. 진짜 빠르다.”
조금 전 창고에서 묶여있었던 그 새끼의 동생 강희나였다.
안 그래도 죽이고 싶은 걸, 최고의 복수를 위해 꾹 참아 살려줬더니, 여기는 또 왜 찾아온 것일까.
“무슨 용건이시죠?”
“아, 저 그게···”
강희나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하지 못한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검지를 툭툭 부딪치며 뜸을 들인다.
“없으면 가보겠습니다.”
도민준이 분노를 억누르며 발걸음을 떼자, 강희나가 다급히 입을 뗐다.
“돈 좀 빌려주세요!”
“네?”
“오빠한테 빚이 있으시다고 하셨잖아요. 오빠랑 친구 사이 맞죠?”
“······”
“제가 오늘 게이트 공략, 현장 실습이 있는데, 차비가 없어서요.”
“······.”
“번호를 알려주시면 내일 중으로 바로 갚을게요! 제발 1번만 부탁드려요!”
강희나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눈을 질끈 감곤 당돌하게 말한다.
그 모습을 본 도민준의 입으로 실소가 터진다.
‘어이가 없네.’
생각지도 못한 부탁에 차오르던 화가 팍 식어버렸다. 그러고 보니까. 저 여자는 왜 창고에 묶여있던 걸까.
‘뭔 상관이냐.’
이유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최적의 복수를 위해 살려둔 녀석이지 않은가. 옆에 가까이 놔둬서 나쁠 건 없었다.
판단을 내린 도민준은 명함 하나와 수십 장의 지폐를 꺼냈다.
“이거면 될까요? 일이 있어서. 그럼.”
“네? 너, 너무 많은데.”
수십만 원을 받은 강희나는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 한다.
도민준은 망설임 없이 갈 길을 가려다, 마치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이 발걸음을 멈췄다.
‘게이트 공략이라···’
도민준의 눈매가 섬뜩하게 호선을 그린다. 허공으로 손을 쑤욱 넣더니, 하나의 물건을 꺼내, 강희나에게 건넸다.
“생각해보니, 동생분한테 빚을 갚는 방법이 있었네요.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
찌르르르르-
매미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숲속.
“으아- 덥다 더워.”
민머리 아저씨가 민소매 티를 입곤, 산을 올랐다.
수건으로 겨드랑이와 목을 번갈아 가며 닦으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뭔 놈의 날씨가 이렇게 더워~”
불평 같은 언행 속 음정의 높낮이가 트로트를 연상케 한다.
기분 좋은 등산이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공기는 맑았다. 그렇게 산을 오르길 20분 남짓.
“어? 뭐야.”
등산길 앞으로 붉은 표지판이 우뚝 솟아있었다.
아저씨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표지판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한 여인이 팔짱을 끼곤, 아저씨를 가로막았다.
“아저씨, 여기 못 지나가요. 돌아가세요.”
“뭐? 좀만 더 가면 정상인데, 뭘 돌아가.”
“이거 안보이세요? 위험하니까. 내려가 주세요.”
여성의 말에 아저씨의 시선이 표지판으로 향한다.
타원형 원, 테두리가 물결치듯 꾸불거리는 모양이다.
게이트가 있을 때 시민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설치한 표지판이었다.
“뭐야? 여기에 게이트가 생긴 거야? 어디? 어디 있어?”
아저씨가 땀으로 축축한 몸을 앞으로 내밀며, 여인을 향해 다가간다.
“아저씨!”
“아, 깜짝이야.”
“위험하다고요! 좋은 말로 할 때 내려가시죠?”
여인이 버럭 소리치자, 기분 좋던 아저씨의 표정이 굳어간다.
“아니, 넌 위아래도 없냐? 아버지뻘 어른한테,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하아··· 진짜, 안 그래도 기분 좆 같은데, 별게 다 꼬이네.”
“뭐?!!! 뭐라고?!!!”
아저씨가 여성을 향해 손을 내지른다. 하지만 아저씨의 손은 여성에게 닫지 않았다.
꽈드득-
여성의 작은 손이 아저씨의 손목이 그대로 낚아 챘기 때문이었다.
“어?!”
아저씨는 손목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바로 직감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각성자라는 사실을.
“뭐, 뭐 하는 거야! 이거 안 놓아?!”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내려가시죠.”
“야, 너, 어디 소속이야! 일반인한테 무력 행사하면 콩밥 먹는 거 몰라?! 경찰서 한번 가야 정신 차릴래?!!!!”
아저씨의 고함에 여성의 이마로 핏줄이 솟구친다.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듯, 꽈드득- 손목을 쥔 손아귀로 힘이 들어간다.
“으악!!!”
아저씨가 고통에 비명을 토하던 그때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옆으로 청명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의 손을 압박하던 손아귀의 힘이 풀린다.
“사관학교에서 실습 나온 강희나라고 합니다!”
강희나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두 손으로 학생증을 건넨다.
“······”
여성은 강희나가 건넨 학생증을 응시하며 미간을 좁혔다.
희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죄송해요. 저분도 목숨 걸어가면서 일하고 계신 거라. 예민하니까 이해해주세요.”
“어? 어···.”
“이걸로 병원 가시고 초과한 금액은 나라에 청구해주세요.”
희나는 은밀하게 소정의 돈을 아저씨의 손에 쥐여주었다.
분노로 가득하던 아저씨의 표정이 누그러든다.
이미 손목의 압박으로 기세가 한풀 꺾이지 않았던가.
“아하··· 내가 참아야지 진짜. 학생 고생해.”
아저씨가 희나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산 아래로 하산한다.
‘순순히 가시네, 다행이다. 설마 신고하시는 건 아니겠지?’
강희나가 멀어져가는 아저씨를 보며, 걱정하던 그때였다.
딱-! 하는 청명한 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흰 별이 번쩍였다.
“아야!”
학생증을 읽던 여자가 강희나의 이마에 꿀밤을 갈긴 것이었다.
“어떤 미친년이 첫 실습부터 지각을 하나 했더니. 너구나?”
“네?!”
“아하··· 진짜 열받아 뒤지겠네. 네~에? 지금 나 안 보여?”
“······”
“너 대신해서 여기서 이, 지랄하고 있는 거 안 보이냐고!”
버럭 소리치는 여성의 가슴팍 부근으로 명찰이 보인다.
[척결 길드 소속]
-이혜지 서포터
“아!”
길드 소속이라는 건 헌터 사관학교와 협업을 맺어, 파견을 나온 프로 서포터라는 의미였다.
즉, 저 사람은 이번 게이트에서 우리를 현장 실습을 가르쳐 줄 직속 사수.
“죄송합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일단, 저 사람의 기분을 풀어야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씨발, 아! 열 받아!!!!! 너 이따가 보자. 11시 되면 위로 올라와.”
이혜지는 강희나의 정강이를 빠각- 후려 차곤, 산 위로 거칠게 올라갔다.
“아야야···.”
강희나는 무릎을 부여잡곤, 볼을 긁적였다.
“많이 화나셨네···.”
안 그래도 게이트 공략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한데, 사수한테 찍힌 지금. 가슴이 답답한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강희나는 개의치 않았다.
‘진짜 써도 되는 건가.’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그 사내가 준 이걸 써도 되는지가.
***
띠링-
[절대자의 알현실에 입장하였습니다.]
화아악-
망막 안으로 가득 차올랐던 빛이 사그라들며, 시야가 돌아온다.
우주에 온 듯 붕 떠 있던 육신이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궁금했다.
우리를 엘리드로 부르고 시스템을 부여해서 도대체 뭘 하고 싶어 한 건지.
그 잘난 절대자의 상판이 너무 궁금했다.
분명 그런 절대자가 있다면 사람이 소위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겠지.
‘뭐야. 여기는·········.’
앞을 본 우빈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오른다.
분명 들어올 때 절대자의 알현실이라는 거창한 명칭을 붙이지 않았던가.
세계수가 보여주던 찬란한 풍경, 혹은 그 이상의 장소라 펼쳐져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쿰쿰한 섞은 내가 코를 찌른다. 땀 냄새와 오물이 뒤섞인 듯한 악취가 전신을 뒤덮는다.
흡사 지하실을 떠올리게 하는 어두운 방 안.
철그럭- 철그럭-
정면으로 요란한 쇠사슬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온다.
수천수만 개의 쇠사슬이 향한 그 중심으로 한 존재가 보였다.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