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첫 실습(3)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피 냄새는 조금씩 익숙해져 갔지만, 오물 냄새는 아니었다.
고블린 특유의 잡내와 오물이 뒤섞인 악취는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윽!!! 무거워.”
강희나는 머리가 그대로 잘려 나간 고블린의 다리를 붙잡고, 한 장소로 끌었다.
어느샌가 고블린은 산을 이뤄냈다.
지금 있는 장소는 보스 방.
그래서인지, 다른 장소보다 몬스터의 숫자가 3배가량 많았다.
이혜지 서포터님의 말에 따르면, 원래 고블린은 시체를 수거하지 않는다고 한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고블린 고기는 비렸으며, 가죽이나 장기 역시 가공할 요소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실습으로 나온 만큼, 상급 게이트를 대비해, 시체를 수집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작 이런 작은 체구의 몬스터조차 옮기기 쉽지 않은데, 나중에 3~5M가량의 몬스터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걸까.
‘레벨이 오르면 힘이 세지려나.’
정신없이 몬스터를 한 장소로 옮기다 보니, 보스를 제외한 몬스터가 한 장소에 모이게 되었다.
“후아··· 이 정도면 된 거 같은데?”
조희찬이 피가 가득 묻은 팔로 이마를 쓱 닦으며 땀을 훔친다.
지운성에게 같이 식사를 제안한 뒤로 조희찬의 행동은 노골적으로 바뀐 상태였다.
솔선수범하여 훼손이 심한 고블린을 옮기는가 하면, 심심치 않게 대화를 걸어왔다.
지금 역시 그러했다.
“지운성 헌터님이랑 네 오빠랑 지인 사이라고 했지? 오빠는 뭐 하시는 분이야? 설마 귀환자는 아니지?”
호구 조사를 시작해서,
“좋아하는 헌터 있어? 나는 고지태 헌터님 완전 팬이야. 그래서 척결에 들어가려고, 너는 어디 길드 들어가고 싶어?”
앞으로의 장래까지.
“글쎄, 아직까지는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데.”
강희나는 대충 대꾸해준 뒤, 시선을 돌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우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수업을 농땡이 피울 정도로 불성실한 녀석은 아닌데, 어디 간 걸까.
‘설마, 또 뭘 꾸미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그 순간이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자, 여기 있어봤자 할 것도 없잖아?”
조희찬이 밖으로 나가자고 제안을 해왔다. 강희나 역시 조희찬과 같은 생각이었다.
그대로 밖으로 향해 걸어가려는데.
“어? 뭐지?”
보스방 중앙에 누워있어야 할 몬스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해? 가자니까?”
“저기.”
“왜?”
“보스가 사라졌어.”
“뭐?”
강희나의 말에 조희찬의 시선이 보스가 있던 자리로 향한다.
“뭐야. 어디 갔어?”
조희찬의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 고르륵- 등 뒤로 섬뜩한 울림이 들려왔다.
“어?!”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동료를 전부 잃은 고블린이 분노에 가득 찬 포효를 내지르며 달려들고 있었다.
“도, 도망쳐!!!”
조희찬은 소리치며, 입구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고,
“어···”
강희나는 공포에 질려, 그대로 굳어버렸다.
***
띠링-
[동영상을 녹화합니다.]
고우림의 카메라로 빛이 떠오른다. 모든 장면에 사각 액정 속으로 저장된다.
“씨발! 도망쳐!!!”
조희찬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헐레벌떡 입구로 도망친다. 어찌나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표정이 압권이다.
“풋-”
고우림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병신 같은 새끼들.’
쌓여왔던 채증이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진짜 되는구나.’
고우림은 바닥에 떨어진 빈 병을 바라봤다. 혹시 몰라서 챙겨온 포션이었다.
한 병에 5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비쌌지만, 상관없었다.
아빠나 삼촌에게 말하면 얼마든지 구해줄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많았으니까.
고우림은 뇌사 상태에 빠진 고블린에게 포션을 들이켜 부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상황이었다.
고블린의 깨진 머리가 수복되는가 싶더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인간에게 적의를 내뿜으며 공격해왔다.
너무나 만족스러운 장면이 흘러갔다.
강희나의 저 행동을 보아라, 공포에 질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모습이 꼴사납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지 않은가.
‘이거 잘못해서 죽는 거 아니야?’
고우림의 입가로 미소가 번진다.
원래라면 겁에 질려 도망치는 걸로 끝날 줄 알았다. 표정이라도 담으려고 카메라를 들었는데, 설마 도망도 못 칠 정도로 병신일 줄이야.
‘이거 위험하겠는데.’
단순히 몬스터가 깨어나, 위협받는 정도면 이번 게이트 공략의 최고 책임자인 지운성 선에서 정리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학생이 사망한다면 어떨까.
학교 측을 나아가 학교를 관리하는 정부 차원에서 나설지도 몰랐다.
그 과정에서 고우림이 범인으로 지목될 확률로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고우림의 표정은 여유롭다 못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적당히 도와주러 올 때쯤 들어가야겠네.’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겁에 질려 도망친, 조희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운성을 불러올 것이다.
그 타이밍에 맞춰 고블린에게 당하는 척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의심을 피하는 건 물론, 고블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지운성에게 빅 엿을 먹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상황이 펼쳐질 테니까.
고르륵-
때마침 고블린이 섬뜩한 이빨을 드러내며 강희나에게 다가간다.
“오, 오지 마!”
강희나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무언갈 중얼거린다.
일촉즉발의 상황.
두근-두근-
고우림의 심장이 요동쳤다.
이런 식으로 사람이 사냥당하는 장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묘한 긴장감과 알 수 없는 공포가 본능을 자극했다.
무섭긴 했지만,
‘나쁘지 않은데.’
알 수 없는 쾌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그렇게 고우림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며 사냥의 현상을 카메라에 담아내던 그 순간이었다.
-고르륵!!!!
고블린이 이성을 잃은 채, 강희나에게 달려가기 시작했고,
“오지 말라고!”
강희나가 손바닥을 펼치며, 무언가를 하려는 그 순간.
콰지지지직-
강희나의 앞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한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띠링-
[귀환에 성공하였습니다.]
***
[귀환에 성공하였습니다.]
화아악-
빛으로 가득 찼던 시야가 조금씩 돌아온다.
아직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정면으로 적의를 가진 무언가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자.
고르르륵!!!!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작은 무언가가 손아귀로 착 빨려 들어왔다.
‘뭐야?’
우빈은 돌아온 시야로 손아귀 속을 응시했다.
150㎝ 남짓의 작은 고블린이 적의를 내뿜으며, 날카로운 손톱으로 팔뚝을 이리저리 긁어댔다.
물론, 팔뚝으론 생채기 하나 담지 않았다.
우빈의 육체는 고블린 따위가 상처를 낼 정도로 약하지 않았으니까.
우빈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미간을 찌푸렸다.
크로노스가 원하는 장소나 사람이 있으면 그곳으로 보내주겠다고 그랬었다.
당연하게도 지구에 처음 도착하면 동생의 얼굴을 처음 볼 줄 알았는데, 보는 것만으로 역겨운 고블린이 눈앞으로 튀어나온 것일까.
‘본 게임이라 이건가.’
우빈은 크로노스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엘리드는 연습에 불과해. 내 능력으로 시스템 일부를 구현한 것뿐이니까.
대화를 통해, 지구가 엘리드처럼 변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몬스터가 튀어나올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지구의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일까.
콰직-
가볍게 힘을 주자, 고블린의 목뼈가 으스러지며, 즉사한다.
띠링-
[게이트 공략에 성공하였습니다.]
(주의! 공략이 끝난 게이트는 자동으로 소멸합니다.)
‘게이트?’
떠오른 메시지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세요? 어?! 오빠···?”
우빈이 뒤를 돌아보자, 우빈을 알아본 강희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많이 컸네.’
우빈은 변한 강희나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희나의 모습은 기억 속과는 약간 달랐다.
단발머리는 긴 생머리가 되어있었으며, 얼굴 또한 젖살이 빠져 갸름해져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외모가 아니었다.
강희나의 전신으로 핏물이 자욱했다. 지금 있는 장소 또한 이상했고.
‘뭐지?’
“오빠!”
멀뚱히 서 있는 우빈에게 강희나가 달려든다.
희나가 우빈을 와락 껴안는데, 지워졌던 감정이 조금씩 차올랐다.
포근하면서도 안심되는 안정감이라고 해야 할까.
“왜, 이제 왔어. 엄마랑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우빈은 울먹이는 희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등을 토닥토닥해줬다.
마음만 같아선 이 포근함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여유는 없어 보였다.
구우우우-
대지가 요동쳤다.
던전 공략으로 던전이 붕괴하기 직전 나타나는 증상과 유사했다.
아마 조금 전 몬스터를 처치해서 이 던전의 클리어 조건을 충족한 거겠지.
“일단, 나가자.”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움직이려는데, 등 뒤로한 여자가 튀어나왔다.
“희, 희나야! 괜찮아? ”
처음 보는 여자였다. 눈물을 글썽거리곤 휘청거리면서 다가오는데, 어딘가를 다친 것처럼 보였다.
희나의 이름을 부르는 걸 보면, 이 던전에 같이 들어온 동료?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띠링-
[동족을 지킨 수호자가 발동합니다.]
[대상의 악행이 표시됩니다.]
[표시된 대상의 사고가 표기됩니다.]
[살인 미수]
『완딱 좋았었는데, 이 새끼는 또 뭐야.』
저 녀석의 속마음이 실시간으로 표시되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년 봐라.’
그렇게 우빈의 시선이 고우림의 두 눈으로 향했고,
띠링-
[대상의 기억을 엿봅니다.]
고우림의 기억을 들여다보던 그때였다.
“희나야!!!”
어두운 동굴 너머로 지운성이 쏜살같이 달려왔고,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
콰지지지직-
일그러진 공간으로부터 균열이 사그라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횅한 공간은 조금 전 있었던 일들이 꿈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장소의 분위기는 처음과는 달랐다.
“지금 장난해요? 프로 헌터 맞아요? 사람이 죽을뻔했다고요!!!”
고우림이 지운성에게 버럭 소리친다.
“미안. 제대로 조치해놓았는데, 어떻게 살아난 거지.”
“미안하다고 하면 다예요? 프로가 뭐 이래.”
“내가 전부 책임질게. 미안.”
지운성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인정한다.
“책임이요? 어떻게 책임지실 건데요?! 우리 아빠가 누구인지 알아요? 아니지, 우리 삼촌이 그쪽 길드 대표에요. 뭘 어떻게 책임지실 건데요!”
몰아붙이는 고우림의 언행에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우림아, 그만해.”
“맞아, 다친 사람도 없고. 저렇게까지 사과하시는데···”
“뭘 그만해! 안 닥쳐!”
고우림은 말리는 조원들을 뿌리친 채, 지운성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갔다.
“꿇어요.”
“뭐?”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요.”
지운성의 시선이 주변으로 향한다.
자신이 가르쳐주던 헌터 지망생을 시작으로, 오랜만에 본 그리운 얼굴 우빈까지.
아무리 잘못을 했다 한들, 선뜻 무릎까지 꿇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 게이트의 책임자라면 응당한 사과를 하는 건 당연했으니까.
그대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려는 그 순간이었다.
-씨발! 도망쳐!!!
-풋
고요함을 뚫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우빈의 손바닥에 들려있는 스마트 폰이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리자, 우빈은 스마트 폰을 사람들에게 보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누가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찍었네요.”
영상이 계속된다.
적의를 내뿜는 고블린, 공포에 질린 강희나. 그러는 와중 영상을 찍는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오싹함을 더 한다.
그렇게 강희나가 고블린에게 당하려는 결정적인 그 순간.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우빈이 등장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핸드폰 속에서 흘러나왔다.
-뭐야, 저 새끼는.
너무나도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으로 향한다.
“우림이 목소리 아니야?”
“맞아. 저 핸드폰, 우림이 거야. 어제 새로 샀다고 자랑했잖아.”
쏠린 시선에 고우림은 주머니를 뒤지며, 뒷걸음질을 쳤다.
‘저게 왜 저 사람 손에···’
당황스러웠지만, 이럴 때일수록 뻔뻔해져야만 했다.
“저게 뭐? 첫 실습이어서 추억으로 남기려고 찍고 있었던 거 뿐이야.”
고우림은 당당하게, 우빈에게 다가가 핸드폰을 낚아챘다.
“희나 오빠라고 하셨죠? 확실히 비슷하네요. 허락도 없이 남의 물건에 막 손이나 대는 게 완전 판박이네.”
“그런가? 떨어져 있어서 주워준 것뿐인데.”
우빈은 여유롭게 답하며, 품속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아 참, 이것도 떨어트렸더라 받아.”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돋보이는 빈 포션 병이었다.
그걸 본 고우림의 눈이 꿈틀거린다.
“그건 제거 아닌데요?”
“그래? 이상하다. 핸드폰 옆에 떨어져 있었는데. 운성씨 건가요?”
우빈은 자연스럽게 포션의 금속 부분을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지운성에게 보여줬다.
“이건··· 척결에서 상급 헌터에게 지급되는 포션인데··· 이게 왜 저기에···”
“보니까. 고블린 머리에 묻어있는 액체랑 이 병에 있는 포션이랑 똑같은 성분인 거 같은데.”
“네? 진짜요?”
지운성의 시선이 혹시 몰라 챙겨온 보스 고블린의 시체로 향한다.
목이 꺾여 즉사했지만,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진짜 우빈의 말대로 단검으로 꿰뚫어놓은 머리 위로 붉은 액체가 묻어있었다.
“누군가 일부로 죽은 고블린의 머리에 이걸 부은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설마, 그럴 리···”
지운성의 표정이 심각해지던 그때, 우빈의 입가로 그윽한 미소가 번졌다.
“찾아보면 알겠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여유가 없었는지 지문을 남겼으니까요.”
“네? 지문이요?”
우빈의 집게손가락 아래, 투명한 빈 포션 위로 선명한 지문이 남아있었다.
“오 진짜 그렇네요.”
모두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우빈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단 한 명만은 아니었다.
‘좆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