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돌아오다(2)
띠링-
[인벤토리에서 마검:기간테스를 불러옵니다.]
쿵!!!
묵직한 날붙이가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이질적인 오오라가 검 주변으로 피어오르며, 자루 부분에 박힌 눈알이 팽그르르 돈다.
“와··· 뭐야 저거.”
“개 쩐다···.”
아이템에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좋아 보일 정도로, 우빈이 꺼낸 무기는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었다.
“아이템?”
마검을 보고 놀란 건 구경꾼뿐만이 아니었다.
우빈을 내쫓으려 화내던 헌터 백화점의 고객관리 팀장, 김택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헌터 백화점은 각성자를 대상으로 잡은 백화점이지 않은가.
물론, 의류나 요식, 가전제품도 취급하지만,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백화점을 씹어먹으면서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전부 각성자가 가지고 있는 자본력 덕분이었다.
특히, 국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최상급 아이템 거래는 헌터 백화점의 주력 수익원이다.
‘도대체 몇 등급 아이템이지?’
수많은 아이템을 봐본 김택문조차 이렇게까지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템은 처음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아이템이길래, 저런 포스를 내뿜는 것일까.
“이걸 좀 팔고 싶은데.”
김택문이 마검에 시선을 빼앗긴 그때, 우빈이 대검을 들이밀며, 읊조렸다.
‘저걸 팔고 싶다고?’
정신을 차린 김택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악취가 나던, 행색이 더럽던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저 정도 아이템을 팔겠다는 고객은 VIP로 우대받아야 마땅할 최우수 고객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헌터님이신 줄도 모르고 큰 결례를 저질렀네요.”
김택문은 바로 태도를 바꿔, 사죄했다. 고개를 90도 아래까지 숙여, 최대한 정중하게 대했다.
“아이템 판매는 매장 10층부터 15층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판매를 원하신다면, 바로 VIP룸으로 바로 모시겠습니다.”
급변한 태도를 보는 우빈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거지새끼라며,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며 내쫓을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VIP룸으로 모시겠단다.
참으로 노골적인 행동이지 않은가.
“들어갈 수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저희의 큰 실수였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김택문이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경호원들을 다그친다.
“뭐해! 보고만 있지 말고, 빨리 사과드려.”
“네? 아, 네!”
우빈을 가로막았던, 경호원을 데려와 우빈의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
“몰라뵀습니다. 죄송합니다.”
입구를 지키던 가드가 무릎을 꿇곤 고개를 조아린다.
고작 무기 하나 꺼냈다고 바뀐 태도가 어이없으면서도 지구에 돌아왔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엘리드의 힘의 원리가 순수한 무력이라고 한다면, 지구에서의 힘은 곧 자본력에서 나왔으니까.
실제로 지금 역시 그러했다.
우빈에겐 그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지금도 몸에선 악취가 진동했으며, 외형 또한 초라했다.
하지만 저들은 우빈이 꺼낸 아이템의 가치를 알아보곤, 고개를 숙였다.
‘나쁘지 않네.’
어떻게 보면 엘리드보다도 더 단순하게 돌아가는 사회가 아닐까 싶었다.
우빈이 생각 이상의 반응에 미소를 짓던 그때였다.
“무슨 일인가요?”
어수선한 인파를 뚫고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깔끔한 정장. 세련된 액세서리.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외모까지.
“조 상무님!”
헌터 백화점 면목점 지점장이 소란의 중심으로 걸어 나왔다.
지점장을 발견한 김택문이 화들짝 놀라며 지점장에게 다가간다.
“별일 아닙니다. 저분께서, 아이템을 팔고 싶다고 하셔서요. 이제 막 VIP룸으로 모시려던 참이었습니다.”
“아이템을요?”
지점장의 시선이 우빈에게 향한다.
더러운 몰골 따위는 가볍게 눌러버릴 엄청난 대검이 사내의 손에서 검은 오오라를 내뿜고 있었다.
“와···”
수많은 고가의 아이템을 직접 본 그녀이지 않은가.
저 정도 존재감을 내뿜는 아이템은 현금 5천억에 거래되었던 ‘성검:기적’ 정도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저 검 역시 ‘성검:기적’과 비슷한 가치를 지녔다는 의미일까?
‘기회다.’
이건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지점에서 거래하도록 유도해야만 했다.
하다못해, 저 무기를 경매에 부쳐 수수료만 먹어도 수십억 이상을 남겨 먹을 수 있는 가치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우빈은 헌터 백화점과 거래를 할 생각이 없었다.
우빈의 손에 들린 마검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가자.”
“어? 어.”
우빈은 강희나의 손을 붙잡곤,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본 지점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분명 우리 지점에서 거래할 거라고 하더니, 왜 갑자기 자리를 떠나는 것일까.
“갑자기 왜 저래요? VIP룸으로 안내한다면서요?”
“네? 아,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점장의 다그침에 김택문이 헐레벌떡 우빈에게 다가간다.
“잠시만요! 어디 가세요!”
“다른 곳을 찾아보게요. 건물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런 취급을 받았는데, 거래를 원활하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서요.”
“·········”
김택문의 말문이 막힌다. 뭐라고 붙잡아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던 그때, 지점장님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썹을 꿈틀거리며, 입술을 잘끈 씹은 표정이 심각해 보인다.
이 고객을 놓치면 가만 안 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사람을 붙잡아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김택문이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소리친다.
“사죄할 기회를 주신다면 불편하신 마음을 헤아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그 모습에 우빈의 발걸음이 멈춘다.
“어떻게요?”
“우선 건물로 들어가시죠.”
우빈은 깍듯한 모습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고, 기대 이상의 혜택을 누르며 헌터 백화점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
은은한 주황빛 조명이 가득한 백화점 내부.
헌터 백화점의 지점장, 조혜빈 상무가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다.
“시작하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에 서 있던 사내가 흰 장갑을 끼곤, 하나의 물건을 확인한다.
그 물건은 우빈이 감정을 맡긴 마검: 기간테스였다.
감정사가 감정을 하는 와중에도 마검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변을 관찰했다.
오싹하면서도 소름이 끼치는 것이 마검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검이지 않은가.
그렇게 한 10분이 흘렀을까.
감정을 마친 감정사가 태블릿을 조혜빈에게 건네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태블릿에 떠오른 정보를 보는 조혜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마검: 기간테스+8]
종류: 대검
등급: S
내구력: 141/150
공격력: 9(+8)
근력:+5
기량:+3
감각:+1
룬석: [증폭] [파괴] [절삭]
효과
-마기 속성 생성.
-마기 속성 데미지 150% 증가.
-마검: 기간테스는 외형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단순한 효과만 봐도 사기적이었지만,
“확실한 명품입니다. 공격력은 S급 무기의 기준치인 7보다 2 높은 수치로, 정상급에 속하며, 작업된 룬 세팅 또한 세계에서 손꼽는 최고의 세팅입니다.”
“······”
감정사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이 무기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예상 감정가는 4,500억 원입니다.”
결론에 도달한 그때, 조혜빈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짓누르며, 침착하게 답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가셔도 좋습니다.”
“네.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놓겠습니다.”
감정사의 말에 조혜빈이 고개를 끄덕이자, 감정사가 90도로 고개를 숙이곤 밖으로 향한다.
이윽고, 밖에서 대기하던 김택문 팀장이 들어왔다.
“어떻게 됐나요? 상무님.”
“뭘 어떻게 됩니까.”
조혜빈은 김택문을 아니꼽게 노려봤다. 무려 4,500억 원에 달하는 물건을 가진 VVIP를 그대로 날려버릴 뻔한 놈이지 않은가.
당장 목을 쳐내고 싶었지만, 그래도 저놈보다 사람들 잘 다루는 놈을 본 적이 없었다.
괜히 고객관리 팀장이 된 게 아니었다.
판단을 내린 조혜빈은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 지점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세요. 얼마를 써도 상관없으니까.”
단호하면서도 명료한 언행에 김택문은 고개를 90도로 숙이곤 양손으로 카드를 받아들었다.
“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시켜 보이겠습니다!”
***
쏴아아-
경쾌한 소리와 함께, 구정물이 내려간다.
“우와··· 진짜 좋다.”
강희나는 말도 안 되는 시설에 입을 쩍 벌리며, 몸을 씻었다.
한 병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샴푸와 바디 워시가 비치되어있다.
한반도 쓰지 않은 듯 전부 새것이었으며, 지금 쓰고 있는 시설 역시 지금 막 오픈 한 것처럼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감탄하며 샤워하길 30분 남짓.
샤워실을 나오자, 한 여인의 목소리가 방 밖에서 들려왔다.
“입을 옷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원하시는 옷을 입으시면 밖으로 나와주세요.”
“네? 네.”
답을 한 강희나의 시선이 밑으로 향한다.
“와···”
평소에 눈으로만 보던 명품 옷이 한가득 놓여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치마를 집어 들었다.
[판매 가격: 1,450,000]
“백, 백 사십오만 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금액이 적혀있었다.
‘정말 입어도 되나?’
강희나는 치마를 집어 들곤, 고민에 잠겼다.
원래 입고 왔던 옷은 빨아준다며 가져갔다. 발가벗고 나갈 생각이 아니라면, 입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싼 걸로 입자.’
그나마 싸 보이는 옷으로 대충 갈아입은 뒤, 밖으로 향했다.
그마저도 합치면 300만 원을 훌쩍 넘었지만, 깨끗이 입고 돌려주면 되겠지.
강희나는 가격표도 뜯지 않은 옷을 입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우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희나야 여기 와서 앉아.”
저 멀리서 우빈이 말끔한 모습으로 손을 휘휘 젓는다.
고급 레스토랑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식탁 위로 온갖 진수성찬이 펼쳐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동안 강희나 님을 모실 김정희이라고 합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네? 네.”
강희나를 발견한 백화점 직원이 희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자리로 안내한다. 자리를 이동하며 희나의 옷에 붙은 태그를 뗀다.
희나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거지라고 쫓아낼 때는 언제고 갑자기 이렇게까지 극진한 대접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엄청 좋은 아이템이었나.’
오빠가 하나의 아이템을 꺼낸 뒤로 행동이 바뀌었다.
딱 봐도 좋아 보이기는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좋은 물건이었나보다. 단순한 샤워 시설 이용을 넘어 옷과 식사까지 차려주다니.
희나가 최대한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하며 자리에 앉아, 우빈이 말을 걸어왔다.
“든든히 먹어둬, 쇼핑까지 공짜로 시켜준다니까.”
“쇼핑?”
우빈은 알 수 없는 말은 남기곤, 눈 앞에 펼쳐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꼬르륵-
잘 조리된 파스타를 시작으로 윤기가 좔좔 흐르는 스테이크까지.
음식이 후각을 자극하자 강희나 역시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희나는 어제 점심 이후로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다.
‘엄마도 배고플 텐데.’
월 말이어서 식비로 쓸 돈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오빠가 온 것도 모른 채 일을 하시는 중일 것이다.
혼자서만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 되는 것일까.
강희나가 엄마를 떠올리며,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자, 우빈은 넌지시 희나에게 속삭였다.
“엄마 때문에 그래? 걱정하지 말고 먹어. 엄마는 이런 거랑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맛있는 걸 대접해드릴 거니까.”
우빈의 말에 희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뭉클한 무언가가 심장 깊숙한 곳부터 샘솟았다.
‘오빠···.’
비현실적이던 오빠의 등장이 서서히 현실로 다가왔다.
희나는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을 꾹 참으며, 스테이크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고,
“맛있다.”
기대 이상의 맛에 입꼬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
“와··· 저 사람 뭐야? 재벌 2세인가?”
“부럽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빈에게 쏠린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주세요.”
우빈의 손짓에 백화점 직원이 옷을 한가득 포장하기 시작한다.
우빈의 뒤로 김택문과 그를 보조하는 직원 4명이 짐을 한가득 들곤, 우빈을 따른다.
“뭘 이렇게까지 사.”
우빈의 행동에 강희나가 속삭인다.
“너도 골라, 줄 때 받아야지.”
“맞습니다. 돈은 걱정하지 마시고, 고르세요.”
우빈의 말에 뒤따르던 김택문이 거든다.
“봤지? 너도 골라.”
“진짜? 나도 사도 돼?”
“어. 엄마 줄 것까지. 마음껏 골라.”
우빈의 확답에 희나가 신난 듯 물건을 고르기 시작한다.
고른 물건이 늘어날수록, 뒤따르던 직원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그렇게 직원이 10명쯤 붙은 그때였다.
우빈의 쇼핑은 끝이 났다.
“차가 없는데, 배달도 해주시는 거죠?”
“물론입니다. 주소만 알려주시면 1시간 이내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우빈의 말에 김택문이 정중하게 답한다.
“조금 전 맡기셨던 아이템은 어떻게 할까요.”
대충 상황이 마무리되어가는 것 같자, 김택문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김택문의 말에 직원이 미리 준비해 둔 마검을 가지고 나온다.
고급스러운 유리관에 보관된 모습이 흡사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같은 느낌을 내뿜었다.
“아, 마검이요?”
우빈은 능청스럽게 마검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곤 유리관을 열곤 마검을 움켜쥐었다.
다시 봐도 실로 엄청난 존재감이 아닐 수 없었다.
‘거의 넘어왔다.’
김택문의 시선이 우빈에게 향한다.
처음 봤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피부 관리를 시작으로 최고급 헤어 디자이너까지 붙여줘 관리를 해줬다.
입은 옷은 또 어떠한가.
백화점에서 잘나가는 브랜드 신상으로 도배되었다.
상대가 그 누구라도 만족할 수밖에 없는 서비스였다.
받은 게 부담스러워서라도 흔쾌히 거래를 응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네? 뭐라고요?”
“나중에 다시 찾아뵙죠. 아참, 짐을 배달할 겸, 동생도 같이 데려다주세요.”
우빈은 너무도 당당하게 마검을 회수하곤, 밖으로 걸어 나간다.
‘아···.’
김택문은 멀어져가는 우빈을 보며, 그대로 얼어붙었다.
저 사내를 붙잡을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지.’
김택문의 시선이 산처럼 쌓인 선물 상자로 향한다.
사내가 고른 물건이야, 지금에라도 회수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저 사내의 아이템을 헌터 백화점에서 거래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지 않은가.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저 사내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찾아온다는 일말의 기회를 챙길 수 있을 테니까.
“가시죠.”
김택문은 이를 갈며, 강희나를 챙겼고,
“네.”
강희나의 행복 라이프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