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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돌아오다(3) (78/107)

82. 돌아오다(3)

지이이이잉- 

우빈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띠링- 

[희나] 

-11시쯤 퇴근하시니까, 천천히 가면 맞을거야. 잘 모시고 와. 

강희나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금 입은 최고급 명품을 시작으로 핸드폰 개통까지. 

‘잘 빨아 먹었네.’ 

전부 헌터 백화점의 자금으로 해결한 상태였다. 

단순히 아이템을 거래하도록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 정도까지 투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만큼 마검의 가치가 높다는 의미겠지.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넣으려는 그때였다. 

찌이잉- 

[헌터 백화점 고객관리 팀장] 

-안녕하세요. 헌터 백화점 면목점. 고객관리 팀장 김택문입니다. 강희나 씨는 자택으로 안전하게 귀가시켰습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은 다시 한번 사죄드리겠습니다. 앞으로 헌터 백화점과 좋은 인연을········· 

양반은 못 되는 듯, 김택문에게서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우빈의 집 주소를 시작해서, 핸드폰 번호까지. 

백화점도 아무런 대책 없이 우빈에게 투자를 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숨길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아이템 거래를 할 기업 하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편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마검을 가지고 나온 건,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였다. 

요구에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호구 취급당하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어색하네.’ 

우빈은 메시지를 끄곤 핸드폰의 카메라를 켰다. 

사각 화면으로 어색한 자신의 얼굴이 떠오른다. 

엘리드에서 지구 온 지 10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엘리드에서 보여줬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더벅머리는 깔끔하게 정리되었으며, 누더기였던 옷은 고급 명품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단 하나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표정이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엄마를 맞이하고 싶었는데, 예전의 느낌을 찾기는 힘들었다. 

‘어쩔 수 없지.’ 

지구에서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엘리드에서 보내지 않았던가. 성격이나 분위기가 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우빈은 카메라를 끄곤, 지도를 펼쳤다. 

아주 오랜만에 쓰는 스마트폰이었지만, 다루는 데엔 어려움 같은 건 없었다. 다만, 기억 속 유아이가 전부 바뀌어서 익숙해지는 데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우빈의 시선이 주변을 바라본다. 

어둑해진 하늘과 대조되는 밝은 번화가. 화려한 조명과 많은 사람으로 북적인다. 

“아빠!” 

퇴근하는 아빠의 품으로 어린 꼬마가 폴짝 달려가 안긴다. 

“아, 힘들어. 남은 건 내일 하자고. 출출한데, 한잔하러 갈래?” 

“좋습니다!”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 회사원이 지친 몸을 이끌곤, 치킨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크로노스와의 이야기로 지구에 시스템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하게도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을 거로 예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전이 되었던 과거보다 오히려 더 풍요로워졌다고 해야 할까. 

-도와주려고. 

왜 우리를 엘리드로 불러왔냐는 질문에 크로노스가 한 말이다. 

-우리는 적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처음엔 저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지구에 와서 보니, 이해되었다. 

당장 우빈만 하더라도 그렇다. 넘어오자마자 공격해오던 고블린을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지금의 평화는 우빈처럼 넘어온 귀환자의 경험과 힘을 바탕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이겠지. 

여러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는데, 문득 하나의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식물로 가득한 꽃가게였다. 

‘그러고 보니까. 꽃을 좋아하셨지.’ 

엄마에게 줄 선물이야, 집에 한가득 실어놓았지만, 이왕 마중 나갈 거 뭐라도 드리는 게 좋아 보였다. 

우빈은 자연스럽게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지갑을 꺼냈다. 

고급스러운 가죽 위로 멋스러운 로고가 박혀있다. 

고를 당시 가격이 200만 원 언저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갑 속엔 흔하디흔한 체크카드 한 장 없었다. 

그저 김택문의 명함 한 장만이 덩그러니 들어있을 뿐. 

우빈은 명함을 꺼내곤, 미간을 찌푸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현금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핸드폰을 개통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빈은 실종 상태로 되어있어 금융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다. 

원래라면 핸드폰 개통 역시 실종 상태를 해제해야 가능하지만, 헌터 백화점 쪽에서 무리하게 개통해주었다. 

아마도 우빈과 연락할 수단을 뚫어놓고 싶다는 의도였겠지. 

핸드폰까지 개통해주겠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핸드폰이 필요하기도 했고. 

김택문의 명함을 지갑 속에 넣으려던 우빈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문득 호기심이 샘솟았다. 

‘설마 부르면 오려나.’ 

우빈은 망설임 없이 버튼을 클릭했고, 

-바로 가겠습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지이이이이익- 

불판 위로 먹음직스러운 고기가 익는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숯 향과 어우러진 육향이 식욕을 자극한다. 

“삼겹살 2인분 추가요.” 

“여기 불판 좀 갈아주세요.” 

테이블 10개가 가득 차고도 웨이팅이 5팀이나 있는 맛집. 

“아줌마. 2번 테이블 세팅 좀 해줘.” 

“네.” 

사장의 명령에 고기를 가져다주던 중년의 여인, 최수애가 2번 테이블로 향한다. 

숯을 치우고, 음식물을 한 그릇에 모은다. 빈 그릇을 차곡차곡 쌓는 그때였다. 

“여기 김치 좀 더 가져다주세요. 물도 하나 더 주시고요. 맥주도 한 병 추가해주세요.” 

“소주 한 병만 주세요.” 

4번 테이블과 5번 테이블에서 심부름을 시켜왔다. 

몸이 10개라도 부족했다. 

“고기 맛은 어때요?” 

“맛있어요!” 

“학생들이 싹싹하네. 이건 서비스. 나중에 시간 있으면 리뷰 좀 남겨주세요.” 

“네!” 

그런 최수애의 옆으로 붉은 앞치마를 입은 아줌마가 손님들과 수다를 떤다. 

저 아줌마는 고깃집 사장의 여동생으로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이었다. 

최수애는 2번 테이블에서 모은 그릇을 옮기며, 수다를 떠는 여인, 김순이에게 부탁했다. 

“순이 씨, 5번 테이블에서 김치 좀 가져다 달라는데. 부탁 좀 드릴게요.” 

“뭐야. 수애 씨한테 부탁한 일을 왜 나한테 시킨 데?” 

김순이는 최수애가 그릇을 한가득 든 모습을 보고도 비아냥댄다.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지금 테이블을 치워야되서···.” 

“그 말 할 시간이면 이미 가져다줬겠네.” 

최수애에 정중한 부탁에 김순이가 입을 삐쭉 내밀며, 불만을 토로한다. 

“순이야. 이분들 안내 좀 해줘.” 

“어!” 

사장이 기다리던 손님은 김순이에게 맡긴다. 김순이가 손님을 이끌곤, 2번 테이블에 앉힌다. 

“주문하시겠어요? 아줌마! 빨리 테이블 세팅!!!” 

그릇을 든 최수애의 팔이 저려온다. 

꼬르륵- 

평소라면 배고픈 것도 잊을 정도로 바빴겠지만, 오늘따라 허기가 졌다. 

“하아···” 

최수애는 하는 수 없이 그릇을 주방으로 옮겼다. 그릇을 내려놓은 손이 덜덜 떨려온다. 

잠시라도 쉬고 싶었지만, 쉴 수 없었다. 

“아줌마! 김치 좀 달라니까요?” 

불만을 품은 손님의 요구를 들어 주어야 했으니까. 

“2번 테이블 세팅!!!!” 

“삼겹살 4인분이랑 소주 1병 주세요.” 

“네.” 

다그치는 김순이와 그 옆으로 김순이의 딸이 손님의 주문을 받으며, 귀찮은 일을 미룬다. 

언제나 이런 식의 상황이 반복되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힘든 만큼 여기보다 시급이 센 식당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 갑니다!” 

그렇게 최수애는 온 힘을 다해, 일했다. 

세 사람이 나눠서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전부 처리했다. 

배고픔을 넘어, 시야가 아득해져 가자, 어느샌가 마감 시간이 되어갔다. 

“잘 먹었습니다.” 

“또 오세요.” 

지금 나간 손님을 끝으로 남아있는 손님은 없었다. 

“아줌마, 4번 테이블 정리해줘.” 

최수애가 열심히 2번 테이블을 닦고 있는데, 저 멀리서 김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테이블 정도는 같이 치워주면 좋으련만. 

어쩌겠는가. 가족끼리 장사하는 집에 들어온 이상 이런 차별쯤은 감수해야만 했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음식물을 한데 모으고 그릇을 쌓는데, 시야가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어?!!!” 

최수애는 이를 악물며 정신을 붙잡았다. 

1초라도 정신을 놓으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 아줌마 또 농땡이 피운다.” 

그때 옆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김순이의 딸이 소리쳤다. 

“알바 바꾸자니까? 저 아줌마 일을 너무 못해.” 

순이의 딸의 궁시렁에 김순이가 돈을 세다, 최수애를 바라본다. 

“아줌마 뭐해? 퇴근 안 할 거야?” 

“아, 아닙니다. 바로 치울게요.” 

최수애가 주먹을 꽉 쥐곤, 모아놓은 그릇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주방으로 향하려는데, 스르륵- 분명 눈을 뜨고 있음에도 시야가 어두워졌다. 

“어?” 

최수애의 육신이 균형을 잃고 고꾸라진다.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거라 생각된 그 순간이었다. 

덥썩- 

두꺼운 팔이 최수애를 끌어안았다. 

“괜찮으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최수애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최수애는 조금씩 또렷해지는 시야로 자신을 부축해준 사내를 바라봤다. 

최수애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제가 좀 늦었죠.” 

최수애의 떨리는 손이 사내의 뺨을 어루만진다. 

오뚝한 콧날, 짙은 눈썹, 솜털 가득한 피부까지. 

기억 속 그 얼굴과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아들···.” 

“다녀왔습니다.” 

최수애가 아들인 우빈은 덥석 껴안았다. 딱딱하면서도 듬직한 등이 느껴졌다. 

“그래, 고생했다. 고생했어. 좀 빨리 오지 그랬어. 엄마가 얼마나 많이 기다렸는데.” 

흐느끼는 엄마를 보며, 우빈은 자신도 모르게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죄송해요. 이제는 어디 안 가요. 빨리 집으로 가요. 희나가 기다려요.” 

우빈의 말에 최수애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이건 선물이에요.” 

우빈은 엄마의 손에 들린 식기구를 옆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며, 등 뒤에 서 있던 김택문을 바라봤다. 

김택문이 자연스럽게 꽃다발을 최수애에게 건넸다. 

“뭘, 이런걸 사 왔어. 감사합니다.” 

단연코 말하건대, 살면서 본 꽃다발 중 가장 컸으며 화려했다. 

그렇게 최수애가 생에 최고의 시간을 보내던 그때였다. 

“뭐해, 아줌마. 아줌마 아는 사람이야?” 

최수애와 우빈을 멀뚱히 쳐다보던 김순이와 그녀의 딸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가왔다. 

원래 같았으면, 빨리 치우라고 버럭 소리치며 다그쳤을지도 모른다. 오늘 평소보다도 손님이 많아, 마감 시간이 10분 남짓 길어졌으니까. 

하지만 김순이는 섣부르게 소리칠 수 없었다. 

‘누구지?’ 

고개를 들어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훤칠한 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알 수 있는 최고급 브랜드 옷과 액세서리. 

딱 봐도 높은 집안 자제 같은 사람이 거지 같은 아줌마에게 꽃다발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제 아들이에요. 우빈아. 인사드려.” 

“네? 아줌마 아들이라고요?” 

최수애의 말에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듯, 화들짝 놀란다. 우빈은 그런 이들의 앞에 섰다. 

이들을 보는 우빈의 표정이 차갑게 내려앉는다. 

여기 들어오기 전 저들이 엄마에게 한 일을 전부 본 상태였다. 

특히, 아까부터 엄마를 아니꼽게 보던 젊은 여성의 머리 위론 거슬리는 메시지가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띠링- 

[사기][자살 시도][살인 미수] 

『우와··· 잘생겼다. 저건 보가테잖아. 최소 200만 원은 할 텐데. 저 사람이 아줌마 아들이라고? 옛날에 재벌 2세랑 원나잇이라도 한 건가···.』 

거슬림을 떠나 선을 넘은 메시지에,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뒤집어엎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만 했다. 

엄마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싫기도 했고, 굳이 폭력이 아니더라도, 저들을 절망으로 빠트릴 방법이야 많았으니까. 

우빈은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입을 뗐다. 

“오늘부터 엄마는 가게를 그만두실 겁니다.” 

“네? 갑자기요?” 

우빈은 그대로 엄마의 손목을 붙잡곤, 가게 밖으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저들과 말을 섞으면 폭발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아줌마! 이렇게 그만두는 게 어디 있어! 내일부터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네? 아, 자, 잠시만요.” 

“내일 안 나오면 이번 달 월급 없을 줄 알아!!!!!!!” 

버럭 소리치는 고함이 메아리치자, 최수애가 안절부절못한다. 

우빈은 그런 엄마를 가게 앞에 세워둔, 김택문의 차에 앉혔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전부 책임질 테니까.” 

“우빈아, 갑자기 왜 그래.” 

“이제 힘들게 일하실 필요 없으세요.” 

“아무리 그래도 이러는 건 예의가 아니잖니.” 

“저런 사람들한테는 예의를 따질 필요 없어요.” 

“뭐···?” 

“이따가 다시 이야기해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우빈은 차 문을 닫곤, 뒤따라 나오는 김택문을 향해 다가갔다. 

우빈이 다가오자, 김택문이 고개를 꾸벅 숙인다. 우빈은 그런 김택문에게 바로 말했다. 

“거래하겠습니다.” 

“네?” 

“헌터 백화점과 거래하겠습니다.” 

그 말에 김택문의 표정이 밝아진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데.’ 

김택문은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었지만, 알고 있었다. 

-팔 생각이 없구나. 

아침에 있었던 일을 계속 마음에 담아두었는지, 저 사내는 자신을 이용하기만 할 뿐 마검을 거래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거래하자고 하는 것일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김택문에게 있어 둘도 없는 기회였다. 

“훌륭한 선택이십니다. 바로 백화점으로 갈까요?” 

“아뇨. 거래는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신 뒤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 말에 김택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말씀하세요. 여기까지 왔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우빈의 낮은 음성이 김택문의 귓가로 흘러나간다. 

이야기를 듣는 김택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린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부탁 중 가장 쉬운 부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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