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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적응(1)

우우웅- 

자동차 엔진으로부터 미약한 진동이 울려 퍼진다. 

우빈과 최수애는 김택문의 차를 타고 집으로 이동 중이었다. 

우빈의 시선이 최수애로 향한다. 

엄마는 링거를 받은 팔에 거즈를 올려놓은 채, 곤히 잠들어있었다. 

‘과로라···’ 

집으로 오기 전, 바로 병원에 들러, 최수애의 상태를 진단받았다. 

11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응급 진료뿐이었지만, 진료를 받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부 김택문의 도움 때문이었다. 

아침만 하더라도 거지새끼니, 꺼지라느니 거슬리던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저 정도면 아부도 능력인데.’ 

어찌나 상대의 비위를 잘 맞추는지, 오늘 하루 네네 전담 비서처럼 도와주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능력 또한 출중했다. 

우빈은 어느샌가 익숙해진 풍경을 바라봤다. 

도심은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시내는 조명으로 가득했으며, 사람들의 행동엔 여유가 넘쳐흘렀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 지금 타고 가는 자동차만 하더라도 그렇다. 

‘마정석.’ 

게이트의 등장으로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 물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물질은 몬스터의 체내에서 추출한 마정석이라는 원석. 

엘리드의 몬스터에게선 그런 물질이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다른가 보네.’ 

크로노스와의 대화로 대충은 알고 있었다. 

우빈이 살아남았던 엘리드는 크로노스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세계에 불가했으니까. 

하지만 지구에 생성된 시스템은 아니었다. 

크로노스보다 한 차원 위. 

-나처럼 되기 싫으면 그 새끼들의 장단에 놀아나지 마. 최대한 발버둥 쳐보라고. 

신처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크로노스를 짐승처럼 가둬놓은 윗놈들이 있단다.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뭘까. 그리고 크로노스는 왜 우리를 도와준 거지?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좁아서 들어갈 수가 없거든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샌가 집 근처에 도착했다. 

김택문이 먼저 내려, 손수 문까지 열어준다. 이윽고,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든다. 

엄마가 진료를 받는 와중, 사온 각종 영양제와 마중 갈 때 산 꽃다발이었다. 

“집까지 들어드리겠습니다. 가시죠.” 

“괜찮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우빈은 김문택이 든 짐을 대신 들곤, 엄마를 깨웠다. 

“도착했어요. 집에 가서 주무세요.” 

“어? 어. 우빈아. 미안, 잠을 좀 못 자서···.” 

엄마가 부스스한 눈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수액까지 맞은 상태였지만, 아직 컨디션을 찾지 못하신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우빈이 부축하자, 최수애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집이 어디지?’ 

고개를 갸웃하며 엄마의 뒤를 따라가려는데, 김택문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치 똥이 마려운 강아지처럼 우빈을 보며, 망설이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제 가셔도 됩니다.” 

“저, 그게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요.” 

“뭘요?” 

“정말 아까 그것만 들어주면 헌터 백화점과 거래하는 거 맞으시죠? 제 목이 걸려있는 일이라, 확실하게 듣고 싶습니다.” 

하긴 아침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우빈은 헌터 백화점을 이용하기만 했을 뿐 그 어떠한 것도 준 게 없었다. 

명품을 사 주거나, 꽃을 구해준 건 그렇다고 치는데, 엄마가 빠르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힘써준 건 마음에 들었다. 

“한 입으로 두말은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계약서라도 써드릴까요? 동영상이나 음성으로 남겨드릴 수도 있습니다.” 

우빈의 확고한 대답에 김택문의 표정이 밝아진다. 

“아뇨. 그 정도 답이면 충분합니다. 처리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김택문은 우빈이 안 보일 때까지 꾸벅 고개를 숙인 채 인사를 했고, 우빈은 엄마를 따라 길을 걷자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라고?’ 

*** 

우빈의 표정으로 당혹감이 떠오른다. 

두꺼운 철창 너머, 고개를 들어야 전부를 볼 수 있는 3층 주택이 우뚝 서 있다. 

앙! 앙! 앙! 

그런 마당으론 키우는 듯한 강아지가 살벌하게 울부짖는다. 

‘뭐야···’ 

희나의 몰골도 그렇고, 엄마의 상태도 그렇고 제대로 된 곳에서 살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띵동- 

“엄마 왔다.” 

우빈이 당황스러워하는 그대, 최수애는 익숙하다는 듯 초인종을 눌렀다. 

철컹- 

3초도 되지 않아, 문이 활짝 열리며, 저 멀리서 강희나가 뛰어나왔다. 

“엄마! 이리 와봐 오빠가 선물 엄청 많이 사 왔어.” 

“어? 선물?” 

희나가 엄마의 손을 붙잡고, 마당으로 끌고 간다. 

그 모습을 보는 우빈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평온해지며, 쌓여왔던 분노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렇게 희나와 엄마를 따라 걸어가는 그때. 

앙! 앙! 바로 옆에서 앙칼진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따라 옮기자, 초등학생 정도로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포메라니안을 안은 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우빈을 노려보고 있었다. 

앙! 앙! 앙! 

포메라니안이 앙칼진 소리를 내며 우빈을 경계한다. 

‘누구지?’ 

처음 보는 꼬맹이였다. 

‘집주인 아들인가?’ 

-엄마와 희나는 누군가의 집에 얹혀산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 상황이 대충 맞아떨어졌다. 

“누나가 맨날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형이구나.” 

“뭐?” 

“별것도 없구만. 뭐 그리 대단하다고 호들갑인지.” 

꼬맹이는 포메라니안을 끌어안곤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뭐야, 저놈은.” 

뭔가 틱틱거리는 게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우빈은 기시감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고, 

“오···” 

마당에 비치된 테이블 위로 가득 올라간 음식들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결혼식 뷔페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마당 한가득 준비되어있었다. 

“아까 그 아저씨가 사 준 거야. 내일 아침에 업체에서 치우러 올 거니까. 먹은 다음에 이대로 놔두라던데?” 

음식을 먹던 와중 강희나가 한 말이다. 

우빈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보다 쓸만하네.’ 

김택문.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었다. 냄새난다는 이유로 거지 취급을 하지 않나, 건물에 들어갈 수 없게 막아서질 않나.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 이용한 결과, 보면 볼수록 쓸만했다. 

퇴근 시간을 진즉 초과했음에도 전화 한 통에 달려오는 행동력. 굳이 시키지도 않은 음식을 세팅해 놓은 판단력. 센스가 넘치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쟤는 누구야?” 

우빈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우빈을 쏘아보는 남자아이의 정체를 물었다. 

“아, 말 안 했었나. 유주 동생이야.” 

“유주?” 

“어. 오유주. 거기서 만났었다며. 뭐부터 말하지. 5년 전 오빠가 사라지고 진짜 말도 아니었어.” 

희나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유주 부모님의 사망을 시작으로 유주의 동생 유성을 맡아 키우던 일까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던 그때, 유주가 귀환했다고 했다. 

돌아온 유주는 아낌없이 엄마와 희나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 집을 시작으로 매월 사용할 돈까지. 

하지만 엄마도 그렇고 희나도 그렇고 받기만 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굳이 왜.’ 

아무리 받기만 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해도 그렇지, 주는 돈까지 마다하면서 아낄 필요가 있나. 

우빈은 그렇게 소소한 대화를 통해, 지구에 적응해 나아갔고,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 가기 시작했다. 

식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낮에는 그렇게 덥더니, 저녁이라고 제법 쌀쌀했다. 

“오빠, 엄마 좀 눕히고 올게.” 

“어.” 

엄마는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음식을 제대로 드시질 못했다. 

그저 우빈의 손을 꼭 붙들곤, 고생했다며, 눈물을 훔치실 뿐이었다. 

희나가 엄마를 끌어안곤 집으로 들어간다. 

‘서포터라···’ 

엄마를 들쳐멘 강희나의 전신으로 미약한 마력이 흘러나온다. 

희나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건데, 희나는 몬스터를 처리하는 헌터. 그 헌터를 지원하는 직업인 서포터가 되고 싶다고 한다. 

위험한 일을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희나의 각오는 남달랐다. 

“나는 괴물이 싫어. 그렇다고 직접 싸울 배짱은 없어. 그래서 서포터가 되고 싶어. 유성이처럼 가족을 잃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구경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만두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방법은 많으니까.’ 

위험은 상대적이다. 

당장 오늘 아침에 있었던 고블린 던전을 예로 들어보자, 우빈에게 있어 고블린 던전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희나에게는 아니었다. 

고블린 1마리조차 생사를 걸어야 할 정도로 위협적이다. 

만약, 그런 희나에게 L등급 영체인 드래곤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우빈은 희나의 처우를 생각하며, 조용해진 마당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둑해진 하늘 위로 푸른 달이 반짝인다. 

‘나쁘지 않네.’ 

그 새끼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오직 복수만이 머릿속에 가득했었다. 지구에 돌아온다는 생각은 진즉 접었었는데. 막상 되돌아오자, 나쁘지 않았다. 

‘일단 시청에 신고부터 해야 하나.’ 

앞으로 어떻게 해 할지 계획할 필요성이 있었다. 

우선, 실종 신고부터 해제하고, 은행에 들러, 통장을 만들어야 했다. 

그 이후엔 귀환자 신청이라는 걸 해야 한다는데. 

‘귀찮아.’ 

지금 수중에 들어있는 아이템만 팔아도 평생 먹고 노는 데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방심하지 마. 엘리드는 그 새끼들이 만든 시스템에 비교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는 세계였으니까. 

크로노스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무언가가 벌어질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천국이었다고···.’ 

우빈이 앞으로의 일을 그리며, 생각에 잠긴 그때. 우빈의 앞으로 유주의 동생, 오유성이 다가왔다. 

앙! 앙! 

오유성의 품속에 안긴 포메라니안이 또다시 앙칼지게 짖는다. 우빈은 그런 포메라니안을 지그시 노려봤다. 

살짝 마력을 풀어, 압박하자. 깨갱-깨갱- 꼬리를 바짝 내리며, 오줌을 지리기 시작했다. 

“우왓!” 

오유성의 품속에서 발버둥 치던 포메라니안이 다급히 집 안으로 몸을 숨긴다. 

“코코야! 어디가!” 

오유성은 볼을 긁적거리더니, 우빈을 바라봤다. 

“코코한테 뭐 했지.” 

“뭘?” 

우빈은 어깨를 들썩이며, 음료수를 홀짝인다. 

“왜, 무슨 용건 있어?” 

“······.” 

우빈의 질문에 오유성이 멀뚱히 망설인다. 

우빈의 시선이 오유성으로 향한다. 아까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오유성의 몸에 멍이 가득했다. 

입술은 뭐에 맞은 듯 불어 터져있었고. 

“맞고 다니냐?” 

“뭐? 내가? 그럴 리가.” 

오유성이 버럭 소리치더니, 헛기침한다. 이윽고 부끄러운 듯 우빈의 시선을 피하며, 볼을 붉힌다. 

“저, 형 귀환자 맞지.” 

“그런데.” 

“그러면 형도 누나처럼 세?” 

“누나?” 

저놈의 누나라 하면 오유주이지 않은가. 기억 속에 따르면 유주는 그리 센 편이 아니었다. 

“센데 왜?” 

“진짜?! 누나보다 세다고?!” 

오유성이 화들짝 놀라더니, 정신을 차린 듯 주먹을 쥐곤 흠하며 헛기침을 한다. 

“오늘 귀환한 거면 아이템도 있겠네.” 

“있지.” 

“진짜?! 뭐 있어. 구경시켜줄 수 있어?”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눈을 반짝인다. 실제로 아이이기도 했고. 

츤츤거리는 게, 약간 거슬렸지만, 유주의 동생이지 않은가. 굳이 딱딱하게 굴 이유는 없었다. 

우빈은 판단을 내린 듯,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고, 

띠링- 

[인벤토리에서 마검:기간테스를 불러옵니다.] 

거대한 대검으로 짙은 마기가 넘실거리자. 

“우와······.” 

우빈을 바라보는 오유성의 표정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 

콰직- 콰직- 

규칙적이면서도 소름 끼치는 파육음이 이어진다. 

“씨발!” 

도민준은 이를 갈며, 발을 내질렀다. 바닥에 쓰러진 놈의 두개골이 박살 나고, 뇌수가 터져 나온다. 

더 이상 놈의 움직임이 없자. 찌이잉-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블랙 클럽] 

-도민준 님 승리를 축하합니다. 승리 보상은 내일 오전 9시에 지급됩니다. 승리 보상을 선택해주세요. 

액정 스크린 위로 3장의 사진이 올라온다. 

[살기] 

종류: 단검 

등급: A 

효과 

-70%의 확률로 치명적인 공격. 

[간르문의 장갑] 

종류: 장갑 

등급: A 

효과 

-사용 시 60초 동안 방어력 1,000 증가. 

[갈릭시아의 검] 

종류: 장검 

등급: A 

효과 

-신성 속성 생성. 

-신성 속성 데미지 100% 증가. 

보상 목록을 보는 도민준의 표정이 차갑게 내려앉는다. 

“쓰레기뿐이잖아.” 

도민준은 지구에 귀환한 뒤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장에 힘써왔다. 

게이트를 처리하고 레벨을 올리며 아이템을 모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늦게 귀환한 쓰레기 새끼들은 엘리드에서 사기적인 아이템을 가져왔지만, 타락 용사로 수배에 올랐던 도민준은 그 어떠한 아이템도 가져올 수 없었으니까. 

상대적으로 벌어진 격차는 일반적인 방법으론 메꿀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도민준은 그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살인 청부를 시작으로 오직 유희를 위해 싸우는 각성자 PVP까지. 

[10,000,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승리 보상금까지 들어온 걸 확인한 도민준은 발걸음을 옮겼다. 

피로 가득한 옷은 불로 태우고, 미리 준비해준 옷을 입었다. 살해 현장은 굳이 치울 필요 없었다. 

싸움을 주최한 놈들 쪽에서 알아서 처리해줄 테니까. 

도민준은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심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도 고프겠다 식사라도 해야겠다고 판단하며 걸어가던 그 순간이었다. 

오소소소- 

도민준의 팔뚝으로 소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건.’ 

오싹하면서도 익숙한 이 기운. 그 새끼에게 폭사한 뒤로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도민준의 시선이 한 장소로 향한다. 그리 먼 장소가 아니었다. 

‘·········.’ 

도민준은 결단을 내린 듯 발걸음을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았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새끼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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