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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적응(2)

쏴아아아- 

낙엽이 바람에 흩날린다. 푸른 달빛이 주변을 밝힌다. 

도민준은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무리 달빛이 주변을 밝히고 있다고 해도 어두운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민준은 정확히 한 장소를 응시하고 있었다. 

영롱한 보랏빛 오오라를 가득 머금은 대검이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다. 

올곧게 뻗은 칼날 아래, 시선을 사로잡는 눈알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마검···.’ 

도민준의 표정이 무섭게 가라앉는다. 

얼마나 저 아이템을 찾아 헤맸던가. 저 보물 때문에 수배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민준은 저 아이템에 매료되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요동쳤다. 호흡이 가빠지며, 주먹이 힘이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쳐들어가 마검을 되찾고 싶었지만,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괴물 새끼···’ 

저 새끼에게 죽기 전,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저놈의 기운은 보잘것없을 정도로 미약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렇게 멀리 있는데도,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흡사 레이핀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고 해야 할까. 

엘리드와는 다르게 성공적으로 이 세계를 클리어한 미국의 그 새끼보다 더 거대한 기운이 느껴져 왔다. 

엘리드가 멸망해 3년 전, 전부 돌아온 반면, 저놈만은 달랐다. 

실패한 세계에 남아서 뭘 한 걸까. 

‘설마 혼자서 클리어를 한 건 아니겠지.’ 

꿀꺽- 

도민준은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지금 저 새끼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자살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차라리 지금은 물러선 뒤,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맞았다. 

도민준이 판단을 내리고, 몸을 돌리며, 도심으로 몸을 숨기려는 그 순간이었다. 

“왜 너도 저 새끼가 마음에 안 들어?” 

“뭐?!” 

낮은 음성이 등 뒤로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내가 도와줄게.” 

빠각- 

강렬한 충격이 후두부를 강타한 그 순간. 

스르륵- 

도민준의 시야는 흐릿해졌다. 

*** 

습한 밖과 달리 상쾌한 공기가 방안 가득 퍼진다. 

에어컨의 백색 소음과 몸을 보호해주는 적당한 크기의 방. 

얼마 만에 느껴보는 아늑함인지, 우빈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꿈을 꿀 새도 없이 정신을 차렸을 땐, 포근한 손길이 우빈의 손끝으로 느껴졌다. 

어머니였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우빈의 손을 붙잡곤 한참을 앉아계셨다. 

그렇게 5분이 흘렀을까. 엄마는 우빈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시곤, 철컹- 집 밖으로 나가셨다. 

우빈은 멋쩍은 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디 가시는 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자는 척을 하는 게, 아닌 일어나서 인사라도 할 걸 그랬는데. 

우빈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거실로 나섰다. 

“으아!! 지각이다. 지각!” 

다급히 신발을 신는 강희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오빠 잘 잤어? 오늘 유주 온다더라. 오빠 왔다고 말하니까. 엄청 좋아하던데?” 

“유주?” 

“어. 난 학교 다녀올 테니까. 유성이 좀 봐줘. 오늘 학교 쉬는 날이라더라.” 

“뭐? 내가 갤 왜 봐.” 

철컹- 

우빈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 강희나는 문을 닫곤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귀찮게.’ 

우빈은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았다. 당장 실종 신고를 취하하고, 신분증을 발급받으려면 귀환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애를 돌봐달라니. 

‘조용히 나가자.’ 

오유성은 우빈이 없었다면 애초에 혼자서 시간을 보냈을 운명이지 않은가. 굳이 귀찮은 짐을 달고 다닐 이유는 없었다. 

우빈은 바로 나갈 준비를 하였다. 세수와 머리를 깜고, 어제 헌터 백화점에서 산 옷 중 한 벌을 골라 입었다. 

체크무늬 반팔티와 베이지 색 슬랙스. 

전신 거울을 보자, 낯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구에 온 지 고작 하루밖에 돼서 그런지 어색했다. 

우빈은 머리를 한번 만져준 뒤, 그대로 현관으로 향했다. 

“형!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빨리 가자.” 

“뭐?” 

“형은 귀환자니까. 한국 헌터 협회로 가야 돼. 내가 안내해줄게.” 

어느샌가 나갈 준비한 오유성이 신발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헌터 협회?” 

실종 신고나 귀환자 등록은 경찰서나 시청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뭐해. 빨리 가자. 협회는 사람이 많아서 빨리가는게 좋아.” 

“어? 어.” 

오유성. 현관에서 처음 봤을때까지만해도, 우빈에게 조흥 감정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어제 우빈이 아이템을 꺼내 보여준 뒤로 오유성의 행동은 완벽하게 바뀌었다. 

지금도 보아라. 

“대박이다···. 형은 무슨 등급일까. 설마 S급은 아니겠지? S급이면 방송국에서도 인터뷰나올텐데.” 

눈을 반짝이다못해, 존경하는 눈빛으로 우빈을 바라보고있지 않은가. 

‘나쁘지 않으려나.’ 

지금 언행도 그렇고, 어제 잠깐 나눠본 대화에서도 그렇고. 

오유성은 나이에 비해 똘똘해 보여서, 안내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개는 놔두고 가.” 

앙!!! 

오유성의 품에 안긴 포메라니안은 아니었다. 

“개라니. 코코야.” 

“그래. 어쨌든 놔두고 가.” 

“안돼. 오늘 놀아준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오유성이 핵핵 거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포메라니안을 끌어 안는다. 

더 말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았다. 

방해만 안 된다면 굳이 만류할 이유가 없기도 했고. 

“귀찮게만 하지 마.” 

그렇게 우빈은 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응! 같이 가. 형!” 

오유성은 다급하게 우빈의 뒤를 따랐다. 

***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그 위로 강렬한 태양이 이글거린다. 

반팔티 밑으로 훤히 드러난 팔뚝으로 뜨거운 온기가 느껴졌지만, 덥다거나 뜨겁다는 느낌은 없었다. 

지옥 겁화로 가득하던 엘리드에서도 살아남은 우빈이지 않은가. 환경적인 요소에서만큼은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빈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덥지도 않나.’ 

우빈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가자. 코코!” 

오유성이 포메라니안을 목줄로 묶은 뒤, 달려 나간다. 

앙! 

포메라니안은 오유성을 따라 열심히 달려가다 솟아오른 물체가 나올 때마다 한쪽 다리를 들어, 오줌을 갈기기 시작했다. 

똑같은 행동은 반복한 지 수십 번, 더 이상 오줌이 나오지도 않는데, 다리를 들며, 시간을 보낸다. 

‘이래서 빨리 가자고 한 건가.’ 

조금 전 지도로 확인한 건데, 한국 헌터 협회는 우빈이 출발했던 집에서 약 2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즉, 택시를 타고 갔으면 이렇게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바로 도착했을 거란 이야기였다. 

물론 택시를 타도 낼 돈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띠링- 

[드래곤의 영혼석] 

종류: 영혼석 

등급: L 

레벨: 100 

효과 

-드래곤의 영체를 소환한다. 

우빈은 인벤토리에서 곤히 잠든 영혼석을 바라봤다. 

이것만 있다면 굳이 돈을 내고 택시를 탈 이유가 없었다. 약간의 시선과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렇게 10분을 걸어갔을까. 

“여기야!” 

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더워서 그런지 포메라니안은 더 이상 뛰어다니지 않았다. 핵핵거리며, 오유성의 품에 안겨있을 뿐. 

“들어가자. 형은 귀환자니까. 귀환자 신고부터 해야 할 거야. 조사관들이 와서 뭐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조사한다던데. 별거 안 물어본대. 그리고 조사 끝나면 능력 테스트하고 등급을 측정할 거야.” 

“그래, 귀찮겠네.” 

우빈은 오유성의 브리핑을 들으며 건물로 입성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거대한 시청에 들어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예상 대기 시간: 1시간 33분] 

번호표 기계에 가자, 절망적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유성의 말에 따르면 바로 귀환자 등록 절차만 하더라도 수 시간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는데, 단순히 접수하는 시간만 무려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어떻게 오셨나요?” 

그때, 데스크의 안내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왔다. 명찰로 서윤미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이 형 귀환자예요! 귀환자 등록하러 왔어요!” 

“귀환자요?” 

오유성의 말에 서윤미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우빈을 바라본다. 

깔끔한 헤어 스타일, 대충 입은 듯 보이는 명품 옷. 너머 탄탄한 근육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분명 귀환자라 하면, 이세계에서 굴러 거지꼴을 하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저 사내는 아니었다. 

누가 봐도 한국에 수십 년 산 모습이지 않은가. 

거기다 한국의 전이자들은 미션 실패로 3년 전, 전부 넘어왔다고 들었다. 

“언제 귀환하셨는데요?” 

“어제입니다.” 

“아, 어제요···.” 

그런데 어제 귀환했다고? 

‘또 왔네.’ 

서윤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기본적으로 귀환자는 나라에서 엄청난 대우를 해준다. 

이세계에서 어떤 삶을 보냈던, 거기서 산 경험과 얻은 능력은 나라 차원에서 엄청난 이점으로 다가왔으니까. 

그렇기에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저 단순한 각성을 해놓고 귀환자라고 우기는 경우가 말이다. 

명품으로 쫙 빼입고 온 행색을 보아하니, 제대로 준비하고 온 모양인데. 

‘잘 걸렸다. 이 새끼야.’ 

서윤미는 이런 경우를 한두 번 겪어 본 게 아니었다. 

무려 2년 동안 근무를 하면서 귀환자라고 말한 각성자 중 진짜 귀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찾아온 놈은 여태까지 만난 사기꾼들 중 단연코 최악이었다. 

감히, 의심을 피하려고 아이까지 이용하다니. 

마음만 같아서는 대기 시간을 전부 보내게 한 뒤,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저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놈들은 굳이 자극해서 좋을 게 없었다. 

그저 팩트로 조진 뒤, 구라치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체험시켜주는 게 제일 효과적이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귀환자분들은 따로 민원을 처리해드리는 부서가 있어서요.” 

판단을 내린 서윤미는 우빈과 오유성을 데리고 이동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서윤미가 문밖으로 나간다. 

‘뭐야, 여기는···’ 

우빈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넓은 동공이었다. 들어오면서 본 팻말에 자유 연습장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귀환자라는 걸 알게 되면 조사를 한다더니, 도대체 무슨 조사를 하려고 이런 장소로 데려온 것일까. 

“아, 그건가보다!” 

그때, 오유성이 어느샌가 잠이 든 포메라니안을 쓰다듬으면서, 뭔가를 알아차렸다는 듯 눈을 번뜩였다. 

“인터넷에서 봤어. 사기꾼 걸러내기.” 

“뭐?” 

“각성자들 중에 귀환자라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으니까. 이런 식으로 실력 검증을 바로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 

“거짓말?” 

“귀환자랑 각성자는 똑같거든. 거짓말을 하면 알아낼 방법이 없대.” 

“······”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걸러내는 거야. 귀환자는 대부분이 강하지만, 각성자는 일반인이 특별한 능력을 얻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오유성의 말에 우빈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저 말을 풀이해보자면, 안 그래도 귀찮은 절차에 한가지 검증을 더 추가한다는 말이지 않은가. 

‘귀찮게 하네.’ 

안 그래도 절차에 짜증이 치솟았는데, 이 상황은 심기를 건드렸다. 

꽈드득- 

그렇게 우빈의 주먹으로 힘이 들어가던 그 순간. 

끼이익- 

우빈을 비웃기라도 하듯. 

“또 어떤 새끼가 지랄이야?”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귀를 후벼 파며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 

고요한 침묵이 감돈다. 

“귀환자 전용 참고 자료로 영상을 남기려고 하는데, 촬영해도 괜찮을까요?” 

서윤미가 핸드폰을 꺼내 들곤, 해맑게 묻는다. 

“마음대로 하세요.” 

“협조 감사합니다.” 

우빈의 대답에 서윤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늘도 한 건 하는구나.’ 

전용 참고 자료로 촬영한단 말은 거짓말이었다. 

원래는 귀찮게 업무를 방해하는 진상을 처리하는 용도로 시작한 일. 하지만 지금은 단순한 처리 용도가 아니었다. 

-참교육 영상 

혼자 보기 너무 아까워, 인터넷에 올린 영상이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1편에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만 원씩 들어왔다. 

이번 역시 제법 재미있는 영상에 제작될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도 그럴 게 이번엔 저 새끼가 처 발릴 때 리액션을 해줄 구경꾼까지 있었으니까. 

서윤미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눈을 반짝이는 오유성을 보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자,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와주세요.” 

서윤미의 말에 우빈이 앞으로 나선다. 

“증명해 주시면 됩니다. 간단한 테스트여도, 전력을 다해주세요.” 

서윤미의 말에 우빈이 고개를 끄덕인다. 

“뭘 전력을 다해. 가볍게 하면 되는 거지.” 

그때, 서윤미가 데려온 헌터가 서윤미에게 불평을 터트렸다. 

“왜요? 전력을 다해야 밟는 맛이 있다면서요.” 

“그, 그건 그런데···” 

헌터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창백하다고 해야 할까. 

“왜 그러세요? 빨리 가세요.” 

“잠, 잠깐 배가 너무 아픈데.” 

“네?” 

“오늘은 못 하겠어. 그냥 정상적인 절차로 진행하자.” 

“정식 절차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떤 새끼가 또 구라질이냐며 의욕이 충만하시더니, 갑자기 말을 바꾸신다. 

이상했다. 

헌터님도 이 행사를 좋아하셨다. 거짓말하는 놈들이 현실을 깨닫고, 시인하는 모습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나? 

“갑자기요? 안돼요. 정 급하시면, 최대한 빨리 끝내고 화장실 가세요.” 

“뭐? 자, 잠깐만.” 

서윤미는 있는 힘껏 헌터의 등을 떠밀었다. 헌터가 총총걸음을 하며 앞으로 나선다. 

‘좋은데.’ 

카메라의 구도를 본 서윤미의 표정에 미소가 떠오른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서는 저 남자의 표정은 어떻게 바뀔까. 

‘재미있겠네.’ 

서윤미가 앞으로 일어날 장면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리는 한편. 

우빈은 앞으로 걸어나 온 헌터를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이네?” 

우빈의 말에 앞으로 튀어나온 헌터의 어깨가 들썩인다. 

“나, 나를 기억하는구나.” 

“알지.” 

우빈은 딱딱하게 굳은 헌터를 향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느샌가 우빈은 머리하나 높은 사내의 앞에 도달해있었다. 

꿀꺽- 

우빈을 마주한 사내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뭐 해요. 빨리 시작하세요.” 

그런 헌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윤미가 카메라를 치켜들며, 부추긴다. 

“뭐해? 시작하라잖아. 내가 먼저 할까?” 

“······.” 

우빈의 질문에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내는 그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식은땀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우빈은 그런 사내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대로 사내의 어깨를 움켜쥐려는데. 영상을 찍는 서윤미의 입꼬리가 내려간다. 

“뭐··· 하세요···”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녹화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랭커이자, 귀환자로 이름을 날리던 정상급 헌터. 

김백청이 바닥에 넙죽 엎드린 채, 소리쳤다. 

“내가 졌다. 그,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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