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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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적응(3)

두근-두근- 

오유성은 두 주먹을 꽉 쥔 채, 눈을 떼지 못했다. 

‘궁금해.’ 

누나가 언제나 하던 말이 있었다. 

-우빈 오빠만 돌아오면 한국도 강대국이 될걸?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오유성은 누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을 시작으로 중국과 일본 등 각 나라를 대표하는 귀환자가 각자의 이세계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였지만, 실패한 한국은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당장, 한국 랭킹 1위만 하더라도 그렇다. 

일본 랭커 100위와 견주어도 밀릴 정도로 한국의 전력은 처참했다. 

그런데 고작 한 명이 귀환한다고 한국이 강대국이 된다? 

누나의 희망을 가득 담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 우빈을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제 보여주었던 그 아이템, 평범한 헌터가 가지고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와···. 김백청 헌터님이잖아.’ 

직원이 데려온 헌터, 김백청을 본 오유성의 눈이 반짝인다. 

김백청은 오유성이 알 정도로 유명했다. 

한국 랭킹 41위로 높은 순위에 기록되어있는 걸 떠나, 김백청은 언론에 자주 나오던 유명인이었으니까. 

‘진짜 크다.’ 

제법 건장한 우빈보다 머리 2개는 더 큰 거대한 몸집. 두꺼운 팔뚝은 성인 여성의 몸집만 할 정도로 비대했다. 

영상으로 봤을 때도 크다고 느껴졌는데, 이렇게 눈앞에서 실물로 보자 거인이 따로 없지 않은가. 

꿀꺽- 

단순히 바라만 볼 뿐인데, 숨이 턱 막혀올 정도로 저 헌터의 강함이 느껴졌다. 

누나 말대로라면 우빈이 형이 이기는 게 당연한데, 왜일까. 

오유성의 머릿속에선 우빈이 이긴 하는 장면 자체를 떠올리는 게 불가능했다. 

오유성은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둘을 응시했고, 

두근-두근-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치솟던 그때였다. 

“내가 졌다. 그, 그만해.” 

“응?” 

절대 질 거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사내가 바닥에 넙죽 머리를 내리깔곤 패배를 인정했다. 

*** 

김백청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괴물 새끼.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김백청은 눈치를 살피기 위해 힐긋 위를 올려다봤다.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깔보는 듯한 눈빛이 김백청을 내려다본다. 

원래라면 기분 나빠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김백청은 달랐다. 

‘다행이다.’ 

오히려 싸울 의지가 없어 보이는 우빈의 표정에 안도했다. 

김백청은 우빈의 얼굴을 단 한 번도 잊을 수 없었다. 

레파르도를 한방에 터트리곤 산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 괴물 새끼이지 않은가. 

그 당시만 해도 잘못 봤겠거니 했지만, 우빈의 주먹에 폭사한 김백청은 알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심기를 건드리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두근-두근- 

김백청이 공포를 느끼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그때였다. 

서윤미가 난데없는 상황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백청에게 다가갔다. 

“백청씨 왜 그러세요?” 

“말했잖아요. 졌다고요.” 

“네?” 

김백청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우빈을 손바닥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이분은 귀환자가 맞습니다. 굳이 점증할 필요도 없어요.” 

“귀환자가 맞다고요?” 

“네. 엘리드에서 직접 만난 적이 있거든요.” 

서윤미는 다급히 말하는 김백청을 바라봤다. 식은땀을 흘리며 검증을 받으러 온 사내의 눈치를 본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김백청은 약간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지만,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고, 누구의 눈치를 볼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겁먹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일까. 엘리드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던 사람인가? 

‘그렇게 안 세 보이는데.’ 

서윤미는 핸드폰을 끄곤, 볼을 긁적였다. 

김백청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 검증을 이어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귀환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서윤미가 정상적인 절차를 준비하러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때였다.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네? 헌터님이 직접이요?” 

“네. 제가 알아서 진행할 테니. 로비로 돌아가서 정상 업무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김백청이 난데없이 우빈을 서포트한다 나서기 시작했고, 우빈의 귀환 절차는 프리패스 급으로 진행되었다. 

***** 

귀찮은 서류 접수를 시작으로 개인적인 정보를 심문하는 면담까지. 

“대충 채워서 써.” 

“대충이요? 귀환자인데, 어떻게 그래요.” 

“내가 전부 책임진다니까. 나 못 믿어?” 

“하아······ 알겠습니다.” 

김백청이 우빈을 따라다니며, 모두 해결해줬다. 

그 결과 최소 6시간은 걸릴 절차를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전부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전투 능력 측정만 남아있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원하는 등급으로 맞춰드릴 수도 있습니다.” 

김백청이 우빈을 안내하며, 제안했다. 

우빈은 그런 김백청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왜 이러는 거지.’ 

귀찮은 절차를 알아서 처리해주니, 나쁘지는 않다만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걸까. 

귀환한 뒤로 선하게 살았는지, 악행이 없어 저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야.” 

“네?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너 나한테 죽었잖아. 복수하고 싶지 않아?” 

우빈의 질문에 김백청은 묵묵히 길을 걸어 나갔다. 5초 정도 정적이 일었을까. 김백청이 천천히 입을 뗐다. 

“친해지고 싶어서요.” 

“뭐?” 

“한마디로 우빈씨와 인연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엘리드에서 인맥 하나 없이 망나니로 살다 지구에 와보니까 알겠더라고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말이죠.” 

“············.” 

“우빈씨는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 손꼽히는 강자입니다. 그런 사람을 도와줄 기회가 찾아왔는데 도와야죠.” 

김백청이 엄치를 치켜세우며 우빈을 향해 씨익 미소를 짓는다. 

한마디로 똥꼬를 빨아, 호감을 사겠다는 걸 대놓고 말하고 있었다. 돌려 말하지 않는 솔직함은 나쁘지는 않았다. 

“도착했습니다. 어떻게 하실래요? 조금 전 말씀 드렸다시피, 제 선에서 원하시는 등급을 매겨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전투력 측정은 참여하실래요?” 

김백청이 한 장소에 멈추어 선다. 순간 전투력 측정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우와. 김백청 헌터님이다.” 

“존나 커. 개무섭다.” 

“사진 찍어달라고 해볼까?” 

“어. 가서 찍어달라고 해봐.” 

심문을 받으면서도 느낀 건데, 김백청은 나름대로 영향력을 많이 쌓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도 그렇고, 협회 직원들이 찍소리 하나 못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우빈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김백청에게 할 대답을 생각했다. 

김백청의 말에 따르면 전투력 측정을 마지막으로 귀환 절차는 끝이 난다고 한다. 

‘전투력 측정. 뭘 어떻게 하는 거지.’ 

마지막 정도는 직접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을 한 우빈은 답했다. 

“이건 직접 할게.” 

“탁월한 판단이십니다. 이건 영상 촬영을 해서 서류로만 조작하기 힘들기도 했거든요.” 

김백청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주었고, 철컹- 활짝 열린 시야로 볼 수 있었다. 

근력을 측정하는 펀치 기계를 시작으로 기량을 확인할 장애물 달리기와 감각을 테스트하는 함정 찾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측정기구에 우빈은 볼을 긁적거렸다. 

‘그냥 대충 처리 해달라고 할걸. 그랬네.’ 

***** 

헌터 협회의 민원실은 언제나 혼잡했다. 

“헌터증을 잃어버려서요. 재발급하러 왔습니다.” 

“3번 창구로 가주세요.” 

“각성 등급 재측정하러 왔는데요.” 

“재측정은 7번 창구로 가주세요.” 

“길드 창설은 어디에서 하는 건가요?” 

“길드 창설은 3층으로 가셔야 합니다.” 

협회 시설은 한국에 단 하나뿐이었기에, 한국에서 일어난 시스템 사건은 이 장소로 모였다. 

원래라면 시끌벅적한 소음에 크게 말해도 옆 사람의 말이 들릴까 말까 했지만, 오늘따라 이상리만큼 조용했다. 

“씨발, 개쩐다···” 

“와··· 살짝 친 거 같은데. 점수 뭐야. 고장 난 거 아니야?” 

천여 명의 시선을 사로잡는 영상이 티비 너머로 재생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영상은 협회에서 실시간으로 찍고 있는 전투력 측정실의 영상. 

“와······” 

입을 벌리고 놀라는 건 민원을 처리하러 온 각성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민원을 처리해주던 협회 소속 직원, 서윤미 역시 한 사내의 영상이 나올 때마다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저 사내가 가장 처음으로 측정한 건 근력 수치를 수치화하는 파워볼이었다. 

파워볼은 검은 구체의 짐볼을 주먹으로 후려쳐 파괴력을 측정하는 도구. 

펑!!!!!! 

사내의 가벼운 주먹질에 짐볼이 터져 기계가 박살 난다. 

그 이후 측정된 수치는. 

띠링 

[1,756,784,821] 

수년간 전투력 측정실을 구경해온 서윤미조차 저런 수치는 처음이었다. 

그다음으로 측정한 건 기량 수치를 측정하는 장애물 달리기. 

시작과 동시, 사내의 모습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띠링- 

[1.14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기록이 전광판으로 표시되었다. 

사내가 측정을 할 때마다, 세계의 기록이 경신되었다. 

어느샌가 민원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영상에 몰두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모든 기록이 갱신되고 마지막으로 측정할 요소는 행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와중, 사내가 행운의 부적이라는 복주머니를 깐다. 

“와······” 

“미친···” 

티비를 보던 사람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내가 깐 복주머니로부터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온다. 

화아악- 

흰빛이 화면 가득 차오른 그 순간. 

띠링- 

[명성 없는 플레이어가 행운의 복주머니에서 찬란한 유물을 획득하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거대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월드 메시지잖아.” 

“찬란한 유물은 또 뭐냐. 저런 것도 있었어?” 

“개 쩐다···. 존나 부러워.” 

여태까지 그 누구도 뽑지 못한 최상의 경품에 당첨된 것이다. 

‘뭐야 저 사람.’ 

서윤미는 화면에 나오는 우빈을 보며, 눈을 뗄 수 없었다. 

김백청 헌터님이 그렇게까지 두려워하는 걸 보곤 뭔가 있겠거니 했었는데. 설마 모든 기록을 갈아 치울 정도로 괴물이었을 줄이야. 

만약, 김백청 헌터님이 저분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꿀꺽- 

서윤미는 생각하기도 싫은 일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잡은 주먹을 꽉 쥐며 안도했다. 

한편. 영상을 보던 수십명의 사람들이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거 라이브 맞지? 전투력 측정실로 빨리 가!” 

“팀장님! 괴물 같은 신입을 발견했습니다! 계약금 최대한도 좀 올려주세요.” 

“영상 하나 보내줄 테니까. 바로 마스터에게 보고해!” 

지금 나타난 괴물을 누구보다 빠르게 쟁취하기 위해서. 

***** 

전투력 측정실로 침묵이 감돈다. 

원래라면 근력 측정인 파워볼을 시작으로 기량 측정인 장애물 달리기까지. 시끌벅적했을 장소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측정을 진행하지 않았다. 심지어 시설을 관리하는 관리자까지 한 사내를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와···” 

사내의 앞으로 빛무리가 모여든다. 강렬한 빛이 모이고 뭉치더니 이내 하나의 형상을 이뤄낸다. 

흡사 열쇠를 떠올리게 하는 손바닥만 한 단검 한 자루였다. 

“희귀한 유물이 S등급이었으면, 저건 몇 등급이냐.” 

“개 부럽다···. 적어도 천 억원 이상을 할 거 아니야.” 

행운의 복주머니는 한국에서만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전세계에서 행운을 측정하는 공통 도구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복주머니의 최고 보상은 1년 전, 중국에서 나온 희귀한 유물인 S급 아이템 청룡언월도였다. 

단순한 가치로만 수천억 원을 호가할 정도로 엄청난 효과를 보여줬다. 

그런 청룡언월도보다도 상위 등급인 찬란한 유물이라니, 과연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을까. 

꿀꺽- 

눈앞에서 로또에 당첨된 사람을 본 구경꾼들이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그때였다. 

“역시 형님이셔. 축하드립니다!” 

어느샌가 김백청이 우빈을 부르는 호칭이 형님으로 변경돼있었다. 

단순히 과거의 기억과 본능으로만 두려워하다. 전투력 측정으로 우빈의 힘을 느끼곤, 더 자세를 낮춘 것이다. 

“뭐해? 바쁘신 분이야. 빠르게 처리 안 해?” 

“네? 아, 네!” 

김백청이 다그치자 넋 놓던 직원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혼자서 컴퓨터를 조작하더니, 이내,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가져온다. 

“여기 헌터증이랑 신분증입니다.” 

2장의 작은 카드였다.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귀환 절차는 이걸로 끝입니다.” 

김백청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한다. 

우빈은 그대로 밖으로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러자 김백청이 그런 우빈을 불러 세웠다. 

“형님, 잠시만요. 아마 영상을 보던 길드 스카우터들이 밖에 쫙 깔렸을 겁니다. 제 선에서 처리해드릴수도 있는데. 어떻게 해 드릴까요.” 

김백청이 굳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자처했다. 

‘쓸만하네.’ 

우빈은 그런 김백청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는데, 데리고 다니면 다닐수록 편리한 녀석이었다. 실제로 저 녀석 덕분에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기도 했고. 

“됐어.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할게. 오늘 일은 고마웠다.” 

우빈은 그런 김백청의 어깨를 툭 치곤, 유유히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이익-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나가자. 

찰칵-찰칵-찰칵- 

수십 개의 카메라 셔터와 함께. 

“신화 길드에서 나온 최성진이라고 합니다.” 

“비켜! 어딜 2류 길드 따위가.” 

“뭐? 2류? 이 새끼가.” 

“싸울 거면 저리 가서 싸워!!! 우빈씨. 잠깐만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수십 명의 사람이 우빈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철컹- 

문이 굳게 닫히자, 측정실에 고요함이 감돌았다. 

모두가 황당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김백청만은 달랐다. 

-오늘 일은 고마웠다. 

우빈의 칭찬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김백청의 볼이 발그레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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