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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오유성(1) (82/107)

86. 오유성(1)

따뜻한 햇볕이 창문 너머로 들어온다. 살랑이는 바람에 커튼이 팔랑거린다. 

대학교의 강의실을 떠올리게 하는 교실 안. 

“어제 실습 어땠냐?” 

“어땠긴, 토 나왔지. 고블린 진짜 못생겼더라.” 

“못생긴 게 문제냐 냄새가 아주 그냥. 으웩-” 

수십 명의 학생이 모여, 어제 있었던 실습을 떠올렸다. 

괴물이 가득 들어 찬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실습이지 않았던가. 

부상자나 사망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이들을 교육한 프로들의 능력이 너무나도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인을 데리고 실습을 진행했어도, 지금의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딱 하나의 팀에서 문제가 터졌다. 

완벽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했던 보스가 되살아나 실습생이 크게 다칠뻔한 일이었다. 

실습을 관리하는 교관은 어제 사건을 입 단속하길 바랐지만, 이미 전교생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야, 희찬. 너 괜찮냐? 몬스터한테 공격받았다면서.” 

“어. 놀라긴 했는데. 괜찮아. 우림이랑 희나가 위험했었지.” 

“우림는? 많이 다쳤어? 학교는 왜 안 나왔데.” 

“그러고 보니까. 안 나왔네. 크게 다친 데는 없어 보였는데. 많이 놀랐었나 봐.” 

그 사건의 실습 조가 누구인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정도로 자세했다. 

“그런데 그거 진짜야? 

“뭐가?” 

“누가 일부러 몬스터를 깨웠다면서.” 

“어?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알았냐.” 

“학교 커뮤니티 못 봤어? 누가 익명으로 글 올려서 다 알아.” 

“뭐?!” 

조희찬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꺼냈다. 

학교 게시판을 들어가자, 인기 글로 선정된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어제 있었던 게이트 살인 사건을 고발합니다.][익명] 

어제 그 장소에 있었던 조희찬조차 모르는 상세한 정보가 담겨있었다.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총 4명. 

그 자리에 있던 강희나와 고우림.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남성. 도움 요청을 하러 도망친 조희찬 자신까지. 

특히 눈길을 끈 건 증거로 제시된 영상과 지문이 담긴 포션 병의 존재였다. 

‘누가 올린 거지?’ 

조희찬의 눈매가 좁아진다. 

조희찬은 바보가 아니다. 강희나와 함께, 고블린을 처리할 동안 고우림의 모습이 안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 고블린의 습격으로 간신히 도망쳤는데, 도와주러 온 그 자리에 고우림이 있었다. 

공격당하던 희나의 영상을 찍은 것도 그렇고, 증거로 제시된 포션 또한 희나같은 일반인은 구할 수조차 없는 고가의 제품이었다. 

조희찬 입장에선 모든 정황이 고우림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희찬은 범인을 알고 있음에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고우림이 가진 권력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증거도 확실히 있겠다. 가만히 있으면 고우림이 범인이라는 게 밝혀질 텐데 굳이 나설 이유는 없었다. 

‘희나는 아닐 테고.’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이런 글을 올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굳이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이득을 볼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으니까. 

‘흠···’ 

조희찬은 게시글에 달린 댓글을 보며, 생각에 잠겼고, 

-강희나가 범인 아님? 오늘 보니까. 멀쩡하던데, 우림이는 나오지 않았잖아. 일부러 우림이 담그려고 그런 거 같은데. 

└나도 희나 1표. 증거에 영상까지 찍혔다며, 영상도 좀 올려봐. 

강희나에게 대한 부정적인 반응에 눈매를 좁히던 그때였다. 

찌이잉-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고, 

‘뭐야. 또.’ 

메시지를 읽는 조희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띠링- 

[고우림] 

-할 말이 있어. 어제 그 창고로 와. 

**** 

어제 진행한 게이트 보고서를 작성 한 뒤, 수업은 끝이 났다. 

다음 실습까지 어제 했던 일을 복습하면서 휴식을 취하라나? 

수업이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와···. 부럽다. 누구일까?” 

“몰라. 협회면 여기서 20분이면 가지 않아? 지금 가볼래?” 

“가자!” 

학생들의 시선이 하늘 위로 향한다. 

띠링- 

[명성 없는 플레이어가 행운의 복주머니에서 찬란한 유물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직도 선명한 메시지가 푸른 하늘 위로 거대한 위용을 내뿜었다. 

놀라운 정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 최초! 행운의 부적에서 찬란한 유물의 주인은 한국인.] 

[전투 측정 세계 기록을 갈아치운 신예의 등장! 드디어 한국도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로워지나?] 

[괴물 신예 인터뷰 도중 사라져·········.] 

........ 

..... 

.... 

인터넷은 지금 한 사내의 등장에 뜨겁게 타올랐다. 어딜가든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 한 사내의 사진이 거대하게 올라와 있었다. 

“잘생겼다. 뭐 하던 사람이길래, 찬란한 유물에 세계 신기록까지 갈아치우냐.” 

“귀환자라던 소문이 있던데.” 

“뭐? 귀환자. 한국 귀환자는 3년 전, 전부 넘어온 거 아니었어?”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당장, 미국의 도움 없이는 S급 게이트 하나도 처리 못하는 한국이지 않은가. 

그런 와중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전투력 측정에서 신기록을 갈아치운 한국인의 등장이라니.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밖에 없는 요소였다. 

그건, 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오빠잖아···’ 

모든 기사의 주인공이 희나의 오빠인 우빈이라는 것이었다. 

‘뭔 일이 있었던 거지.’ 

보아하니, 귀환 절차를 밟은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삶을 보냈길래, 사람이 아예 바뀌어서 돌아온 것일까. 

분명 오빠가 맞는데,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뭔가가 달랐다.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존재 같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가족은 가족. 우빈이 저렇게까지 바뀐 데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상상할 수 없는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성격이 변한 거겠지. 

어떻게 되었든 축하할 일이었다. 오빠 덕분에 아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던 어제의 사건이 내려가기도 했고. 

강희나가 우빈의 기사를 보며, 입꼬리를 올리던 그때였다. 

“강희나!” 

뒤에서 누군가 희나를 불러세웠다. 

한 사내가 밝게 웃으며 손바닥을 휘휘 젓는다. 

어제 지운성과의 식사 약속을 통해, 편을 들어주겠다던 조희찬이었다. 식사는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약속은 유효한 모양이었다. 

“어. 희찬아.” 

“어디가?” 

“집에 가려고.” 

“아, 그래.” 

조희찬이 멋쩍은 듯, 주머니 속에서 캔 음료를 꺼낸다. 

“마실래?” 

인기가 가장 많은 탄산음료였다. 

그다지 목이 마르지 않았지만, 거절하기도 뭐해 받아들었다. 

“고마워. 그런데 왜?” 

“아, 별건 아니고. 이거 때문에.” 

조희찬이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 기사를 보여줬다. 

오빠의 내용으로 가득한 기사들이었다. 

“이거 어제 그분 아니야? 네 오빠라던.” 

“어? 어. 맞아.” 

“와··· 미쳤다. 꾸미시니까 못 알아보겠는데.” 

“그런가?” 

조희찬이 흥분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너네 집. 완전 로또 맞았어! 옛날에 부적에서 나온 희귀한 유물이 얼마에 팔렸는지 알아?” 

“얼마에 팔렸는데?” 

“자그마치 2천억! 현금 2천억에 팔렸다고!” 

“이, 이천억?!!!” 

상식으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금액에 강희나의 표정에 놀라움이 떠오른다. 

“형님이 뽑은 건, 희귀보다 한 단계 높은 거야! 아무리 적게 받아도 4천억 원을 할걸?” 

“사천억?!” 

조희찬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강희나의 손을 꼭 붙잡는다. 

캔을 쥔 강희나의 손이 캔을 꽉 짓누른다. 

강희나는 그런 조희찬의 손이 부담스러웠다. 

“이건 잘 마실게. 바빠서 이만.” 

그대로 손을 빼곤, 자리를 피하려는데. 

“잠깐만” 

조희찬이 강희나를 불러세웠다. 

“생각해보니까. 이게 더 시원한 거다. 바꾸자.” 

“어? 괜찮은데.” 

“에이 그러지 말고.” 

조희찬은 자신의 손에 들린 캔과 희나의 캔들 바꿔 들었다. 

‘이상한 애네.’ 

희나는 그런 조희찬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학교에서 친하게 말을 걸어준다는 사람이 있다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묘하게 께름칙했다. 

“그러면 간다.” 

“어, 잘 가.” 

조희찬은 손을 휘휘 저으며 강희나를 배웅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교내였다. 날씨는 지독하게 맑았으며, 선선한 바람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러나 조희찬은 풍경 따위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조희찬은 차갑게 내려 않은 표정을 지으며, 희나가 건넨 캔 음료를 빤히 바라봤다. 

캔 위로 선명하게 찍힌 지문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 

앙! 앙!! 앙!!!! 

낮잠을 자고 일어난 포메라니안이 앙칼지게 짖어댄다. 

“진짜 멋있다. 누나가 괜히 형을 기다린 게 아니구나. 아까 뽑은 유물 보여줘!” 

우빈의 옆에 오유성이 눈을 반짝이며, 동경의 시선을 보낸다. 작은 주먹을 꽉 쥐며, 열변을 토한다. 

띠링- 

[인벤토리에서 단군의 열쇠를 불러왔습니다.] 

우빈은 무심하게 유물을 꺼내 오유성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오유성이 유물을 받아들곤, 눈을 반짝이며 침을 질질 흘린다. 

지금 있는 장소는 어느 한 건물의 옥상. 

‘귀찮게 됐네.’ 

우빈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각종 길드를 시작으로 언론사에서 찍어대는 통에 우빈의 얼굴이 매스컴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결과 귀찮은 일이 펼쳐졌다. 길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백청에게 부탁해서 적당한 등급으로 맞춰달라고 하는 건데. 

어쩌겠는가. 이미 일은 벌어졌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강하게 나갈 필요성이 있었다. 

감히 말을 붙일 수 없게, 난폭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런 귀찮은 상황은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우빈을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수중에 있는 현금을 확인했다. 

만 원짜리 지폐 1장과 천 원짜리 지폐 3장이 전부였다. 

지금 당장 꼬맹이와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적은 금액이었다. 

당장 수중에 있는 아이템을 처분하거나, 김택문에게 전화를 한다면 돈을 얻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신분도 찾았겠다. 

“헌터는 어떻게 돈을 버냐?” 

“돈?” 

직접 돈을 벌기로 마음먹었다. 

‘맞다. 애 초딩이였지.’ 

우빈은 순간 질문을 한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초등학생한테, 돈을 어떻게 버냐고 묻다니. 

실수를 깨닫고 현대 문물인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오유성이 신이 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방법이야 많지. 길드와 계약해서 계약금을 받고 일할 수도 있고, 나라에서 프리 랜서인 헌터에게 요청하는 게이트를 처리하고 처리 비용을 청구할 수도 있어.” 

생각보다 자세한 설명에 우빈이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내려놓곤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말고도 더 있어.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해서 마정석을 파는 방법도 있고. 마정석이나 아이템을 가공해서 시장에 내놓는 방법도 있고···” 

“그 정도면 됐어.” 

우빈은 눈을 반짝이며 설명하는 오유성을 막았다. 유성이 제시한 방법 중 선택지로 고를만한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이트가 편하겠지.’ 

어디로 향할지 판단을 내리던 그때였다. 

“형.” 

활짝 웃고 있던 오유성의 표정이 가라앉는다. 

찬란한 유물인 단검을 검지로 쓸어 만지며, 말을 머뭇거렸다. 

지금까지 실실거리며 웃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 

“형, 귀환자라고 했지.” 

“어.” 

“그러면 아까 만났던 김백청 헌터님 보다 세?” 

“어.” 

우빈의 말에 오유성이 작은 주먹을 꽉 쥔다. 이내, 맑은 눈동자로 우빈의 얼굴을 직시한다. 

“그러면 나 좀 가르쳐 줘.” 

“뭐?” 

“헌터가 되고 싶은데. 재능이 없어. 이번 실기에서도 떨어지면, 일반 클래스로 떨어지고 말 거야.” 

오유성의 전신으로 피어난 멍이 눈에 들어온다. 

“······.” 

“누나는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만 하고. 다른 애들은 스킬 카드나 프로 헌터님들한테 과외받는데 나는 아무것도 없어.” 

오유성이 무릎을 꿇곤 머리를 조아린다. 

“제발. 알려줘!” 

눈을 질끈 감으며 외치는데, 미약하게 떨리는 음성에서 오유성의 감정이 느껴졌다. 

아직 10살도 채 되지 않은 놈이 왜 이렇게까지 헌터에 집착하는 걸까. 

‘부모님 때문인가.’ 

희나에게 들어서 이놈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5년 전 오유주와 우빈이 엘리드로 전이되던 그때. 

대격변이라는 사건으로 이 녀석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오유성은 복수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괴물들을 시스템을. 

아마 동 나이 때보다 철이 빨리 든 것도 저 일과 연관이 있을 테지. 

유주가 싫어한다는 게 걸렸지만, 우빈은 저놈이 마음에 들었다. 

“죽을 수도 있어.” 

우빈의 말에 오유성이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래도 배우고 싶어?” 

오유성이 눈물 가득한 얼굴론 고개를 끄덕인다. 

“비유가 아니고 진짜 죽을 수도 있다고. 정말 할 거야?” 

오유성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에 우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각오는 마음에 드네.” 

우빈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오유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빈을 따라온다. 옷 소매로 눈물을 쓱 닦곤, 말한다. 

“뭐부터 알려줄 거야? 나는 검을 배우고 싶어!” 

언제 울었냐는 듯 당차게 이야기한다. 이럴 때 보면 어른보다도 어른스러웠다. 

“검, 좋지.” 

우빈은 그런 오유성을 보며 사악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실기는 언제야?” 

“내일!” 

아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고작 하루 동안 알려줘봤자 얼마나 알려주겠는가. 

하지만 우빈에겐 그게 있었다. 

“그래, 시간은 널널하네.” 

띠링- 

[크로노스의 비밀 작업실과 연결된 문(마이룸)을 생성합니다.] 

우빈이 손바닥을 펼치자, 펑!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문 하나가 튀어나왔다. 

“우와!!!” 

오유성의 눈이 반짝인다. 

끼이이익- 

우빈은 천천히 문을 열곤, 들어가라는 듯 손바닥을 펼쳤다. 

“역시 형이야. 아, 이제 아니지. 스승님!” 

오유성은 그런 우빈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당차게 방으로 입장했고, 

“우와!!!!” 

자신에게 일어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지도 못한 채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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