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오유성(4)
광산이라는 이름답게 어두운 동굴이 이어졌다.
인위적으로 설치해둔 랜턴이 미묘하게 삐걱거리며 공포를 더 한다.
두근-두근-
오유성은 어깨를 움츠린 채, 우빈의 뒤를 따랐다.
‘역시 형이야.’
오유성은 우빈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직원이 단호하게 나올때까지만해도, 오유성은 던전에 들어오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등급을 판정받기는 했지만, 우빈은 무려 S등급을 받은 헌터이지 않은가.
그런 우빈의 요구를 거부한 직원을 설득할 방법은 오유성에게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 오유성의 심기를 건드리는 놈이 나타났다.
-뭐야, 누가 길막하나 했더니, 오유성 너였냐?
오유성의 같은 반 친구인 김지우였다.
김지우는 오유성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이번 실기 평가가 끝나면 헌터를 포기해야 하는 오유성과 달리 김지우는 모두가 원하는 헌터 사관학교에 이미 입학한 상태였다.
안 그래도 김지우를 떠올릴 때면 무력감으로 가득했는데, 그런 놈이 제집 안방 드나들 듯 던전에 입장했다.
‘나는 왜 안 되는데.’
불합리함이 짜증 났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내일 있는 대련을 위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김지우를 이길 수 없는 사실처럼. 오유성의 힘으론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몰라뵙습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원이 갑자기 우빈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한 것이다.
오유성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나도 형처럼 될 수 있을까.’
너무나 통쾌했다. 안되는 걸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싶었다.
우빈을 보는 오유성의 눈빛이 선명해진다.
오유성은 우빈의 뒤를 따르며, 각오를 다졌다.
삐르르르-
던전에서 사는 이계의 벌레가 운다.
던전에 들어오고 별다른 이상 점은 없었다.
외길을 지나, 수십 갈래로 나뉜 길을 나아갔다.
캉! 캉!
던전의 광석을 채취하는 헌터.
“머리를 노려!”
코볼트를 능숙하게 사냥하는 프로.
그런 이들을 지나가자 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르릉- 그르릉-
어두운 굴 안으로 짐승이 성난 숨소리가 울려 퍼진다.
“준비해. 곧 튀어나올 거 같으니까.”
우빈의 말에 오유성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고블린과 비슷한 크기의 무언가가 적의를 품은 채 서 있었다. 전신으로 털이 수북했으며 얼굴은 묘하게 쥐를 닮았다.
몬스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콧방귀도 뀌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몬스터···.’
하지만 오유성에겐 아니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크게 뛰었으며, 호흡이 가빠왔다.
몬스터는 오유성에게 있어 큰 트라우마였다.
우빈이 소환한 영체의 경우 실체가 없는 도구일 뿐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부모님을 죽인 괴물과 똑같은 존재였으니까.
“뭐해. 구경만 할 거야?”
그러나 오유성은 공포에 질릴 틈도 없었다.
“어?!”
우빈이 망설이는 오유성의 등을 떠민 것이다.
오유성은 강렬한 손짓에 날아간 몸을 넘어지지 않게 한발로 깽깽이를 치며 균형을 잡았다.
간신히 몸을 가누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끼에에엑!!!!!
이성을 잃은 코볼트가 오유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자, 잠깐만!”
두근-두근-
트라우마와 공포가 뒤섞여, 사고가 멈추었다.
“아···”
두 발이 그대로 바닥에 붙고, 손이 멈추었다. 분명 그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일까.
오유성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파스스-
자연스럽게 다리를 넓게 펼치곤, 스릉- 깔끔하게 호선을 그린 검으로 기분 좋은 울림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정신을 차린 오유성의 등 뒤로,
-꾸에엑-
공포스럽던 존재의 머리가 철벅- 바닥을 두드렸다.
띠링-
[코볼트를 처치하였습니다.]
[2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5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
꾸에엑-
검을 든 코볼트가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그 앞으로 한 소년이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휘청거린다.
소년의 이름은 김지우.
김지우는 지금 이종구에게 사냥을 배우는 중이었다.
검을 든 코볼트, 코볼트 워리어가 김지우를 향해 달려든다.
“으아!!!”
김지우는 그런 코볼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캉!
코볼트의 검과 김지우의 검이 맞부딪힌다.
“윽!”
힘에서 밀린 김지우의 육신이 힘에 튕겨 나간다.
“정신 안 차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종구가 김지우를 다그친다.
“스킬 없이는 힘들다고요!!!”
김지우는 버럭 소리치며, 자세를 다잡았다.
‘스킬 없이 어떻게 싸우라고···.’
김지우는 코볼트 던전에 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코볼트 워리어 3마리 정도는 가뿐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사냥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늘부터 스킬 없이 사냥한다.
이종구가 갑자기 이상한 수업을 진행한 것이다.
그 덕분에 생일 선물로 받은 스킬 카드를 시작으로 용돈을 모아 구입한 B급 스킬 카드까지. 전부 이종구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굳이 왜 빼라는 거야.’
김지우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헌터가 가진 무기 중 최고로 손꼽히는 힘이 바로 스킬이지 않은가.
도대체 스킬 없이 싸울 일이 어디 있다고 이런 걸 연습해야 한다는 건지.
“으아!!!! 죽어!”
이유야 어찌 되었든, 김지우는 처절하게 싸웠다.
코볼트의 공격을 피하며 틈이 생길 때면 코볼트의 발을 짓밟았다. 검 등으로 코볼트가 검을 쥔 손을 후려쳤다.
가진 수를 전부 써서 싸우길 1시간.
띠링-
[코볼트 워리어를 처치하였습니다.]
[25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6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허억···허억···”
김지우는 간신히 코볼트 워리어를 처치할 수 있었다.
김지우의 몰골은 처참했다. 팔과 다리 복부와 얼굴까지 안 베인 곳이 없었다. 특히, 코볼트 새끼가 죽기 전에 깨문 다리는 고통을 넘어 마비 증세까지 보이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데, 이종구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뭐해. 한 마리 잡고 자빠져 잘 거야?”
“다친 거 안보여요? 못 일어나겠다고요.”
김지우의 불평에 이종구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못 일어나겠으면 그냥 죽던가.”
“네?! 죽어요? 어디 가요!”
김지우는 이를 악다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물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몸이 휘청거린다.
‘진짜, 삼촌이면 다인가.’
그대로 이종구를 뒤따라서 걸어가려는데, 처벅-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야?”
어느샌가 김지우의 등 뒤로 3마리의 코볼트가 바짝 다가와 있었다.
검을 든 코볼트 워리어 두 마리와 지팡이를 든 코볼트 매지션 한 마리.
‘미친!’
저 조합은 스킬 카드를 착용하고도 도전해본 적 없는 최악의 조합이었다.
“선생님···? 삼촌!!!”
김지우는 다급히 이종구를 불렀다. 그러나 이종구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어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씨발···”
김지우는 검을 다잡으며, 자세를 취했고,
-꾸에엑-
“으아!!!!”
달려드는 코볼트를 향해 전력을 다해 저항했다.
***
-꾸에엑!
코볼트 워리어가 짐승처럼 달려든다.
“이 새끼들이!!!!”
김지우가 이를 바득 갈며, 워리어가 휘두른 검을 피한다. 근력으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낸 회피였다. 하지만 코볼트 워리어는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
-꾸에엑!
옆에 서 있던 코볼트 워리어의 검이 후웅- 김지우의 육신을 향해 호선을 그린다.
“으아!!!”
김지우는 악을 쓰며, 몸을 비틀었다.
퍽!
코볼트 워리어의 검이 바닥을 내리친다. 김지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우곤, 쒜에엑- 코볼트 워리어의 목을 향해 칼을 내질렀다.
‘나쁘지 않네.’
그 모습을 본 이종구의 입가로 미소가 번진다.
이종구는 김지우의 마음가짐이 궁금했다. 과연 극한의 상황이 찾아왔을 때, 저 녀석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행동이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악으로 발버둥 치는 근성. 나쁘지 않았다.
저 정도 정신력이면 어디 가서 쉽게 당하지는 않을 터.
다만, 몇 가지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가령, 흥분해서 시야가 좁아진다던가. 체력 안배 따위는 개나 줘버린 듯, 마구 날뛴다든가 하는 행동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화르륵-
좁아진 시야 때문에 발견하지 못한 코볼트 매지션의 화염구가 김지우를 향해 날아왔다.
펑!!!
“으악!!!”
화염구를 정통으로 맞은 김지우의 육신이 대지를 뒹굴며, 바닥으로 처박힌다.
“씨발······”
김지우는 일어서지 못했다. 나름 준수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끝인가.’
판단을 내린 이종구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애초에 목적인 김지우의 마음가짐을 파악하지 않았던가. 굳이 사냥을 강요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이종구가 코볼트의 머리를 날려버리기 위해 허공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은 그 순간이었다.
‘뭐야? 저놈은.’
“지우야! 괜찮아?!”
김지우 또래로 보이는 꼬마가 코볼트 무리의 앞으로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띠링-
[코볼트 워리어를 처치하였습니다.]
[25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6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띠링-
[코볼트 워리어를 처치하였습니다.]
[25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6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띠링-
[코볼트 매지션을 처치하였습니다.]
[300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8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
***
“우와······.”
앞을 바라보는 김지우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보고 있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오유성이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김지우는 조금 전 오유성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꾸에엑
오유성은 가장 처음 달려드는 코볼트 워리어의 다리를 공략했다.
슬라이딩하듯, 앞으로 구르며, 코볼트 워리어의 종아리를 베어, 움직임을 봉쇄했다.
이윽고, 구르면서 집은 모래를 나머지 코볼트 워리어의 눈에 흩뿌린다.
-꾸에엑!
순식간에 두 마리의 코볼트 워리어를 제압한 뒤, 오유성은 망설임 없이 뒤에서 마력을 모으는 코볼트 매지션을 향해 뛰어갔다.
쑤걱-
오유성이 달려가면서 내지른 검에 코볼트 매지션의 목이 꿰뚫린다.
그 이후 상황은 순간에 정리되었다.
시야를 잃어 허공에 칼을 휘두르는 코볼트 워리어의 목을 베고, 다리를 베어 걷지 못하는 코볼트 워리어의 머리를 꿰뚫었다.
실로 엄청난 칼솜씨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은 처음이었다.
스킬 없이 움직임만으로도 몬스터를 손쉽게 처치할 수 있었다니.
김지우가 오유성의 움직임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던 그때였다.
“괜찮아? 피가 너무 많이 나는데. 나가자 도와줄게.”
오유성이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김지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어떻게 한 거야.”
“뭐가?”
“어떻게 잡은 거냐고.”
“아, 코볼트? 처음엔 무서웠는데, 계속하다 보니까. 할만하더라고.”
“뭐? 할만해?”
애초에 어떻게 던전에 들어온 거지?
던전에 들어오려면 헌터증이 필수로 요구된다.
김지우 경우엔 신화 길드의 이사라는 이종구의 힘이 있어 가능했지만, 저놈은 아니었다.
소문에 의하면, 나름 잘나가는 헌터 가족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애초에 한국 3대 재벌 집안인 자신과는 사는 세계가 다른 벌레 새끼였다.
“뭐해. 빨리 나가자.”
그런 벌레 새끼가 감히 자신을 내려다본다. 도와준다며 손을 내민다.
‘주제도 모르고.’
꽈드득-
김지우의 미간으로 핏줄이 솟구친다.
“꺼져.”
김지우는 오유성의 손을 후려치곤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대로 걸어 나가려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
그대로 넘어지는가 싶었는데, 덥썩- 두꺼운 손길이 김지우를 붙잡았다.
“삼촌···”
김지우의 삼촌인 이종구였다.
“빚을 졌군. 고맙다.”
이종구가 머쓱해 하는 오유성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김지우가 발끈한다.
“뭘 빚을 져요! 저도 스킬 카드 있었으면 이길 수 있었어요!”
“그래? 쟤는 스킬을 안 썼는데.”
“네?”
“스킬을 사용할 때 나오는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어. 그냥 맨몸으로 이긴 거라고.”
“·········”
이종구의 말에 김지우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병원으로 가자.”
이종구는 김지우를 부축한 채, 걸어 나갔다. 그러다 문득 오유성의 옆에 서 있는 사내에게 시선이 쏠렸다.
한 사내가 팔짱을 끼곤, 이종구를 응시한다.
‘낯이 익은데.’
이종구는 그 사내를 보며, 묘한 익숙함을 느꼈다. 텅 빈 눈빛 하며, 주변으로 느껴지는 답답한 기운 하며.
‘누구지?’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도대체 꼬맹이한테 뭘 했길래, 저런 실력을 가르쳐 줬는지가.
이종구는 그렇게 김지우를 부축한 채, 어둠 속 너머로 사라져 갔다.
둘이 떠난 굴 내부로 고요함이 감돌았다.
꽈드득-
오유성은 김지우가 떠난 자리를 응시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해냈어.’
벅차오름을 느꼈다.
언제나 위에서 반짝이던 존재조차 실패한 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오유성은 내일 있을 대련을 떠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노력한다고 포기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오유성은 무의식적으로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상대는 반 아이 전원이 덤벼도 이길 수 없는 괴물이자 천재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꽈드득-
오유성의 표정으로 굳은 각오가 떠오르던 그때였다.
“뭐해? 집에 안 가? 마정석 채취해야지.”
“어? 응.”
오유성을 지켜보던 우빈이 오유성을 다그쳤고,
콰직-
오유성은 능숙하게 코볼트의 복부를 가르곤 진득한 내장 속에 숨겨진 보석을 채취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