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 만남(3) (88/107)

92. 만남(3)

화아아아악- 

고요한 방안으로 묘한 빛이 번뜩인다. 

“뭐야?” 

“와······”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빈에게 쏠렸다. 

우빈은 이곳에 들어온 뒤로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저 사람 그 사람 아니야?” 

“아침에 S급 판정받았다는 헌터? 맞는 거 같은데.” 

“와···. 저 신발 올해 헌터 백화점 아트 컬렉션으로 올라온 신상이잖아. 아무리 못해도 1,000만 원은 넘을 텐데. 이쁘네.” 

오늘 아침에 있었던 헌터 심사를 기점으로 모든 언론에서 우빈을 다루지 않았던가. 헌터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우빈을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로 엄청난 이슈였다. 

그런 인물이 다짜고짜 척결 사옥에 등장해선, 바닥에 떨어진 물건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듯, 박살 난 포션 조각이 역재생된다. 으깨지고 쪼개진 파편이 모이고 뭉치며 하나의 형상을 이뤄낸다. 

“저걸 고쳐?” 

“전투력도 미쳤던데, 저건 또 뭐냐. 특성인가?” 

완벽하게 원상복구 된 포션 병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반짝인다. 

망가진 물건을 고치는 능력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 펼쳐진 능력은 근본적인 힘부터 달랐다. 

빛을 잃어버려 형체조차 남지 않은 아이템을 완벽하게 복구한 건 물론, 아이템이 아닌 비닐 또한 찢어지기 전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저 능력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가령 빛을 잃은 아이템을 되돌린다거나, 강화에 실패한 아이템을 복구할 수 있다거나 하는. 

둘 중 하나의 조건만 충족 시킬 수만 있다면, 헌터 등급을 떠나 모든 길드에서 원할 능력이었다. 

모두가 능력의 가능성을 깨닫곤, 흥미로워하던 그때, 우빈이 복구된 포션 병을 들곤, 한 사람에게 향했다. 

“여기서 희나의 지문이 나왔다. 이거죠.” 

“네.” 

지문을 검사한 척결 소속 직원이었다. 

우빈의 질문에 직원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알겠습니다.” 

우빈은 답을 듣곤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망설임 없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경찰서죠? 여기서 살인 미수 용의자가 있어서 신고하려고 하는데요. 주소요? 잠시만요.” 

우빈이 지운성을 바라보자, 지운성이 당황한 듯 우빈을 말렸다. 

“우빈 씨, 일단 진정하시고. 저랑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지운성은 우빈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 강희나를 걱정해서 온 자리일 텐데, 직접 경찰서에 연락하다니. 일을 크게 만들면 강희나게에 좋을 게 없었다. 

“협회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손써 드리기 힘듭니다.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일단.” 

“됐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우빈의 시선이 강희나로 향한다. 

“이거 네 거야?” 

“아니야! 내가 몬스터를 왜 살려줘!” 

“그래? 그런데 왜 포션 병에서 네 지문이 나온 거야?” 

“그건 나도 몰라···. 설마, 오빠도 날 의심하는 거야?” 

“아니. 믿어.” 

“어?” 

우빈의 다그침에 울먹이던 강희나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오른다. 

우빈은 바로 지운성을 쏘아붙였다. 

“저는 희나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성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건···” 

우빈은 지운성이 대답하지 못하게 바로 말을 이었다. 

“희나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면, 둘 중 하나죠. 검사를 잘못했거나.” 

우빈의 시선이 척결 소속 직원에게 향한다. 

“누군가 조작했거나.” 

“조, 조작이요?!” 

지운성이 당황한 듯 직원을 바라본다. 직원 당황한 듯, 주먹을 꽉 쥐곤,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깐다. 

“둘 중 뭐든, 저는 여기를 믿지 못하겠습니다.” 

우빈은 바로 수화기 너머 경찰에게 읊조렸다. 

“척결 길드 사옥으로 와주세요.” 

지운성이 전화를 끊은 우빈에게 다가갔다. 

“조작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누가 그런··· 아!” 

지운성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의 이상 행동이 번뜩였다. 

‘처음부터 이상했었어.’ 

아무에게도 알린 적 없는 사실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내, 이 장소에 온 사내가 있었다. 

결정적인 증거물을 박살 내고, 상황을 어지럽게 다그치던 인물. 

지운성의 시선이 한 장소로 향한다. 

고우림의 옆에서 입을 꾹 다물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 고지승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행동은 상황이 안 좋을 때, 머리를 굴리는 고지승의 버릇이었다. 

‘망했다···. 어떻게 하냐.’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지운성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지운성이 아는 한 강우빈의 존재는 한국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지금 보여준 능력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보다 늦게 귀환한 상황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 인물을 앞에서 도와주겠다며, 뒤에서 담근 꼴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해야 오해를 풀 수 있을까. 이 사단을 벌인 이사님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머리 아파.’ 

지운성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그때였다.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고지승이 헛웃음을 치며, 우빈에게 다가갔다. 

“미안하다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조작? 너 뭐야. 이년 보호자라도 돼?!” 

“어.” 

반말에 이은 빠른 대답에 고지승이 당황한 듯 말을 멈칫한다. 하지만 바로 페이스를 찾았다. 

“뻔뻔한 게 둘이 똑같네. 조작했는지, 결과가 잘못 나왔는지 어떻게 증명할 건데?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어.” 

또다시 짧은 답이 돌아온다. 

‘이 새끼가···’ 

고지승의 이마로 핏줄이 솟구쳤다. 

어떻게든 저 녀석의 화를 돋워서 평정심을 흩트려 놓으려 했는데,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거슬리는 대답에 고지승의 이성이 흔들렸다. 

고지승은 이성을 꽉 붙들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책임질 건데? 조작됐는지, 결과가 잘못됐는지 증명할 수나 있어? 설마 그걸로 다시 검사해보겠다. 뭐 이런 개수작 부리려는 건 아니지?” 

고지승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복구된 증거물을 낚아챘다. 방에 있는 직원들의 시선이 고지승에게 쏠린다. 

“머리란 게 있으면 생각이란 걸 좀 해봐. 애초에 이년 보호자라며, 네가 복구한 물건이 증거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 

“그리고 조작? 그래. 말 한번 잘했다. 내가 너한테 한번 다시 물어보자. 이걸 복구하면서 네가 조작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이 년 지문 대신 우림이 지문을 대신 새겨놓았을 수도 있잖아?” 

약간 억지 발언도 섞여 있었지만, 나름 완벽한 의문이었다. 

당장 저놈의 표정을 보아라,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고지승의 말을 듣던 직원 몇 명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됐다.’ 

순탄한 흐름에 고지승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걸로 밑밥은 뿌려졌다. 

지금 복구한 증거물이 완벽하게 복구돼 우림이 지문이 나온다 해도, 빠져나올 구멍을 만든 것이다. 

고지승이 다시 찾은 완벽한 흐름에 만족하던 그때였다. 

씨익- 

고지승의 말을 듣던 우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새끼가, 웃어?!” 

“그냥 재미있어서.” 

“뭐?” 

“확실히 엘리드에 구른 놈들보다 이런 쪽으론 머리가 좋네.” 

스르륵- 

우빈의 신형이 흐릿해진다. 어느샌가 고지승이 빼앗았던 증거물을 들곤, 고지승의 등 뒤에 서 있었다. 

흠칫- 

소름이 돋은 고지승이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우빈이 손에 든 포션 병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트렸다. 

깡그랑- 

박살 난 포션 병이 비닐 팩 가득 흩뿌려진다. 

“우선 이 능력은 조작이란 걸 할 수가 없어.” 

우빈이 바닥이 떨어진 비닐 팩을 집어 든다. 

화아아아악- 

비닐 팩 주변으로 이질적인 공간이 형성된다. 

전처럼, 서로 붙고 뭉치더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우빈은 완벽하게 복구된 증거물을 고지승의 손에 다시 쥐여주었다. 

당황한 고지승은 한참이나 포션 병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곤 답했다. 

“조작할 수 없다고? 어떻게 증명할 건데!” 

“증명은 아주 쉽지.” 

“저, 저건.” 

우빈의 손에 익숙한 물건이 들려있었다. 

고지승은 다급히 주머니를 확인했다. 

‘없어.’ 

음성 녹음을 하고 있던 핸드폰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콰직- 

우빈의 손에 들린 고지승의 핸드폰이 악력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며 으깨진다. 

부품이 여기저기 나뒹구는데, 화아악- 다시금 기괴한 빛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우빈의 손에 박살 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던, 핸드폰이 멀쩡한 상태로 들려있었다. 

“확인해 봐. 뭐가 바뀌어있나.” 

고지승은 우빈이 건넨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봤다. 

‘뭐야··· 분명 박살 났었는데···’ 

분명 핸드폰은 부품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부서졌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전과 똑같았다. 

그를 증명하듯, 

[녹음: 00:30:37] 

녹음하고 있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부서졌던 일이 없었던 것처럼. 

오소소소소- 

고지승의 전신으로 소름이 돋아났다. 

‘말도 안 돼.’ 

단순히 증거 효력이나 법적인 문제를 떠나, 지금 저 사내가 보여준 능력으로부터 엄청난 가능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저 능력의 대상이 단순한 사물이 아닌, 생명체에게까지 가능하다고 한다면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사라질지도 모를 테니까. 

꿀꺽- 

우빈의 힘을 깨닫곤, 고지승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지문을 조작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보였다. 

‘어떻게 하지.’ 

고지승의 미간이 구겨진다. 

이대로 협회에 사건이 넘어가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져 버릴지도 몰랐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일단, 굽히자.’ 

“후우··· 우림이 일이라 내가 너무 흥분했었군.” 

고지승이 자연스럽게 진정한 척, 숨을 고르며 우빈에게 다가갔다. 

“어른답지 못했어. 일단 서로 흥분 좀 가라앉히자고.” 

“············.” 

악수를 건넸지만, 우빈의 손길은 돌아오지 않았다. 

꽈드득- 

고지승의 이마로 핏줄이 솟구친다. 내민 손바닥이 꽉 주먹을 쥐며 부들부들 떨린다. 

안 그래도 졌다는 사실에 이가 갈렸는데, 무시까지 당하다니.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화가 났다. 

그러나 이를 악다물며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 

“서로 일 크게 만들어서 서로 좋을 거 없잖아? 우림이 아빠이기도 하지만 척결의 이사이기도 해서 말이야. 회사 이미지상 지금 선에서 끝내고 싶은데.”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며, 상황을 무마시키기로 판단을 내렸다. 

“서로 좋게 좋게 넘어가자고. 나도 더 이상 이 사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테니까.” 

자연스럽게 직원을 불렀다. 

“이봐, 경찰분들 오시면, 적당히 둘러대서 보내.” 

“네? 아,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한 직원이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우빈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제멋대로구나.” 

“뭐?” 

“나는 좋게 좋게 넘어갈 생각 없는데.” 

우빈의 신형이 흐릿해진다. 꽈드득- 가벼운 손짓에 고지승의 어깨가 짓눌리며, 그대로 무릎을 꿇는다. 

“으악!!!!!!!!!!” 

고지승이 고통이 비명을 토하며, 소리쳤다. 

“뭐해! 구경만 할 거야?! 이 새끼 좀 어떻게 해봐!” 

“네? 아···.” 

상황을 지켜보던, 지운성의 사고가 그대로 멈췄다. 

우빈을 말릴 수도 이사를 구할 수도 없는 애매한 위치였다. 

‘어쩔 수 없나.’ 

하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유혈사태만은 막아야 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길드 사옥이지 않은가. 

길드 사옥에서 헌터에 의해 이사가 사망했다는 사실만은 절대 만들 수 없었다. 

지운성이 판단을 내리고, 우빈을 설득하기 위해 다가가려는데, 길드의 가드가 우빈을 에워쌌다. 

품 속에서 총을 꺼내고, 칼을 빼든다. 

“당장 멈추세요!” 

“항복하지 않으면 공격하겠습니다.” 

강압적인 언행에 살기가 가득하다. 

‘저 새끼들이 미쳤나.’ 

그 모습을 본 지운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평소 같았으면 일을 잘한다고 칭찬했겠지만, 저놈들이 적의를 표출하는 대상이 문제였다. 그냥 가만히라도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뒤로 물러서세요.” 

지운성이 최대한 빠르게 가드를 말리려는 그때였다. 

“모두 동작 그만!!!”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우렁찬 함성과 함께, 구우우- 강렬한 압박이 주변을 짓눌렀다.

“윽!” 

가드들이 압박감에 무릎을 꿇는다. 

어깨를 짓눌리던 고지승의 고통이 사그라든다. 

“지태야!!!” 

고지승은 도착한 사내를 보며, 환호를 내질렀다. 

2M에 육박하는 거구의 사내가 엄청난 위용을 내뿜으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내는 다름 아닌, 척결의 마스터이자, 한국 랭킹 3위에 등록된 초인적인 괴물. 고지승의 동생, 고지태였다. 

“이 새끼가, 감히 일반인한테, 무력을 써? 넌 이제 끝났다.” 

고지승은 다급히 고지태의 등 뒤로 몸을 숨기며, 씨익 치아를 보이며 웃었다. 

각성자가 일반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였을 땐, 정당방위의 범위가 넓었다. 

가령 폭력을 행사하는 각성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각성자가 사망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딱 지금 같은 경우가 저 조건을 충족하는 상황이었다. 

“지태야! 저 새끼 좀 어떻게 해봐. 완전 미친 또라이 새끼야!” 

상대가 아무리 언론에서 뛰어주던 S급 헌터라 해도, 고지태의 상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고지태는 PVP만큼은 해외의 괴물들과 견주어도 비빌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초인이었으니까. 

‘벌써 궁금하네.’ 

고지승의 머릿속으로 저 사내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무력에 굴복하곤 비굴하게 사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적당히는 못 끝내지.’ 

이 지경까지 온 이상, 우빈과 강희나 둘 다 직접 손을 봐줘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 괴롭혀줄까. 

‘일단, 개인실로 준비해달라고 해야겠네.’ 

고지승이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며, 행복한 상상을 하던 그 순간이었다. 

“어?? 지, 지태야?” 

고지승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분명, 모든 상황을 정리해 줄 거라고 믿던 고지승의 전부가 무릎을 꿇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