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환생(2)
화아아악-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밝은 빛이 터져 나온다.
콰지직-
부서진 껍질 속으로 무언가가 움찔거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레이핀의 외형은 습사 고래를 연상케 하는 생명체이지 않았던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레이핀의 새끼가 나타나자 감회가 새로웠다.
-끼이이
농구공보다 살짝 큰 크기의 고래가 알 속에서 우빈을 올려다본다. 흡사 탱탱볼에 두 개의 바둑알을 박아놓은 느낌과 유사하다.
‘레이핀······’
우빈은 레이핀을 처음 봤을 때, 압도적인 크기가 주는 공포감을 처음 느껴봤다.
개미로 세상을 살아가다 처음으로 사람을 마주한 경험이라면 딱 맞는 비유일 것이다.
존재 자체가 초라해지면서도 거대한 힘에 짓눌리는 무력함을 체험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생명체에게선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진짜 태어났네···.”
우빈은 갑자기 태어난 생명체에 당황스러운 듯 볼을 긁적였다.
띠링-
[이름을 지정해주세요.]
“이름?”
-끼이이
어느샌가 껍질에서 나온 레이핀의 새끼가 공중을 헤엄치더니, 우빈에게 다가온다.
자연스럽게 우빈의 볼에 작은 얼굴을 비비적거리는데, 주인을 인식하는 기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볼 끝으로 밀려드는 말캉거리는 촉감이 나쁘지 않았다.
띠링-
[이름을 ‘레이’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주의! 한번 설정한 이름은 변경하실 수 없습니다.)
[이름을 설정하였습니다.]
이름은 레이핀의 앞자리를 따와서 설정하였다.
‘귀찮아.’
우빈은 계속해서 치대는 레이를 오른손으로 밀어내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지이잉-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습니다.]
‘알’일때는 들어가더니, 막상 태어나자, 인벤토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문제는 인벤토리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이잉-
[상태를 변경하실 수 없습니다.]
찌이잉-
[불가능합니다.]
영체나 탈 것처럼 아이템으로 간소화시키는 것이 전부 불가능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이걸 계속 달고 다녀야 한다는 건데.”
띠링-
[레이가 당신을 따릅니다.]
[레이가 배고파합니다.]
[레이가 심심해합니다.]
........
.....
....
.
우빈은 정신없이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고, 그런 우빈의 기분을 모르는 레이는 끼이이! 해맑게 웃으며 주변을 맴돌았다.
***
짹-짹-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와 함께, 따스한 빛이 방 안으로 새어 들어온다.
“하~암.”
우빈은 무의식적으로 나온 하품에 찔끔 흘린 눈물을 손가락으로 쓸며, 정면을 응시했다.
우드득-우드득-
레이의 볼이 슬라임처럼 포동 거리며 무언가를 우물거린다.
띠링-
[레이의 포만감이 5 상승하였습니다.]
[레이의 컨디션 상승하였습니다.]
[레이가 당신을 따릅니다.]
우빈은 레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아침까지 계속 레이를 관찰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몇 가지 알아냈다.
가장 먼저 확인할 건 레이의 능력치였다.
띠링-
[레이]
분류: 신수
등급: EX
레벨: 1
HP: 1,000/1,000
MP: 100/100
스태미나: 100/100
생명력: 100
정신력: 100
지구력: 100
근력: 100
기량: 100
체력: 100
지력: 100
감각: 100
행운: 100
‘사기잖아.’
고작 레벨이 1인데 모든 능력치가 100에 맞춰져 있었다. 단순한 수치만으로도 입이 쩍 벌어지는데, 문제는 스테이터스가 아니었다.
특성: [생명 창조]
[생명 창조]
종류: 특성
등급: EX
효과
-특별한 생명체를 창조합니다.
생명체를 창조하는 특성이라니.
‘궁금하네.’
우빈은 특성을 알아낸 직후 바로 레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띠링-
[레이의 힘이 부족하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특성이었다.
‘많이도 먹네.’
우드득- 우드득-
우빈은 침대에서 양반다리로 앉아, 식사하는 레이를 내려다봤다.
쩌억-
레이의 작은 입이 찢어질 듯 벌어진다.
암-
가볍게 다문 입속으로 콰드득- C급 아이템인 검, 한 자루가 박살 나며 빨려 들어간다.
레이의 주변으로 냉장고에서 꺼낸 과일과 음식이 나뒹굴었다. 레이는 평범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 오직 시스템의 빛이 서린 아이템만을 섭취했다.
그 결과 지금 레이가 먹은 아이템은 상당했다.
‘얼마치지?’
정확한 시세는 모르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에 빗대어보자면, 지금 막 먹은 C급 아이템을 포함, 총 5억 원에 달하는 아이템을 먹어 치운 상태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부족한지.
끼이이이-
우빈에게 다가와 말캉거리는 머리를 비비적거린다.
마음만 같아서는 작업실에 처넣을까도 생각했지만, 망설여졌다.
레이핀을 처치하고 얻은 무려 EX급의 신수이지 않은가.
지금은 걸리적거리는 존재일지 모르지만, 앞으로 있을 상황에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일단 키워볼까.’
거기다 레이핀의 능력은 특성이 끝이 아니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몇 가지 스킬이 있었다.
우빈이 레이의 처우를 계획하며, 스킬을 다시 살펴보려던 그때였다.
똑-똑-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아들, 일어났어?”
엄마가 우빈의 인기척을 느끼곤, 우빈을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엄마는 이미 나갈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어머? 그건 또 뭐니?”
엄마가 레이를 보곤, 호기심을 가지신다.
“아, 이거요. 애완동물 같은 거예요.”
“애완동물? 아! 요즘 유행이라는 이계 동물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나. 뉴스에서 위험하다고 난리던데, 생각보다 귀엽네.”
레이의 모습을 보곤, 엄마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흐뭇하게 웃으시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시곤 화들짝 놀란다.
“벌써 시간이. 엄마는 일 다녀올 테니까. 집 잘 보고 있어.”
“일이요?”
어제 아침에 일찍 나가신 거로 아침에 따른 일을 하겠더니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진짜 투잡을 뛰고 계셨다니.
“잠시만요!”
“시간이 없어서, 이따가 다녀와서 이야기하자.”
“엄마!”
철컹-
우빈은 달려가서 엄마를 붙잡을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굳이 힘들게 일하실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지만, 평소 엄마가 살아온 일상을 망가트리고 싶지 않았다.
우빈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원래라면 평범한 사람처럼 한숨 자려고 했지만, 오늘은 힘들어 보였다.
애초에 우빈은 수십 일 동안 자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있었다.
‘일단 가볼까.’
우빈은 레이를 관찰하면서 틈틈이 알아본 정보를 떠올렸다.
[검색 결과: 귀환자라면 지구에 도착해서 필수로 해야 하는 작업 목록.]
1. 신분 등록
2. 길드 가입
3. 길드에서 지원하는 기본 지식 학습.
........
.....
....
.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글귀였다.
뻔한 내용이 적혀있었지만, 우빈의 시선을 사로잡는 하나의 문구가 있었다.
8. 환생 작업
-이건 필수 항목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신다면 꼭 하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장문의 글이 쓰여있었다. 요약해보자면 이러했다.
(환생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지구에서 각성한 각성자가 누리는 혜택을 얻는다.)
처음엔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글을 읽자 대충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엘리드에서 힘을 얻은 귀환자와 지구에서 각성한 각성자는 몇 가지 차별점이 존재했다.
가장 큰 차별점은 레벨업 시 얻는 미분배 포인트였다.
엘리드에서 레벨을 올리면 1의 포인트를 얻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구의 각성자들은 달랐다.
1업 당 5포인트.
무려 5배의 성장력을 보여줬다. 혜택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레벨 50, 100, 150 간격으로 특성이 강화되는 특이점이나, 엘리드에서는 얻을 수 없는 직업으로 엄청난 성장력을 보여준단다.
실제로 귀환자가 돌아오던 3년 전과 달리 지구의 각성자가 귀환자를 뛰어넘는 시점이 찾아오고 있다.
이런 혜택을 귀환자가 누릴 수 있게 바꿔주는 게 바로 귀환이라는 시스템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성장시켰던 레벨이 1로 초기화됩니다. 성장시켜놓았던 스테이터스와 직업도 사라지고요.
엄청난 페널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특성이나, 칭호, 스킬 슬롯과 인벤토리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엘리드에서 레벨을 올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장 우빈 역시 엘리드에서 10년을 굴러 간신히 레벨 171을 달성하지 않았던가.
그런 세월을 단 1번의 클릭으로 초기화시키는 시스템, 어떤 귀환자가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
‘할만한데.’
하지만 우빈은 생각은 달랐다.
그 새끼들에게 배신당하고, 1로 초기화 된 레벨을 복구하는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민주희의 18회차 버프가 큰 역할을 했지만, 충분히 할만했다.
주먹 강타만 있다면 그 어떠한 괴물도 쉽게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띠링-
[강우빈]
레벨: 200 [MAX]
HP: 4,490/4,490
MP: 249/249
스태미나: 249/249
생명력: 249
정신력: 249
지구력: 249
근력: 249
기량: 249
체력: 249
지력: 249
감각: 249
행운: 249
‘버리기엔 아깝긴 하네.’
우빈은 최대치에 도달한 레벨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더 이상 성장시킬 수 있는 요소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더 강해질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게,
두근-두근-
즐거웠다. 호기심이 샘솟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나라 놈들은 어떠려나.’
다른 나라의 귀환자들이 너무 궁금했다.
엘리드에서 살아남으면서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엘리드에 넘어온 용사들이 전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막연하게 한국 사람만 잡아 왔겠거니 했었는데, 설마 나라별로 각자의 세계에서 용사들을 육성하고 있을 줄이야.
-미국이 없었다면 한국인 진즉 멸망했을 거야.
오유성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한국의 귀환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처참할 수준으로 약하다고 한다.
다른 나라는 순조롭게 이 세계를 클리어한 반면, 한국의 경우, 한 사내의 방해로 클리어에 실패해 제대로 된 보상을 못 받았다나?
‘설마 날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지.’
판단을 내린 우빈은 핸드폰으로 환생 시스템 있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장소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
문제가 있다면, 환생 시스템이 있는 장소였다.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성]
‘일본···’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다.
환생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장소가 일본 딱 한군데뿐일 줄이야.
아무래도 오늘 내로 환생 시스템을 이용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비자부터 발급받아야겠네.”
목표를 정한 우빈은 나갈 준비를 하였고,
끼이잉-
움직일 때마다 따라오는 레이의 귀찮음을 맞볼 수 있었다.
*****
집 안으로 고요함이 감돌았다.
“이 집은 척결 길드 소유의 집입니다. 일주일 내로 집을 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주일이요?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은···.”
“그렇게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 이후에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법적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철컹-
정장에 안경을 쓴 사내가 단호하게 경고하곤 집 밖으로 나간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중년의 여인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애절하게 흐느낀다.
저 여인은 고우림의 엄마.
고우림은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말도 안 돼···.’
오늘 아침, 고우림의 아빠, 고지승은 새벽같이 집 밖을 나섰다.
-우림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가 다 알아서 해결할게. 그전까지 학교는 가지 말고, 엄마랑 같이 있어.
고지승이 떠나기 전 고우림에게 한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아빠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이잖아···.”
가족이라고 믿었던 인물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가족한테 이럴 수가 있어.”
고우림의 작은 주먹이 분노에 부들부들 떨린다.
고우림은 고지태가 이해되지 않았다.
피를 나눈 형제이지 않은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고 한들, 이렇게 매몰차게 버릴 수 있는 건지.
고우림의 고개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져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년 때문이야.’
조금 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아빠는 자수해 감옥에 구속되었다고 한다.
척결 쪽에선 갖가지 이유를 달아, 집을 빼앗고, 통장을 압류해갔다.
고우림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무엇이든 해결해줄 것만 같았던 아빠도, 평생 써도 다 쓸 수 없던 재산도 전부.
‘전부, 그년 때문이야.’
고우림의 두 눈에 살기가 떠올랐다.
‘가만히 안 놔둬.’
꽈드득-
고우림은 결심한 듯, 걸음을 옮겼고, 방 한켠, 아빠가 숨겨놓은 책장을 열자 볼 수 있었다.
고지승이 혹시 몰라 길드에서 빼돌린 영혼석과 수십 자루의 무기를.
***
띵↗동↘댕↗동↘
정겨운 선율이 학교의 시작을 알린다.
강희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우림이는 괜찮으려나.’
어제 애절하게 빌던 고우림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자신감과 도도함을 빼면 시체인 녀석이었는데. 그렇게까지 무너진 모습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막연하게 연민을 느끼고만 있기엔 상황이 심각했다.
만약, 오빠가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강희나의 표정이 경직된다.
‘단단히 먹자.’
최악의 경우 범죄자로 몰려, 감옥에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강희나는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강희나의 손에 한 장의 카드가 들려있었다.
-앙심을 품고 해코지할지도 몰라. 가지고 가.
아침에 우빈이 준 카드였다.
‘진짜, 뭔가 있나 보네.’
귀환자들이 한국에 귀환하고, 유명한 괴물들이 매일같이 찾아와 오빠의 안부를 물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오빠가 저쪽 세계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는 막연하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직접 오빠를 보자 느낄 수 있었다.
오빠는 다른 귀환자와는 수준이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지금 오빠가 준 이 카드 역시 그러하다.
“진짜 좋다.”
강희나는 카드의 효과를 읽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게.
띠링-
[스킬 카드: 비브타노의 피부]
종류: 스킬 카드
등급: UL
레벨: 10
형태: 패시브
효과
-피부의 강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추가 효과
-물리 방어력 100% 증가.
-물리 방어력 200% 증가.
-물리 방어력 300% 증가.
-물리 방어력 400% 증가.
-피부 강화 획득.
-물리 방어력 500% 증가.
-물리 방어력 600% 증가.
-물리 방어력 700% 증가.
-비브타노의 복수 효과 획득.
*비브타노의 복수: 피해를 입을 시, 방어력 수치만큼 데미지를 반사합니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 본 그 어떠한 스킬 카드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효과가 적혀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