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 일본 랭커(3) (97/107)

101. 일본 랭커(3)

끼이이잉- 

레이가 고래 소리를 내며, 우빈의 주변을 맴돈다. 말랑거리는 이마로 우빈의 손등을 툭툭 친다.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띠링- 

[인벤토리에서 낭인의 장검을 불러옵니다.] 

우빈은 인벤토리에서 뒹굴던 검 한 자루를 레이에게 내밀었다. 

레이가 작은 입을 쩌억 벌리더니, 콰직- 그대로 장검을 집어삼킨다. 

저 장검은 이세현의 실험실에 있던, 녀석 중 한 명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이었다. 

등급은 C급으로 한화 치면 천만 원은 받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원래라면 버려도 상관없는 하품이었기에, 별생각이 없었는데, 가지고 있던 잡동사니가 조금씩 줄어가자 생각이 바뀌었다. 

‘잡템 좀 모아야겠네.’ 

조금씩 사냥의 필요성을 느꼈다. 

띠링- 

[인벤토리에서 바루돈의 상의 갑옷을 불러옵니다.] 

우빈은 계속해서 아이템을 달라고 하는 레이의 입에 아이템을 쑤셔 넣으며, 주변을 살폈다. 

앞으로 돌길이 이어진다. 

주변으로 푸른 식생과 낡은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특히 정면에 위치한 거대한 성은 묘한 위압감을 선사해줬다. 

‘뭘 어떻게 하는 거지.’ 

환생. 

레벨을 제물로 바치는 대신 보상이 주어지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걸까. 

‘설마 귀찮게 뭘 시키지는 않겠지.’ 

궁금증에 고지태에게 물어볼까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1시간 이내로 알게 될 사실이었으니까. 

돌길을 따라 걷길 2분 남짓. 

거대한 위용을 내뿜던 성 내부로 들어서자, 넓은 실내가 펼쳐졌다. 

일본인을 제외한 인원 제한을 걸어놓아서 그런지 내부는 한산했다. 

“젠장···” 

등 뒤로 하선율이 이를 갈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 뭐야. 들어왔네? 보상이라도 포기한 거야?” 

먼저 대기실로 갔던, 카즈마 하루토가 하선율 쪽을 보며, 아는 척을 해왔다. 

손바닥을 들며, 히죽거리는데, 하선율의 표정이 사늘하게 가라앉는다. 

‘확실히 재수 없긴 하네.’ 

우빈은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우빈이 한국에 돌아온 직후 많은 러브콜을 받지 않았던가. 

고지태의 경우 단순한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대화를 요구한 것 같지만, 화민서와 하선율의 경우는 달랐다. 

어떻게 해서라도 우빈을 소속된 단체에 가입시키고 싶어 했다. 

그 당시는 이용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일본에 와서 한국의 처지를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키 카드라 이건가.’ 

화민서와 하선율, 둘은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우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지구로 귀환한 뒤로 계속 우빈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빈이 귀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테고, 엘리드에 남아 무언갈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거겠지. 

그 결과가 바로 둘의 행동이었다. 

저 둘은 거지 같은 판도를 뒤집을 힘을 얻고 싶은 것이다. 

“일로 와서 앉아.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잘됐네.” 

저 멀리서 카즈마 하루토가 하선율을 부른다. 

“진짜, 좆같네.” 

하선율이 아주 작게 읊조리며 카즈마쪽으로 걸어간다. 

분명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까지 저놈의 말을 들어주는 것일까. 

‘약점이라도 잡힌 건가.’ 

하선율의 행동을 본, 우빈의 표정이 사늘하게 가라앉는다. 

기분이 더러웠다. 

카즈마의 제자인 류헤이에게 벌레 새끼라고 무시당해서일까? 아니면 카즈마가 눈깔을 뽑아버린다고 협박을 해서? 

둘 다 아니었다. 

목숨을 걸어가며, 같이 성장해온 경쟁자이자, 엘리드를 모험한 동포가 무시당하는 행위 자체가 거슬렸다. 

우빈이 그대로 하선율을 따라 카즈마에게 향하려는데, 

“우리는 저쪽에 가서 기다리죠. 저놈에게 가봤자. 좋을 게 하나 없습니다.” 

고지태가 우빈을 만류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흥미가 있거든요.” 

우빈은 막아 세우는 고지태를 무시한 채, 카즈마에게 향했다. 

카즈마가 당차게 다가오는 우빈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린다. 

‘함부로 몸을 훑지 말라고 했던가.’ 

우빈은 카즈마의 눈을 보며, 표정을 굳혔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이지 않은가. 

저놈의 주변엔 죄목이 적혀있지 않았다. 

동족을 지킨 수호자로 속내를 간파할 수는 없었지만, 이건 어떨까. 

띠링- 

[진실을 꿰뚫어 보는 자를 사용하였습니다.] 

우빈은 카즈마의 눈을 보며, 칭호를 활성화 시켰고, 

[대상의 기억을 엿봅니다.] 

화아악- 

확장된 감각을 통해 카즈마의 기억이 펼쳐지려는 그 순간이었다. 

스르륵- 

카즈마의 옆에 있던 카즈마의 제자, 류헤이 젠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어느샌가 우빈의 등 뒤에서 우빈의 목을 짓누르려는 류헤이의 모습이 보였다. 

‘빠르네.’ 

한국보다 수준이 높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본 그 어떠한 용사들보다 빠른 속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이미 우빈의 기량 수치는 정상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상태였으니까. 

우빈은 그대로 자신을 공격하려는 류헤이의 뒤통수를 움켜쥐었고, 후웅- 있는 힘껏, 바닥을 향해 내리꽂았다. 

*** 

쾅!!!!!!! 

고요함이 감돌던 대기실로 거대한 충격이 터져 나온다. 

“뭐, 뭐야!” 

“우빈 씨!!!!” 

그 누구도 지금의 폭발을 제대로 인지한 사람은 없었다. 바로 우빈을 지켜보던 고지태 역시 마찬가지였었다. 

고지태는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우빈의 고집에 못 이겨 카즈마를 향해 걸어가는데, 난데없이 류헤이 젠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 이후 우빈이 서 있던 장소에서 폭발이 터져 나왔다. 

‘무조건 막았어야 했는데.’ 

고지태는 폭발의 근원지를 보며, 이를 악 다물었다. 

언제나 한국을 무시하며, 몇 수 아래라 깔보던 일본 놈들이지 않은가. 

그런 일본조차 넘지 못한 전투력 기록을 갈아치운 천재가 한국에서 등장했다. 

더러운 방법으로 시비를 걸어올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막무가내로 공격해올 줄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상황은 막아야만 했다. 

아무리 우빈이 비범한 힘을 가졌다고는 하나 아직 일본 놈들을 상대하기엔 일렀다. 

지금 여기에 있는 환생 시스템을 시작으로 추가 특성을 부여받는 초월 시스템, 엘리드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각종 신직업까지. 

아직 우빈이 누리지 못한 시스템이 너무 많았으니까. 

원래라면 최대한 조용하게 우빈을 성장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카즈마 하루토의 등장으로 전부 틀어졌다. 

‘일단 비위를 맞춰야 돼.’ 

이가 갈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고지태는 우선 일본 놈들의 비위를 맞춰주기로 판단을 내렸다. 

저놈들의 심기를 거슬렸다간, 우빈이 제대로 날개를 피기도 전 추락해버릴지도 몰랐기때문이었다. 

“잠깐만요! 일단 진정···.” 

그대로 싸움을 말리려, 앞으로 나아가는데, 폭발로 일어난 연기가 거치며, 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으악! 이거 안 놓아!!!” 

우빈의 작은 손아귀에 류헤이 젠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혀있다. 

류헤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지, 소리만 지를 뿐 그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말, 말도 안 돼···.” 

고지태는 그 모습에 입을 쩍 벌리곤, 그대로 멈춰버렸다. 

우빈에게 뭔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지옥의 불길에서 전부 타죽어, 모두가 귀환할 때 우빈은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미 5번의 환생을 거쳐, 엘리드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모든 시스템을 이용한 지금. 

우빈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오만은 지금 산산이 부서졌다. 

‘역시 우빈 씨야···.’ 

고지태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눈앞의 광경을 눈에 새겼다.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닿지 않을 것만 같던, 일본 놈을 가볍게 꺾는 그 장면을. 

한편. 

“놓으라고!!! 새끼야! 안 놔?!!!!” 

류헤이가 버럭 소리치며, 이를 악다문다. 

있는 힘껏 저항해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머리를 짓누르며, 무릎으로 허리를 압박한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제압당해버린 상태였다. 

‘이 새끼 도대체 뭐야.’ 

류헤이가 눈알을 굴려 등 뒤를 올려다본다. 

뉴스 기사에서 봤던 얼굴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3년동안 깨지지 않던 제너슨의 전투력 기록을 갈아치운 한국의 천재 등장! 

-약소국 한국에서 떠오른 초신성. 앞으로 한국의 미래는? 

어제 인터넷 기사로 봐서 저 사내가 누군지쯤은 알고 있었다. 

전투력 측정은 헌터증을 발급받을 때 측정하는 기록이지 않은가. 

이제 막 헌터의 길에 입문한 초짜가 세운 기록으로 왜들 그렇게 띄워주는지. 

-야, 류헤이, 이 기사 봤냐? 세계 신기록이라는데? 그러면 너보다 더 기록이 좋은 거 아니야? 이야~ 역시 세상일은 모르는 거야. 쓰레기 땅에서 이런 천재가 다 나오고. 너보다 더 재능있는거 아니야? 

스승님의 장난 섞인 놀림에, 짜증이 치솟았다. 

안 그래도 거슬리는 새끼가, 감히 스승님에게 탐지 스킬을 사용하였다. 

대충 가볍게 밟아 주려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마지막 기회야, 당장 이거 놓아.” 

류헤이 젠의 섬뜩한 울림이 대기를 타고 흘러나온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경멸 섞인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 볼뿐. 

꽈직- 

류헤이의 이마로 핏줄이 솟구친다. 

‘죽인다.’ 

판단을 내린 것이다. 환생이고 뭐고 모든 걸 다 뒤집어엎겠다고. 

구우우우- 

그렇게 류헤이의 전신으로 진한 마력이 피어올랐고, 

띠링- 

[오로치의 분노가 발동되었습니다.] 

특성이 발현됨과 동시. 

화르륵- 

류헤이의 전신으로 강렬한 푸른 불길이 치솟았다. 

“강우빈! 피해! 카즈마 어떻게 좀 해봐! 진짜 죽일 생각이야?!!!” 

“우빈씨,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피하세요!” 

그 불길을 본 하선율과 고지태가 버럭 소리친다. 

류헤이의 특성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오로치의 분노. 

한번 타기 시작한 대상이 완벽하게 소멸할 때까지, 끝없이 불태우는 악마의 특성이라고 불렸으니까. 

어느샌가 류헤이 젠을 짓누르던 우빈의 전신으로 푸른 불길이 옮겨붙었다. 

‘난 분명히 경고 했다.’ 

류헤이의 표정으로 섬뜩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오로치의 분노. 지금 류헤이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원동력이자, 카즈마가 류헤이를 키우는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게 이 불길은 일본 랭킹 13위인 카즈마 하루토조차 어쩔 수 없는 최강의 화력을 보여줬으니까. 

불길이 옮겨붙은 순간, 그 누구도 저 녀석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지금 불길이 치솟은 장소가 환생 시스템을 이용할 나고야성이라는 것뿐인데. 

‘어떻게든 되겠지.’ 

류헤이는 고통에 몸부림 칠 우빈을 상상하며, 그대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팔에 힘을 줬다. 

그런데 왜일까. 

조금 전과 같이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뭐, 뭐야?!’ 

류헤이는 다급히 시선을 돌려, 위를 올려보았다. 

흠칫- 

류헤이의 등골로 소름이 돋아났다. 

“말, 말도 안 돼···.” 

분명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어야 할 녀석이 불길 속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서 있었다. 

“뭐야? 이게 끝이야? 벌레라고 하지 않았던가. 누가 벌레인지 모르겠네.” 

우빈의 도발에 류헤이의 표정이 사납게 구겨진다. 

“개 새끼야! 놓으라고!!!” 

띠링- 

[오로치의 분노가 발동되었습니다.] 

화르륵- 

류헤이의 전신으로 가볍게 피어났던 불길이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저, 

꽈드득- 

“커-헉” 

짓눌리는 압박감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고, 

“자, 잠깐만···” 

꽈직- 

두개골에서 기괴한 소리와 함께, 눈과 귀에서 핏물이 솟구쳐 흐를 뿐이었다. 

“그, 그만!!!!” 

더 이상은 한계였다. 

단순한 압박에 눈이 멀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죽는다.’ 

무의식적으로 한가지 감정이 떠올랐다. 

공포. 

더 이상 내일을 살지 못한다는 공포. 나 자신이 없어진다는 공포. 

“제발··· 그, 그만해···.” 

진즉 마음은 꺾였지만, 소리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꽈드득- 두개골이 으깨지며, 그대로 폭사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그쯤 하면 충분한 것 같은데, 그만하지.” 

익숙한 목소리가 묵직하게 울리는가 싶더니. 

스르륵- 

그토록 멈추고 싶던 압박감이 사그라들었다. 

*** 

화르륵- 

푸른 불길이 치솟는다. 

“소화기, 소화기 가져와!” 

“저거 뭔지 몰라? 지옥 불이라고! 도망쳐!” 

대기실에 있던 헌터들이 혼비백산 밖으로 뛰쳐나간다. 

오로치의 분노로 피어오른 지옥불은 몇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는 연기를 뿜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는 대상을 완벽히 태우기 전까지 불이 옮겨붙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 오로치의 분노가 붙은 대상은 우빈뿐. 

그저 우빈의 전신을 얇게 뒤덮고 있을 뿐 그 어떠한 것도 불태우지 않고 있었다. 

다만, 우빈을 직접적으로 건드린 대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후끈- 

불길로 뒤덮인 우빈의 손목을 낚아챈, 카즈마 하루토의 손바닥이 붉게 익기 시작했다. 

손가락의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며, 조금씩 감각이 무뎌진다. 그대로 손목을 놓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다. 

“이것 좀 놓지, 그래. 왜 너도 한번 해보게?”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가···.” 

우빈의 말에 여유롭던 카즈마의 표정이 구겨진다. 

원래라면 적당히 경고만 하려고 했다. 

한국 새끼 한 명쯤 처치하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일본의 얼굴이라 말할 수 있는 랭커이지 않은가. 

쓸데없는 살생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정도를 넘었다. 

‘주제도 모르고 나대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마.’ 

꽈드득- 

판단을 내린 카즈마의 손아귀로 힘이 들어간다. 

압박에 콰드득- 우빈의 손목에서 기괴한 소리가 터져나오고, 후웅- 카즈마의 주먹이 우빈의 얼굴을 강타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띠링- 

[주먹 강타를 사용하였습니다.] 

간결한 섬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콰직- 

카즈마 하루토의 의식이 뚝 끊겼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