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새 출발(2)
쏴아아-
미풍에 낙엽이 부딪히며 선율을 자아낸다.
“축하드립니다. 류헤이 님.”
“괜히 카즈마 님의 제자가 아니라니까. 와··· 부럽다. 저 아이템 얼마일까.”
환생을 마친 류헤이에게 일본 헌터들의 시선이 쏠린다. 하나같이 눈을 반짝이며, 부러워하는데, 익숙한 시선이었다.
‘벌레 새끼들이 귀찮게.’
류헤이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카즈마 하루토에게 다가갔다.
무려, ‘5등상’인 황금빛 광체가 터져 나왔다.
알아 온 정보에 따르면, ‘5등상’은 지금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으로 육체를 성장시키고 레벨 200을 달성해도, 받기 힘든 보상이라고 들었다.
당장, 보상으로 받은 이 검을 보아라.
띠링-
[월하의 장검]
종류: 장검
등급: S
내구력: 120/120
공격력: 10
기량:+7
효과
-만월 효과 획득.
-어둠 속성 데미지 100% 증가.
-빛을 흡수할수록 성능이 향상됩니다.
*만월: 직선상의 적을 월하의 힘으로 두 동강 냅니다.
최상급까지는 아니어도, S급 중에서 나름 준수한 옵션을 가진 아이템이 나왔다. 아무리 못해도 수백억 원에 거래될 정도의 성적표였다.
하지만 카즈마의 시선은 류헤이를 향하지 않았다. 그 흔하디흔한 수고 했다는 한마디조차 듣지 못했다.
그저 신사 위에 오른 한 사내를 보며, 눈을 떼지 못할 뿐이었다.
‘왜 저러시는 거지.’
류헤이는 그런 카즈마의 행동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우빈의 악력에 기절하고 깨어난 그 시점부터, 카즈마의 행동은 이상했다.
까불거리며, 여유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사형을 앞둔 사형수처럼 여유가 없다고 해야 할까.
도대체 왜 저러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절한 그때, 저 사내와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마음에 안 들어.’
류헤이의 시선이 신사 위로 향한다.
안 그래도 거슬리던 우빈의 존재가 더욱 짜증나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좋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머리를 짓눌려 기절당한 굴욕, 어떤 방식으로든 갚아주어야만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다.
‘재미있겠는데.’
류헤이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마치 좋은 방법이라도 떠오른 것처럼.
그렇게 류헤이가 우빈을 보며, 행복한 상상을 하던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평화롭던 신사 위로 강렬한 빛이 번쩍였다.
“와···.”
“뭐, 뭐야!”
류헤이를 보며,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던 헌터들의 시선이 신사 위를 향했다.
“말도 안 돼···”
그건 류헤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골탕 먹일 생각으로 실실 웃던 류헤이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린다.
수정 구슬의 빛은 단순히 보상의 등급을 말해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신전에 마친 각성자의 힘 그 자체를 나타내는 지표에 가까웠다.
바친 힘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백색에 가까운 빛을, 크면 클수록 어두운 빛을 보여줬다.
그를 증명하듯 이미 많은 환생으로 초인적인 힘을 가진 카즈마 하루토의 경우 남색에 가까운 빛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도대체 뭐 하는 새끼야···”
신사를 바라보는 류헤이의 동공이 파르르 떨린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빛이 구슬로 가득 차올랐다.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황홀할 정도로 소름 돋는 보랏빛. 보랏빛 광체가 신사 주변을 가득 물들였다.
“와···.”
보랏빛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어두운색이었다.
저게 뭘 의미하는 걸까.
설마, 저놈의 힘이 스승님보다 더 크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잖아.’
더 이상 류헤이는 우빈을 골탕 먹이겠단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주먹을 꽉 쥐며 신사 위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러자, 볼수 있었다.
“씨발···”
지금까지 본 그 어떠한 아이템보다 찬란한 빛을 머금은 망치 한 자루가 생성되는 광경을.
***
대장장이의 망치처럼 생긴 아이템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콰지직-
망치 주변으로 묘한 보랏빛 광체와 스파크가 튀긴다.
띠링-
[헤파이스토스의 망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우빈은 보상으로 지급된 망치를 움켜쥐었다.
우우웅-
미약한 진동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좋은 건가?’
외관만 보자면 마검이 내뿜던 마기보다 더 오묘한 기운이 망치 주변으로 감돌았다.
그대로 망치의 등급을 확인하려는데 하나의 시스템창이 우빈의 앞으로 떠올랐다.
띠링-
[레이가 루시나의 정기를 섭취합니다.]
레이를 바라봤다.
우빈의 주변을 맴돌던 레이가 수정 구슬로 뿜어져 나오는 보랏빛을 열심히 입속에 욱여넣고 있었다.
띠링-
[레이가 루시나의 정기를 섭취합니다.]
어느샌가 구슬 주변으로 감돌던 빛이 전부 레이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뭐 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까. 레이는 아이템을 섭취하는 신수이지 않은가.
이대로 가만히 놔두었다가 수정 구슬이라도 먹는 날엔, 일이 귀찮게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우빈은 주위를 배회하는 레이의 꼬리를 움켜쥐곤, 발걸음을 옮겼다.
끼이잉-
레이는 저항 한번 없이 우빈의 손길에 딸려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먹는 걸 방해한 것 치곤, 이상할 정도로 표정이 좋아 보였다.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밀려들던 그때.
꺼억-
레이의 입으로 불쾌한 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아니나 다를까.
띠링-
[레이가 거대한 시스템의 힘을 섭취하였습니다.]
[레이에게 특별한 힘이 부여됩니다]
[환생 시스템의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우빈은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에 볼을 긁적였다.
‘시스템의 권한을 부여받아?’
메시지만 보자면, 굳이 이 장소로 오지 않아도, 환생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진짜,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당장,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지만, 이제 막 환생 시스템으로 레벨을 초기화시키지 않았던가.
지금으로선 확인할 길이 없어 보였다.
우빈은 메시지 창을 끄곤, 시선을 옮겼다. 신사 아래,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와··· 미쳤다. 투자할 맛 나네.”
4억으로 환생 티켓을 구매한 하선율이 활짝 웃으며 기뻐한다.
화민서 역시 밝은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둘의 반응이야, 처음부터 우빈을 알고 있었으니,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일본 놈들의 경우는 아니었다.
“미, 미친···. 보랏빛은 뭐냐? 저거 1등 상 아니야?”
“보상 봐봐. 와······. 몇 등급 아이템일까.”
놀라는 이들이 있는 반면.
“뭘 놀라고 그래, 저것도 환각으로 조작한 게 뻔하잖아.”
“그, 그런가? 그런데, 환각치곤, 너무 리얼한 거 아니야?”
우빈을 사기꾼이라고 몰아세우는 이가 있었다.
다양한 반응에 보는 맛이 있었지만, 단연코 제일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카즈마 하루토였다.
“말도 안 돼···.”
카즈마 하루토가 뒷걸음치며,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 힘든지, 몇 번이고 소매로 눈을 비비적거린다.
우빈은 모두의 시선을 느끼며, 신사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대로 내려가려는데,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직원이 정신을 차리곤 우빈에게 다급히 다가왔다.
“축, 축하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김이수 헌터님은 타국 각성자로써, 국제법. 시스템 조약, 제 32조에 의해,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의 20%를 내셔야 해서요. 가치를 추정할 수 있게 아이템의 정보를 제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직원이 우빈의 손에 들린 망치를 보며, 태블릿을 건넨다.
[아이템 명]
등급: [-]
공격력: [-]
방어력: [-]
생명력: [-]
정신력: [-]
지구력: [-]
........
.....
....
.
효과
-[-]
*정확한 정보를 기재해주시기 바랍니다. 허위 작성 시 국제법에 따라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태블릿에는 아이템의 정보를 적는 공란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입구에서 직원이 읽어 보라고 했던 프린트물에서 저런 문구를 본 기억이 있었다.
‘완전 날강도네.’
읽던 당시에도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이템을 뜯길 상황이 찾아오자, 인상이 찌푸려졌다.
시스템을 제공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각성자가 시스템에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얻은 보상이지 않은가. 그런데 보상의 20%를 내놓으라니.
우빈은 손에서 강렬한 위용을 내뿜는 망치의 효과를 확인했다.
띠링-
[헤파이스토스의 망치]
종류: 대장장이 망치
등급: UL
내구력: 180/180
공격력: 15
근력:+9
체력:+4
효과
-헤파이스토스의 안목 활성화.
-아이템 제작/강화/수리/인첸트 속도 300% 증가.
-아이템 제작/강화/수리/인첸트 성공 확률 80% 증가.
-10% 확률로 제작 아이템에 신기 효과 부여.
*헤파이스토스의 안목: 한번 본 아이템의 제작 설계도를 파악합니다.
‘좋다.’
단순히 등급을 떠나 지금까지 본 그 어떠한 아이템과 견주어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효과가 붙어있었다.
얼마일까. 감히 가격으로 측정이나 할 수 있을까.
제 33조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아이템, 혹은 20%의 값을 지불할 수 없는 경우, 일본 협회에서 관리하는 경매장에 등록된다.
우빈은 입구에서 본 국제법 중 하나를 떠올렸다.
이 아이템의 경우 당연히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희귀 아이템으로 분류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협회에서 관리하는 경매장에 등록돼서 경매에 오른다는 말인데.
‘귀찮네.’
우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개소리 따위 무시하고 싶었지만, 엘리드에서처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카즈마 하루토의 무력을 확인하지 않았던가.
지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가 우글거렸다. 거기다 엘리드에 때와는 다르게,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다.
‘어쩔 수 없나.’
딱히 방법이 없었기에, 포기하고 직원이 원하는 대로, 서류를 작성하려는데, 우빈의 시야로 한 사내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진 헌터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바꿔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화민서의 경우 7일은 걸릴 비자 발급을 바로 해결해주었고, 하선율은 오늘 있을 환생 신청자를 찾아내는 정보력을 보여줬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일본에서만큼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일본에서 그 누구보다 영향력이 있는 각성자가 이 자리에 있었다.
우빈의 시선이 카즈마 하루토로 향한다.
카즈마가 우빈을 경악스럽게 바라보다, 우빈과 눈이 마주치자, 눈빛이 파르르 떨린다.
우빈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눈은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에서 카즈마의 감정이 느껴졌다.
‘잘 만하면,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좋은 생각이 번뜩인 우빈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간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우빈은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 직원에게 태블릿을 건넸고, 카즈마에게 다가가 제안했다.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랑 따로 이야기 좀 하죠.”
*****
대략 1시간이 지나자, 환생 절차는 끝이 났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응원할게요!”
나고야성에서 일하는 직원이 카즈마 하루토를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올려 보인다.
“다음에 또 올게. 잘 있으라고.”
카즈마 하루토는 그런 직원에게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난다. 지금의 모습만 보자면, 여느 때의 카즈마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직원과 거리가 멀어지자, 여유롭게 웃고 있던 카즈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류헤이는 그런 카즈마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왜 도와주신 건가요?”
카즈마는 우빈이라는 사내와 대화를 하고 나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다.
-오늘 환생으로 얻은 아이템의 20%에 달하는 값은 추후, 1년 내로, 지불한다고 한다. 내가 책임지고 보증할 테니까. 오늘은 그냥 보내는 걸로 하지.
갑자기 우빈이라는 사내를 도와준 것이었다.
카즈마는 평소에도 한국이라면 치를 떨며 싫어했다.
무능력한 정부에 죽음을 선택한 부모,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에 절망한 그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경멸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일까.
잘만 이용하면, 환생 시스템으로 얻은 보상을 빼앗았을지도 모르는 좋은 기회였는데.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좀 닥치고 있어.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류헤이의 물음에 날이 선 답이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류헤이는 카즈마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곤, 그대로 자리에 멈춰 섰다. 카즈마는 류헤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어디론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샌가 카즈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류헤이는 자리에 멀뚱히 서서 한 장소를 바라봤다.
“저 사람이야? 이번에 환생에서 1등상 나왔다면서. 누구야?”
“한국인이라던데, 어제 포털 메인에 올라던 전투력 세계 신기록.”
“신기록? 아!!! 그 사람! 와··· 개쩐다. 저게 보상이야?”
수십 명의 기자가 성 앞에 모여, 눈을 반짝였다.
원래라면 카즈마와 류헤이를 향했어야 할 시선이 한 장소로 집중되어있었다.
“대박. 뭐 받았어? 효과 좀 보자.”
“피곤하실 텐데, 쉬러 가시죠. 숙소를 잡아 놓았습니다.”
한국의 랭커인 하선율과 화민서가 한 사내에게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춘다.
카즈마는 그런 사내를 보며, 차갑게 눈매를 좁혔다.
‘강우빈···.’
처음부터 저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수 없게 스승님과 자신을 훑어보던 시선하며, 너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류헤이의 손이 자신의 뒷 목으로 향한다.
‘당하고는 못살지.’
자신을 무력으로 짓눌렀다는 사실 자체가 거슬렸다.
카즈마 하루토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류헤이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판단을 내린 카즈마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젠 입니다. 손봐 주고 싶은 놈이 나타나서요.”
낮은 음성이 핸드폰을 타고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