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의문의 세력(5)
쏴아아아-
창문 너머로 상쾌한 바람이 풀기 시작한다. 마당에 있는 나무가 흔들리며, 낙옆이 흩날린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이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서도, 고요했으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답답해.’
그러나 우빈은 창밖을 응시하며, 답답함을 느꼈다.
당장, 길드를 만들기 위해선, 최소 2억이라는 돈과 서류상 길드원으로 등록해야할 인물. 그리고 길드 사옥으로 쓰일 주거지를 마련해야 해야 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거기다 어제 하다가 멈추었던 성장까지 계속 이어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전부 이놈들 때문이었다.
우빈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손에 들린 쪽지에 적힌 문구를 읽어나갔다.
-물었습니다. 시간과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내일 중으로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물었는데.’
우빈을 노리는 의문의 세력이 있었다. 그 새끼들을 잡기 위해, 최형욱이라는 미끼를 던진 상태였다.
그 결과가 바로 이 쪽지였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연락은 아날로그식인 쪽지로 주고받기로 했다.
물론, 쪽지를 전해주기 위해서 최형욱이 우빈의 집까지 와야 한다는 위험 요소가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최형욱의 장점인 은신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추격이 붙으면 그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띠링-
[강우빈]
지구의 주민
레벨: 109(9↑)
HP: 8,990/8,990
MP: 899/899
스태미나: 899
생명력: 790(215↑)
정신력: 790(215↑)
지구력: 790(215↑)
근력: 790(215↑)
기량: 790(215↑)
체력: 790(215↑)
지력: 790(215↑)
감각: 790(215↑)
행운: 790(215↑)
모든 스테이터스를 올린 지금 우빈의 능력은 초인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달라.’
우빈은 창밖을 보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전신으로 가득 차오른 마력을 풀며, 주변을 파악한다.
그 순간.
화아아악-
모든 게 느껴졌다.
쏴아아아-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
처벅-처벅-
집 앞을 걸어가는 행인.
-배고프다. 지금 바로 갈 테니까.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려.
행인이 핸드폰에 적는 메시지의 내용까지. 전부 알 수 있었다.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머리 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전부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감각 스테이터스 덕분이었다.
우빈은 이 감각으로 어제 집에 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변을 감시했다. 그 어떠한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즉, 지금 던진 미끼가 제대로 먹혔다는 의미였다.
이제 최형욱이 정보를 물어올 때까지 녀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집에서 숨죽이고 기다리면 될 터.
“기다려! 옳지! 잘했어. 레이!”
우빈이 따분함을 느끼며, 앞으로의 계획을 그려가던 그때, 거실 한쪽에서 레이를 교육하는 오유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빈은 오유성에게 레이의 교육을 부탁한 상태였다.
띠링-
[레이가 오유성 님을 따릅니다.]
[오유성 님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아까부터 계속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를때면,
콰드득-콰드득-
레이의 입으로 어제 얻은 아이템이 모습을 감추었다.
아무리 적게 계산해도, 1시간 동안 먹은 아이템의 값은 대략 천만 원 이상. 하지만 불만은 없었다.
“기다려. 앉아. 터치! 저거 가져와.”
고작 1시간 만에 레이가 오유성의 말을 알아듣는 수준까지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형! 얘 엄청 똑똑해! 알겠어, 줄게, 줄게.”
오유성이 레이의 포동포동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먹이로 주었던 마지막 검을 레이의 입에 넣어준다.
콰드득-콰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C급 아이템이 레이의 입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한꺼번에 너무 많이 알려줘도 헷갈려 하더라고.”
꺼억-
레이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트림한다.
띠링-
[레이의 포만감이 최대치입니다.]
[레이의 만족도가 상승합니다.]
확실히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해도 될 듯 싶었다. 애초에 만족스러울 정도로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기도 했고.
“알겠어. 나중에 또 부탁할게.”
우빈이 긍정적으로 답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오유성이 그런 우빈을 다급히 불러세웠다.
“잠깐만 형. 나도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뭔데?”
“그때, 했던 수련. 또 하고 싶어서. 지금 할 수 있을까?”
오유성의 말에 우빈이 씩 웃어 보인다.
그때 했던, 수련이라 하면, 소년 고블린이랑 목숨을 걸어가며 싸웠던 걸 말하는 거겠지.
그 당시 못해도 수십 번은 목숨을 잃었으며, 성인조차 버티기 힘든 죽음의 고통을 겪었을 텐데. 그걸 다시 해달란다.
마음에 들었다. 당장, 작업실로 데려가 수련을 시켜주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 우빈에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우빈을 치려는 세력이 존재했다. 어떤 새끼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암살자로 보낸 최형욱의 능력은 출중했다.
그렇기에,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평화를 누리고 있는 지금도, 그 새끼들은 우빈이 진짜 죽었나 살았나 의심하고 있을 게 분명하였으니까.
“알겠어. 얼마든지 다시 싸우게 해줄 수 있어. 그런데 어제 대련했다면서. 연습하는 것만큼 쉬는 것도 중요해. 일단 오늘은 푹 쉬어.”
나름 타당한 이유를 대며 설득하자. 오유성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우빈은 그런 오유성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빠 어디가?”
그때, 포메라니안을 안고 거실로 걸어온 강희나가 우빈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에서 좀 쉬려고.”
“그래? 엄마가 뭐 먹고 싶은 거 없냐고 오빠한테 물어보라던데.”
“먹고 싶은 거?”
보면 알겠지만, 엄마는 일을 나가신 상태였다.
희나는 오늘 원래 실습이 예정되어있었지만, 어제 무슨 일이 터져 집에서 쉬게 되었다고 했고.
“음··· 불고기?”
“불고기? 알겠어. 엄마한테 전해줄게. 그런데 오늘은 집에 있을 거야?”
“그럴 거 같은데.”
“그래. 알겠어. 그러면 푹 쉬어.”
희나가 우빈에게 씨익 웃으며 답한 뒤 오유성에게 향한다.
앙!
희나의 품에 안긴 포메라니안이, 폴짝 뛰어 오유성에게 달려간다.
“코코! 잘 잤어?”
앙!
오유성이 여태까지 그랬듯이 포메라니안을 끌어안으려 자세를 낮춘다. 포메라니안 역시 오유성에게 달려가던 그 순간이었다.
끼이잉-
레이가 오유성의 앞으로 헤엄치며 포메라니안을 경계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포메라니안이 이빨을 들이민다.
앙! 앙!!
사납게 짖으며, 공격의 의사를 내비치자.
띠링-
[레이가 대상을 적으로 인식합니다.]
불길한 창이 떠올랐다.
순간 새끼 드레이크를 갈아버리던, 레이의 스킬이 떠올랐다.
‘설마 아니겠지.’
우빈은 불길한 시선으로 레이를 응시했고,
“싸우면 안 되지.”
“어머, 쟤 성깔 있다.”
둘의 싸움을 중재하는 강희나와 오유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레이는 포메라니안을 경계할 뿐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다.
우빈은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시끌벅적했다. 정신없이 어지러울 만큼.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식사도 그렇고, 지금의 평화로운 일상도 그렇고, 엘리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온함이었다.
꽈드득-
주먹으로 힘이 들어갔다.
지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무력이 필요했다.
‘마저 하자.’
철컹-
마음을 굳힌 우빈은 방에 들어와, 침대에 앉았고,
띠링-
[특성에 부여할 추가 효과를 선택해주세요.]
1. 지정 스킬 추가
2. 지정된 스킬 추가 효과 부여
3. 지정된 스킬 변경
미처 선택하지 못한, 보상을 확인하며 성장을 이어나갔다.
***
콰지지직-
저 멀리 거대한 게이트가 강렬한 위용을 내뿜는다.
평소라면, 일반인보다 헌터가 더 북적거렸어야 할 트윈 드레이크의 둥지. 그런 트윈 드레이크의 둥지를 위해 비치된 주차장으로 수십 명의 기자가 몰려있었다.
“피해자가 누구래?”
“모르죠. 머리가 그냥 개박살이 났던데, 어떻게 알아요. 그래도 협회에서 지문 따갔으니까. 이제 곧 뭔가 나올 거 같은데요.”
기자들의 시선이 한 장소를 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볼 수 있던 시체가 천막에 가려져 볼 수 없었다.
협회에서 살인 사건을 보존하겠다고 가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살인 사건은 언제가 인기가 많았다.
범인이 누구이며, 피해자가 누구인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주제이지 않은가.
안 그래도 어그로가 심한 키워드에, 심한 육체 훼손은 엄청난 관심을 모았다.
당장, 아침에 업로드한 기사의 트래픽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별다른 내용 없이 그저 게이트 앞, 머리 실종 사체라고 기사를 올렸을 뿐인데, 5만 명 이상의 조회 수가 찍히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살인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승진을 바라볼 좋은 기회에 기자들의 눈이 반짝인다. 그런 기사들의 뒤로 누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길좀 지나가겠습니다.”
선두에 선 여성이 기자들을 밀치며 길을 만든다. 그런 여성의 뒤로 훤칠한 키를 지닌 중년의 사내가 뒤따른다.
기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중년의 사내로 향했다.
“어?! 구시현이잖아.”
“도대체 누가 죽었길래, 구시현이 직접 여길 다 오냐.”
구시현, 한국에서 제법 유명한 헌터였다.
주로 하는 업무는 각성 범죄, 그중 1급 범죄로 분류되는 살인 사건을 주로 맡는 협회 소속, 헌터 경찰이었다.
“어서 오세요. 구시현 수사관님.”
구시현이 사건 현상에 도착하자, 사건 현장을 지키던, 경찰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구시현은 모두의 시선을 느끼며, 범행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어떤 겁대가리를 상실한 새끼야···.’
시체를 본 구시현의 표정이 사늘하게 내려앉는다.
구시현은 범죄자를 극도로 혐오했다. 특히, 각성자가 힘없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자는 별다른 저항이 없더라도 사살할 정도로. 그에겐 막강한 권력이 있었다.
그런 구시현의 손에 잡힌 범죄자만 하더라도 수백 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끔찍한 범죄 현장은 처음이었다.
머리가 그대로 폭발해, 두개골과 뇌수가 바닥을 적신다. 전신으론 고문의 흔적이 가득했다.
피부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며, 붉게 드러난 근육으론 칼에 찔린 상처와 불에 그을린 자상이 가득했다.
특히, 복부로 내장이 흘러나와있는데, 살아있을 때 꺼낸 것으로 판단되었다.
도대체 어떤 싸이코패스가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일까.
구시현이 사건 현장을 보며, 이를 갈던 그때였다.
“우웩-”
범행 현장을 같이 구경하던, 구시현의 파트너, 서영주가 헛구역질하며, 인상을 찌푸린다.
“야! 토할 거면 나가서 해!”
“웁- 죄, 죄송해요···.”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엘리드에서 온갖 험한 꼴을 다 본 구시현조차 이런 지독한 시체는 오랜만이었으니까.
구시현은 바로 현장 분석에 나섰다.
가장 먼저 확인할 건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띠링-
[스킬 카드: 감각 증폭이 발동합니다.]
화아악-
구시현의 동공이 수축한다. 극도로 증가된 감각이 주변의 모든 걸 인지하기 시작했다.
‘깨끗해.’
싸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사체에서 발견된 것 또한 고문으로 인상 상처 이외의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살해하고 옮긴 건가?’ 그렇다고 치기엔, 주변이 너무 깨끗했다.
즉, 이 자리에서 살해와 고문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건데.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아파지던 그때였다.
“지문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협회 직원이 구시현에게 하나의 서류를 건냈다.
‘지문이 나왔다고?’
서류를 받아든 구시현의 눈매가 좁아진다.
상대는 프로였다.
피의자를 바로 특정할 수 없게 머리를 박살 냈으며, 피부를 벗겨냈다.
그런데 왜 지문을 남긴 것일까. 단순한 실수일까?
아니, 구시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부러인가.’
빠르게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게, 의도적으로 남겼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왜 머리를 박살 낸 것일까.
“············”
서류를 펼친 구시현의 동공이 파르르 떨린다.
“누군데 그래요?”
서영주가 눈치 없이 서류를 보곤, 고개를 갸웃한다.
“강우빈?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아! 어제 선배님이 기사로 찾아보던 그분 아니에요? 한국에 떠오르는 천재!”
마치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문제의 정답이라도 찾은 양, 검지를 치켜세우며, 외친다.
평소 같았으면, 조용히 하라고 다그쳤지만, 구시현은 그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강우빈···.”
그저 주먹을 꽉 쥐곤, 이를 악다물 뿐이었다.
강우빈.
강우빈은 구시현에게 너무나도 특별한 사내였다.
나인테일에게 동료를 친구를 전부 잃어 절망에 빠진 자신을 구원해준 영웅이자, 언젠가는 꼭 만나 은혜를 갚고 싶었던 은인이었다.
꽈드득-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찾아가 그때의 빚을 갚고 싶었는데.
‘인생 참 좆같네.’
구시현의 눈에 빛이 서린다. 판단을 내린 듯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세요! 선배님!”
“어디 가긴 싸이코패스 새끼 잡으러 가지.”
강우빈, 어제 소울 길드의 마스터인 최수호에게 트윈 드레이크의 둥지에서 버스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아마, 최수호를 찾아가면 뭔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지.
구시현은 다급히 발걸음을 옮겼고,
“같이 가요!”
서영주가 그런 구시현의 뒤를 따라 걸었다.
***
빛 한점 들어오지 않은 어둠 속.
우웅-
주황빛 구체와 포션이 오싹한 빛을 내며, 주변을 밝힌다.
그 앞으로 한 사내가 의자에 앉아, 주황빛 광체를 내뿜는 수백 개의 광채를 응시하고 있다.
너무 어두워서 사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잇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미약한 주황빛에 비친 사내의 눈엔 강렬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 사내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화가 나 있는 것일까.
지독한 침묵만이 어둠을 가득 채우던 그때였다.
지이이잉-
한 통의 전화가 고요함을 뚫곤, 울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받아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녀석의 지문을 확인했습니다. 아무래도 진짜,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사내의 눈빛이 번뜩인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분명, 성공했단 이야기였지만, 사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저,
“지시한 대로 처리하도록.”
섬뜩한 음성만을 읊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