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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의문의 세력(6) (107/107)

111. 의문의 세력(6)

찌르르르르- 

귀뚜라미 소리가 울려퍼지는 스산한 저녁. 

평소 같았으면, 신경 쓰이지도 않았을 법한 소리가 요란할 정도로 증폭되어 귓가를 맴돈다. 

‘씨발······’ 

최형욱은 주먹을 꽉 쥐며, 발걸음을 옮겼다. 손에 들린 핸드폰으로 지도가 켜져 있다. 

지금 도착한 장소는 인적 드문 산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 간판조차 세월에 뭉개져 가게의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식당이라기보다 폐가잖아.’ 

최형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PM 08:49] 

아직 09시도 되지 않은 초저녁인데, 알 수 없는 압박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이게 도대체 뭐길래···.’ 

최형욱은 주머니 속, 야구공만 한 구체를 응시하며, 눈매를 좁혔다. 

은은한 주황빛 광체가 오싹할 정도로 불길했다. 그 사내에게 받은 아이템이었다. 

-이걸 보여주면서 미끼를 던져. 그러면 반응이 올 거야. 끄나풀이든 뭐든 좋으니까. 정보를 모아. 

지옥 같던 고문의 연속 속, 사내가 제안을 해왔다. 

그 당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뿐이었기에 알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옥에서 탈출하고, 브로커에게 전화할 때, 최형욱은 확신했다. 

‘물 리가 없잖아.’ 

절대 미끼를 물 리가 없다고. 

브로커가 어떤 놈인가. 

단순히 연락할 때도, 전용 기계를 통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거기다 목소리까지 변조해가며 자신의 신분을 숨긴다.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직접 만나자고 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내일 중으로 한번 보자고. 시간과 장소는 이따가 남겨놓겠다. 

최형욱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브로커는 바로 반응해왔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브로커의 행동을 바꾸게 만든 것일까. 

최형욱은 주황빛 구체를 품속에 잘 넣은 뒤, 문고리를 돌렸다. 

철컹- 끼이이익- 

불길한 소음과 함께, 낡은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간판이 꺼져있어 영업하는지 의문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자 확실해졌다. 

‘진짜, 폐가잖아.’ 

가게 안은, 불빛 한점 없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당연히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도 종업원도 보이지 않았고. 

정말 여기가 약속 장소인지 조금씩 의심되어가던 그때였다. 

찌이이잉- 

손에 들린 기기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복도를 따라 걸어오세요. 끝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최형욱은 덤덤하게 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찌걱-찌걱-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불길한 소리가 메아리친다. 어둠만이 가득해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원래 같았으면, 의심하고 경계했을 것이다.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것도 수상한데, 굳이 이런 폐가 같은 장소에 불러낸 게 너무나도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의 최형욱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최대한 빨리 이 녀석의 정체를 우빈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걸어가길 대략 1분 남짓. 

복도의 끝에 미약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방 하나가 있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방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셨군요. 음식은 미리 준비해두었습니다.” 

방에 들어서자, 미리 와서 앉아있는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직접 만난 마당에 목소리를 숨기고 싶었는지, 변조된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러고 보니까. 뭐라고 불러야 하냐.’ 

평소에는 그분, 혹은 쩐주 정도로 불러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했다. 

최형욱은 방 안으로 들어서며 주변을 관찰했다. 

특이한 방이었다. 

방 중앙으로 거대한 천막이 처져 있어서, 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런 테이블 위론, 고급 한정식집에서나 볼법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직접 보고 싶다고 마련한 자리 아니었나요?” 

“쟤가 조심성이 많아서요. 앞으로 차차 알아가는 걸로 하죠. 시장하실 텐데. 앉아서 드세요.” 

녀석이 테이블 위에 있는 음식으로 손바닥을 내밀며 식사를 권유한다. 천에 가려져서 실루엣만 보이지만, 제법 덩치가 있어 보인다. 

최형욱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어떻게 하지. 일단, 끝 방에 있다는 걸 알려줄까? 아니면 최대한 분위기를 맞춰주면서 정보를 캐?’ 

고민이 많아졌다. 

눈앞에 있는 녀석이 진짜 브로커인지, 아니면 브로커가 내보낸 끄나풀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녀석을 넘기고 우빈에게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신가요?” 

최형욱이 식사를 하지 않자, 브로커가 질문을 던졌다. 

“저도 조심성이 많아서요. 여기에 수면제가 들어있을지, 독이 들어있을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최형욱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브로커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흘린다. 

“나름 서로 신뢰가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저만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변조된 음성이 소름 끼치도록 오싹하게 흘러나온다. 이내, 녀석의 웃음이 뚝 그친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불러내는 게 아닌 사람을 보냈을 테니까요.” 

“농담입니다.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드리세요.” 

최형욱은 자연스럽게 웃으며, 음식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집은 건 잘 구워진, 불고기. 

‘맛있어.’ 

고문의 지옥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공포 때문에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는데, 막상 음식이 들어오자, 입맛이 돌기 시작했다. 

흡사 수십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코스요리와 맞먹는 퀄리티라고 해야 할까. 

최형욱은 자신도 모르게 식사에 열중했고, 

“음식은 입에 맞으시나요?” 

“맛있습니다” 

“다행이네요. 형욱 씨는 꼭 한번 만나서 대접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쓸데없는 호기심 없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주시는 분은 찾기 힘들거든요.” 

소소한 대화를 하며, 조금씩 배가 불러가던 그때였다. 

지끈!!!! 

머리가 조여오는 듯한 압박감과 함께,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 

최형욱은 이 느낌이 무슨 느낌인지 너무 잘 알았다. 

정량 이상의 수면제로 정신을 놓기 직전의 감각. 

“이, 이 새끼가··· 치사하게.” 

최형욱은 의지와 상관없이 내려앉는 육체를 지지하려 이를 갈며 읊조렸고, 

“이런 순수한 멍청함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참 아쉽군.” 

브로커는 그런 최형욱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 ** 

화르륵- 

벽에 붙은 램프로 붉은 불꽃이 타오른다. 

향긋한 방향제 냄새가 주변을 가득 메운다. 

분명 좋은 향기였던 것 같은데, 강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기존에 머물던 악취와 뒤섞여, 오묘한 냄새로 변질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창고로만 써야 하나.’ 

우빈은 마이룸 중앙에 서서, 주변을 살폈다. 

피와 살점, 먼지로 가득하던 마이룸이 제법 깨끗해진 상태였다. 어지럽게 널브려 저 있던 아이템 역시 등급, 희귀 도별로 나뉘어 있었고. 

전부 이세현의 노동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이었다. 

“우빈아! 이것 봐봐. 이건 어때?!” 

이세현이 구석에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더니, 번쩍 들어 올리며, 우빈에게 보여준다. 

띠링- 

[아크 리치의 영혼석] 

종류: 영혼석 

등급: F 

레벨: 1 

효과 

-아크 리치의 영체를 소환한다. 

F급 영체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좋아보이는 영혼석이 이세현의 손에서 반짝거린다. 

오유성을 성장시켰던 소년 고블린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영체였다. 하지만 우빈의 반응은 덤덤했다. 민주희가 없는 지금, 아무리 희귀한 영체가 있다 한들 의미가 없었으니까. 

우빈이 별다른 반응 없이 빤히 아이템을 바라보자, 이세현의 동공이 파르르 떨린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조금만 기다려봐. 더 좋은 거 만들어올게!” 

이세현이 다급히 바닥에 떨어진 영체를 조합하며, 연금을 이어나간다. 흡사 잘못을 저지르고 엄마의 눈치를 보는 아이 같다고 해야 할까. 

이세현은 우빈이 방에 도착한 뒤로 저런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방 청소를 끝내, 이용 가치가 사라졌으니, 다시 시련으로 보낼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실제로 우빈은 이세현을 다시 시련에 넣을 생각이었다. 

지옥의 시련에서 잠시나마 되찾은 자유는 다시 시작된 시련을 더욱 증폭시켜줄 테니까. 하지만 이세현의 저 모습을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쓸만하려나.’ 

안 그래도 길드를 만들기로 마음먹지 않았던가. 무자본으로 충성을 다할 노예가 있는데, 안 쓸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이세현의 특성인 연금은 길드적인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다만, 궁금했다. 

과연 얼마나 말을 잘 들을까. 

우빈은 아무 말 없이 이세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흠칫! 

이세현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건 더 안 만들어도 돼. 이제 필요 없거든.” 

“그, 그래? 아쉽네···.” 

이세현이 당황한 듯, 손을 덜덜 떨며, 영혼석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 그러면 이제 뭐 할까···?” 

길을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게 우빈을 올려다보곤,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뭘 해줄 수 있는데?” 

“어?! 해, 해줄 수 있는 거?” 

갑작스러운 우빈의 질문에 이세현의 시선이 파르르 떨린다. 갑자기 얼굴을 붉히더니, 입을 닫는다. 뭔가 이상한 걸 생각하는 모양인데. 

“없어? 없으면 어쩔 수 없지.” 

끼이익- 

우빈은 바로 방 한편에 있는 문을 활짝 열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이세현이 다급히 무릎을 꿇는다. 

“뭐, 뭐든 다 할게! 제발···. 다시는 들어가기 싫어.” 

“그러니까. 뭘 해줄 수 있는데.” 

우빈의 똑같은 질문에, 이세현이 고개를 떨군다. 

툭-툭- 

바닥으로 작은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제발···.’ 

그 어떠한 말을 한다 해도, 우빈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세현은 눈을 질끈 감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두려웠다. 절망적이었다. 

다시는 저 지옥에 들어가기 싫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우빈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 

판단을 내린 이세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각오를 다진 것이다. 

이세현이 고개를 들며, 우빈의 눈을 응시한다. 감정 없는 차가운 표정이 이세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세현은 주먹을 꽉 쥐곤, 처절하게 읊조렸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야. 시키는 건 뭐든 할게. 청소든, 잠자리든, 살인이든, 명령만 내려주면 기계처럼 전부 처리할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걸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빈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분명,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씨익- 우빈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우빈의 긍정적인 반응에 이세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됐다고 생각했다. 그 지옥에 다시 안 들어가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들어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순간 ‘어?’라고 의문을 내뱉을 뻔했지만, 이세현의 행동엔 망설임이 없었다. 

뭐든 하겠다고 각오를 다진 직후이지 않은가. 지금 해야 할 건, 되묻는 게 아닌, 행동으로 각오를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이세현은 망설임 없이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문 너머로 들어가자, 끼이익- 불길한 소음과 함께, 문이 닫혀가던 그때, 우빈의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3일 줄게, 최대한 유명해져서 찾아와.” 

“뭐?” 

의문을 되물을 새도 없이 철컹- 문은 닫혔다. 

고요함이 가득한 그 순간, 이세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여··· 여기는.” 

더 이상 악취가 나지 않는다는 걸. 

**** 

철컹- 

문이 닫히자, 고요한 적막이 감돈다. 

‘나쁘지 않은데.’ 

우빈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눈매를 좁혔다. 

뭐든 한다고 하긴 했지만, 방에 들어가라고 명령했을 때, 망설일 줄 알았다. 

하지만 이세현은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진짜, 죽을 각오를 했다고 해도, 시련을 받으러 제 발로 들어가는 건, 쉽지 않을 일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음에 들었다. 저 정도 각오라면 충분히 써먹을 만했다. 

거기다 설령, 자유에 심취해, 다른 마음을 먹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짓밟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으니까. 

‘어디까지 커서 오려나.’ 

우빈은 이세현을 뒤로한 채, 띠링- 하나의 시스템 창을 켰다. 

환생한 직후, 엘리드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 

그 능력은, 

띠링- 

[특성에 부여할 추가 효과를 선택해주세요.] 

1. 지정 스킬 추가 

2. 지정된 스킬 추가 효과 부여 

3. 지정된 스킬 변경 

레벨 50을 달성하고 얻은, 선택지와, 

[특성에 부여할 추가 효과를 선택해주세요.] 

1. 설정한 스킬 숙련도가 500% 상승 

2. 지정된 스킬 등급 상승 

3. 지정된 스킬 카드 추출 

레벨 100을 달성하고 얻은 추가 효과였다. 

고민이 되었다. 뭘 골라야, 앞으로 있을 상황에 도움이 될까. 

‘이게 좋겠지.’ 

모든 상황을 고려한 끝에, 우빈은 판단을 내렸다. 

띠링- 

[특성에 부여할 추가 효과를 선택하였습니다.] 

[지정 스킬이 추가됩니다.] 

레벨 50을 달성하고 선택한 추가 효과는 ‘지정 스킬 추가’였고, 

띠링- 

[특성에 부여할 추가 효과를 선택하였습니다.] 

[지정된 스킬 카드 추출이 추가됩니다.] 

레벨 100을 달성하고 선택한 추가 효과는 ‘지정된 스킬 카드 추출’이었다. 

정확한 효과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선택과 동시, 특성에 변화가 찾아왔다. 

띠링- 

[무한의 경지] 

종류: 특성 

등급: S 

지정된 스킬: [주먹 강타] [-] 

효과 

-설정한 스킬의 레벨 제한이 사라집니다. 

추가 효과 

-지정 스킬 추가 

-지정된 스킬 카드 추출 

‘진짜, 바뀌었잖아.’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주먹 강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기적인데, 다른 스킬을 추가할 수 있는 효과라니. 거기다 스킬 카드 추출. 

‘설마 주먹 강타를 스킬 카드로 뽑아낼 수 있다는 건가?’ 

우빈이 업그레이드된 특성에 흥미를 느끼며, 정확히 어떤 효과가 생겼는지 확인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악- 

“허억-” 

그토록 기다리던, 작업대 위로, 최형욱의 모습이 드러났고, 

“알, 알아냈어요! 정보를 알아냈다고요!” 

최형욱이 뭔가를 다급히 읊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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