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2화
에타니올 제국 최고의 교육의 장.
필로스 아카데미.
게임 시나리오의 기본 무대가 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 배움의 터.
‘단순히 주인공의 연애를 위해 존재하는 무대일 뿐만이 아니라 내게도 더할 나위 없는 출세의 장.’
아카데미에서 배출한 수많은 인재들 중에는 대륙의 역사서에 그 이름을 남긴 영웅들도 적잖이 존재한다.
모든 재능을 펼치게 하리라.
무예, 마법, 정령술.
쇠를 다루는 지식부터 예술에 이르기까지 온갖 재능이 있다고 인정받게 되면 이곳에 발을 들이는 것을 허락받게 되리라.
‘거기에 보통 명문도 아니고.’
3년에 한 번. 그것도 고작 100명 정도의 신입생밖에 받지 않는다는 명문이다.
‘그럼 나는 이런 곳에 입학하게 된 시점에서 어느 정도 싹수를 인정받은 셈인가.’
아카데미에서 바라는 것은 오로지 재능뿐.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제국과 대륙의 앞날에 공헌할 가능성을 평가할 뿐.
나 ‘시안’ 역시 나름의 인정을 받아 일개 평민이면서도 이곳에 입학할 권리를 얻었다.
‘뭐, 우연이지만…….’
시안이 자란 슬럼가.
우연히 그곳을 조사하던 아카데미의 교사가 시안의 자질을 발견하고는 입학을 추천하였다.
당연히 이곳까지 올 여비도 마련해 주었고.
‘그때의 내게는 그 기회를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아예 없었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시안은 평생을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미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인정받았다는 기쁨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안은 기꺼이 이곳으로 오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악행에 빠졌나…….’
선택받은 줄 알았던 소년은 이곳에 와서 심한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제국과 그 밖의 지역에서 선발된 인재들.
특히 이번 기수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더욱 특별했지.
게임 시나리오의 근간이 되는 어떤 이유로 여러 특별한 곳에서도 신입생을 선발하였다는 설정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의 자질에 절망도 했고.’
내가 가진 흑마법사로서의 소질.
그것이 이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이때의 시안은 몰랐다.
지금도 봐라.
“저 검은 머리……. 설마 쟤도 이번 기수였어?”
“열차에서 내릴 때 설마설마했는데…….”
“고작 흑마법사 주제에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뭘 어쩌겠다고.”
“이제 아카데미도 맛이 갔군.”
목소리를 낮추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군.
게임을 할 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시안 본인이 되니 씁쓸해지는군.
‘나의 재능…….’
흑마법사.
일반적으로는 다루지 못하는 마기를 이용하여 여러 불길한 마법이나 시체를 조종하고 때로는 악마를 소환하는 기술을 터득한 이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들에게는 끔찍한 지식에 손을 대는 놈들로 보이겠지.
‘하지만 제국은 흑마법사의 존재를 내치지 못해.’
에타니올 제국은 흑마법사의 존재를 공인하고 있었다.
또한, 전폭 지원해 육성하고 있었다.
흑마법 길드의 창설을 허가하고 예산까지 분배하여 뒷배를 봐주고 있었다.
왜냐고?
필요하니까.
‘거대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흑마법사를 육성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니까.’
제국은 타국과 비교해도 몸집이 큰 편이지.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비료를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이게 얻는 방법.
혹은 몬스터나 가축의 사체를 비롯한 폐기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방법.
그것은 어느 나라든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니까.
현대사회에서도 명쾌한 해결법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니.
그 해답을 제국은 흑마법에서 찾게 되었다.
‘어느 정도 지원 정책을 적용하기에 이르렀고.’
제국 내에서 흑마법을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소질만 있으면 각 영지에 설치된 흑마법 길드에서 기초적인 흑마법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시안 역시 아카데미에 향하기 전에는 잠시 길드에 맡겨진 채 기초를 배웠고.
그러나 정작 흑마법이라는 분야의 미래는 밝지 않았다.
인식이 좋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다른 클래스와 비교하면 다소 험난한 면도 있었으니까.
‘판타지계의 3D 업종일지도 모르겠군.’
흑마법을 선택하는 이들은 보통 먹고살기 위해 택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제국 최고의 흑마법사는 기껏해야 6서클의 수준에 이르는 게 고작.
반대로 공용 마법의 경우는 제국 최고의 대마법사가 8서클에 이르렀으니.
이 차이만 봐도 흑마법사의 장래는 암담하구나.
하필이면 그게 내가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고.
‘하지만 주눅이 들 필요는 없다.’
게임 지식이 있는 나는 흑마법의 진정한 진가를 알고 있으니까.
흑마법이 천하다고? 약하다고?
웃기시네.
이 게임에서 결코 약한 클래스는 없다.
“약하다면 그 플레이어가 똥손인 거지.”
진정 고수는 뭘 잡아도 사기캐가 되기 마련.
증명은 직접 하면 되겠지.
“……우선은 입학식인데.”
게임의 오프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입학식.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입학식이 열리는 장소가 어디였는지 고민했다.
“나, 어디로 가아 하는겨?”
그딴 거 모른다.
그야 게임 내에서는 오프닝 무비 끝나면 곧바로 입학식장에서 시작됐으니까.
성가시지만 안 갈 수도 없다.
《서브 퀘스트》
《입학식에 무사히 참석하십시오.》
빠질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네.
“우선은 길부터 외워야겠군.”
할 일이 많군.
* * *
겨우겨우 지각을 면한 채 입학식이 거행되는 홀에 들어오자마자 대열의 맨 끝자리에 앉았다.
“……더럽게 넓네!”
숨을 돌리기가 무섭게 바로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에타니올 제국.
필로스 아카데미.
영광스러운 83기수의 입학을 선언하는 행사.
“우선 제군들의 입학을 축하하는 말로 시작하도록 하지.”
식장의 맨 앞.
한 사내가 당당히 선 채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필로스 아카데미는 귀관들의 재능을 인정하였고, 이곳에서 자네들의 앞길을 더욱 밝혀 줄 것을 약속한다.”
아카데미의 학장.
필레프 팔레네우스.
‘팔레네우스 공작가의 전 가주이자……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최강자 중 한 명이었던가.’
분명 NPC로서의 레벨은 75였을 것이다.
‘분명 강캐에 들어갔지?’
레벨은 1회 차의 경우 99레벨이 상한, 2회 차부터는 999레벨까지 해금된다는 설정.
직접 육성이 불가능한 캐릭터들 중에서도 70레벨을 넘어가는 강자는 손에 꼽힌다.
예를 들어 전투력이 없는 농민의 경우는 평균 5레벨.
훈련받은 기사조차도 정예가 아니면 20레벨을 넘어가지 못한다.
‘지금도 그 레벨의 기준이 유효한지는 모르겠지만, 저 노인이 괴물인 건 틀림없겠지.’
1회차 기준으로 최종장의 몬스터의 레벨이 평균 90대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틀림없이 손꼽히는 강자.
그런 사내가 환영의 말을 하고 기대의 뜻을 전한다.
긴장이 안 될 리가 있을까?
학장의 연설이 끝나고 난 뒤에는 다른 교수가 나와 아카데미의 역사와 각 학과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간다.
‘아~! 저건 아는 거네.’
오프닝으로 한 번 봤었고 또다시 보고 싶진 않은데, 어디 스킵 버튼 없을까? 없군!
스킵은 고사하고 배속 버튼도 없다니 망겜이군.
제작사는 유저의 마음을 몰라!
‘그보다 알아볼 만한 얼굴 또 없나.’
하필 끝자리라 죄다 뒤통수밖에 안 보인다.
뿔 달린 놈도 있고, 짐승 귀도 보이지만…….
‘제대로 안 보여!’
낑낑거리며 힐끗거리다가 지켜보던 교수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서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정숙하게.”
예입.
그 교수가 멀어지자, 나는 다시 몸에서 긴장을 풀고는 두리번거렸다.
“찾는 애라도 있어?”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한 소녀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음……. 내 행동이 조금 기행으로 보였나.
“너는…….”
“아닐라 스윈이라고 해.”
“시안. 제국 동부 출신이야.”
나는 순순히 내 이름을 댔다. 저 소녀에게는 이름을 말해도 문제없거든.
“아, 조금 특이한 녀석들이 보이는 거 같았거든.”
“특이라……. 남의 말을 할 정도는 아닐 거 같은데.”
아닐라의 시선이 내 머리카락으로 향한다.
검고 보랏빛이 섞인 듯한 어두운 머리카락.
체내에 마기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던가.
“보다시피 이런 꼴인데, 다행히 나보다 더 눈에 띄는 놈들이 보이는 거 같아서 안심하고 있는 중이었어.”
“하긴~ 올해는 유난히 특이한 신입생이 많다나 봐.”
“과연…….”
자연스레 화제는 다른 입학생에 대한 것으로 옮겨 갔다.
그럴 수밖에.
이곳에 앉은 100명의 신입생들 중에는 게임의 본편에 출연하실 주연들이 적잖게 있겠지.
……한 번 떠볼 겸 말을 꺼내 볼까.
“듣자니 말케딜 왕국이나 필론 왕국의 왕족부터 시작해서 여러 곳에서 온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하던데?”
“거기에 그 지혜의 숲에서 처음으로 유학생도 보냈다고 해.”
“그렇군. 보아하니 드워프도 있는 모양이던데.”
“저쪽에는 수인도 유명하다고 들었어.”
자연스레 알고 있는 사실들을 꺼내며 잡담을 나눈다.
주로 화젯거리가 될 만한 신입생에 대한 정보.
나는 둘째 치고, 이 소녀의 입에서도 정보가 술술 나오는군.
전혀 이상할 거 없었다.
‘역시 정보통이라는 설정은 그대로 갖고 있나.’
아닐라 스윈.
게임을 플레이했던 유저들 사이에서는 ‘정보통 아닐라’라고 불리는 조연급 캐릭터다.
정보통이라는 이름답게 주된 역할은 주인공에게 이런저런 ‘소문’을 말해 주거나 혹은 게임 진행 중 해야 할 일을 깜빡했을 때 그 힌트를 말해 주는 역할.
‘게임 좀 하려면 꼭 필요한 캐릭터지.’
그 설정답게 아닐라는 이런저런 자잘한 정보를 꿰고 있었다.
이제 고작 입학식이 진행 중인데도 신입생의 정보를 꿰고 있을 정도.
‘……타국의 스파이였던가.’
이런저런 정보에 밝은 그녀에 대한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한 설정 같은 것.
일일이 스크립트를 읽은 놈이 아니면 깜박 잊고 지나가는 사실이지만.
아마 내게 말을 건 것도 10년 만에 입학한 흑마법사라는 점이 신경 쓰여서 캐묻고자 하는 거겠지.
딱히 해는 없을 것이다.
아닐라에 관한 설정은 맥거핀에 가깝고, 본편 시나리오에서는 쥐뿔도 다루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아닐라의 말대로라면 역시 대부분의 주연은 이곳에 존재하는구나.’
언급되는 이들에 대해서 듣기만 해도 각각의 캐릭터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타국에서 유학을 온 오만하고 거친 왕족.
속세와 단절된 숲에서 파견 온 유학생.
정령의 피를 섞어 만든 키메라.
신의 계시에 따라 입학한 성녀.
그 외에도 기타 등등…….
전부 여기에 존재하는구나.
‘확실히 이번 기수가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군.’
그들이 이 세상의 결말을 이끌어 갈 가능성을 지녔으니까.
그리고 나는 저들 중 누군가와 적대할 운명을 지닌 악당 지망생이고.
‘어떻게 보면 내가 뛰어넘어야 할 라이벌들이군.’
경쟁심이 싹트는군.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저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서는 안 되겠지.
실력으로 뛰어넘어 고고하게 군림해야 한다.
‘할 수 있고말고.’
한편, 그 외에도 신경 쓰이는 인물이 있었다.
‘이 중에는…… 아마 주인공도 있으려나.’
플레이어블 캐릭터.
설정상의 외형도 존재하지만, 이 게임은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대해서는 커스터마이즈 기능을 제공한다.
요컨대 외모로는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뜻.
‘하긴, 주인공도 존재한다면 곧 알아보겠지.’
곧 소문으로 들리리라.
그때 주인공을 어떻게 귀여워해 줄지도 생각해 두자.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입학식도 그 끝을 향해 간다.
남은 것은 선서.
‘선서는 분명히 수석이 연설했던가.’
내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분명 수석은…….
“입학생 대표 엘시아 리올레이트!”
이름을 호령하자, 금발의 소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리올레이트 공작가의 차녀.
현재 입학한 100명의 신입생 중 명백하게 최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녀.
무엇보다 공략 가능한 히로인 중 한 명.
“입학생 대표 엘시아 리올레이트. 필로스 아카데미 83기 입학생을 대표하여 선서합니다.”
낭랑하게 신입생을 대표하여 이곳에 모인 이들의 각오를 대변한다.
“우리는 자신의 재능과 힘을 키워 나가서 이 세상에 공헌하여 언젠가 이 땅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을 약속합니다.”
“흠.”
학장 역시 그 선언을 받아들이듯 끄덕이고는.
준비되어 있던 검을 엘시아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었다.
신입생 중 수석에게만 내려 주는 검.
그것을 학장이 건네고 대표로 그녀가 받는 것으로, 입학 허가가 정식으로 선포된다.
“이 시간을 기해 아카데미의 문턱을 넘은 100명의 인재들에게 끝없는 성장과 영광을 기대하도록 하마.”
학장이 입학식을 마무리 짓는 말을 선언하고, 우리들 역시 고개를 숙이며 식을 끝낸다.
‘이걸로 일단 문턱은 넘었다는 거군.’
오늘부터는 나도 이곳의 학생이다.
백수가 아니야!
《서브 퀘스트를 달성하셨습니다.》
내게만 들리는 알림을 인식하며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이군.”
그래, 이제부터다.
말 그대로 오프닝이 끝난 셈이다.
이제부터 내가 원하는 엔딩을 맞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지.
자고로 악당은 땀과 눈물과 우정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법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