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8화 (8/389)

제8화

8화

“마기가 가구를 배치해서 신전처럼 가호를 얻는 걸까? 기묘하네?”

나름대로 원리를 추측하는 것 같지만, 악마조차도 이것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가 보다.

하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설정에 의하면, 하우스 세트 효과는 특정 속성의 가구를 배치함으로써 주인에게 가호를 준다는 것이었으니까.

거기에 에밀리의 반응을 보면 다른 인간들은 이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모양이고.

‘그럼 더할 나위 없지!’

무엇보다 제대로 된 집을 갖추게 되었다는 게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다.

‘이제 남은 하루는 ‘그걸’ 해 두면 초반 스타팅 포석은 충분히 갖추겠군.’

나는 침대에 누워 달성감을 느꼈다.

고작 강화 한 번 했을 뿐인데, 보다 아늑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마법 더럽게 편하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나.

이 뿌듯함을 우리 사역마에게도 자랑하고 싶은데.

‘그런데 에밀리 얘는 어디 갔대?’

조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혹시 몰라서 확인해 보니 오두막 내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놔둘까……. 피곤하니까.’

계약이 있으니 멀리 가지는 못하겠지.

‘그것보다 해가 지니까 묘하게 심심하군.’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해가 지니까 달리 할 일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아직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이런 조용한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침대 자체의 회복 효과는 있겠지만, 그건 몸만 해당하는 거니까.’

정신적 피로.

까놓고 말해서 심심해.

일하기는 싫은데, 막상 일이 없으니 뭔가 불안해!

‘설마 내가 이런 가엾은 영혼일 줄이야!’

일에 찌든 현대인의 영혼의 폐해란 말인가!

그렇게 몸만 축 늘어져 뒤척이고 있자니 곧 에밀리가 돌아왔다.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뭘 하다가 온 거야?”

“후후후, 이 누나가 좋은 걸 찾았거든.”

“좋은 거?”

짓궂으면서 묘하게 색기 있는 몸짓으로 일부러 뜸을 들이는 에밀리.

“아까 말했잖니? 열심히 힘내면 좋은 상을 주겠다고?”

음, 까먹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뭘 해 주겠다는 걸까?

“알고 있겠지만, 악마는 인간의 욕망을 알아채는 감각이 뛰어나단다.”

“그러시겠지요. 특히나 댁은 서큐버스니까.”

악마는 인간의 육체를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영혼을 직접적으로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라던가.

“당연히 네가 뭘 바라는지도 쉽게 알 수 있어.”

“아, 그러셔?”

내 욕망이라…….

세계라도 정복해서 갖다 바치시게?

무엇을 꾸미는지 그녀는 일부러 느긋하게 내게 다가오더니 내 손목을 붙잡아 간단히 일으켜 세웠다.

“얌전히 따라오렴.”

일단은 얌전히 따라오자 눈을 가린다.

“얀마……. 어딜 더듬어.”

“해가 되는 건 아니니까 안심하고~. 자~, 이쪽이란다.”

계약 때문이라도 대놓고 수상쩍은 짓은 꾸미지 못하겠지.

시답잖은 장난만 쳐 봐라. 제대로 벌을 주지.

에밀리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걸어가자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수증기?’

어쩐지 습하다. 그리고 기이하게 열기가 느껴지네.

왠지 어디선가 많이 접해 본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에잇~.”

장난스런 목소리와 함께 에밀리가 나를 밀어낸다.

철퍼덕.

넘어지기 직전에야 아슬아슬하게 붙잡아 멈춰 주었다.

깜짝 놀랐지만 예상치도 못한 것에 놀라 불평을 하지 못했다.

“……온수?!”

뜨거운 물이다.

그것도 넉넉하게 몸을 담글 만큼의 양.

마치 목욕탕처럼.

“오두막 뒤편에 흐르는 수원을 끌어다 물을 받아 두는 장치가 있지 뭐니. 그걸 조금 써 봤어.”

아무래도 조금 전 에밀리는 이 방을 발견하고 멋대로 시설을 사용한 모양이다.

이 오두막은 기숙사 겸용 흑마법사의 공방 같은 곳이다.

당연히 공방에 필요한 것은 풍부한 물과 그것을 이용하기 위한 구조는 필수지.

‘그걸 멋대로 쓴 건가.’

아마 물을 데운 것은 마법을 썼을 테고.

“그전에 옷 입히고 물에 빠트리는 건 무슨 심보……. 목욕을 시킬 거면 말이라도…… 엥?”

허전하다 싶더니 어느새 내 옷이 벗겨진 채 차곡차곡 개어져서 정리되어 있군.

……언제?

“서큐버스의 손에 걸리면 이까짓 옷쯤은 언제 어디서든 벗길 수 있단다?”

그건 왠지 무섭네.

능청스레 웃으며 나는 긴장을 풀고는 축 늘어졌다.

“인간의 본능이란 건 여러 가지가 있기 마련이야.”

물질적인 욕심이든, 식욕이든 혹은 그 외의 것이든 마음이 풀어진 인간은 여러 가지를 갈망하기 마련이지.

에밀리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서 읽은 욕망에 대해 콕 찍었다.

“지쳤다면 쉬고 싶어 하는 것도 욕망이란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리는 게 악마인 거고.”

“과연 악마의 배려라는 거군.”

확실히 오늘 여러 가지를 만드느라 제법 육체적으로 노동을 했지.

당연히 피로를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내가 시안이 되어서 가장 아쉬운 게 제대로 뜨거운 물을 만끽하지 못하는 거였으니.’

현대사회처럼 상수도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카데미에 샤워 시설이 있긴 하지만 가긴 멀고, 다른 학과가 독차지하고 있어서 쓰기에도 성가시지.

적당히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먼지나 땀을 닦아 내는 게 고작.

하지만 한국인의 혼이 이런 상황에 불만을 가지지 않을 리 없다.

‘온탕! 그리고 사우나!’

한국인은 뜨끈한 것에 사족을 못 쓰는 혼을 가졌으니.

……아재 냄새가 난다고 욕하지 마라.

그것이 얼마나 간절해지는지 지옥 같은 20대 초반을 겪어 온 사내라면 누구나 알지 않느냐.

그 불만을 에밀리는 정확하게 읽고 공략했다.

‘악마 무섭네…….’

몸으로만 들이대는 게 아니라 정확히 뭘 하면 좋아할지 알고 실행에 옮긴다.

말 그대로 계약자를 공략하며 풀어지게 한다.

“아아~, 서큐버스를 소환해서 정말로 다행이네.”

“어머? 벌써 그렇게 말하면 아쉬운걸.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응?

이미 뜨끈해진 시점에서 만족하거든요?

“자~ 자~, 좀 더 힘을 풀어야지?”

어느새 에밀리는 내 등 뒤에서 나타나 나를 끌어당기며 안는다.

온수 속에서 내 등에 달라붙는 살의 감촉.

속박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왠지 풀려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

“고작 이 정도로 상이라고 하면 누나 체면이 말이 아니거든?”

서큐버스의 시중은 고작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듯.

내 목덜미에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핥는 감촉이 느껴진다.

간지럽히며 얌전히 있도록 훈계하듯.

딱히 거부하지 않자 이번에는 위치를 바꾼다.

내게 걸터앉듯 그러나 완전히 딱 밀착하지는 않고 약간 간격을 두며.

마치 일부러 내 시야의 범위를 의식하듯.

“후훗, 솔직하구나.”

무슨 의미인지 미소 짓는 그녀를 마음껏 응시한다.

내 사역마니 얼마든지 보아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으니.

‘확실히 장난이 아니군. 서큐버스.’

피부에서 흐르는 물기가 그녀의 몸의 곡선을 타고 흐르며 물방울이 내 몸에 떨어진다.

“시안은 몸의 구색이 의외로 꽤 갖추어졌네? 아직은 좀 더 성장해야겠지만.”

보는 만큼 이쪽도 보이기 마련.

에밀리의 손길이 내 몸을 훑는다.

가슴께를…… 심장 위에서 시작해 천천히 손길이 이동한다.

간지럽군.

“낮에 혹사한 덕에 기운의 흐름이 흐트러져 있어. 모처럼이니 다듬어 줄게.”

“으음…….”

나는 뭔가 참듯 침음했다.

단순히 어루만지는 것이 아니리라. 미세하게 마기를 조절하여 신체의 근육에 간섭한다.

그 손끝이 닿을 때마다 어쩐지 저릿하면서도 뭔가 시원하게 풀리는 느낌.

하려는 건 단순한 목욕 시중만은 아니리라.

“가르쳐 줬던 마기의 흐름의 감각을 다시 짚어 줄까? 아직 미숙하지?”

대체 목욕탕 속에서 뭘 가르쳐 주겠다는 건지.

말 그대로 서큐버스의 방식.

“이 누나가 다시 친절하게 가르쳐 줄 수도 있는데?”

“그럼 사양 않고 받도록 하지.”

거부할 이유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악마의 장난을 거절할 이유 따윈 없으니까.

‘이 정도면 시안의 인생도 나쁘지는 않겠군.’

세상의 앞날이니 뭐니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하루를 위해 일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악마와 논다.

충분히 보람 있는 인생이 아닌가.

2장 - 내가 아카데미의 천재?

제국 아카데미의 학장실.

아카데미 본 탑의 최상층에 위치한 방의 주인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학장 필레프 팔레네우스.

“끄응, 나이를 먹으니 이 짓도 좀이 쑤셔서 못 해 먹겠군.”

쥐고 있던 펜을 놓고는 찌뿌둥한 목을 푼다.

아카데미의 서류 업무만을 처리했는데도 벌써 해가 저물었다.

곧 새 학기가 시작되기도 하고 신입생을 받는 해이기도 하여 처리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작년과 비교하면 업무량이 배는 되는 거 같군.”

쌓여 있는 양피지의 더미를 흘겨보며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똑. 똑.

그때 누군가가 학장실 문을 두드렸다.

아는 기척이다.

“들어오게. 멕젠 교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늦은 밤에 찾아온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며 교수복 차림의 사내가 발소리도 내지 않도록 조심하며 들어왔다.

멕젠 리켈드.

공용 마법 클래스의 학과장이자 교수 중에서도 실력파로 손꼽히는 사내.

“멕젠?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보고와 함께 개인적으로 여쭙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만.”

“흠, 상관없네.”

아마 무슨 일인지도 대충은 짐작 가는 바다. 학장은 잠시 궁리 끝에 선수 치듯 물었다.

“신입생에 관한 일인가?”

학장을 포함하여 교수들이 이 늦은 시간까지 좀처럼 쉬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겠지.

다만 멕젠이 보고한 것을 들은 학장은 의외라는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신입생 중 한 명이 악마를 불러낸 모양입니다.”

“허어?”

기껏해야 누가 무슨 사고를 쳤네, 정도로 생각했다.

“악마라니……. 대체 어떤 아이가?”

“흑마법과의 시안이라는 신입생인 듯합니다만.”

“흑마법과? ……그렇군. 올해는 그 과에도 신입생이 있었지.”

10년 만에 들어온 신입생이니 학장의 머릿속에도 시안이라는 이름은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분명 제국의 동부 출신 평민이었지?

“악마라니 누군가 가르친 것인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아직 수업은 시작되지도 않았고, 흑마법과의 커리큘럼에서도 소환은 4개월 뒤에나 가르칠 일입니다만.”

하물며 흑마법 길드에서도 소환 마법은 지도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흑마법과 교수는 다니엘 그 친구였지?”

“다니엘 교수는 아직 신입생과 마주친 적도 없습니다.”

“그거 들으면 어지간히 기뻐하겠군.”

지도한 적도 없는 지식을 활용하는 신입이라니 유망하기도 하지. 학장은 시원스레 웃어넘겼다.

“제국법 위반 여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우선 악마와의 계약 여부도 그 신입생 본인이 직접 통보했기에.”

“그럼 되었지.”

놀랄 일이지만, 교칙상으로도 제국법으로도 저촉되는 일이 없다면 지적할 것도 없다.

시안의 악마 소환 여부에 관해서는 아카데미 측은 더는 언급할 이유가 없다.

학장이 직접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멕젠은 수긍하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물러날 낌새가 없는 건 아직 용건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

“이번 신입생의 인선에 관해서입니다만.”

“흠?”

“교수들 사이에서도 제법 의문의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흑마법과에 입학한 신입생부터 시작하여 이번 기수의 학생들은 입학하기 전부터 이미 화젯거리가 되고 있었다.

다른 때보다 유학생의 숫자도 많았고, 하나같이 제국에서도 주의해야 할 인물들뿐.

재능이라 판단하기엔 위험한 특성을 지닌 학생부터.

심지어 현재 제국과 분쟁 중인 적국에서도 유학생을 받은 것이다.

우연인가?

아니면 의도적인가?

적어도 과거에는 없었던 일이다.

“이번 기수의 인선에 폐하께서 직접 승인하셨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만.”

“글쎄……. 이 늙은이의 입으로 어찌 말하겠는가?”

부정은 하지 않는다.

“폐하께서 몇 번이고 기대 어린 당부를 하신 것은 사실이지.”

“그렇습니까.”

그 답이면 충분하다는 듯 멕젠은 더는 묻지 않았다.

“역시 그 예언 때문이군요.”

신입생의 인선에 황실이 주의를 기울이기까지 한 이유.

그것에 대한 소문도 이미 어렵지 않게 들을 정도로 나돌고 있다.

“구세주가 될 싹이 배움의 터에서 싹트리라…… 였던가.”

“분명 대성녀께서 직접 받으신 신탁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정작 그 할망구는 계시란 것만 턱 내놓고 다른 말은 하지 않는 게 귀찮은 점이지.”

덕분에 일거리만 늘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인선만 골라 넣은 기수에 그에 따라 제국 각지에서도 문의나 쓸데없는 관심이 들끓는다.

틀림없이 계시를 의식한 것은 사실이겠지.

“교수들에게는 쓸데없는 소문 따위에 귀 기울이지 말라고 전하게. 어차피 오락가락하는 할망구의 헛소리다.”

“대성녀의 계시를 그리 말씀하시는 건 학장님뿐입니다만.”

“이곳의 본분은 재능을 가진 인재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뿐이네.”

어디까지나 본분만을 강조하며 괜한 사견에 휘둘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렇다면 만일의 경우 책임은 학장님께서 지는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허헛! 무슨 말인가. 책임은 다 같이 져야지.”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