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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9화 (9/389)

제9화

9화

아카데미의 첫 수업이 시작되는 날의 하루 전.

‘이제 남은 일은 그것뿐이군.’

첫날에는 나를 거들어 줄 악마를 소환하였다.

둘째 날에는 앞으로 지낼 거점의 정비를.

그리고 셋째 날에는?

‘남은 건 자금이군.’

활동비.

마법 계통의 클래스는 돈이 든다.

연구나 다양한 교재를 사들일 비용. 거기에 공방의 유지비.

‘그 외에도 필요한 비약이나 혹은 아티팩트 등을 사려면 돈이 필요해.’

물론 당장은 밥을 배불리 먹고 최소한 이곳에서 생활할 자금을 모아야 한다.

‘아직 이 시기에는 돈을 벌 기회가 썩 많지 않아.’

어느 게임이든 가장 자금이 궁한 시기는 막 게임을 플레이하는 초반부.

사냥을 해도 포션 값이나 간신히 건질까 말까 하는 벌이 정도가 고작이지.

‘비약적으로 돈을 불릴 만한 콘텐츠는 아직 열리지도 않았을 테고…….’

무엇보다 괜한 모험을 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돈을 모을까?

‘이럴 때는 지극히 정석으로 해결해야지.’

그리하여 내가 시작한 작업은 바로 이것이다!

“설마 이번에는 포션을 만들자고 할 줄이야…….”

에밀리가 약간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기야 연금술에 조예가 있었지? 그럼 이상할 건 없네.”

그래도 조금은 흑마법사다운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하고 아쉬워하는 에밀리.

나는 무슨 헛소리냐고 코웃음을 쳤다.

“뭘 모르는 소리. 원래 마법 계통 수련의 가장 기본은 포션의 자급자족이거든.”

흑마법사로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유는 별것 없다.

기본적으로 포션의 시세가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전투적 밸런스를 위해서인지 처음부터 포션을 마음껏 사들이는 플레이는 어렵도록 해 두었지.

실제로도 포션 시세를 확인해 보니 어지간해서는 엄두도 나지 않을 비싼 가격이다.

“마법 클래스는 특히나 마나의 소모를 전제로 두는 직업이야.”

물론 동료들 중에 회복 스킬을 가진 녀석을 영입하든가 하는 방식으로 보완하는 게 정석.

“내 에너지 드레인으로도 회복할 수 있잖니?”

“그거 하나만 믿다간 패가망신할걸.”

별개로 보급 수단은 확립해 두는 게 정석이다. 특히나 연애 플래그가 시궁창인 흑마법 클래스는 더더욱 그 수단을 마련해 두는 게 필수.

“최소한 가장 저급 단계의 포션이라도 자급자족하는 게 정석이야.”

거기서 생각했다.

포션은 값이 나간다. 그러니 만들어 쓰는 게 훨씬 경제적.

그렇다면?

“반대로 팔아도 되잖아?”

마침 이곳은 쓸 만한 재료가 알아서 쑥쑥 재생하는 자연의 은혜가 가득한 숲이다.

물론 이곳에서 자생하는 소재는 다른 클래스에서도 채집하는 공공재이니까 독점은 안 되겠지만.

“적당히 채집하면 안 걸리지 않겠어?”

과욕만 부리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 까닭으로 포션이나 팍팍 만들자. 어차피 나 혼자서 만들어 봐야 티도 안 난다.

“우선은 지난번 식물에서 원료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포션의 핵심 재료가 되는 원액을 만들 거야.”

단, 잡초가 아니라 이번에는 정해진 약초를 엄선하여 추출한다.

《마력의 원액을 획득합니다.》

여기까지는 지난번과 똑같다.

다만 이 상태로는 섭식 소화 같은 스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섭취하기 어렵다.

농도가 짙어 독이나 마찬가지이고, 그대로 신체 밖으로 배출될 뿐.

“원액을 희석하고 별개로 인체에 해를 끼치는 독성을 중화하는 약재를 섞어야 해.”

게임에서도 포션 제조는 두 가지 과정을 거친다.

원액의 추출.

그리고 그 추출액을 또 다른 약재와 합성하는 것.

“그렇게 하면…….”

한차례 작업을 끝내자.

나무 병에 제법 그럴듯한 포션이 가득 채워졌다.

푸른빛을 띠는 액체가 찰랑거린다.

《기초 마나 회복 포션》

《등급 : C》

《효과 : 소량의 마나를 회복합니다.》

“생각보다 잘됐네!”

추출이 완벽한 덕인가.

연금 스킬이 기초 단계에 지나지 않아서 품질이 조악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쓸 만하게 만들어졌다.

“마나 회복 포션이구나.”

“포션의 시세는 기본적으로 마나 회복 계통이 가장 값을 쳐주거든. 희귀하기도 하고.”

스태미나 -> 체력 -> 마나 회복 순.

그 외에도 특수 효과를 지닌 포션도 있지만, 그건 내 능력으로는 제조할 수 없다.

스킬의 숙련도도 문제이지만, 재료가 없으니까.

“마나 포션이 가장 만들기 어려운 모양이네.”

“이걸 제조하려면 일정 이상의 마나를 다룰 수 있는 클래스를 습득해야 할 필요가 있거든.”

허들은 높은 편이 아니다. 공용 마법이든 흑마법이든 최소 1서클은 습득해 둘 것.

하지만 그건 게임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플레이어가 아니면 그 조건을 채우기 귀찮으니까.’

하나의 클래스만 파기에도 골치 아플 텐데 기초라고 해도 몇 개나 중복으로 전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마나 포션은 연금술사 중에서도 조제할 수 있는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돈이 된다는 거겠지.”

“그런데 아카데미 학생이 멋대로 여기 소재를 가공해서 팔아도 되는 거니?”

“악마 주제에 새삼스레 그런 걸 묻기야?”

따지자면 될 리가 없지.

공공재를 채집하여 사유재산화 하는 걸 누가 허락하겠나.

핑계를 대야지.

“있잖냐. 어디까지나 지금 내가 하는 건 포션 제조의 예습이야.”

“……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 에밀리.

나는 능청스럽게 아무 말 대잔치를 시작했다.

“아아~, 성실하기도 하지. 당장 가르치지도 않는 포션 제조법을 알아서 예습하다니.”

예습, 복습에 환장하는 교육열이 불타고 있습니다. 네, 너무 불타서 숯도 안 남았네요.

“그런데 연습으로 만든 포션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되네? 두면 상할 테고. 너무 먹으면 몸에도 안 좋잖아? 앗! 이 김에 한번 포션 시세나 알아보러 가 볼까?”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게 아니다.

학구열을 불태우고 남은 잉여물로 제국 사회의 경제를 체감하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닌가.

“……라고 둘러대면 어떨까? 통할까?”

“시안은 100년 전이었으면, 틀림없이 화형대에 오르고도 남았을 거라고 생각해.”

“흥. 시대가 다르니까 상관없어.”

어차피 아카데미 측에서도 푼돈 벌이 정도는 묵인할 것이다.

그 증거로 제국 아카데미의 규정에는 노골적으로 그 틈을 파고들 허점들이 존재했다.

‘생활비 문제 때문에 암묵적으로 눈감아 주는 거겠지.’

차라리 비리를 해결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일개 소심한 흑마법사지 혁명가는 아니다.

“어쨌든 지나치게 해 먹지만 않으면 걸리지는 않아.”

그러니 쫄 필요 없다.

“이제 슬슬 용돈이나 벌러 가자.”

“어디로?”

“뻔하잖아. 시내로 나가야지.”

그렇지 않아도 이런 오두막에서만 시간을 보내니 몸이 근질거린다.

에밀리 덕에 심심하지는 않아도 역시 한창 젊은 아이들은 풀 냄새보다는 속세의 지긋지긋한 향에 끌리는 법.

“뭣보다 고기가 먹고 싶어.”

아무래도 수렵까지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그것만은 할 수 없었거든.

딱딱한 빵만 먹는 것도 이젠 질린다.

응, 이 포션만 팔면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어.

반드시 비싸게 팔고 말리라!

* * *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용돈벌이를 할 수 있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아카데미 측의 의뢰로 일하든가 또 하나는 아카데미에 직접 납품하는 것.”

예를 들어 포션이라면 아카데미에서 회수해 가고 일정분의 금액을 준다.

혹은 대장장이 같은 기술자의 경우는 아카데미와 계약한 공방에서 하는 소소한 ‘실습’을 통해서 나름의 대가를 받기도 한다.

“다만 돈이 별로 안 돼.”

당연히 제값을 받을 리 없겠지.

게임 내에서도 거래나 실습을 수행할 경우 들어오는 금액은 매우 적은 편.

“어떤 세상이든 젊은 애들을 부려 먹어서 할당량을 채우고자 하는 심보는 똑같다는 뜻이지.”

“그 점에서 악마는 정직하지 않니? 받은 대로만~ 또는 기분에 따라서 서비스도 해 줄 수 있고.”

“……그렇게 말하면 인간으로서 심정이 아주 복잡해진다만.”

“어머? 그럼 우리 시안은 장래에 악마나 리치 같은 게 되면 어떻겠니? 이 누나가 추천할게.”

“지금 에둘러서 나보고 죽으라고 하는 거야?”

거참 무섭네. 우리 악마 누나.

하여튼 정직하게 내가 제조한 포션을 아카데미에 납품하면 그다지 돈은 되지 않는다.

요컨대 고기를 못 먹어.

“하지만 잔머리를 굴리면 저녁에 고기를 먹을 수 있지!”

제값을 받고 싶으면 그만큼의 돈을 줄 만한 곳에 납품을 하면 된다.

제도에 자리 잡은 상업 구획.

거기에 있는 가게들 중 학생들을 상대로도 납품을 받아 주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암묵적으로 매입을 허용해 주는 곳이 있다는 소리.

‘게임에서도 번듯하게 이용되는 거래용 상점이고.’

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지금보다 조금 나중에 알게 되는 매입 루트인 셈이다.

아카데미의 선배들과 친해지고 그 선배들이 알려 주는 정보가 바로 학생들과 거래해 주는 가게에 대한 명단이다.

‘나는 미리 알고 있으니 선배들한테 재롱을 안 부려도 되고~.’

물론 그쪽이라고 늘 정직하게 매입해 주는 것도 아니고, 때에 따라서는 호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라면 괜찮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단 포션을 매입해 주는 가게로 갈 거야.”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거래를 해 주는 가게는 대부분 제도의 중앙에 위치한 상업구에 있다.

제법 넓고 길이 복잡한 도시지만, 게임을 플레이할 때의 맵과 기억을 되새기면 어떻게든 찾아갈 수 있다.

‘……게임과 느낌은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르구나.’

이질감.

내가 게임으로 기억하는 제도의 거리는 그저 모델링과 규칙성을 가진 NPC가 배회하는 풍경이었다.

그것과 다르게 지금 ‘시안’이 된 내가 보는 풍경은 그런 인공적인 느낌이 싹 빠졌다.

여러 가지 소리가 뒤섞이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 간다.

‘마냥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가벼이 여길 건 아닐지도 모르겠군.’

뭔가 근질거리는 감상에 빠질 즈음이었다.

내 주의를 다시 환기시킨 건 옆에서 들리는 에밀리의 목소리.

“시안~! 시안~! 자, 이쪽 좀 볼래?”

“응? 한눈팔다가는 괜히 부딪혀서 소매치기 당하기 십상……. 읍!”

무슨 일인가 싶어 내가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내 말을 막은 것은 입 안에 들어오는 뭔가.

뜨끈하고 살짝 짜다.

“우으으으읍?!”

무슨 짓이냐고 웅얼거리며 나는 에밀리가 기습적으로 내 입안에 처넣은 꼬치를 씹었다.

“음~ 음~. 역시 아직 한창때 소년이니까 먹을 거로 길들이는 게 훨씬 간단하려나.”

누굴 먹을 걸 주면 따라가는 꼬맹이로 아나.

“우물……. 그보다 이거 어디서 났어?”

“시안, 네가 한눈파는 사이에 잠깐.”

에밀리는 근처의 노점을 가리켰다.

“돈은?”

“걱정하지 말렴. 싸게 흥정했으니까.”

“매료 쓴 건 아니지?”

뭐, 썼으면 내가 먼저 알아차렸을 것이다.

“인간은 단순하거든~. 적당히 친한 척 미소로 말만 걸면 얼마든지 흥정이 된다니까.”

요령이 좋은 악마씨로군요.

덧붙이자면, 아마 에밀리에게 꼬치구이를 판 노점상은 자기가 악마한테 음식을 팔았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에밀리는 날개와 뿔 같은 것은 감춰 두고 오로지 제 발로 내 보폭에 맞춰서 나란히 걸어 주고 있다.

마치 인간 행세를 하는 것처럼.

그럴 필요 없이 모습을 감추는 요령도 있지만, 어쩐지 에밀리는 직접 나를 따라다니는 쪽을 택했다.

“시안 혼자서 걷는 거보다 이렇게 같이 다니는 쪽이 훨씬 즐겁지 않겠니?”

에밀리는 내 팔을 끌어안듯 당기며 걸음을 재촉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도시에 관광을 온 누나와 인상 찌푸리는 남자애 정도로 보이겠군.

“봐 봐. 다들 얼마나 무섭게 노려보는지.”

“……뭐, 이해 못 할 건 아닌가.”

즐거운 척 떠들며 먹을 걸 사 먹고 찰싹 달라붙어 돌아다닌다.

행인들 중 누군가가 “딴 데 가서나 해라…….”라고 희미하게 혀를 차는 게 보였다.

뭐, 자랑하는 거 같아서 싫지는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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