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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21화 (21/389)

제21화

21화

컨디션이 나쁠 때야말로 본성이 튀어나온다고 하지.

나는 그럭저럭 얌전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뻗어 있었거든. 쥐 죽은 듯이.

‘……움직이기도 귀찮으니까.’

눈만 감은 채 이런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인다.

‘새 포션을 케롯 씨 가게에 가져다줘야 생활비랑 예산도…….’

슬슬 생각하는 것도 느려진다.

그대로 한숨 잠들고 났을 무렵이었다.

…….

얼마나 잠들었을까.

다시 희미하게 사고가 돌아가고 주변의 소리도 어렴풋하게 들린다.

좀 적응이 되었는지 마나의 증폭에 의한 부담도 한결 덜어진 것 같았다.

“……안 좋아 보여. 괜찮아? 시안?”

누가 있나? 에밀리? 그러나 조금 기척이 다른데.

서툴다.

조심스레 내 이마 부근은 매만지는데 간지럽다.

“됐고, 물 좀…… 줘.”

영 머릿속이 잘 돌아가지 않아서 우선 수분이라도 섭취해야 할 거 같다.

“무, 물?! ……어디 있어?”

뭐 하는 거람.

이상하게 허둥거리는 기척. 그러나 곧 내 머리를 받치고 뭔가 입에 가져다 댄다.

컵치고는 묘하네.

미지근하면서 뭔가 말랑거리는 게 입술에 닿는다.

뭐지?

의아하지만 제대로 입안으로 물이 흘러들어 오기에 나는 우선 그것부터 목으로 넘기고 눈을 떴다.

수분이 들어오니 이제야 좀 눈이 떠지네…….

“……웁?”

순간, 물을 뿜을 뻔했다.

생각해 보면 위화감은 있었지. 그 눈치 빠른 서큐버스치고는 묘하게 서툴렀다.

“일어났어?”

어쩐지 조금 쑥스러운 듯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셀리디아.

그럴 만도 하다.

어째서인지 셀리디아는 내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는 다른 한 손을 내 입가에 대고 있었다.

어쩐지 그 작은 손에 담긴 물이 내 입가에 흘러들어 오는 중이고.

……이거 신종 고문인가?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아니,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물…… 달라고 했잖아.”

셀리디아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 잘 몰라.”

“그래서?”

“정령술을 쓰면 소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것 참 놀라운 발견이네.”

거기에 셀리디아는 정령의 키메라다. 정령이 원소를 불러들여 물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셀리디아도 그 이론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물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거군.

“그런데 왜 손바닥에서…….”

“당황했어.”

당황하면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먹이는 건가.

뭐, 아직 요령이 서툴러서 공중에서 물을 불러내다간 정말로 물고문을 시킬까 염려한 거겠지.

‘근데 생각해 보면 이거 좀 미묘한 광경 아닌가.’

소녀의 손바닥에서 우러나온 물을 할짝할짝.

어째서 배덕감이 느껴지는가?

“……시안?”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왜 셀리디아 네가?”

“걱정되어서.”

별다른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네 악마한테 들었어.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단순히 근육통 같은 거야. 것보다 에밀리 그 녀석은 대체 뭔 설명을 한 거야.”

보아하니 에밀리는 뒤편에서 히죽거리는 느낌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일부러 그랬군.

‘뭔 생각이야?’

(걱정 말렴. 이 누나가 적당히 잘 이야기해 놨으니까.)

‘그러니까 뭘?!’

추궁하기도 전에 멋대로 잠수를 타 버리는 에밀리.

한편 그런 나를 두고 셀리디아는 “정말로 안 좋은가 봐.”라고 중얼거리면서 고민하고 있다.

“아니…… 일단 상태는 나아져서 괜찮은데?”

“안색이 안 좋아. 새하얘.”

“그건 타고 난거야.”

“머리도 새까매.”

놀리는 거냐?

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흑마법을 수련하는 이들은 약간 혈색이 창백한 느낌이 난다고 한다.

마기의 영향인지 아니면 적당한 설정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요컨대 나는 평생 동안 선택할 수 없는 몸이다. 염색도 안 되고.

죽었다 깨어나도 금발과 태닝은 못 하는군.

“괜찮아. 오늘은 내가 도와줄게.”

“음?”

“그러려고 왔어.”

어쩐지 셀리디아는 자신만만하게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말하면서 내 머리를 다시 베개에 누이고는 토닥였다.

“은혜.”

“은혜?”

“도와주었으니까 나도 조금은 도와줄게.”

그렇게 말해 버리면 내쫓아 버리지도 못해서 참으로 뭣하군.

도와준다고 했지만, 셀리디아가 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적당히 가져온 먹을 것을 먹여 주거나 약간의 자질구레한 잡일을 거드는 정도.

그것도 대부분은 내가 뒹굴뒹굴한 탓에 할 일이 많이 없을 터.

요컨대 주로 나를 지켜보는 게 전부일 것이다.

“심심할 텐데 그냥 돌아가도 되거든?”

“괜찮아.”

이리 고집스레 말하며 고개를 젓고는 나를 내려다보는데.

어째 그게 조금 낯간지럽군.

“자도 돼. ……재워 줘?”

“내가 애기냐.”

적어도 댁보다 까마득한 아저씨인데 말이죠.

“……이미 한잠 자고 난 뒤라서 눈이 쉽게 안 감기니까 이야기나 좀 하자.”

“응.”

해야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셀리디아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것.

대부분은 적당히 머리를 굴려 짜낸 핑계고, 셀리디아도 적당히 납득한 모양이다.

“딱히 더는 내가 지도해 주고 뭐고 할 것도 없으니까. 나머지는 스스로 분발하도록.”

“이제 오지 말라는 뜻이야?”

“딱히 그런 건 아니야.”

어쩐지 귀가 살짝 접히는 것 같아서 정정했다.

“놀러 오든 무엇을 하든 마음대로 하라는 거야. 뭐…… 일단은 친구 같은 느낌으로?”

“……친구.”

음? 이렇게 말하는 게 조금 아니었나?

하지만 셀리디아는 곧 안도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알았어. 언제든 올게.”

언제든…… 인가.

본래의 게임대로라면 있을 수 없는 말이겠지.

내가 본래의 운명대로 악당 짓을 한다면 그녀와의 관계는 썩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내가 주인공의 검에 관통해 죽어갈 때도 그것을 당연한 응보라며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는 이들 중 한 명이었을 테니.

‘적어도 한 명 정도는 사망 플래그에서 벗어났다고 쳐도 되겠지.’

응, 응, 그편이 훨씬 바람직하고말고.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마. 셀리디아.”

“응. 시안.”

* * *

시안의 화려한 아카데미 생활 35일째.

“훌륭하네! 아주우우우우우 훌륭해애애애애!”

짝. 짝. 짝.

찬사와 박수 소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다지만, 이 정도면 바닥에 머리를 박고 브레이크 댄스라도 춰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고래 죽는다.

진심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연금술 과목의 교수는 몇 번이고 박수를 쳤다.

“아주 훌륭하네! 시안! 훌륭한 결과로군!”

당연히 그 대상은 나고.

오늘의 수업 과제는 연금술을 이용한 약품의 조제였다.

‘솔개의 날개깃’이라는 이름의 버프 포션인데, 효과는 일시적인 민첩성의 증가.

《솔개의 날개깃》

《아이템 등급 B랭크》

《높은 완성도로 인해 추가 효과가 붙었습니다.》

조금 솜씨를 부렸을 뿐이다.

“과찬일 뿐입니다. 어디까지나 조합표대로 조제했을 뿐이니까요.”

“그 조합의 감을 잡는 게 쉽지 않은 것이네!”

그러나 교수는 내 겸손 어린 말에도 칭찬을 거두지 않는다.

“연금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아는가?”

연금술 특히 약학의 비법.

그 교수는 이리 말한다.

“감일세.”

레시피는 정해져 있다.

최근의 연금술은 어지간한 레시피가 다 공개되어 있어서 최소한의 자격만 입증하면 누구나 참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금술은 그것을 다루는 자에 따라 결과가 뒤바뀐다.

왜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레시피를 뛰어넘는 감각일세.”

무슨 설탕 대충 한 숟갈 넣으세요, 같은 소리일까.

어이없는 말이지만, 꽤 핵심을 짚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손빨이라는 거지……. 아니, 스킬과 레벨과 능력치의 빨이라는 건가.’

요컨대 실력.

그들에게는 정의되지 않은 스테이터스와 스킬의 반영 여부가 그 결과물의 성과를 좌우한다.

마치 무예가가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검을 휘둘러 그 감각을 극소단위로 제어하듯.

연금술도 마찬가지다.

“듣던 대로 우수하군. 시안. 솔직히 자네가 연금술 클래스가 아닌 게 매우 안타까울 정도네.”

“감사합니다.”

《수업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교수의 찬사와 그 결과로 들어오는 경험치.

‘개꿀이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하여튼 지금 내 생활은 매우 순조롭기 그지없었다.

* * *

아카데미의 신입생 중 가장 우수한 이를 세 명 꼽으라면 대부분의 교사와 학생들은 이들의 이름을 언급할 것이다.

학년 수석 엘시아 리올레이트.

지혜의 숲의 유학생 미셀 위스티닐.

그리고 검은 머리 흑마법사 시안.

‘검은 머리가 뭐야……. 이거 무슨 차별이냐? 그리고 주인공은 왜 또 없어? 걘 파업 중이냐?’

아무래도 주인공은 우등생 자리를 꿰차는 데 실패한 모양이다.

하여튼 내 이미지를 우수한 학생의 반열에 올려놓는 데 제대로 성공했다는 뜻.

“인간은 시대를 불문하고 이렇게 우열을 나누는 걸 좋아하네?”

에밀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 머리카락을 제멋대로 쓰다듬으며 갖고 논다.

“악마도 다를 건 없잖아? 가진 힘이나 그리고 작위를 가진 놈들과의 위계는 명확하잖아.”

“조금 느낌은 다르려나? 악마의 서열은 어디까지나 가진 힘과 태생에 따라 존재하는 거고, 딱히 그걸 부러워한다든가 질투한다든가 하진 않아.”

그렇게 말하며, 에밀리는 콕콕 내 볼을 찌르면서 슬쩍 주변을 가리킨다.

다른 학생들의 시선.

“타인의 존재를 질투하는 건 인간뿐이란다.”

“……것보다 쟤네 질투의 시선의 태반은 다른 이유 때문인 거 같은데.”

“어머?”

시치미를 떼는 에밀리.

그야 대놓고 공공장소에서 착 달라붙어서 부대끼는 꼴을 봐라.

‘우등생이긴 한데 종잡을 수 없는 우등생이라.’

지금의 나. 시안의 평가를 자세하게 들으면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인물상이 그려진다.

모든 수업에서 거의 완벽한 성적을 거둔다.

매사에 침착한 성격과 해박한 지식으로 교수들의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시안을 대부분의 학생은.

‘어려워한다.’

기존의 흑마법사의 이미지 탓도 있지만,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천재.

거기에 보일 때마다 대체 누군지 모를 미녀를 옆에 대동하며 다니는 모습을 보이니 아무래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뭐, 반쯤은 일부러였지만…….’

한때는 프렌들리한 모두의 친구 시안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볼까도 고민했다.

그러나 기각한 것은 나라는 인물의 존재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우려된다는 것.

‘자칫하면 어떤 오지랖을 떨어야 할지도 모르니…….’

친목도란 결국 이벤트 발생의 조건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불러올 수 있다.

“……가엾은 우리 계약자. 하는 수 없네. 이 누나가 많이 놀아 줄 수밖에 없겠어.”

장난스레 놀린다.

“그것보다 시안, 최근에 계속 아카데미에서 공부만 했잖니? 조금은 사역마에게 서비스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까놓고 말해 심심하시단다.

“네, 네, 어차피 주말에 케롯 씨 가게에 포션 좀 넘기러 갈 생각이었으니까. 것보다 악마 주제에 시내에 나가서 뭘 하려고?”

“후후후, 시안이 열심히 공부하는 사이에 이 누나가 다른 애들의 이야기를 엿들어서 뭐가 있는지 다 알아봐 뒀거든.”

……왜 나보다 더 노는데 의욕적일까.

계약한 지 한 달이 넘어 상당히 적응된 것인지 에밀리는 인간 세상의 이것저것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

뭐, 친구 없는 불쌍한 이 소년은 서큐버스 누나가 놀아 준다는데 뭘 사양하겠나.

‘그렇다고 정말로 인간관계가 삭막한 건 아니고.’

마침 거기까지 생각했을 무렵, 양반은 못 되는지 그녀가 불쑥 튀어나왔다.

“시안.”

셀리디아 밀로닐.

정령술 클래스의 학생이자 본래라면 게임의 히로인이었을지도 모를 소녀.

“시안, 시안.”

“……듣고 있어. 것보다 기척 숨기고 책상 아래에서 튀어나오지 말아 줄래? 보통은 놀란다고.”

“불러서 반응을 안 하는 시안이 나쁜 거야.”

이전에 한 번 거리감을 둬 볼까 싶어서 슬쩍 반응을 하지 않았더니 토라진 모양이다.

“그리고 들었어.”

“듣다니?”

“나도 갈래. 시내에.”

아무래도 나와 에밀리가 이야기를 나눈 게 고스란히 들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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