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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29화 (29/389)

제29화

29화

나는 시안과 안시한, 두 인간의 기억과 감각이 뒤섞인 상태다.

환영이 그대로 새로운 형태를 갖춘다.

뭘까…….

어떤 여성의 모습을 하는군. 적어도 안시한의 기억은 아니다.

시안의 것인가.

그 여성은 어쩐지 가엾게 여기는 말투로 시안의 이름을 부른다.

(시안…….)

“야, 뉘신지는 모르겠는데 누구 허락을 받고 내 이름을 함부로 불러?”

코웃음을 치며 마법을 쏘아 그대로 박살 내 버린다.

당황한 듯 환영의 움직임이 멎었다.

‘역시 재현하는 건 시안의 기억 쪽인가.’

아무래도 다른 세계의 기억을 재현하는 건 절망의 거울의 능력으로도 어렵겠지.

하지만 시안의 트라우마를 재현해 봐야 내게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나는 시안보다는 안시한 쪽의 의식이 더 강하니까.

“아무래도 내가 천적인 모양이군.”

흥, 악마가 실직하는 대한민국 출신의 멘탈의 맛이 어떠냐!

“……이대로 제가 이걸 상대해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나는 주저앉아 있는 리제타에게 돌아보지 않은 채 그저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선배.”

내가 해치워 줘도 상관은 없었다.

원래부터가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미 리제타는 저 거울에 접촉하고 한 번 패배했다.

여기서 내가 전부 해결해 주는 게 옳은가?

‘단편적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리제타는 주저한다.

“저 거울한테 무슨 말이라도 들었습니까?”

짐작은 간다.

게임에서도 어떤 식으로 몰아세웠는지 짐작할 뉘앙스는 차고 넘쳤으니까.

(그 인간을 동정해도 의미는 없을 거야.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어디까지나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이곳에 뛰어들었으니.)

“그게 뭐 어쨌는데?”

나는 코웃음을 치며 반문한다.

환영이 입을 다문다.

뒤에서 멍한 시선이 느껴진다.

“명예와 자신을 위해? 당연하잖아. 그 전에 그런 이유로 노력하는 게 인간적으로 맞는 거 아닌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지.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고 어리석어야 인생이 화려하게 꽃피는 법이야.”

게임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살던 세상과도 맞아떨어지는 것이니까.

다른 말로는 그것을 향상심이라고 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것이 도를 넘어 파멸하고.

성숙한 자는 그것을 조절하여 자신의 인생을 가꾼다.

“리제타 선배는 이런 환영이 하는 말 따윈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는 그대로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알고 있다.

살아남은 리제타는 변하지 않고 자신의 검기와 목적을 갈고닦아 대성한다는 것을.

“이딴 거 후딱 베어 버리고 보상을 팍팍 챙기자고요.”

“하지만 검은…….”

“하핫! 그럴 줄 알고.”

나는 챙겨 온 짐에서 두 자루의 검을 꺼내어 리제타의 앞에 가볍게 던져 놓았다.

묵직한 쇳소리.

그녀가 휘두르던 것과 비슷한 길이의 두 자루의 검.

“도우러 온 녀석들에게서 뜯어…… 아니, 적당히 빌렸습니다.”

왠지 필요할 거 같아서 말이지.

“눈대중으로 빌려 온 거라 쓰던 검과 다르니 손에 잘 안 맞겠지만…… 뭐, 부족한 감만큼은 제가 거들어 드리죠.”

여기까지 챙겨 주어도 싸우지 못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움직이는 기척이 들린다.

내가 놓은 검을 쥐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어떤 모습인지 알 것 같다.

“……덧붙여 분배는 제가 살짝 더 챙겨가도 되죠? 이렇게까지 도와드렸으니까요?”

“이런 때에도 그것부터 말하는 거니? 후배 성격 한 번 지독하네.”

“제가 욕심 하나는 끝내주는 편이걸랑요.”

천천히 나를 제치고 걸어 나온 리제타가 검을 겨누고 앞에 선다.

환영은 더는 말이 없다.

지껄여 봐야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

환영은 리제타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만들어 내며 그녀와 같은 검술의 자세를 취한다.

“말해 두지만 속을 필요가 없습니다.”

“알아……. 창피하지만 이젠 알 거 같아.”

리제타는 씁쓸한 목소리로.

“저건 제대로 흉내조차 못 내는걸.”

“고작 기억을 조합하여 그럴듯한 상대를 꾸며 내는 것일 뿐이죠.”

기억 속의 인물의 외형을 구사했을 뿐 정말로 리제타 아버지의 검을 재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 거울의 능력의 한계다.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을 겁니다.”

“응.”

짧게 대답하고는 리제타는 돌진했다.

마찬가지로 환영 역시 같은 타이밍으로 뛰어들며 검을 휘두른다.

각각 두 자루.

총 네 개의 검기가 휘둘러지며 현란하게 몰아친다.

까가가각가강!

공기를 찢으며 쇠끼리 부딪쳐 난폭한 굉음이 울리고, 말 그대로 살벌한 검의 결계가 휘몰아친다.

저 안에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갈가리 찢겨 형체도 남지 않으리.

‘리제타 홀로 싸웠을 때 승률이 반반이었나…….’

체력을 소모했고,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휘두르는 검도 빌려 왔기에 조잡하다.

부족하겠지.

‘지원해 준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그 값을 해야겠군.’

흑마법으로 지원을 한다.

주로 리제타의 검기의 사각을 보완해 주기 위한 가벼운 일격이나 상대를 방해하는 효과를 지닌 마법 위주로.

(……!)

환영은 성가시다는 듯 나를 향해 적의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공격해 오지는 못한다.

틈을 노려 나를 향해 검기를 날리려고 해도 딱 맞춰서 방해하듯 리제타의 검이 맞부딪히며 상쇄했으니.

“불쌍하네?”

나는 환영을 향해 비웃음을 지어 주었다.

본래라면 이렇게 약하지 않을 것이다.

던전이 완성된다면, 보다 강력한 효과로 도전해 오는 인간들의 마음을 무너트리는 고약한 시련이 되었겠지.

“미숙한 건 너였구나. 절망의 거울.”

패드립을 특기로 삼는 녀석들은 역으로 당하는 도발에 약하다.

내 조롱에 발끈하기라도 한 듯 환영은 무리하게 나를 노리려고 한다.

그게 빈틈이 되었다.

녀석이 휘두른 검이 튕겨 나가듯 위로 솟구쳐 오르더니 그대로 부러진다.

그 빈틈을 파고든 것은 리제타.

몸을 낮추고 그대로 돌진한 그녀의 검에 환영이 꽂힌다.

“끝이야.”

정확히 꽂힌 검기가 터진다.

-쌍검술. 이폭섬(二爆殲)

관통과 검기의 폭발을 이용한 추가 대미지가 특징인 검술.

콰아아앙!

응축된 오러가 충격을 발산하며 그대로 환영을 날려 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날아간 환영이 부딪힌 것은 본체인 절망의 거울.

“역시 해치우려면 한 번에 박살 내는 게 가장 정석이긴 하지.”

막타는 못 참는다.

“제가 끝내도록 하죠.”

마나를 끌어올린다.

마기로 변환된 에너지가 넘실거리며 단번에 임계점에 도달한다.

“한 방에 끝내 버리자. 에밀리, 제대로 된 주문 한 방 부탁해.”

“……그걸 쓰려고?”

“당연하지.”

단번에 끝내야 한다.

내가 현재 구사하는 최고 위력의 마법을 퍼부어도 몇 번은 더 캐스팅해야겠지.

그러니 단 한 방에 끝낼 수단을 쓰겠다.

“한 번 밖에 연습 안 했잖니?”

“그 한 번이면 충분해.”

그리고 단 한 방에 끝내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을 것 같다.

자존심. 오기.

그런 감정을 눈치챈 에밀리가 못 말리겠다는 듯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럼 사양 않고 혹사시켜 줄게.”

에밀리는 두 손을 뻗으며 집중한다.

나 역시 마기를 발산하며 그것을 있는 대로 그녀에게 보내 전부 때려 넣는다.

‘마법 캐스팅을 내가 아닌 에밀리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거야.’

발상의 전환.

본래 흑마법이란 악마가 쓰는 마법에서 착안하여 인간의 것으로 개량한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쓰는 마법은 악마가 쓰는 것에 비하면 비효율적이지.

그렇기에 흑마법사들이 악마를 불러내어 괜히 지식을 갈구하는 게 아니다.

‘에밀리 역시 가진 힘이 강해지면 보다 강력한 힘을 쓰겠지만……. 지금은 아직 머나먼 일이고.’

그렇다면 내가 부족한 마기를 보내어 일시적으로 강력한 마법을 쓰게 해 줄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말 그대로 과용량.

마기를 전부 때려 넣고 부족한 연산도 내가 가진 스킬로 보조한다.

그렇게 하여 악마가 가진 지금의 역량 이상의 마법을 일시적으로 구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게임에서도 악마의 주 공격 스킬은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었으니까.’

까놓고 말해 에밀리를 포대로 삼아 가장 강력한 마법을 즉석에서 구사하도록 하는 것.

“없애 버려!”

영창이 끝난 것을 확인하자, 내가 신호하고 제어한 마기를 퍼붓는다.

마법진이 생긴다.

거울의 주변에 상하좌우, 모든 면을 메우듯 마기로 그려진 마법진이 펼쳐지며.

검은빛이 뿜어지고 그대로 구체의 형태로 가둔다.

단순한 마기가 아니다.

고열.

쇠도 가볍게 녹이는 열기를 띤 마기.

그것을 통해 가둔 채 그대로 압착시킨다.

-데몬 오리진 캐스팅.

-블랙 플라즈마 봄.

순수하게 위력만 따지자면, 5서클의 공격 마법에 견줄 만한 악마의 마법이 펼쳐지며 그대로 거울을 삼켜 녹여 버린다.

* * *

시끄럽게 떠들던 환영도 거울과 같이 녹아 쇳물이 되어 무너지자 던전 내부에는 고요만이 감돈다.

“해치…… 웠어?”

“여기서 그런 말을 하면 갑자기 부활…… 하지는 않겠죠.”

틀림없이 던전의 보스는 이걸로 끝장을 내었다.

게임에서도 절망의 거울을 쓰러트리고 그다음에 뭔가 새삼스레 튀어나오는 일 따위는 없었으니.

무엇보다.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평가 항목》

《1. 1페이즈의 클리어 -3pt》

《2. 던전 내 몬스터 30마리 이상 처치 -2pt》

《3. 던전 보스 ‘절망의 거울’의 토벌 -4pt》

《4. 리제타 벨케닐의 생존 -4pt》

《스킬 포인트 13pt가 지급됩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9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레벨업 보너스 스킬 포인트 15pt를 획득합니다.》

경험치가 쏠쏠하네.

“아…….”

한편 리제타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작은 소리를 내었다.

녹아 버린 쇳물 속에서 빛의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그 빛은 각각 두 개로 나뉘어 나와 리제타에게 쏘아졌다.

리제타에게 날아든 빛은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 사라지고.

내게 온 빛은 내 손바닥 위에서 머물다가 툭 떨어진다.

회색빛의 금속 결정.

각각의 공로에 맞는 보상이리라.

마신은 던전을 지상 침공의 일환으로 만들어 낸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그 던전을 격파하면 반드시 보상을 내려 주지.

여러 가지로 모순된 신이다.

‘그나저나 내가 얻은 것은 소재의 일종인가? 확인은 나중에 천천히 해 둘까.’

한편 리제타의 것은 딱히 형태가 없이 그녀에게 스며든 걸로 봐서는.

“혹시 스킬 같은 것입니까?”

“그런 모양이야…….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의아하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몸을 살피는 등 도통 진정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을 얻었는지 이해하고 그것을 다루려면 아마 시간이 걸릴 듯하다.

“축하합니다. 리제타 선배. 바라던 공적으로는 부족하겠지만, 이걸로 선배는 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것이니까요.”

목적의 달성. 끝이 아니지만.

분명 시작으로 삼기에는 충분하리라.

내 말에 리제타는 잠시 멍하니 자신이 쥐고 있는 검을 내려다보다가 나를 돌아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에타니올 제국의 중심.

단순히 제국의 지도를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제국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리라.

황성.

그 황성의 웅장한 건물들 중에서도 가장 높게 솟은 성탑.

그곳을 차지하는 것이 유일하게 허락된 이는 제국에서도 오로지 단 하나의 존재뿐.

“참으로 재난이었군. 필레프.”

위로하는 것치고는 그런 감정이 조금도 담겨 있지 않은 말을 건네며 그 유일한 자가 짓궂은 웃음을 띤다.

황제 엘피로크 멜 델레우로스.

옥좌 앞을 가로막은 천막 안에서 황제의 음성만이 흘러나온다.

이 나라의 모든 것을 가진 자이면서도 결코 그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은둔 황제.

그 실루엣만이 보이는 천막의 앞에서 아카데미의 학장 필레프는 조용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의 말을 경청한다.

“설마 아카데미에 던전이라니. 참으로 짐도 예상치 못한 사고였군 ……. 거기에다 공교롭게 자네가 자리를 비웠을 때라니.”

“다행히 아카데미의 교수들과 생도들이 우수했기에 이 늙은이의 힘은 필요 없었습니다.”

“짐도 참으로 기쁘게 생각하네. 우수한 생도들이 있다는 소식을 벌써 들을 줄이야.”

“황송할 뿐입니다.”

“……됐고, 짐이 듣고 싶은 것부터 말해 주게나.”

아카데미의 던전 출현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황실에 보고서가 신속하게 제출되었다.

경위를 알기 위한 조사는 이어지겠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빠짐없이 보고되었을 터.

그럼에도 황제는 직접 학장의 의견을 듣겠다며 그를 호출하였다.

“쯧, 경위니 뭐니 그런 건 관심 없다. 어차피 지난 일이고 던전의 비밀은 밝혀지지 않을 테니까.”

황제가 흥미를 보이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짐이 보고서를 읽고 부족하다고 여긴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

“인재.”

그는 딱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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