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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31화 (31/389)

제31화

31화

잠시 딴소리이지만.

나는 가능한 휴일은 골머리 썩히지 않고 보내자고 ‘시안’이 되자마자 맹세했다.

‘휴일에는 일 안 해!’

인생에는 휴식이 필요하지.

누워서도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은 사양하고 싶다.

그런 까닭에 나는 휴일만은 철저하게 지킨다.

아카데미의 수업은 주로 주 6일.

필수 과목은 그 6일 동안 고르게 분배되어 있고, 나머지 과목은 학생이 원하는 것을 신청하여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남은 1일은 휴일.

‘생각해 보면 이런 세계에서도 주 7일이라니……. 참 적당주의군.’

하여튼 그 귀중한 청춘의 휴일의 어느 날.

나는 거리로 외출했다.

당연히 혼자가 아니었다. 에밀리가 옆에 붙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뭐, 답례차 놀러 가자는 소리가 되어 버렸지만.’

이전에 셀리디아가 내게 시간이 나면 같이 외출하자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 약속을 실행하게 되었다.

답례의 개념으로.

메인 스토리 1장의 던전 출현 사건 때 나는 셀리디아의 도움을 받았다.

어디까지나 순수한 그녀의 의사만으로 나를 도운 것이다.

싹 모르쇠로 있기에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서 나는 셀리디아에게 답례로 원하는 게 있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셀리디아가 꺼낸 것이 이번 휴일에 같이 거리로 외출하자는 것.

‘굳이 이런 걸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데.’

물건이라든가 금화라든가 그런 걸 요구해도 되지 않았을까.

(시안은 뭘 모르네.)

모르긴 뭘 모른다는 거냐.

‘됐고, 방해나 하지 마. 에밀리.’

(어머? 왜 그런 짓을 하겠니? 오히려 오늘은 얌전히 지켜볼 생각이란다.)

어쩐지 흐뭇해하는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리는군.

(이왕 노는 거 내일 아침까지 얌전히 지켜봐 줄 테니까.)

‘헛소리 마! 당일 귀가할 계획이거든!’

하여튼 나는 약속대로 셀리디아를 데리고 제도의 거리로 같이 외출을 나갔다.

“……여기가 제도의 거리.”

내 옆에서 셀리디아가 고양이 귀를 까딱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마침 우연히 행인이 근처를 지나가자 셀리디아는 반사적으로 내 뒤편으로 자리를 옮긴다.

마치 새끼 고양이가 창문을 두드리길래 내보냈더니 처음으로 보이는 반응 같은 것.

“정말로 시내에 외출한 건 처음이었나 봐.”

“응. 나가 본 적은 없어……. 아카데미에 오거나 이동할 때는 마차 내에서만 있었으니까.”

셀리디아는 올해 열여섯 살.

첫 외출치고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닐까 싶지만, 그녀의 개인적 사정을 생각하면 별수 없는 일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셀리디아는 언제 자신에게 깃들어 있는 정령의 요소가 발작할지 모르는 리스크를 안고 있었으니까.

아카데미 내에서는 시설도 있고 어지간한 힘으로는 건물도 끄떡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간인이 많은 시내는 다르지.

셀리디아의 외출에는 허가가 필요할뿐더러 하물며 그녀도 그다지 바깥세상에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시 그녀는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테고.

“논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어.”

“휴일에는 뭐 했는데?”

“정령술의 이론을 계속 실습했어. 어떻게든 제어할 방법을 연습하고 궁리했고.”

“아……. 그거군.”

내가 이 녀석을 발견했을 때 마침 정령술의 제어 수련을 실패했던 광경을 떠올렸다.

그런 걸 반복하면 아무래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본래 시나리오보다 일찍, 그것도 너무나도 빠르게 요령을 익히고 안정되었다.

따라서 본래의 운명 당시에는 없던 여유가 생겼다.

“이젠 외출 허가도 받을 수 있어.”

“그거 잘됐군.”

그러나 막상 삶에 여유가 없던 사람에게 갑자기 여유 시간이 생기면 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하물며 제대로 바깥에 나돌아 다닌 적도 없는 이 고양이 귀 아가씨한테는 아카데미의 정문을 넘는 것도 혼자서는 주저할 일.

“시안, 정말로 괜찮아? 바쁜 거 아니야?”

“휴일에는 나도 딱히 할 일이 없어. 굳이 답례로 치기에도 미안할 정도인데. 따로 원하는 게 있다면 오늘 팍팍 요구해도 돼.”

“괜찮아. 이걸로 충분해.”

“뭐, 그럼 굳이 다른 말은 안 하겠지만.”

가능한 의향은 존중해 준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응! 다른 애들이 이야기할 때 들은 가게가 있어.”

“그럼 거기로 가 보면 되겠군.”

다만 걸어서는 조금 귀찮겠군.

제도는 넓고 하물며 여자애를 데리고 무턱대고 뿔뿔 돌아다니는 것도 못 해 먹을 짓이니.

“마침 잘됐군.”

“……응?”

“저거나 타 볼까?”

내가 가리킨 것은 마침 운행 대기 중이던 시내 전차가 몇 대 세워져 있는 정류장이었다.

이곳에서 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기본적으로는 마차 내지 두 발로 걸어 이동하는 것.

증기기관과 마력을 이용한 추진기나 독자적인 기계 공학도 연구되지만, 아직 민간에 보급할 정도는 아니리라.

제국에서 운행되는 열차도 기본적으로 제도와 각 대도시를 잇는 노선이 시범적으로 운영되는 정도.

그러나 기껏 있는 기술을 과시하지 않는 것도 아깝겠지.

그렇기에 제도에서는 시내 전체에 지상 노선을 깔아 두고서 전차를 운행하여 각 시내를 이동할 수 있게 하였다.

‘운행 수단보다는 관광 수단에 가까운 모양이니.’

어디까지나 보여 주기 식의 기술.

그러다 보니 시내 전차 역시 요금은 빈말로도 관광 목적이 아니라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

아마 운행 측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는지 편리한 이동 수단보다는 앉아서 제도의 거리를 이동하며 구경하는 별난 탈것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나는 평소라면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은 목적이 목적이니.

“이런 게 있다고는 들었어. 타 보는 건 처음이야.”

천천히, 느긋하게 이동하는 시내 전차의 안에서 셀리디아는 어쩐지 몸이 근질거린 듯 창밖을 흘깃흘깃 바라본다.

“신경 쓰지 말고 밖을 내다봐도 돼. 그게 목적이니까.”

“애…… 같잖아.”

“애 맞잖냐.”

“너보다 한 살 위야.”

“그러니까 애잖아.”

적어도 내 기준에서 보면 애다.

셀리디아는 잠시 주저하다가 체면을 잊고는 조금씩 이동하는 경치를 바라본다.

어쩐지 애들은 이런 거를 타면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법이니.

“대단하네……. 말도 마법도 쓰지 않고 바퀴가 알아서 굴러 가고 있어.”

“뭐, 황제 폐하께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시는 기술이니까.”

기관과 기계 등의 기술은 최근 황제의 적극적인 밀어 주기로 점차 그 존재감을 더해 가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제국은 후발 주자에 불과하지만.”

정작 기계 기술력에 한해서 제국은 그 이름이 부끄럽게도 후발 주자다.

정작 이 기술이 앞선 대표적인 나라는 따로 있다.

이전에 내게 시비를 걸어 얻어맞았던 멍청이 왕자 윌로트 말케니우스.

그 멍청이의 모국인 말케딜 왕국이 바로 그곳이다.

톱니바퀴의 왕국이라 불린다나.

“그쪽에는 더 대단한 게 많은 모양이더라. 그중 가장 걸작인 게…… 아……. 마침 보이는군.”

“응? ……어.”

그늘이 졌다.

구름이 낀 건 아니었다. 오늘은 마치 휴일을 즐기라는 듯 티 없이 푸른 하늘이었으니.

하늘을 가린 것은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물체.

“비행선…… 이었지?”

셀리디아도 교과서에 나온 정도로만 알고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정해진 시각과 날짜에 제도의 상공을 순회하는 관광용 비행 유람선.

“정말로 날고 있네.”

“……어. 정말이긴 하군. 저런 게 용케도 날아다니는군.”

셀리디아와 내가 놀라는 의미는 약간 다를 것이다.

그녀는 순수하게 저런 거대한 물체가 날고 있구나 하는 충격이고.

나는…….

‘이 시대에 저런 형태의 비행선이라고?’

내가 아는 현대 지구의 비행 역학의 상식을 엿 먹이는 광경에 대한 충격이었다.

비행선이지만 날개는 얇고 작다.

거의 정지되듯 천천히 상공을 순회하는 그 모습은 거의 배라고 비유하는 편이 좋겠지.

“저 배가 그 왕국에서 만든 거라더라.”

“제국에서는 못 만들어?”

“내가 알기론 아마 그럴걸.”

말케딜 왕국에서 친교의 의미로 선사한 것이 바로 저 비행 유람선.

저런 선물을 받고도 제국은 아직 제대로 된 기구 한 척 띄워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지.

대신 하늘을 포기하고 지상에 주력하기로 한 것인지 지금 타고 있는 전차들을 놓기 시작한 것이고.

“몇 번 멀리서 지나가는걸 보긴 했는데, 역시 커다랗군. 실제로 보면 더 거대한가.”

“시안은 저런 게 좋아?”

“굳이 따지자면 싫지는 않지.”

하늘을 누비는 거대한 기계의 배.

“왠지 폼 나잖냐.”

딱히 공중 유람에 로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탈것 자체에는 묘하게 사나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구나.”

어쩐지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해 두겠다는 듯 중얼거리지만, 아마 어림도 없을 것이다.

“뭐, 우리 같은 애송이들에게는 아직 어림도 없어.”

“비싸?”

“티켓을 공식적으로 판매하거나 하지 않거든.”

비행 유람선은 관광 상품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존재에 가까웠다.

정비 비용도 만만찮고, 기술자도 귀하다 보니 하늘에 띄우는 것도 달에 한두 번 될까 말까.

하물며 그때 이용하는 자들도 귀족들 정도니 우리 같은 애송이들과는 연이 없지.

뭣보다.

‘……저 배에 올라타는 것도 고생이니까.’

제6장.

게임의 6장 시나리오가 펼쳐질 무대.

까놓고 말해서 저것에 올라탈 즈음에는 관광이고 나발이고 신경 쓸 일이 없다는 소리.

‘아직은 한참 머나먼 일이지.’

지금은 2장의 사건이나 신경 써야 할 시기니까.

“……?”

“것보다 슬슬 도착할 거 같아. 내리자.”

“응.”

마침 시내 전차는 목적지의 정거장에서 멈췄고, 나는 먼저 일어서서 셀리디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그녀는 순순히 잡았다.

* * *

최근 제도 내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는 카페에 도착했다.

들어와서 적당한 자리를 확보하자마자 셀리디아는 눈을 반짝이며 메뉴판을 훑어보기 시작한다.

“소문을 듣고 꼭 와 보고 싶었어.”

“하긴, 혼자 오기에는 조금…… 깡이 필요할 곳이긴 한가.”

아무래도 분위기가 분위기이다 보니 혼자 들어오기에는 주저할 법했다.

하물며 다른 손님들을 둘러봐도 혼자 온 사람은 없었다.

죄다 둘 아니면 셋이니.

‘오히려 눈길은 이쪽이 끄나…….’

어쩐지 흐뭇하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에 뒤통수가 간지럽다.

“……왜 그래?”

“별일 아니야.”

잠시 기다리는 사이에 주문한 것들이 나왔고, 우리는 적당히 주변을 신경 쓰면서 디저트를 먹으며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업에 관한 것. 혹은 일상에 관한 것.

딱히 중요하지는 않은 그런 것들.

“…….”

“셀리디아?”

어쩐지 셀리디아는 내가 주문한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먹어 보고 싶냐?”

“……딱히.”

딱 봐도 그렇구먼. 다만 남의 것을 탐내는 것처럼 보이기에 망설이는 모양새.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별생각 없이 조금 덜어 포크에 찍어서 셀리디아에게 내밀었다.

“뭘 이제 와서 눈치를 봐. 지금까지 이것저것 먹어 놓고.”

“…….”

“왜?”

“……아니야.”

어쩐지 조금 놀란 눈치에 의아했지만 셀리디아는 곧 약간 멈칫하더니 내가 내민 것을 입을 벌리고 받아먹는다.

어쩐지 아기 새한테 모이라도 주는 기분이군.

“……그럼 시안도.”

“엉?”

더 달라는 건가? 그러나 그건 아니었으리라.

셀리디아는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자기 포크로 자기 몫의 것을 떠서는 내게 내민다.

“먹으라고?”

“싫어?”

“그것보다 다른 문제 같다만.”

왠지 창피한데요.

그제야 나는 조금 전 셀리디아가 멈칫한 이유를 이해했다.

거절하면 토라지겠지.

할 수 없이 조심스레 입으로 받아먹는다.

어쩐지 볼썽사납지 않나.

왠지 모르게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시선 같은 게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

“맛있어?”

“……뭐, 달긴 하네.”

젊음은 좋네. 이 정도 당은 아무렇지 않게 감당할 수 있으니 말이야.

“시안.”

“엉? 또 뭐 먹게? 난 사양하련다. 배 나와.”

“그런 거 아니야.”

어쩐지 깬다는 눈으로 흘겨보던 셀리디아는.

“무슨 일 있어?”

앞뒤 맥락 없이 가볍게 화제를 바꾸는 것처럼 묻는다.

“무슨 일이냐니…….”

“요즘 시안 바빠 보여.”

바쁘기야 하지. 계속 뭔가를 준비하고 대비한다. 단순히 수업 외의 준비라는 건 지켜보기만 해도 금세 알겠지.

‘하지만 이야기해 주지는 못하겠군…….’

그녀를 불신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알아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해.’

설명하고자 하면 너무 많은 것을 말해야 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게 과연 그녀의 인생에서 옳은 것일까?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게 있기 마련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도 돼.”

“말하면?”

“뭐든지 도울 테니까. 그때처럼.”

셀리디아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유는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럼 이상한 놈에게 속는다.”

나라든지?

나라든가?

“속여도 돼.”

“…….”

내가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똑 잘라 말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뭔 소릴 할 줄 알고.”

“시안은 괜찮아. 말하지 않아도 도와줬으니까. 그러니 나도 말해 주지 않아도 도와줄 수 있어.”

신뢰.

적어도 내가 게임 당시의 ‘시안’ 그대로의 인간이라면 절대 들을 리가 없는 말.

“……기억은 해 두마.”

“응, 언제든지 말해.”

셀리디아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일방적인 약속과도 같은 말을 한 것이다.

“시안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으면 도우러 갈 거니까.”

“……기억은 해 두마.”

이래서는 누가 답례를 받는 건지 모르겠군.

나는 슬쩍 시선을 돌리며 디저트를 다시 입에 물었다.

역시 달구먼.

그래도 던전 같은 곳에서 맛없는 거나 씹는 것보다 이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쪽이 훨씬 좋지.

앞으로도 이렇게 지낼 수 있도록.

나는 속으로 평화로운 앞날을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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