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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37화 (37/389)

제37화

37화

“……정말로 해치웠어?”

리니아는 멍하니 자신이 쥔 요정 검의 날을 응시하며 그 여운을 되새기듯 중얼거렸다.

가문의 보검.

그러나 그 보검에 면목이 없을 정도로 처음 몬스터 크리스털 터틀에 도전했을 때는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같은 신입생인 양 페이도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을 보고 그녀는 내심 안심했다.

쓰러트리지 못한 건 아직은 당연한 일이구나.

그러나 그녀에게 충격을 준 것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같은 신입생.

시안.

흑마법을 수련하는 그 동기가 혼자 그놈을 쓰러트렸다는 것.

거기에 그는 마치 도발이라도 하듯 제안한 것이다.

자신의 말을 들으면, 다음에는 자신들도 훨씬 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고.

‘솔직히 믿지 못했었는데…….’

반신반의.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에 말을 듣긴 했지만 정말로 그의 조언을 듣는 것만으로 이렇게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역대 최고 기록.

마치 자신이 강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안이 장담한 대로 그의 말을 들으면 이렇게 달라진다는 건가.

그렇게 들떠 있는 리니아에게 경각심이라도 주려는 듯 귓가에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리니아! 역시 그 흑마법사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살짝 고개를 돌리자, 그녀에게만 보이는 작은 ‘동반자’가 푸념을 하고 있었다.

요정.

“델린? 무슨 말이야?”

대대로 요정 검을 물려받는 계승자에게만 보인다는 특별한 존재.

델린이라는 요정은 이것저것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검술부터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한 지식이라든가.

스스로 요정 검의 소유주의 안내인이라고 지칭하는 존재로서 이 작은 친구는 지금까지 무엇이든 조언해 주었다.

그런 작은 친구가 그 흑마법사 소년을 보자마자 처음에 이리 말한 것이다.

(역시 그 사람은 무섭다고 생각해.)

“처음에도 그렇게 말했지?”

(응! 그 인간은 위험해!)

이 말만을 반복했다.

위험하다니.

“확실히 처음엔 나도 조금 무섭다고는 생각했는데…….”

시안의 소문은 들었다.

갑자기 급부상한 천재.

흑마법뿐 아니라 청강하는 과목에서조차 놀라운 성취를 보여 교수들 사이에서도 감탄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다.

거기에다 검은 머리. 하물며 시안이 그를 적대하는 이들을 가차 없이 힘으로 깨부쉈다는 말도 들었기에 무척이나 난폭한 인물이라고 경계했지만.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하는데.”

(인간은 겉으로 봐서 몰라!)

어쩐지 요정은 부모님이나 할 법한 말을 외치고 있었다.

(속이 검어! 검은 기운이 넘실거려!)

“그야 흑마법사니까.”

(악마도 붙어 있어!)

“악마?”

그건 몰랐다. 하지만 흑마법사니까 붙어 있을 법하지 않을까?

(리니아는 아직 어려! 약해! 그래서 몰라!)

“델린한테 애 취급 받고 싶지 않아.”

(나! 나이 많아!)

그렇겠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요정이니까.

‘그럼 할머니라고 불러야 하나?’라고 생각하자 그건 싫은지 델린은 리니아의 목덜미를 작은 주먹으로 툭툭 때린다.

버릇이 없는 요정이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시안이지?

“왜 시안이 위험해? 단순히 흑마법 때문에?”

(매우 나쁜 운명!)

“……그건 잘 모르겠네.”

델린이 자주 입에 담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그 ‘운명’인지 뭔지 하는 것이다.

아카데미에 입학할 것을 권유한 것도 운명 때문.

그리고 신입생이나 선배들을 두고도 델린은 각각의 운명을 가리키며.

(좋은 운명! 친해져도 돼!)

(나쁜 운명! 조심해야 해!)

이리 말하는 일이 잦았다. 전부 곧이곧대로 듣는 건 아니었지만.

“매우 나쁜 운명이라는 건 뭐야?”

(매우매우 나쁜 사람! 아마 나쁜 짓 많이 할 거야! 그런 운명!)

“……잘 모르겠네.”

조금 전 보여 준 시안의 언동과 이 작은 친구의 주장은 상반되어 있었다.

“델린이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야! 매우 나빠! 조심해야 해! 큰일 나.)

“그래, 그래.”

일단은 듣는 척하며 리니아는 델린의 충고를 그저 머릿속에 넣어 두기로 하였다.

이 녀석의 주장과는 별개로 시안의 실력이 자신과 같은 신입생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는 건 이해했다.

조금 전의 일은 협력해야 하는 수업이기에 일부러 붙임성 있게 행동한 것일지도 모른다.

‘응. 조심은 해 두자.’

실은 무섭다고는 생각하고 있었고.

‘어디까지나 내 목표는 평범하게 졸업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야망 같은 건 전혀 없다.

고향인 시골로 돌아가서 영지를 잇든 다른 일을 하든 평범하게 살아간다.

이 요정이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지만, 그건 자신과 상관없었다.

그리 생각하며 리니아는 여전히 시끄럽게 떠드는 델린을 쓰다듬어 조용히 시켰다.

7장 - 쇼핑의 꽃은 역시 암시장

게임 당시 주인공이 행동하게 되는 주무대는 제국의 아카데미.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제도의 여러 구역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상업 지역이라든가, 여러 시설이 있는 메인 스트리트 등.

그리고…….

슬럼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동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기 마련이지.’

특정 조건을 만족하게 되면 슬럼가 내에서 어떤 구획이 열리게 된다.

그곳은 바로…….

‘암시장!’

제국의 시장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평범하게 제국에서 유통되는 상업망.

제국의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곳은 크게 세 개의 대상회라고 하지.

‘그리고 또 하나의 시장.’

그 세 개의 상회가 취급하지 않는 것을 노리는 틈새시장.

제국 내의 격언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만약 제국의 어느 상회를 가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라고.

‘그곳이 바로 암시장.’

합법적인 시장이 취급하는 품목은 방대하지만 도저히 취급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바로 제국의 법률에 저촉되는 것들.

약물, 혹은 사연이 있는 아티팩트라든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것들.

법률 혹은 도의적인 이유로 도저히 팔려야 팔 수 없는 것들.

‘하지만 물건이라는 건 반드시 어디엔가 수요가 있는 법이지.’

그런 원리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암시장.

제국 유통망의 이면에 깊게 뿌리박은 채 비밀리에 영업을 하고 있는 시장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그 암시장에 가려는 거지?”

“조만간 가야 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에밀리에게 암시장의 존재와 그 구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며 말했다.

“특히 비약의 재료라든가……. 흑마법 계통의 약품 재료는 평범한 시장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게 많아.”

대부분의 흑마법 관련 재료는 대놓고 취급하기가 난해한 것들이 많았다.

“독초라든가…… 혹은 그 외에도 위험한 재료들이 있거든.”

희귀하고 위험한 재료일수록 강력한 약품이나 장비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구하기는 어렵지.

제국의 법률 때문이다.

“암시장에서라면 그런 것들을 구할 수 있니?”

“어지간한 건.”

“간도 크네? 그 제국법이란 거 어기면 죽는 거 아니었어?”

에밀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손으로 목을 살며시 긋는 시늉을 한다.

“제국법이 엄하지만 그게 꼭 제국 전체에 두루 미치는 건 아니니까……. 예를 들면.”

“이 거리처럼?”

“그렇지.”

이곳 슬럼가에도 그 법이란 게 고루 미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법률을 지키는 기사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거리……. 뭘 팔든 뭘 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슬럼가 내에서의 소란은 제국법이 미치지 않는다.

치외법권 구역이라기보다는 무관심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기 마련.

그렇기에 슬럼가의 안쪽에 뿌리를 내린 것이 바로 암시장이다.

“처음에 셀리디아랑 여기서 마주친 거 기억하지?”

“아~! 그 고양이 아가씨?”

셀리디아와 처음 조우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당시 셀리디아는 어디서 암시장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곳을 기웃거렸던 모양이다.

“비록 실패했지만.”

괜한 놈에게 속아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다가 도망쳤던 것.

‘실은 암시장의 돌입 퀘스트의 시작과 얽혀 있었으니까.’

사소한 서브 퀘스트.

중요한 건 이곳에 암시장이 있고, 이곳에 들어가려면 평범하게 돌아다녀서는 어림도 없다는 것.

그들의 방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

“단순히 그 존재만 알고 있어 봐야 암시장의 입구는 열리지 않아.”

당연히 방법을 알고 이미 사전 준비도 끝내 두었다.

우선은 슬럼가의 안쪽으로 쭉 나아간다.

시선이 따라붙었지만, 무시하며 나는 ‘입구’에 도착하였다.

평범하게 본다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폐가.

그곳에서 가만히 말없이 기다렸다. 3초쯤 지나자 그 안쪽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물건을 좀 보고 싶은데.”

“물건이라……. 이곳에는 더러운 먼지밖에 없습니다만. 뭔가 잘못 착각한 거 아니신지?”

정해진 문답.

암시장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곳에 방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하는 것.

“먼지를 털어 낼 도구는 있습니까?”

티켓을 제시하라는 것.

암시장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그 회원이 되기 위한 티켓을 얻어야 한다.

“흠, 도구는 없네만. 이런 거라면 있지.”

가지고 있고말고.

나는 품에서 검게 칠해진 금화를 하나 꺼냈다.

제국의 유통망을 상징하는 금화를 검게 칠했다는 의미.

“……손님이시군요.”

파수꾼의 어투가 약간은 정중해졌다.

따라붙던 시선들이 사라졌다. 역시나 손님이 아닐 경우 처리하기 위한 미행이었나.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래.”

순순히 따라간다. 허름한 폐가의 내부로 들어가자 몇 발자국을 걷자마자 곧바로 풍경이 바뀐다.

이것에는 에밀리도 놀랐는지 작게 입을 벌렸다.

그야 그녀는 이 환영을 조금 전까지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

“헤에……. 제법이네. 이 누나의 감각으로도 몰랐는데.”

“꽤 고위 마법사가 펼친 모양이더라.”

악마도 속일 정도의 탁월한 실력.

그 정도 실력의 거물에게 이곳의 은폐를 맡길 정도의 규모와 재력.

단순히 불량배들이 만든 시장 따위는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정하고 자금과 인력이 대대적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배후가 존재하는 시설이라는 의미.

화려한 내부.

실내를 밝히는 조명과 분주히 돌아다니는 상인들.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의 손님들.

“좋은 낌새가 느껴지네.”

“낌새?”

“욕망에 눈이 먼 자들의 느낌.”

그 어리석은 공기가 마음에 든다는 듯 에밀리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우리 시안은 이런 곳에서 뭐가 가지고 싶은 걸까?”

위험한 약? 혹은 귀여운 노예? 에밀리는 일부러 놀리듯 묻는다.

내가 그런 것 따위에 혹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하는 농담이겠지.

“보면 알아.”

장난치듯 달라붙는 에밀리를 거부하지 않은 채 나는 내부를 둘러보았다.

일부러 에밀리를 소환하여 과시하듯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얕보이지 않기 위해.

익숙하게 여자를 거느리고 암시장에 놀러오듯 찾아온 소년.

뭔가 있어 보이기 마련이니.

‘암시장의 구조 자체도 게임 당시와 크게 다를 바는 없네.’

티켓의 존재도, 위치도, 입장을 위한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찾고자 하는 것도 틀림없이 이곳에서 손에 넣을 수 있겠지.

얻고 싶은 건 소재뿐만이 아니었다.

중요한 아이템을 하나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우선은 적당히 구경이나 좀 해 둘까.’

막연하게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곧 우리들의 앞에 한 사내가 걸어 나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말킨이라고 합니다.”

이 암시장에 소속된 상인. 아마 나를 안내하기 위해 배정된 거겠지.

“손님께서는 저희 상회에 처음 방문하시는 것입니까?”

“그런 셈이지. 안내는 댁이 해 주는 건가?”

“만족하실 쇼핑이 되도록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시안 님.”

말킨은 내가 먼저 이름을 대지 않았음에도 바로 내 이름을 말하였다.

놀랄 일은 아니다.

암시장에 돌입하기 위해, 정확히는 티켓을 손에 넣기 위해 사전에 움직였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내 신원 정도는 파악하고 정보가 흘러갔겠지.

“그럼 어디 상품을 좀 볼 수 있나?”

“맡겨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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