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50화
처음 보는 형식의 스크롤에 의문을 품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찢지 않는 방식으로 발동시키는 스크롤입니다. 뭐, 말하자면 신제품이죠.”
나름 흑마법 클래스의 사활을 건 연구이니 고작 공용 마법과 다를 바가 없는 상품만을 보여 줘서야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없지.
이때를 위해 아직 쓰지 않은 것들이다.
사방에 뿌려지는 것은 내 손바닥 두 개 정도 길이의 양피지들.
그것들 전부가 이미 빼곡하게 주문이 새겨져 있는 스크롤이다.
“이건 특정 방식으로 발동시키는 스크롤이죠. ……스크롤의 한계 중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속형 마법은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역시 선배님이시네요.”
기존 타입의 스크롤의 한계.
어디까지나 즉발식으로 터트리는 방식의 마법만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스크롤의 특징은.
“설마…….”
“이 새로운 타입의 스크롤은 찢어서 발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발동시키면 일정 시간 동안 마법식이 유지되는 타입입니다.”
지속형 스크롤.
그에 따라 공용 마법식에서 생산되는 스크롤과는 다른 타입의 마법을 새길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이게 본론이죠.”
스크롤의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한 결투. 단순히 마법의 위력 대결 같은 저열한 것만을 보여 줄 생각은 없다.
뿌려진 스크롤들이 바닥에 눌어붙으며 이내 그 효력을 발휘한다.
검은 흙들이 솟아오르며 내 절반 정도 키의 인간 형태를 갖춘다.
“……그건.”
“4서클 소환 계통 흑마법. 독 늪의 인형. 마기로 정제한 부엽토로 빚어 일시적으로 골렘을 만들어 내는 마법이죠.”
새삼 모르는 마법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지켜보던 교수들도 경악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이건 종래의 스크롤로는 새길 수 없는 지속형 마법입니다.”
이 마법은 한번 마법식을 발동시킨 후 골렘을 빚으면 계속해서 마법식을 유지하면서 조종해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마법식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기존의 스크롤로는 절대 재현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새로운 타입의 스크롤은 그것이 가능하다.
“흑마법 스크롤 타입2. 지속형 스크롤이 되겠습니다. 손님.”
짝. 짝. 자축하듯 이쪽을 주목하라는 뜻으로 내가 박수를 치자, 소리가 울리며 생성된 흙의 인형들이 움직인다.
“지속 시간은 단일로 발동시키는 마법보다는 짧지만……. 뭐, 성능은 숫자로 무마하면 되겠죠.”
뿌린 스크롤의 수는 50장.
50개의 흙 인형이 생성되어 내 앞에 진을 치고 상대를 노려본다.
한 개만으로도 족히 4서클의 마법 한두 방은 너끈히 버틸 정도의 능력이 있는 것들.
그것이 50개.
“젠장! 망할 교수 같으니! 이딴 걸 상대로 싸우라고는 말 안 했잖아!”
선배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조적인 말을 외쳤다.
누구에 대한 원망인지는 묻지 않는 게 낫겠지.
기권하지 않는 것은 그나마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그럼 시작하지요.”
내가 손짓을 한 것은 그 선배의 마법 캐스팅이 완전히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뒤였다.
일부러 그가 마법을 쏘아 낼 정도의 시간적 여유를 주고는 흙 인형들을 돌진시킨다.
파아아앙!
쏘아 낸 마법 공격의 여파가 폭음과 열기를 흩뿌렸지만, 고작 그것만으로는 이 흙 인형들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결과는 볼 것도 없었다.
그의 마법으로 고작 흙 인형 여섯 개 정도만 박살이 났고, 그는 나머지 흙 인형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윽…….”
그가 숨을 삼킨 것은 그 흙 인형들이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였기 때문.
스크롤.
그것을 수십 개의 흙 인형이 동시에 들고 찢는다면?
“전부 3서클 수준의 공격 마법입니다. 이것들을 버틸 수 있겠습니까?”
“…….”
대답이 없다.
항복보다는 실신을 택한 것인가.
그것도 존중하마.
지시를 위해 내가 손을 들어 올리려던 순간.
“거기까지 해 두게.”
발동하려던 스크롤의 마나가 전부 소멸하듯 끊겨 버렸다.
중단한 게 아니다.
강제로 정지된 것.
“학장님?”
나는 그것을 행한 이가 누군지 알고 있다.
어느새 시험장까지 내려온 학장이 고개를 움직여 선배와 나를 바라본다.
“거기까지 해 두게. 결계의 안이라고 하나,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고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학장이 직접 판정을 내렸으니.
“흑마법 클래스 시안의 승리일세.”
* * *
“있을 수 없다! 말도 안 돼! 흑마법 클래스 따위에게 이 무슨 추태를…….”
말렉 교수는 마치 끔찍한 악몽이라도 본 듯 비틀거리면서 서둘러 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것이 더욱 체면을 구기는 꼴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럴 리가……. 흑마법 따위에 패할 리가…….”
정식 마법 대련은 아니었다.
아니, 단순히 패배했다면 상성이라든가 혹은 다른 핑계를 대는 방법도 있을지 모르지.
문제는 애송이……, 아니 시안이 종래와는 다른 타입의 스크롤을 선보인 것이다.
공용 마법 스크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지속형 타입.
“어떻게든 해야 한다…….”
비록 속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애송이가 보인 스크롤의 놀라운 가치를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다.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한다고 여겼다.
“조속히 학과장에게 보고를……. 아니, 그자는 물러…… 차라리 바로 마탑에!”
정치적 혹은 무력으로라도 저 애송이를 막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그가 필사적으로 부적절한 방법을 중얼거리며 실행 단계까지 고안하려던 때였다.
“참으로 추하시네요. 말렉 교수.”
또각또각.
일부러 낸 듯한 발소리가 말렉 교수의 추한 사고를 잠시 멈추게 했다.
“다니엘…… 교수?”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돌아가시다니 조금 섭섭하네요. 칭찬이라도 해 주는 게 교수의 마땅한 도리 아닌가요?”
난처한 듯한 웃음을 짓는 여교수가 말을 건다.
“자, 자네! 대체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예? 감당이라뇨?”
“이 일을 마탑에서 그냥 두고 볼 거라고 생각하나! 고작 흑마법으로 올바른 우리들의 마법에 도전하고도 그냥 넘어갈……. 커헉.”
적반하장 격으로 언성을 높이려던 말렉 교수의 말이 순간 끊어졌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강제로 닥치게 한 것이다.
“커헉! 헉!”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마치 목 안쪽에서 무언가 막힌 것처럼 성대가 일그러졌고, 간신히 숨만 쉴 수 있을 뿐이었다.
아마 다니엘 교수가 한 것이리라.
“대헤에?!”
“대체 무슨 짓이냐고요? 후우……. 그건 되레 제가 묻고 싶네요. 하긴 당신들이 시비를 걸어온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니까요. 저도 학생 때 많이 당했고.”
난처한 듯 말을 잇지만, 그 모습은 말렉 교수가 평상시에 기억하는 흑마법 클래스의 어설픈 교수의 인상과는 점차 어긋나기 시작했다.
다니엘 교수의 눈동자 안쪽에서 검보랏빛으로 빛나는 마기의 빛이 더욱 어둡게 물든다.
“그런데 이건 좀 짜증 나네요?”
불쾌해하고 있다.
화를 내고 있다.
“만약 마음에도 없는 사과라도 하고 물러났다면 저도 잊으려 했어요. 아끼는 제자를 위해서.”
“……!!”
“아, 그러네요. 이러면 변명도 못 듣지. 참.”
다니엘 교수가 마법을 해제하자 간신히 목소리와 호흡을 되찾은 말렉 교수는 새파랗게 질린 채로 부들거리며 마구 삿대질을 했다.
“제, 제정신인가! 자네는 우리들과 전쟁이라도 벌일 셈이냐!”
“전쟁? 후후후, 그럴 리가요. 있을 수 없어요.”
그러나 두려워서 나온 반응은 아니었다.
“절대 당신들과 저희는 그렇게까지 치달을 수가 없답니다.”
“무슨…….”
“그 전에 당신들의 학과장이, 그리고 학장님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릴 테니까요. 안 그러면…….”
다니엘 교수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무시무시하게 변한다.
살의.
“당신들의 학과에는 단 여섯 명의 마법사만 남기고 전부 죽을 텐데요?”
“미친…… 건가?”
“지극히 계산적인 판단이랍니다. 아, 물론 저도 무사하지는 못해요. 그걸 감안해서 여섯 명이랍니다.”
암투.
학과끼리 전쟁을 벌일 경우, 단 여섯 명만을 제외하고는 전부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
그것도 흑마법 클래스에는 다른 인재가 없다.
요컨대 혼자서 그게 가능하다는 소리.
말렉 교수는 지금 다니엘 교수가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때 문득 한 가지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흑마법사의 수준이 약소한 건 사실.
그러나 모든 흑마법사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았다.
예외는 늘 있었다.
“……쌍둥이 탑.”
“예? 무슨 말인가요?”
다니엘 교수는 일부러 모르는 척 능청을 떨었다.
제국의 마탑.
지금은 단 하나의 마법만을 상징하는, 오만한 자신감을 내세우는 마법사의 본산.
하지만 8년 전만 하더라도 제국의 마탑은 두 곳이었다.
하나가 사라진 이유는 간단하다.
두 개의 마탑 중 하나의 과욕이 도를 넘었기에.
황제의 심기까지 건드렸던, 그 어리석은 마법사들에게 황제는 단 세 명의 심판자만을 보냈다고 한다.
그중 두 명이 누구인지는 너무도 유명했기에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말렉이 새파랗게 질린 건 세 번째 인물에 대한 허황된 소문 때문이었다.
처분된 탑에 재적해 있던 마법사는 435명. 그중 가장 실력 있는 경지에 이른 이들 20명을 단 두 명의 기사가 처단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 415명.
모반에 가담한 나머지 마법사들은 세 번째 심판자가 홀로 처단하였다는 소문.
그 한 명이 흑마법사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
무엇보다 당시 그 흑마법사는 제국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인물이라고 알려졌다.
듣는 이마다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을 쳤던 소문.
“……그럴 리가.”
“글쎄요. 저는 지난 일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요. 증명할 의무는 느끼지 못하겠네요.”
다니엘 교수는 곤란하다는 듯 얼버무렸다.
하지만 대놓고 부정할 수 없다.
제국의 아카데미의 교수. 하물며 학과장 정도가 되면 본래 제국 각지에서 공헌하던 실력자들.
약소한 클래스라고 하더라도 그 흑마법 지식의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유지해야 하는 사명을 어중이떠중이에게 맡겼을까?
하물며 다니엘 교수의 전공이 무엇인지 아카데미에서 모르는 이들이 없다.
저주와 사령술.
만약 말렉 교수가 생각한 바가 맞고, 그녀가 그 능력을 전부 자신의 본능대로 사용한다면.
“오,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오해인가요?”
“어디까지나 나는 제국의 마법의 안위를 위해서…….”
“……그런 건 솔직히 아무래도 좋단 말이죠.”
그러나 다니엘 교수는 웃으며 그의 변명을 무시했다.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
“그저 전 말렉 교수, 당신에게 조금 충고나 하려고 온 거예요.”
“충고라고?”
“어리석은 짓은 관두시길.”
하러 온 것은 경고였다.
그의 생각쯤은 뻔히 알고 있다. 정답 따윈 맞혀 볼 필요도 없다.
“당신 같은 속물이 어떤 멍청한 짓을 하는지는 지긋지긋하게 봐 왔거든요. 솔직히 그걸로 그 애가 눈 하나 깜짝할 건 아니겠지만, 저도 일단은 선생이니 나름의 일은 해야겠죠?”
“…….”
꾸욱.
깨닫고 보니 어느새 다니엘 교수는 가느다란 완드를 꺼내 그 끝으로 말렉 교수의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마치 장난치는 것처럼.
그러나 그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다. 마치 독을 잔뜩 바른 단검에 닿은 것처럼.
다를 건 없으리라.
마음만 먹으면 이 순간 더 지독한 짓도 할 수 있다.
“멍청한 짓을 한다면, 공용 마법 클래스의 교수가 한 명 줄어들지도 몰라요. 요즘 인재 구하기도 힘든데 학장님께서 안타까워하시겠네요.”
농담처럼.
하지만 그 장난스러운 목소리처럼 목숨마저도 가볍게 취급하는 살의가 느껴졌다.
“……큭.”
“이해하셨다면 망신을 당하는 정도로만 끝내시길.”
경고를 마친 다니엘 교수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