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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90화 (90/389)

제90화

90화

경기장으로 나오자 이미 미셀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기대하는지 긴장보다는 기대를 품은 눈동자가 반짝인다.

‘여전하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쉴 뻔하던 때 미셀이 멋대로 내 앞까지 다가왔다.

운영 측이 당황해 제지하나 그것도 무시하며.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말을 건다.

“시안. 준비는 했어?”

“말할 리가 없잖아. 뭐…… 조금 있으면 보여 줄 테니 기대해라.”

툭툭, 저리 가라는 듯 나는 미셀이 뒤집어쓴 후드를 살짝 손등으로 건드렸다.

“가라. 가.”

“……?”

내 속셈을 간파하려는지 갸웃거리던 미셀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곧 특유의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제자리로 물러났다.

곧 시작된다.

잡다한 소리도, 구경꾼의 시선도, 그 밖의 감시도 전부 내 의식에서 지운다.

‘집중하지 못하면 본전도 못 찾는다.’

게임 당시에도 미셀이 출전하는 시합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략에 이골이 난 유저들조차 고위력의 마법을 맞고 끝이 나 버렸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그 울분을 풀 기회인가.’

그때 박살이 난 키보드랑 마우스의 원한이나 살짝 되갚아 주면 되겠군.

‘저쪽도 나름 대비를 할 거 같지만.’

미셀 쪽을 응시한다.

여유로운 표정과, 긴장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

하지만 시선이 아니라 마나를 감지하는 기감으로 파악하면…….

빈틈이 없다.

5클래스 수준의 마나.

그것의 차이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

‘게임 공략 지식을 내세워야 간신히 호각인가.’

마법이 아닌 모든 게 허용되는 전투라면 방법이 있겠지만, 이 시합의 취지는 오로지 마법을 이용한 경합.

어떻게든 결과를 내야 할 뿐이다.

드디어 시합의 개시를 알리는 소리가 울린다.

폭죽 대신 쓴, 마법으로 발생한 마나의 잔재가 퍼져 나간다.

‘온다.’

둘 다 동시에 각자 세운 작전을 실행하기 위한 마법의 캐스팅에 들어간다.

마법의 천재와.

흑마법의 신예.

각자가 펼치는 첫수.

“……!”

미셀의 입 모양이 빠르게 움직인다.

놀랍게도 영창 속도가 반절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마법이 완성되는 징조가 느껴진다.

“쳇, 꼼수를 부리긴.”

요령을 물을 것도 없다.

미셀의 스킬 중에는 딜레이 캐스팅이라 부르는 마법 계열 패시브 스킬이 존재한다.

효과는 해당 전투 페이즈 전에 사전 영창 가능.

미리 반절만 술식을 준비해 놓고 나머지 반절은 전투 페이즈 때 영창하여 빠르게 선빵을 치는 스킬.

대기가 요동치며 내 발밑을 중심으로 약 20여 미터 범위에 묘한 바람이 요동친다.

“드래곤 블래스트?!”

4서클 풍 속성 공용 마법.

흔히 말하는 용오름.

콰아아앙!

수직으로 상승하는 폭풍을 일으켜 범위 내의 것을 광풍이 모조리 쓸어 쳐올린다.

‘……역시 빨라.’

식겁하며 나 역시 상정하고 있던 수를 펼친다.

섀도우 무브.

미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내가 처음으로 상정한 것은 선제공격도, 방어도 아니다.

처음부터 회피를 위한 이동술.

콰아아아앙!

용오름이 위로 치솟는 것과 동시에 나는 아슬아슬하게 발밑의 그림자에 스며들어 빠져나온다.

‘너랑 영창 속도로 겨룰 마음은 없다.’

잘 육성된 캐릭터도 대놓고 정면으로 붙으면 질 확률이 높았다.

그럼?

‘정면 대결은 피한다.’

대(對)미셀전의 첫 번째.

정정당당하게 맞부딪칠 필요가 없다.

내가 그림자에서 빠져나온 지점은 미셀의 뒤편.

“견제 정도로만 날려 둘까.”

-흑염탄.

-연속 삼 영창.

검은 화염구가 세 발 정도 미세한 간격의 차만 두고 사출된다.

평범한 마법사는 막기 어려울 것이다.

첫 타격을 막아도 근소하게 바로 덮치는 두 번째 화염구가 방어를 태우고, 뚫고 들어온 세 번째가 그대로 처박힌다.

마법전투학 중 3점 포격이라 불리는 전술.

게임이 아니라 이곳의 교본을 통해 익힌 것이다.

“훌륭해~.”

그러나 미셀이 보인 것은 희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간사한 타이밍이야.”

사각에서 날아드는 마법을 보지도 않고 파악하며 기뻐한다.

콰앙!

흑염이 폭발하나 그 불길은 그녀의 옷자락에도 닿지 않는다.

마나로 짠 방어벽에 부딪히고.

미세한 간격의 차이로 추가로 솟아오른 바위의 벽이 남은 화염탄을 쳐 낸 것이다.

‘2중으로 방어 마법을 펼쳐서 막은 건가…… 무슨 마력 컨트롤이 저래?’

고작 방어 마법 두 가지를 병용하여 틈을 메운다.

말처럼 간단한 건 아니리라.

(조금만 틈이 어긋나면 두 가지 방어가 맞부딪혀서 무너질 텐데…….)

밀리미터 단위의 간격.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두 가지 마법이 닿아서는 안 된다.

하물며 너무 떨어지면 쓰는 의미가 없고.

‘우선은 계속 틈을 노린다.’

연달아 마법을 퍼붓는다.

화염이 쏟아지고 검은 번개가 사방에 흩뿌려지면서 때로는 무수한 골창이 쏟아진다.

미셀 역시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마법을 펼쳐 반격해 공격을 지우고, 바로 그 틈을 노려 정확하게 포격을 찔러 온다.

고위력의 마법이 마치 저격이라도 하듯 정밀하게 틈틈이 뻗어 오는 것이다.

그간 익혀 둔 이동술 없이 내 발만으로는 아마 휩쓸려서 금세 결판이 났을 것이 분명하다.

‘난처하군.’

무심코 마법 외의 수단을 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제법 힘에 부친다.

‘빡세군…….’

마법전은 장기전이 되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다.

마법사의 숙련도가 높을수록 술식의 위력과 범위가 커진다.

‘마법에 맞지 않아도 그 여파만으로도 거슬려.’

단순히 불화살 정도가 아니라 영창이 한 번 끝나면 주변에 불기둥이 치솟는다.

공기가 뜨거워지고 숨을 쉬기조차 버거워진다.

차단을 하여도 그것 또한 마나와 체력을 소모한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흩어지면 곧바로 패배.

‘오래 끌 수는 없군.’

벌써 수십 번째의 마법을 구사하며 그 여파가 걷히면 그 너머에 있는 미셀의 모습을 확인했다.

미동도 없군.

‘저쪽도 분명 마나 소모량이 버거울 텐데…….’

마나 소모로 몸이 고된 것은 그녀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절묘한 기예를 구사하는 만큼이나 소모는 그녀 쪽이 더욱 심할 터.

‘보통은 이걸 노리면 알아서 제풀에 꺾일 테지만.’

그러나 한순간 눈에 들어온 미셀의 표정은.

흔히 말하는 러너스 하이.

그런 고됨조차 생소한 즐거움인지 더욱 열의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과연……. 저게 천재라는 거군.’

다른 녀석들도 재능은 특출 나지만 나와는 겹치는 분야가 아니기에 딱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법이라는 동등한 분야.

그 분야를 석권하는 재능인 만큼 여과 없이 전해진다.

저런 녀석을 상대로 뭘 해야 할까?

좀 더 고위력의 마법?

아니면 낮은 서클의 마법을 최대한 넓게 뿌려서 틈을 유도?

이곳에서 배운 정석이나 게임에서 익혔던 필승법들을 차례로 떠올리며 검토하고.

스스로 고개를 저으며 폐기하고.

‘정했다.’

마침내 때를 결정한다.

“……기대한다고 했었던가.”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다. 말을 거는 것 자체도 하나의 전술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조잡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문득 떠올랐을 뿐.

미셀은 이 시합을 고대한다고 하였지?

내 역량에 대한 기대.

“……과연 그것을 충족했을는지.”

아직 한참은 멀었겠지.

“그럼 슬슬 보여 줄까.”

정석으로 겨루어서는 역시 승산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세운 작전대로 간다.

“바라는 대로 보여 주마. 미셀 위스티닐. 다른 마법사들은 보여 주지 않을 수를.”

내 멋대로 하는 혼잣말.

딱히 들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나 어쩐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것도 같다.

“우선은 시간을 벌어야겠군…….”

물러나는 척하며 검은 화염을 광범위하게 뿌린다.

당연히 눈속임.

미셀은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마력을 가볍게 터트려 충격파로 검은 화염을 흩뜨려 버린다.

설마 이게 묘수냐고 묻고 있는 눈동자.

“걱정 마. 아직 작전은 시작도 안 했으니까.”

잠깐 시야를 가릴 정도의 연막만 펼치면 충분할 뿐이었다.

답례라는 듯 쏟아지는 뇌격을 섀도우 무브를 구사해 피하지만.

‘음?’

상정했던 좌표에 도달하기 전에 나는 급히 이동을 해제하였다.

감각으로 빗대자면 급정거.

그림자 속에서 몸이 튕겨 나오며 절묘하게 착지하는 나.

그림자에 푸른 사슬이 휘감겨 있다.

‘봉인 마법 같은 건가.’

섀도우 무브.

그림자에 숨어 이동하는 동안에는 어지간한 공격은 닿지 않을 테지만.

미셀은 내 이동 수단을 간파할 방법을 궁리해 낸 것이다.

“……저래서 괴물이군.”

현실이 되니 더욱 여과 없이 다가온다.

하다못해 그녀가 2장 때 땡땡이만 치지 않았어도 사태를 좀 더 쉽게 해결했겠네.

입맛을 다시며 나는 뒤따라오는 포격을 방어 마법으로 간신히 가드했다.

“……음?!”

방어 마법 너머로 격통이 전해진다.

뚫린 건가.

“역시 시안이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을 줄이야.”

“아니, 더는 어렵거든.”

쓴웃음을 지으며 숨을 가다듬는다.

타격이 크다.

마나의 소모도 슬슬 반절을 넘어섰다.

“더는 소모전은 어렵군.”

“유감이야. 그럼 슬슬 결착을 지을 수밖에 없겠어. 흑마법사.”

“동감이야. 망할 천재. ……단, 내가 이기겠지만.”

“……응?”

미셀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눈동자는 빈틈없이 나만을 응시한다.

……그래, 눈치채지 못했다.

“시작하지.”

결착을 위한 수단을.

그 순간이었다. 미셀의 우측에서 검은 벼락이 날아든다.

“……어떻게?”

어렵지 않게 방어했지만, 그 순간 그녀의 표정에 처음으로 동요의 빛이 어렸다.

나는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마법이 발동해 날아온 것이다.

반칙? 그럴 리가. 그랬으면 지금쯤 강제적으로 시합이 끝이 났겠지.

관객들, 심지어 참관 중인 이들조차도 술렁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보인 것이리라.

내가 지금 사용한 상식 외의 묘수가.

“이제 시작이거든?”

다시 다른 방향에서 흑마법 공격이 날아든다.

“환각? 아니……. 전부 진짜야.”

“맞아, 진짜야. 뭐…… 위력은 고작 2서클 정도지만.”

하나하나 막아 내는 건 쉬우리라.

“하지만 계속 날아온다면?”

내가 입꼬리를 끌어올리자, 그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본격적으로 마법이 뿌려진다.

일제 포격.

경기장의 모든 방향에서 각각의 다양한 마법이 날아온다.

“……엥?! 뭐, 뭐야?!”

미셀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핏기가 가신다.

막아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2서클 정도 마법의 탄막쯤이야 진심으로 힘을 개방하기만 해도 막는다.

하지만.

“내게 정신이 팔리면 곤란하지.”

-흑염멸폭풍.

본격적으로 노린 폭열의 폭풍이 정신이 팔린 미셀의 전방을 휩쓸었다.

아슬아슬하게 막긴 했지만, 이번에는 미셀이 당혹과 고통이 담긴 신음을 삼킬 때다.

“윽……. 무슨 방법을……. 아?!”

깨달은 듯한 목소리.

예상보다 이해하는 게 빠르군.

하지만 상관없다.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면 모를까, 이미 시작된 시점에서 알게 되어 봐야 늦었으니까.

경기장 전체에 어떤 것이 새겨져 있다.

마법진.

“……마법의 기록화?”

“그래, 알다시피 스크롤의 제작에 필수적인 기술과 지식이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만.

지식이란 건 입 밖으로 떠들 때야말로 즐거운 법이다.

하물며 상대를 놀라게 할 때는 더더욱.

나는 참지 않고 떠들었고, 미셀 역시 잠자코 들었다.

마치 답을 맞히듯.

“사물에 양피지와 마찬가지로 마법식을 새길 수 있다면? 스크롤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도 노릴 수 있지 않겠어?”

“말도…… 안 돼.”

마법의 천재조차 모르고 있었던 방법을.

당당히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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