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107화
“알고 지내는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아카데미의 지하 시설에는 지금은 쓰지 않는 곳이 많다는 거 알지?”
“쓰지 않는 구획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필로스 아카데미는 에타니올 제국의 건국 초기부터 설립된 곳이다.
그 시절에는 지금보다 장소도 협소하고 규모도 크지 않았겠지.
차츰 성과를 내고 예산을 늘려서 건물을 증축하며 몸집을 불려 지금에 이른 것이리라.
“별별 괴소문이 들린다는 건 알고 있어요.”
“응! 실은 그거에 대해서인데! 무려 머리를 좋게 하는 아이템이 있을지도 모른다지 뭐야.”
무척이나 수상쩍은 이야기.
리제타 선배는 눈빛을 반짝이며 그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한다.
딱히 옛날도 아닌 어느 날.
한창 시험공부에 지친 선배가 있었다고 한다.
딱히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는지 그 선배는 몇 번의 낙제 끝에 꽤 벼랑에 몰린 상황.
한 번만 더 평가를 망치면 앞날도 같이 끝날 위기에 처했다.
이름 모를 그 선배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짜내어 그 젊은 인생의 첫 모험을 하기로 결심한다.
“차라리 시험 과제를 보관해 둔 건물을 불태워서 위기를 헤쳐 나가자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야.”
“그게 어딜 봐서 위기의 해결입니까? 그 양반 자기 인생의 새로운 위기를 부르고 있는데요?”
그런 열정이 있으면 공부를 해라!
하지만 공부 외에는 없는 열의가 생기는 게 세상의 이치.
무려 그 선배는 시험지를 보관해 둔 건물의 지하로 향하는 통로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결론은 실패하고 배드엔딩으로 끝나는 겁니까?”
“들어 봐. 결과적으로 그 선배는 낙제하지 않은 모양이니까.”
“……설마 리제타 선배도 그런 바보 같은 발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죠?”
“……할 수 있을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네?”
“선……배?”
못 한다고는 안 하는 나도 가관이군.
“아니! 그 선배는 건물을 불태우는 것은 실패했어.”
“그럼?”
“중요한 건 지금부터야!”
정말로 시험지를 훔치느니 불태우느니 하는 걸 논할 사람은 아니다.
중요한 건 누군지 모를 그 소문의 선배가 어떻게 그 바보 같은 위기를 헤쳐 나갔는가 하는 점이다.
“그 선배는 계획에 실패했지만, 그 지하에서 무언가 얻은 모양이야.”
“흐음…….”
“무려 머리가 좋아지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대!”
그 이름 모를 선배는 다음 평가에 턱걸이를 하여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한 모양이다.
“……그걸 손에 넣고도 턱걸이?”
“워낙 성적이 안타까운 선배였다고 해. 하여튼 그 선배는 졸업 때 궁금해하는 후배들에게 말했다나 봐.”
찾아라.
내 성적의 비결은 그곳에 있으니.
더욱 안타까운 건 훗날 후배들이 정말로 그걸 찾으러 갔다는 것이다.
“그 선배 말고도 지하에서 성적이 향상되는 비결을 얻었다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나 봐.”
“……그딴 걸 믿는 시점에서 머리가 나쁘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내 동기들 3분의 1은 지금 지하를 탐험 중인걸?”
“선배들은 죄다 바보입니까?”
하지만 퀘스트는 성립했다.
무엇보다 나는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도 찾으러 가자!”
어째 던전을 탐험할 때보다 더욱 강한 결의에 가득 차 있다.
그래, 시험은 중대한 문제니까요.
일부러 나는 신랄한 말을 하며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마 그 비결이라는 건 정말로 존재할 거다.
명백하게 이건 게임 시절에도 성립하던 퀘스트였으니까.
그러니 내가 해야 할 선택은.
“알겠습니다. 찾으러 가죠.”
이 바보들의 탐사에 끼어드는 것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보물찾기나 하러 간다.
……제국의 인재들의 장래가 참으로 기대되는구먼.
* * *
제국 아카데미의 시설들은 크고 많다.
각 클래스가 넉넉하게 돌려쓰고도 남을 여러 훈련장과 갖가지 마법과 아티팩트의 연구 및 실험을 할 수 있는 실험실.
그리고 학업에 지쳐 가는 이들이 잠시나마 현실 도피라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터.
‘명백하게 실제 땅 크기보다 넓단 말이지.’
체감상 아카데미 부지의 전체 영역만 해도 제도의 크기와 맞먹을지 모른다.
아니, 정말로 넓겠지.
‘대놓고 평수에 수작질한 게 보이니까.’
그것이 가능한 것이 바로 마법.
가령 내 흑마법 클래스의 공방이 있는 학업의 숲이 아공간을 이용하여 숲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면.
아카데미 전체에는 비슷한 공간 계열 마법이 상시 발동되어 있다.
공간 확장 계획.
부족한 땅덩어리를 공간을 왜곡시켜 넓히고 그 위에 건물을 짓는다.
그렇게 아카데미는 부족한 땅덩어리 문제를 해결하고 계속 시대를 거듭하면서 마음 놓고 몸집을 불려 나갔다.
‘문제는 몸집만 불리고 뒷수습은 잘 안 한단 말이지.’
마치 방 정리를 하기 싫어하는 어린애처럼.
새로운 시설, 최신 기재, 그것을 만들고 설치하는 데 정신이 팔리다 보니 방치된 곳이 나오게 마련.
아카데미의 지하 구획.
“본래는 아카데미 확장 계획이 수립되기 전에 차선책으로 지하 구획을 확보하자는 말이 나왔던 모양이에요.”
나는 동행 중인 리제타에게 이곳에 대한 설정을 대략적으로 말해 주었다.
아는 것을 떠드는 것은 즐거우니까.
“아카데미 전체 영역에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는 건 아시죠?”
“으응. 그야 몇 번이고 주의를 받았으니까. 망가지면 큰일 난다며?”
“큰일 정도가 아니겠죠.”
어떤 의미로는 아카데미의 아킬레스건 같은 설정이니까. ……뭐, 그걸 지금 여기서 논할 건 아니다.
“하여튼 본래 그 계획을 수립하기 전에는 마법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부족한 땅을 확보하고자 한 거죠.”
삽과 곡괭이.
그리고 그걸 휘두르는 노예……. 아니, 학생들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테니.
“까놓고 말해서 지하를 파 내려가서 부족한 시설을 확충하려고 한 거죠.”
“……터무니없네.”
차선책인 공간 확장 계획이 수립되기 전까지는 나름의 기책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제법 공사까지 진행되었다.
“여차여차해서 그 공사의 막바지 시점에 공간을 왜곡해서 허구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론이 확립되면서 방치된 거지만요.”
대략적인 필로스 아카데미의 설정.
내가 왜 이런 것까지 알고 있느냐 하면, 그 설정 자체가 게임의 시나리오에서 몇 번이고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메인 시나리오나 서브 퀘스트들 또는 특정 인물과의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설정.
“문제는 건물 두세 채는 너끈히 들어갈 정도로 지어졌는데 그걸 써먹지 않았단 말이죠.”
지금에 와서는 일부 구획만을 창고 정도로 쓰지만 아무래도 인간은 지하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기껏 지어 두고서 방치되고 있다는 설정.
“굳이 써먹는다면 가끔 성깔이 고약한 놈들이 교수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곳으로나 사용하겠죠.”
문제는 그런 곳을 우리가 들어가고 있다.
“위험할까? 일단 준비는 했는데.”
리제타는 허리춤에 차고 있는 두 자루의 검을 툭툭 두드리며 묻는다.
“기껏해야 자연 발생한 슬라임 정도겠죠. 그리고 아마 우리가 향한 곳에……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람은?”
이런 곳에 들어온 이유는 리제타가 문득 말을 꺼낸, 머리가 좋아지는 보물이 있을지 모른다는 소문 때문.
보통이라면 헛소문에 불과하다며 비웃어 주고 끝내겠지만.
나는 이 퀘스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다.
‘뭐, 그곳을 발견해 둬야 했으니까 좋은 구실이 되긴 했는데.’
굳이 리제타가 건수를 물고 오지 않아도 다른 핑계를 대서라도 향했을지도 모르는 일.
(헤에……. 묘하네.)
그때 에밀리가 염화로 말을 걸었다.
소환해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 상태로도 어느 정도 주변 탐색 정도는 가능했기 때문이다.
(시안? 정말로 여기에 아무것도 없는 거니?)
‘……무슨 뜻?’
(낌새가 모호해서 하는 말이잖니. ……시안의 말대로 사람은 없지만, 이건…….)
에밀리에게는 이곳에 무엇이 있는지 ‘진실’을 말해 줄 틈이 없었으니까.
아마 대강 눈치를 챈 모양이다.
‘보면 알 거다.’
말하는 것보다 아마 발견하는 게 더 빠를 테니까.
나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지하 복도를 그대로 앞서 나아간다.
자연스레 반걸음 정도 뒤따라오는 모양새가 된 리제타는 묘한 위화감을 느낀 모양이다.
“후배, 여기 길을 알고 있어?”
“조사는 해 뒀습니다. 말했잖아요. 본래부터 정식 확장 계획이었다고. 내부 시설 도면이 아카데미 도서관에 있습니다.”
“보통 그런 건 열람 못 하지 않아?”
“다 요령이 있죠.”
관리하는 게 사람이면 융통성을 발휘하기 위한 방책은 있기 마련이니까.
“……성의란 이름의 뇌물을 주면 대개 보여 주더라고요.”
“우와……. 신입생이 벌써부터 썩었네.”
“하하, 이 정도로는 썩은 축에도 들지 못하거든요?”
하여튼 길은 확인해 두었고, 게임 당시의 탐사 루트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적어도 아카데미 지하에서 조난당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건 그거대로 웃기겠네.”
“……아니, 진짜 그런 사고가 없는 것도 아니거든요.”
게임 시절 반복 퀘스트 같은 느낌으로 발생하는 사건들 중에는 멋대로 지하 시설에 들어갔다가 실종된 바보들을 찾는 게 있다.
귀찮은 퀘스트라서 이제는 할 마음 따위는 없다.
“일단은 소문의 그 선배가 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선대로 따라 걷고 있습니다만.”
적당한 핑계를 대어 가장 확실한 코스로 향한다.
곧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것’을 감지하고는 팔을 뻗어 멈추라는 시늉을 했다.
“아, 정지.”
“뭔가 있어? 몬스터? 아니면 교수님에게 도망친 조교수들?”
“왜 조교수들을 몬스터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건가요…….”
그렇게 한 많은 존재는 아니다.
“결계 같은 거네요. 봉쇄보다는 트랩 같은 목적 같습니다만.”
“어디어디~. 으음……. 확실히 기감에 위화감은 느껴지는데.”
“선배는 주로 위화감을 알아차리면 때려 부수는 쪽이니까요.”
반면 마법 계열을 수련한 나는 한번 감지하면 대략적인 정보를 자연스레 읽을 수 있다.
감으로 알아채면 자연스레 머리에서 그 해답이 출력되는 느낌.
스킬과 능력치를 통해 자연스레 읽는 것이라 위화감이 장난이 아니지만, 익숙해지면 유용하다.
“접근하면 발동되는 구조네요.”
“바로 공격이라도 받아?”
“정신 계열의 공격 같습니다만. 그리 지독하진 않아요. 멀미 좀 일으켜서 토하는 정도인가.”
“그게 더 지독한데……. 차라리 불덩이가 날아오는 게 속 편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 분석을 들은 리제타는 비키라는 듯 깔짝였다.
“해체는 가능합니다만.”
“시간이 걸리잖아? 더 확실한 게 있어. ……그리고 슬슬 나도 뭔가 안 하면 선배로서의 체면이 위험할 거 같고.”
……그런 게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잘 봐, 후배. 귀찮게 해체 같은 건 일일이 안 해도 되거든.”
검을 한 자루 뽑아 든 리제타는 가늠하듯 가볍게 그 끝을 까딱인다.
목표는 내가 결계를 탐지한 위화감이 있는 곳.
“마나가 가장 밀집된 건 대충 저쪽이지?”
“약간 더 왼쪽입니다만.”
“응. 그럼 되겠네. 충분히 베고도 남아.”
뭘 할지 이해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리제타는 그대로 검을 치켜들었다.
검에 마나가 어린다.
단순히 검에 마나를 덧씌워 절삭력을 높이는 단계.
그리고 그녀는 그보다 더 위 단계의 경지를 이미 습득한 뒤.
덧씌운 마나가 검에 그대로 일체화된다. 겉이 아니라 검 자체와 동화되는 단계.
검기.
진정으로 오러라고 불러야 할 강화 단계.
“예로부터 오러 유저들이 가장 귀찮아하는 건 이런 마법 함정이야. 당연히 대책은 늘 생각했지.”
가볍게 장난이라도 보여 주듯 말하며.
리제타는 검을 내리쳤다.
“함정은 벨 수 있게 되면 되는 거야.”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보면 그저 허공에 칼질하는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겠지.
그러나 지켜보던 내 기감에는 한순간 두꺼운 밧줄을 자르는 것 같은 이미지가 스쳤다.
(베었네.)
‘결계를 움직이는 마법식의…… 마나의 흐름을 단선한 건가.’
비유하자면 회로의 단선이다.
회로 하나를 자르는 것만으로도 전자 제품은 작동하지 않게 되는 법.
마법도 다를 바가 없다.
‘터무니없는 기술이군.’
역시 짬밥의 차이는 무시 못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