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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111화 (111/389)

제111화

111화

(지금이라도 항복한다면 다치게 하지는 않겠어요. 그저 이곳에 대해 잊기만 하면 될 뿐이니.)

“그리고 시험도 망치겠지.”

(……어리석네요.)

마무리를 지을 생각인지 한숨 소리와 함께 포진해 둔 멜리사의 발현된 ‘지식’들이 움직인다.

아마 일제히 날아들겠지.

“이 물량은 골치 아프긴 하네요.”

“우와……. 그래서 시안? 어쩔래?”

“어쩌긴요. 끝내야죠.”

별것 아니라며 코웃음을 쳤다.

“무적은 개뿔. 이걸 어떻게 깨는지 보여 드리죠…… 라고 말하고 싶지만, 저 혼자서는 번거로우니 선배와 에밀리, 둘이 고생 좀 해야 할 겁니다.”

“괜찮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요컨대 지켜 달라는 거지?”

오냐.

시안은 응애야. 지켜야 해.

“신호는 제가 먼저 터트리죠. ……1분 정도만 버텨 주시면 됩니다.”

둘이 끄덕이는 것을 대강 확인한 후 나는 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우선은 날뛰기 편하게 먼저 다가오는 건 쓸어버리도록 하죠.”

-흑염멸아.

캐스팅을 마치자 우리들의 주변으로 둥글게 약 50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주먹만 한 화염의 가시가 생겨난다.

“뜯어 불태워라.”

화르르르르륵!

목표물로 설정해 놓은 것들이 범위 내로 들어오자 작은 흑염의 가시들이 이내 위를 향해 치솟는다.

마치 물어뜯을 듯한 화염의 이빨.

그것이 한차례 주변의 것들을 일소하는 것과 동시에.

“지금!”

나는 준비에 들어가고 동시에 리제타와 에밀리가 내 주변을 지키며 온 힘을 다해 나를 엄호한다.

카가가가강!

주변의 소음은 무시한다.

눈도 감는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이 시간을 벌어 주는 사이에 집중하는 것.

‘가능한 최대의 마기를 끌어모으고 오로지 의식을 집중한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나는 사고를 오로지 지금부터 할 마법의 캐스팅에 할애한다.

체내에 저장된 모든 마기를 남김없이 끌어서 쓸 준비를 한 후 머릿속에서는 곧 발동할 마법의 캐스팅을 한차례 반복함으로써 준비를 마쳤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둘 다 알아서 피하길.”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요!)

당연히 이런 내 태도를 눈치챈 멜리사가 나를 막으려고 공격하나.

“어림도!”

“없단다!”

양측에서 리제타와 에밀리가 각각 검과 마기를 두른 손날을 내리찍어 나를 향한 공격들을 파괴한다.

하지만 둘 다 소모가 심하다.

더는 엄호를 맡기는 게 어렵겠지.

“숙여!”

경고와 동시에 나는 머릿속에서 반복해 둔 캐스팅을 전부 차례대로 영창하기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마법사의 본질은 포대.

끊임없이 고화력과 성가신 상태 이상을 불러올 마법을 난사하며 빠르게 상황을 종결시킨다.

흑염멸옥탄.

흑염멸폭풍.

블랙 프리즌.

기타 등등…….

현재 내가 가용 가능한 마기의 한도 내로 쓸 수 있는 공격용 흑마법을 차례대로 난사한다.

콰가가가가강!

(이 무, 무슨 무식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마력의 양인가요?! ……서, 설마!)

멜리사가 비명을 지른다.

내 마력량에 경악하며 또한 무엇을 노리는지 알아챈 것이다.

“유령 선배. 댁이 치고 있는 장난의 약점은 이미 알고 있거든요.”

그녀의 스킬은 무적이 아니다.

모든 클래스의 지식을 재현하는 것은 놀랍지만, 그것이 전투에서 유리하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 능력에는 한계가 있죠. 하물며 어딜 공격해야 하는지도 명확하고.”

실체가 보이지 않는 유령.

얼핏 보면 어디를 공략해야 할지 혼란스럽겠지만, 알고 보면 정말로 간단하다.

“이 방 전체를 박살 내면 그만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떠들었지.

한정된 공간에서만 가능한 능력이라고.

요컨대 그 한정된 공간을 작살내면 된다는 것.

방 전체를 광역 공격으로 두들기면 자연스레 멜리사의 영체에도 충격이 갈 것이다.

(꺄아아아앗?!)

폭격 속에서 비명이 들린다.

소멸할 정도의 대미지는 아니겠지만, 틀림없이 타격을 입었을 터.

“해치웠구나!”

“그러니까 없앨 생각은 없어요! 그리고 괜한 말은 금지!”

불길하잖냐.

굳이 리제타의 발언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 조금 지나쳤나.”

기척이 변한다.

원령 특유의 느낌이 점차 강해지며 어딘가 불길한 느낌으로 변하고 있다.

“어떻게 된 거야?”

“좀 과하게 건드렸네요.”

많이 아팠나 보다.

“영체에 대미지가 컸나? 이거 저쪽이 먼저 정신줄을 놓은 모양인데요.”

* * *

멜리사에게 잊히지 않은 것은 저 천장 너머…….

바깥의 광경이다.

그녀가 생전 필로스 아카데미의 천재로서 살아가던 시절.

모든 것이 영광스럽던 때.

그리고 세상 물정을 몰랐던 때.

‘……이대로 사라질 수는 없어요!’

그 옛 시절의 천재는 없다.

남은 것은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서 헤매는 영혼 하나.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의 대가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머릿속에 새긴 광경은 영광스럽던 생전의 추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비웃는 이들.

(고작 약소 귀족의 자식인 주제에.)

(천재? 그게 어쨌단 거냐. 네가 뭘 하든 아무런 의미도 없다.)

(주제를 모르고 설친 대가다.)

질투하고 조소하며, 죽어 가던 그녀를 이곳에 던져 버린 이들.

같은 제국의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은 소년, 소녀들의 추악한 모습.

잊고자 했지만 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멜리사가 여전히 이 세상에 붙들린 채로 지하에서 조용히 ‘지식’을 수집하며 때를 기다리는 이유이니.

‘돌아갈 거야!’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악몽 같았던 기억과 겹치는 광경이 있었다.

변하지 않은……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은 소년, 소녀.

분명 저 아이들은 그들이 아니지만, 한순간 고통 속에서 그 모습이 겹쳐 보였고.

멜리사의 의식은 흔들렸다.

억눌러 왔던 원망이…….

외면해 왔던 진심 어린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 * *

“어? 어어어어어? 폭주하는 거야?”

“그런 거 같네. 보아하니 얘, 무모하게 혹사시켰던 모양이야.”

파앙!

파열하는 소리가 울리고,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멜리사.

무방비하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녀의 주변을 휘감고 있는 기척은 불길하다.

조금 전까지의 그녀에게는 지성과 이성이 깃들어 있었기에 비록 유령임에도 꺼림칙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라져.)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

동시에 그녀의 주변에 백 개는 족히 넘을 듯한 화구가 맺히더니 마구 쏟아져 내린다.

(나를 이곳에 떨어트린…… 너희는…… 절대 용서 못 해…….)

명백하게 적의와 원망이 실린 공격을 피하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저거 완전히 눈이 뒤집혔군.”

“열 받은 걸까?”

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육체가 없는 혼은 결코 지성과 이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건 알죠?”

지성과 이성을 잃고 그 찌꺼기로 탄생하는 게 사령 계열의 몬스터라는 설정.

하지만 멜리사는 조금 다르다.

육체를 남겨 놓아 아직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고.

생전의 그녀가 특출 난 천재였기에 여러 방법을 고안하여 자아를 억지로 붙들었다.

“하지만 일개 인간의 정신이 어디까지 자신을 억누를 수 있을까? 하물며 이런 곳에서.”

에밀리의 의문대로다.

집착과 오기로 버틴다고 해도 분명 한계는 있다.

“우리 시안과 검사 아가씨가 온 건 우연히 그때가 한계에 이를 즈음이었을 거야.”

“요컨대 재수가 없다는 겁니다. 어이쿠!”

느긋하게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정면으로 날아드는 투창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연거푸 추가로 날아든 것을 리제타가 검을 휘둘러 쳐 낸다.

“……어쩔 거야? 후배? 아까보다 살기가 세졌어.”

“사실 단순한 토벌은 어렵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토벌을 전제로 싸웠으면 처리하는 건 간단하다.

멜리사는 한번 공략이 통하게 되면 토벌까지의 흐름은 간단하다.

패배하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니까.

“저 유령 선배를 처리하면 그걸로 끝이겠죠.”

“……후배, 그건.”

“압니다. 좀 내키지 않지요?”

처리는 간단하다.

전부 외면하고 베고 태워 버리면 그걸로 끝. 돌아가서 잊고 밥 먹고 푹 자면 그만.

……그럴 생각은 없지만.

“소멸시키지 않고 제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대신 조금 번거로운데 괜찮겠습니까?”

“상관없어. ……저걸 베고 싶은 마음은 없어.”

하여튼 방침은 정했다.

“방법은?”

“사령 주무르는 게 저희 클래스의 특기거든요.”

“아! 흑마법!”

마침 이전에 들은 흑마법 클래스의 수련 과제가 그 사령술의 이론이기도 했고.

딱 적당하네.

“내가 할 일은?”

“베어 주세요.”

“어……. 하지만…….”

“영체니까 적당히 베는 정도로 잘못되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자아를 구성하는 마력까지 잘라낼 정도로 손상을 주면 안 됩니다만.”

“거 주문 까다롭네!”

하지만 못 한다고 하지도 않는다.

“알았어! 맡겨 보렴!”

더는 묻지 않고 리제타가 돌진한다.

맡겨 두면 되겠지.

나 역시 에밀리에게 엄호만을 지시하고는 그 뒤를 따라 달려 나간다.

접근하는 우리들을 보고 멜리사의 원념은 더욱 분노를 터트린다.

아마 우리와 어떤 것을 겹쳐 보고 있으리라.

(오지 마아아아아아!)

“……유감이지만 그냥 놔둘 수는 없겠네요. 옛 선배님.”

리제타가 담담히 중얼거리며 두 자루의 검을 휘둘렀다.

스스슷!

허공을 가르는 소리.

멜리사가 펼치는 지식의 재현을 발현 전에 전부 베어서 흐트러뜨려 버린다.

거리를 좁히면 거의 일방적일 정도로 리제타가 우세하다.

“죄송하지만 유령을 베어 본 적은 없어서……. 아플지 모르겠지만 미리 사과는 드릴게요.”

단숨에 검이 닿을 거리까지 간극을 좁힌다.

멜리사가 반응을 보이는 것보다 리제타의 쌍검이 벌이는 난도질이 훨씬 빠르다.

샤사사삿!

어디까지나 허공을 가르는 소리.

상대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아니기에 검은 그저 멜리사의 영체를 통과할 뿐이다.

물리적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베려면 오러를 둘러야 하지만, 그럼 지나치게 상대를 파괴해 버리지.

목적은 멜리사 영체의 소멸이 아니다.

“잘 보렴. 후배. 꼭 완전히 베는 게 검술은 아니거든.”

베인 원념이 꼼짝을 못 한다. 마치 겁에 질린 듯 떨기만 하고 경직된 상태.

“저건…….”

“일부러 어중간하게 검에 기운을 실어서 혼란이 오게 한 걸까.”

에밀리가 가늠하며 파악한 비결을 가르쳐 주었다.

“재주 한번 좋아. 정말로 미세한 정도만 베어서 가능한 저 영체에 겁을 주는 정도로 그친 모양이야.”

“……저건 보고도 흉내를 못 내겠군.”

덕분에 내가 쉽게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후배! 오래는 못 갈 거야!”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미 준비는 끝났다.

멈춰 있는 원념을 향해 나는 준비해 둔 마법식을 실행하며 그대로 때려 박았다.

사령술.

“그렇구나. 사령술의 마법식을 이용하여 억누르려는 거지?”

“어쨌든 목적이 그녀를 진정시키는 거라면 원리는 크게 차이가 없으니까.”

다니엘 교수의 가르침을 떠올리자.

실습보다 조건은 까다롭지만 뭐, 까짓것 난이도만 조금 올라갔을 뿐.

단순히 억지로 묶는 것이 아니라 그 원념의 성질을 듣고 회유하는 것.

정말로 예속시키는 단계까지는 필요 없다.

억눌러 잠시 엇나간 지성이 다시 돌아올 틈만을 주면 그만.

그리고…….

“필요한 건 대화.”

다니엘 교수가 강조한 점을 떠올리며 나는 강하게 의식을 전달한다.

저 유령 선배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정보를 전달하면 될 일이다.

“자, 눈 좀 뜨시죠. 까마득한 후배 앞에서 더 추태를 보이기 전에.”

가능한 할 수 있는 ‘대화’는 제시했다.

나는 술식을 거두며 물러나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 멜리사의 원념을 응시했다.

“후배? 어떻게 된 거 같아?”

“……지켜보면 알겠죠.”

“완전히 사역해 버리는 쪽이 더 빠를 텐데.”

“그건 아마 저쪽도 바라는 게 아닐 거고.”

내 목적과도 어긋난다.

가능한 제정신을 찾게 해 주는 게 가장 이상적이니까.

낌새가 변한다.

무시무시한 귀기 같던 불길한 기척은 약해지고 그 전에 보인 유령답지 않던 분위기가 되돌아온다.

(…….)

말은 없지만 아마 제정신이 돌아왔으리라.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단, 변동된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대체 목표 : 생령 멜리사의 존속》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34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레벨업 보너스 스킬 포인트 5pt를 획득합니다.》

잘 먹힌 모양이군.

본래부터 내가 노리던 것은 멜리사의 토벌이 아니다.

이 망할 퀘스트 덕에 게임 시절에는 토벌을 하면 되겠지, 하고 냅다 공격했다가 땅을 치고 후회하는 유저들이 적지 않았다.

이 퀘스트의 진의.

이곳의 존재 의미.

무엇보다 멜리사의 역할을 알게 되는 것은 토벌을 선택하지 않은 이후에나 드러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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