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116화
숲의 개발 허가를 받고 공방의 개축을 승인 받고 입을 다무는 대신에 별개로 합의를 본 것.
“당분간 공방은 쓰지 말아 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만.”
접근 금지.
딱히 내 집은 아니지만,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야 계속 이런 식으로 습격을 받으니 차라리 평가가 끝날 때까지 적당히 다른 곳에서 잠수를 타라는 뜻이겠죠.”
“…….”
한순간.
미세한 오한이 든 거 같았다.
희미하지만 낮게 깔리는 마기 특유의 기운.
무엇보다 그 마기에 담긴 진심 어린 분노.
“아,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교수님. 이건 제가 제안한 거였어요.”
“그런가요?”
단순히 학생의 심술 정도로 끝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의 지식으로도 확신하고 있고, 무엇보다 이건 제국 귀족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이기 때문.
내가 평민에다 하물며 길바닥 출신인 이상은 당분간 이런 시비에 계속 휘말릴 수밖에 없다.
‘전부 상대하는 건 시간 낭비고……. 그냥 더러우니 무시하는 게 나아.’
악의에 굴복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아직은 제국 귀족계를 상대하기에는 이르고.
뭐, 올해 정도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만이다. 그 후에는 놈들도 나를 부담스러워하게 될 테니.
전략적 후퇴.
물론 맨입으로는 아니다. 나름의 후퇴비는 받았다.
“평가 기간 동안 다른 곳에 머물 돈은 별도로 받았습니다.”
그것도 꽤 많이.
제국 시내의 고급 숙소에서 놀고먹을 정도의 돈이었다.
……아마 아카데미 측도 소동이 커지는 걸 어지간히 피하고 싶어 한다는 뜻.
“그대로 숙소를 잡아도 되고, 적당히 다른 곳에서 지내면서 용돈으로 써도 될 테니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시안이 괜찮다면 선생님은 더는 말하지 않겠지만요……. 잠깐?! 그럼 어디에서 지낼 생각인가요?”
“어디에서 지내든 슬럼가 길바닥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이래 봬도 나는 그런 쪽으로는 꽤 대범한 생각을 지니게 된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순수하게 ‘시안’이었던 시절의 감각은 내 인식에 나름의 영향을 주었다.
정말로 어디에서 지내든 유년기 시절보다는 잘 지낸다는 감각을 가진 셈.
“정말로 노숙할 마음은 없지만요.”
“하필 이런 기간이라 시안을 데리고 가는 건 곤란할 거 같은데요.”
“아니, 교수님 기숙사는 안 되죠.”
왜 이 사람은 툭하면 나를 데리고 가지 못해서 안달일까.
혹시 그건가.
미리 붙잡아서 목줄이라도 채워 장래 흑마법 클래스에 일조하게 할 셈인가.
그거지? 나를 대학원생으로 만들려는 거지?
(시안, 이 누나가 보기에는 이런 여자가 나중에 가장 무서워진다니까? 조심해 두렴.)
‘에밀리, 넌 일단 입 다물고 있어.’
(후후……. 일단 충고는 했다?)
……듣지 않을래.
“걱정하지 않으셔도 어떻게든 됩니다만. 정 뭣하면 친구 집에 쳐들어가는 것도 방법일 테고요.”
그것도 이 나이대 청춘의 특권이 아닌가. 약간은 설레네. 사실 친구 집에 쳐들어간 경험은 없었거든.
“……친구? 시안이 말인가요?”
“거기서 걱정스럽게 갸웃거리시면 어떡하나요?”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거야말로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 *
엘시아 리올레이트는 이론서를 펼친 채 벌써 수십 분을 미동도 하지 않았다.
“…….”
이따금 눈을 깜박일 뿐. 가끔 초조한 듯 손끝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는 시늉을 할 뿐.
평상시와 다르게 그녀는 도통 교재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으으.”
결국 포기하고 교재를 덮으려는 그 순간이었다.
“엘시아 님.”
“레이린.”
마침 일부러 낸 듯한 희미한 발소리와 함께 그녀의 시종이 말을 걸었다.
기다렸다는 듯 엘시아가 무언으로 재촉하자 레이린은 고개를 숙이고는 주인이 시킨 일에 대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말씀대로…… 그 흑마법사 소년의 거처를 살펴보았습니다.”
“들키진 않았겠지?”
“이미 한차례 소동이 끝난 뒤니까요. 실행범들은 이미 넘어갔고, 굳이 어려울 건 없었습니다.”
“그래서?”
“…….”
엘시아의 재촉에 레이린은 무어라 말할지 잠시 주저하듯 입을 다물었다.
“거짓은 말하지 마. 어디까지나 네가 확인한 대로 말해라.”
“……틀림없습니다.”
순간 콰직, 테이블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엘시아가 그 가느다란 주먹을 쥐어 테이블을 힘껏 내리친 것이다.
금이 갔으니 더 이상 못 쓰겠군. 레이린은 굳이 그 감상은 입에 담진 않았다.
“정말이야?”
“예. 살펴본 결과…… 그 흑마법사 소년의 거처에서 일어난 소동은 리올레이트가의 사주로 보입니다. ……어쩌면.”
“……아버님이겠지.”
차마 말할 수 없는 시종 대신 엘시아가 푸념하듯 내뱉었다.
“아가씨.”
“대체 아버님은 어째서…….”
시안의 거처에서 일어난 소동에 대해 들었을 때, 엘시아는 내심 확신했다.
리올레이트 공작가의 가주.
그녀의 아버지인 리올레이트 공작이 꺼낸 언급.
“아버님은 나를 못 미더워하시는 모양이군.”
“그건 아닙니다. 그저…….”
“그게 아니라면 리올레이트가는 무엇 때문에 아무런 연관도 없는 동급생을 사람을 시켜 습격한 것이냐?”
경고다.
그 실력 좋은 평민 흑마법사 소년에게.
그리고 그 소년의 실력을 의식한 그녀의 상태를 꿰뚫어 본 공작의 경고.
“……이렇게까지 해서 정점에 서야 하는 건가.”
“……공작님의 뜻입니다.”
“레이린.”
“어디까지나 견제일 것입니다. 아마 공작님께서도 굳이 그 소년을 해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겠죠.”
“거짓말이군.”
엘시아는 시종의 거짓말을 꿰뚫어 봤다.
“솔직히 말하라고 했을 텐데.”
“……흔적을 보아하니 아마 살의는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긍지인가.”
고작 평민 하나가 거슬려 기가 막힌 짓을 저지른다.
엘시아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혀를 찼다.
“언제까지 이런 것을 지켜봐야 하지?”
“……지금은 아닙니다. 아가씨께서 더욱 실력을 기르고 공작가에서 입지를 다지시면 가주님께서도.”
“이런 것을 묵인해 가면서?”
시안이 처음이 아니다.
처음 그 진실을 눈치챘을 때는 속이 뒤집혀 토악질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고작 짜증을 내는 게 전부.
“아니면 당연하게 여겨질 때까지냐?”
“그런 뜻은…….”
“……아니다. 레이린. 네게 분풀이를 하는 것도 옳지 않겠지. 아니면 나 역시 리올레이트가의 사람이니 당연한가.”
시종은 일단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무슨 소리를 해도 아가씨의 언짢은 심기를 풀어 주기는 어려우리라.
“다행히 그 소년은 자력으로 습격을 물리쳤습니다. 아마 그 정도의 하수인으로는 상대도 되지 않았겠죠.”
“잘 아네?”
“흔적을…… 토대로 추측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걸 듣고 안심하라고 한들…….”
“거기에 소동이 제법 커졌습니다. 아마 가주님도 다른 분들도 같은 지시를 내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
정 마음에 걸리면 평가가 끝난 뒤에 사과하면 될 것이다. 레이린은 그렇게 조언했다.
“제멋대로잖냐.”
“그 소년도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더군요. 뭐, 그 숲에 머무는 것이 당장 어려워진 모양입니다만. 그 정도는 딱히 문제는 없을…….”
“잠깐, 레이린?”
“아…….”
레이린은 그제야 자신의 실언을 깨달았다.
“그게 무슨 말이지? 지금 시안은…… 그 녀석은 뭘 하고 있다는 거냐?”
“아가씨께서 마음에 담아 두실 정도는 아닙니다만.”
“……말해.”
아마 들으면 무조건 신경을 쓸 내용이리라.
그렇기에 멋대로 입을 다물려고 한 거겠지.
“어차피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른 녀석들에게 물으면 들을 수 있을 거다.”
“……사건을 의식한 것인지 혹은 다른 위협을 느낀 것인지 평가 기간까지 흑마법 클래스 공방의 출입이 금지된 모양입니다.”
“쫓겨난 건가?”
“그것까진…….”
사건 이후 시안은 아카데미 교무부에 불려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당분간 흑마법 클래스 공방은 폐쇄로 결론이 난 모양.
그 과정에서 무슨 이야기가 돌았는지 레이린이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엘시아는 자신의 상식대로 생각했다.
귀족들의 횡포를 아카데미 측이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소동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들을 쉬이 규탄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다른 곳에서 일으키라는 건가.”
작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추측이 새어 나왔다.
사실과는 다르지만, 지금 이곳에서 그 착각을 수정해 줄 이는 없었다.
“으으으으으으…….”
곤란한 듯 입을 다문 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엘시아는 생각에 잠겼다.
적어도 아카데미의 다른 학생들이나 교수들은 상상도 못 할 모습.
하지만 그녀를 계속 지켜봐 온 시종 레이린은 난처한 듯 눈동자를 굴렸다.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한 것이다.
의외로 그녀가 모시는 아가씨는 무른 인간이다.
리올레이트 공작가의 일원답지 않게.
그러니…….
“레이린, 한 가지 일을 더 시키마.”
“……거절하고 싶습니다만.”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뇨, 어려울 텐데요. 시종은 속으로만 되뇌었다.
“그저 길에서 어떤 녀석 하나를 주워 오면 된다.”
“아뇨……. 개나 고양이를 주워 오라는 것처럼 말씀하셔도 곤란합니다만.”
차라리 개나 고양이가 나을 것이다.
“할 수 있지?”
감히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을 뻔한 것을 참으며 레이린은 그 억지를 들어주기 위해 물러났다.
수 시간 후.
“분부대로 주워 왔습니다.”
“주워 오다니! 내가 무슨 개야?! 그 전에 이건 그냥 납치거든?”
레이린은 시키는 대로 제대로 시안을 확보하여 데리고 왔다.
……될 대로 되라지.
속으로 한숨을 쉬며 그녀는 확보한 흑마법사 소년을 대충 바닥에 내려놓았다.
* * *
엘시아 리올레이트의 시종이 돌연 나를 무슨 길바닥에서 개를 낚아채듯 들고 나르는 그 순간은 경계했다.
만일의 경우, 그녀가 리올레이트가의 명령으로 나를 처리하려고 들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았기에.
만약 그런 명령이 주어진다면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실행할 테니까.
곧 그게 아님을 확신한 건 희미하게 들리는 긴 한숨 소리.
‘아……. 이거 그 아가씨가 바보짓을 한 거구먼.’
애써 감추고 있는 수석 엘시아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알아챌 수 있는 결론.
나는 바로 저항을 관두고는 일단 순순히 레이린에게 붙잡힌 채로 이동했다.
엘시아 리올레이트가 머물고 있는 저택으로.
“요즘은 이렇게 목덜미를 낚아채고 초대하는 게 유행이야? 귀족들 사고방식은 당최 모르겠네.”
“하하, 그럴 리가 있겠냐. 안타깝게도 그 정도로 유쾌하지는 않다.”
“……그렇겠지.”
내 농담에 마찬가지로 유쾌한 시늉을 하며 답하는 엘시아.
“갑작스레 초대한 건 사과하지.”
“새삼 사과할 필요는 없어. 다만 용건이 있다면 후딱 말해 줬으면 좋겠다만. 일단은 해 지기 전에 숙소를 잡고 싶거든.”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어?”
아마 엘시아는 지금 내 사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의 질문도 없이 태연하게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니 확신한다.
아마 이 녀석이 엄청나게 바보 같은 발언을 할 거라고.
“곤란하다고 들었다.”
“아니, 딱히?”
“이 시기에 거처를 잃는 것은 힘들겠지.”
“이봐요? 아가씨? 제 말 듣고 있나요? 그리고 딱히 집 잃은 건 아니거든?”
어디까지나 피난 중이지.
그러나 내 말은 이 아가씨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지 엘시아는 참으로 태연한 웃음을 짓고는.
“곤란한 학우를 외면하는 것은 내 신조에 어긋나는 일이지.”
“그러니까 안 곤란하대도?!”
글렀다. 듣지 않는다.
“시안! 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곳에서 지내도록 해라!”
“……이봐, 시종 씨? 댁 아가씨가 이상한데?”
“……조용히 하십시오. 그리고 제발 잊어 주십시오. 저도 머리가 아프니까요.”
시종은 포기했다.
뭐, 나도 엘시아의 성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저건 말리지 못하겠지.
‘거기에다 보아하니 어지간히 켕기는 모양이군.’
동기도 쉬이 짐작이 간다.
아마 그때 그 침입자들은 역시 리올레이트가……. 정확히는 엘시아 외의 누군가가 보냈으리라.
‘그리고 그걸 알고 신경이 쓰이다 못해 사고가 폭주한 건가…….’
엘시아의 성격은 의외로 무르다.
만약 길에 버려진 개나 고양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줍고 난처해하는 그런 인물.
아니, 하지만 난 개나 고양이가 아닌데.
(시안은 좋겠네? 길 가다가 저런 아가씨가 직접 주워 가고.)
‘장난하지 마. 에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