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119화
학생식당에서 얻을 수 있는 케론딜의 한정 특수 요리.
평범한 밥이라면 내가 굳이 이 맛대가리 없는 것에 눈독을 들이진 않는다.
그것은 바로!
“이전부터 고민했네. 하루가 바쁘게 정진할 시간도 부족한 아이들을 보며 조금이라도 그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해 줄 수 없을까, 하고 말이지.”
하지만 그는 요리장이다.
해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밥뿐.
그렇기에 이 아저씨가 내놓은 결론은…….
“그렇다면 수행에 도움이 되는 밥을 먹이면 그만이지 않겠나.”
강해지는 밥.
무슨 꿈같은 헛소리인가 싶지만, 사실 이 세상에는 몸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약이 드물지 않다.
“과연……. 그렇게 케론딜 경께서 연구 중인 식사를 시안이 조력해 주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게 됐네. 모처럼 쉽게 쓰러지지 않는 시험대……. 아니, 학생은 드물지.”
지금 학생을 시험대라고 부르려고 했지?
저 아저씨의 헛소리는 제쳐 두고 그 특수 요리는 상당히 유용했다.
실제로 스테이터스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지.
“놀랍군요! 역시 케론딜 경입니다!”
엘시아도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흠, 그래. 알아준다면야 기쁜 일이지. 좋다. 이렇게 왔으니 자네의 것도 주도록 하지.”
“그럼 호의를 감사히 받겠습니다.”
“……슬슬 저놈 외에 다른 애들의 반응도 살펴봐야 하니.”
“예?”
잘못 들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시아.
나는 굳이 쓸데없는 첨언은 하지 않는다. 이럴 땐 입을 꾹 닫는 것이 법칙.
아니, 그건 매정하니 한마디는 할까.
“엘시아.”
“뭐냐.”
“독 내성은 있냐?”
“……어느 정도는 끄덕 없다만.”
“그래, 그건 다행이군.”
정말로 다행이네. 적어도 덧없이 목숨 하나가 날아갈 일은 없겠군.
잠시 뒤 케론딜 씨가 두 사람 몫의 시식용 요리를 가지고 돌아왔다.
“느긋하게 맛을 보거라.”
“…….”
그러나 조금 전의 싹싹한 태도와 달리 엘시아의 안색에는 핏기가 가셨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리라.
저 아저씨의 특수 요리의 정체를.
‘그러고 보면 게임 시절, 저건 식품이 아니라 약품으로 분류되어 있었지?’
그것도 극약.
아마 제작진의 농담 같은 거겠지만.
생각해 보니 틀리진 않다고 본다.
“……검어.”
“색은 신경 쓰지 말게나.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더군.”
호탕하게 웃는 케론딜 씨의 말과는 달리 정작 가져온 접시 위의 내용물을 보니 웃을 수가 없었다.
못 웃는다.
끓어오르는 검은색의 액체.
“일단 묻겠습니다만, 아저씨? 이건 대체 뭡니까?”
“보면 모르냐. 스튜잖냐.”
“대체 어느 동네 스튜가 이토록 새까만 색인가요?”
굳이 따지자면 아스팔트를 녹인 것에 가까운 비주얼이라고 할까.
(몇 번을 봐도 저 아저씨의 작품은 가관이네……. 마계의 들개들도 저런 건 안 먹을 거야.)
악마의 인증까지 받았으니 저건 진짜다.
“가능한 체력 증진, 마력의 경로 확장 등의 효과를 노리려면 다소 맛과 향의 희생은 어쩔 수 없지.”
“이건 희생이 아니라 대참사라고 하는 겁니다.”
덧붙여 게임 시절의 묘사로는 이걸 먹고 나면 해당 플레이어 캐릭터는 그날 밤이 되어서야 간신히 눈을 떴다고 하지.
고작 밥 하나 먹는데 왜 시간이 밤이 되냐의 고증인 건가.
“안 먹을 거냐?”
“먹기야 먹을 겁니다! 빌어먹을!”
안타까운 건 정말로 효능은 끝내준다는 거지.
내가 눈물을 삼키며 결국 그 정체불명의 액체를 들이켜자.
“으엑…….”
느껴진다.
온갖 독성 내성과 소화 계통 스킬이 비명을 지르는 걸.
잡초 같은 걸 생으로 뜯어먹고도 탈이 안 나는 내 내성이 레드카드를 들려고 하고 있다.
《시안》
《클래스 : 흑마법사》
《클래스 레벨 : 34》
《체력 : 291》《마력 : 465》《민첩 : 227》《행운 : 154》
《물리방어 : 14》《마법방어 : 20》《정신내성 : 30》
《식물내성 : 25》
《잔여 스킬 포인트 : 24pt》
대신 효력만큼은 확실하지만.
밥 비슷한 음식 쓰레기를 먹으니 능력치가 올라요! 빌어먹을!
“그래! 그 기맥을 보니 효과가 있나 보군!”
“제발 밥을 먹였으면 상대의 반응을 기감이 아니라 미각으로 확인하려고 하세요! 좀!”
덧붙여 오늘 내가 일부러 끌어들인 또 한 명의 시험대는…….
“…….”
이미 말이 없다.
새하얗게 불탄 듯 스푼을 든 채 굳어 있는 게 저건 이미 그른 모양이다.
뭐, 엘시아의 스테이터스도 올랐을 테니 다시 눈을 떴을 때의 그녀는 상당히 복잡한 표정을 짓겠지.
“저 아가씨도 감동한 모양이군.”
“눈 까뒤집고 기절한 걸 보통 감동이라고 부르진 않는데요.”
이제 알겠지? 아가씨?
평민은 보통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 * *
“시안? 어떻게 의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냐.”
“내성의 수치가 다르니까. 그래서 효과는?”
“……힘이 오르는 것이 느껴지는 게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군.”
자신의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감각을 확인한 엘시아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대체 케론딜 경은 뭘 하는 거지?”
“그 아저씨의 옛날 경력은 제쳐 두고 애들을 위해서 고심한다는 건 진짜거든.”
그 아저씨의 연구가 언젠가 빛을 발하겠지만, 그건 훨씬 나중의 일일 테고.
“설마 시안 넌 평소에 이런 식으로…… 힘을 키운 거냐?”
“뭐~ 그 외에도 아카데미 내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끼어들어서 콩고물을 챙겨 먹었지.”
그 외에도 여러 이벤트가 있다.
연금술사 학부에서 시험하는 신약이라든가.
오러 클래스에 버릇없는 망나니들을 찾아가 일부러 시비를 붙게 하고 두들겨 패 준다든가.
“엘시아, 넌 내가 어떻게 실력을 키우는지 궁금해했지?”
아마 그녀는 좀 더 특별한 무언가를 생각했을지 모른다.
다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언했다.
“딱히 다를 건 없어. 너랑 나는 같은 아카데미에 재학하고 있을 뿐.”
“같은 곳인가.”
“그런데도 차이가 있다고 여겨지면 오늘 네가 본 이거지.”
나는 우리가 뒤로한 식당 건물을 슬쩍 곁눈질로 가리키며.
“같은 장소에서 무엇이 있는지 얼마나 돌아보느냐. 누구와 알게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도움을 받느냐.”
같은 아카데미에 재학하면서 나는 조금이라도 강해질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 사소한 것들도 모두 이용하고 있다.
“엘시아 넌 주변을 봐야 해.”
“……무슨 의미지?”
“생각해 봐.”
전부 가르쳐 주면 조언의 의미가 없다.
“나랑 좀 더 돌아볼 마음이 있으면 따라와.”
“……알겠다.”
엘시아는 고심한 듯 잠시 뜸을 들이고는 대답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 거지?”
“새로 전투용 훈련 장치를 시험해 달라는 녀석들이 있더라. 뭐, 먹었으니 적당히 움직여야 하잖아?”
“……각오는 해 두지.”
아니, 그 아저씨의 밥이 이상한 거다. 다른 건 그렇게 끔찍하지 않거든.
마치 사지를 동행하는 듯한 굳은 얼굴로 말하는 엘시아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고 손짓했다.
“일단 그렇게 돌고 나면 해 질 즈음에는 잠깐 다른 곳도 들를 거야.”
“다른 곳?”
“……아가씨 데리고 다닐 만한 곳은 아니지만. 너도 딱히 거길 모르진 않겠지.”
어차피 숨길 필요도 없다.
“암시장.”
이왕 다니는 김에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 게 좋겠지.
이 망할 아카데미를 알차게 살아가는 비법을.
* * *
“암시장 같은 곳도 다니는 건가?”
“이래저래 구하기 힘든 거 구할 때는 딱 좋걸랑.”
특히 가장 구하기 쉬운 것이 비약이나 그 약을 제조하기 위한 귀한 소재.
“강인한 몸을 만들고 마나의 친화성을 늘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약이 필요하잖아.”
“……과연.”
엘시아는 순순히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떡였다.
힘과 마나의 친화성을 늘려 주는 각종 비약들은 의외로 학생들에게 친숙하다.
오러나 마법 등 마나를 다루는 데 필수적인 수업에서는 약을 복용 하고 그것을 다스리는 방식을 가르치는 수업이 있기 때문.
“뭐, 아카데미에서 이따금 지급하는 약은 기껏해야 마나의 친화성을 약간 올려 주는 정도이지만.”
그 외에는 알게 모르게 개인 재량껏 구해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엘시아, 너도 그렇지?”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 가문에서 보내 주는 여러 가지 것들을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파벌의 학생들에게도 일부 나눠 주는 모양이고.
“거참 부럽네.”
“그렇다면 내 밑으로 들어오면 된다만.”
“아니, 그냥 해 본 말이거든.”
실은 전혀 안 부러워요.
“약이라면 나도 질리게 먹거든. ……아니, 이렇게 말하니 좀 이상한가.”
“설마 비약도 직접 만드는 건가?”
“어지간히 간단한 건.”
소재를 구하기 쉬운 것들은 꾸준히 만들어서 복용하고 있다.
뭐, 예전보다 횟수가 준 게 사실.
비약류는 사용 횟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각 비약의 종류마다 내성 수치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체력 1을 올려 주는 약의 경우는 총 50의 스테이터스를 올리고 난 이후로는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물론 현실이 된 이후에 달라질까 싶어 기대했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내성 수치는 존재했다.
“강력하고 다양한 비약을 구하는 게 강해지기 위한 숙제였지.”
“그걸 해결하기 위한 곳이 시안, 네가 가는 곳인가?”
“그런 셈이지.”
내가 향한 곳은 슬럼가에 위치한 암시장.
나를 뒤따라온 엘시아도 동행한 손님으로 취급해 일단은 통과시켜 주는 모양이다.
“암시장?!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들어오게 될 줄이야.”
“의외로 이런 소식에는 둔하군.”
저래 보여도 일단은 명문가의 영애였지. 슬럼가에 올 일도 없거니와 그녀 앞에서 암시장의 존재를 굳이 누가 떠들 이유도 없다.
“대체 뭘 파는 거지? 제도의 상점가랑은 다른 곳인가?”
“뭐…… 대충 이런저런 것.”
아마 암시장에 대해서 전부 말해 버리면 귀찮을 일이 일어날 거 같아서 대충 얼버무렸다.
“용건만 후딱 끝내고 갈 거야. 사야 할 물건은 이미 말해 뒀으니 확인만 하고…….”
“뭐야? 꽤 섭섭한 소리를 하네.”
아무렇지 않게 끼어든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만 돌렸다.
당연히 그 장본인인 리넬은 섭섭하다는 투로 말을 걸어왔다.
이 암시장의 여주인 리넬 밀리켈.
“손님을 빠르게 돌려보내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도 없어. 기왕이면 길게 머물다가 갔으면 하는데.”
“쇼핑은 길게 하지 않는 주의다만.”
남자는 마트에 들어오는 순간, 체력이 10분의 1로 줄어드는 디버프에 걸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거든요.
(아~ 저 여자 또 왔네. 시안, 역시 이 누나가 내쫓아 줄까?)
‘됐으니까 끼어들지 마. 너까지 튀어나오면 골치 아프다.’
리넬의 등장에 거슬린다는 듯 당장이라도 나오고자 하는 에밀리를 나는 강제로 차단했다.
어째서인지 리넬은 내가 암시장에 올 때마다 직접 나와서 맞이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때마다 왠지 모르게 에밀리가 어이없어했지.
(딱 봐도 속내가 보인다니까.)
‘적당히 호의를 끌어 두면 유익한 손님이라고 생각한 거겠지.’
(……그거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소리니?)
아니면 어떠리.
염화로 에밀리에게는 오늘은 제발 얌전히 있으라고 단단히 신신당부를 하자니, 그런 속내도 모르고 리넬은 바로 옆까지 바싹 붙어있다.
어느샌가 자연스레 내 팔짱을 껴안고는 안내하는 모양새.
이러면 누가 보면 단골인 줄 알겠네.
“가끔은 다른 것들도 권해 주고 싶은데. 조금 더 시간을 내는 게 어떨까? 시안.”
“뭐~ 조만간 여유가 생기면.”
“매정한 소리나 하긴. 한가하잖아?”
“시험 기간이거든? 알잖아.”
“에이~ 시험 정도야 적당히 쳐도 되는 거야.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아직 모르네.”
이 여자 인생을 너무 날로 보시네.
“인생의 재미에 관해 궁금하면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이야기해도 상관없어.”
아니, 일 안 해요?
“흥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리넬 씨, 오늘은 친구도 같이 있어서 말이야.”
“친구라……. 어쩐지. 그래서였구나. 보고를 들었을 때는 놀랐는데.”
그제야 리넬은 이 꼴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엘시아에게 시선을 보냈다.
일부러 눈치 못 챈 척을 했던 게 분명했다.
못 봤을 리가 있겠냐.
“시안은 별난 친구를 두고 있었네. 리올레이트가의 아가씨라니. ……큰일이네. 대접해 줄 게 없어서.”
“시안을 따라왔을 뿐이다. 신경 쓰지 마라. 리넬 밀리켈.”
초면이 아닌 모양이다.
그야 리올레이트가나 밀리켈가나 결국은 제국의 귀족가.
아마 다른 곳에서 얼굴 마주할 자리는 충분히 차고 넘쳤을 테니.
‘그러고 보면 리올레이트가와 미리켈가의 관계가 미묘했던가.’
적대 파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순히 우호를 다질 만한 관계도 아닌 모양이군.
“밀리켈 상회는 설마…… 상회주가 직접 손님을 맞이할 정도로 사람이 부족한가.”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손님일수록 직접 대화해야 하는 때가 있답니다.”
“그렇군. 시안은 중요한 손님인가.”
“무슨 말을 하고 싶나요? 리올레이트가의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
사이가 나쁘군.
혹시 데려온 게 실수였나? 했지만, 나는 곧 성가심을 느끼고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용건이나 어서 마치자.
내가 먼저 가 버리려고 하자 그제야 리넬은 엘시아에게 시비를 걸던 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나를 쫓아온다.
“……얘얘, 일단 충고해 두지만 리올레이트가의 아가씨는 단념해 두는 게 좋을걸.”
“무슨 소리야. 딱히 수작 부리려고 데리고 온 건 아니거든?”
“걱정돼서 말하는 거란다. 일단은 귀중한 손님이잖니. 아마 너는 모르겠지만 리올레이트가는 위험해.”
견제가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되어서 하는 충고일 것이다.
“기억해 둬. 시안. 가장 무서운 건 어둠 속에서 활개 치는 녀석들이 아니야.”
“가장 무섭고 독한 것은 양지에서 활개 치는 악당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모를 리가 있나. 리넬이 하려던 경고를 먼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