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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121화 (121/389)

제121화

121화

습격자가 던진 것은 전이용 아티팩트였다.

“아마 최근 마탑에서 비슷한 걸 연구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뭐, 놈들이 사용한 건 그거보다 조잡한 거지만.”

“이해했다. 즉, 지금 우리는 그자가 던진 아티팩트에 의해 이동한 것이군.”

침착하게 내 설명을 들으며 엘시아는 턱을 괴고는 상황 정리에 몰두하고 있었다.

“전이 함정이라니 대체 누가…….”

“글쎄다. 비루한 흑마법사라서 시기를 받는 나든 리올레이트가의 아가씨든 피차 원한을 많이 사는 건 똑같잖아.”

“웃음은 나오지 않는 말이군.”

내 농담을 신랄하게 들었는지 엘시아는 깊은 한숨을 흘렸다.

“걱정 마. 엘시아. 아까 그 아티팩트는 조잡해. 이동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낯익은 장소는 아닌 것 같군.”

어딘가의 지하.

그것도 인공물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 같은 곳이다.

“제도 근처에 이런 곳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적어도 아티팩트의 마력량을 계산하면 제도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닐걸.”

그럴듯하게 이론으로 둘러댔지만, 실제로 확신하는 이유는 이 상황 자체를 게임에서도 겪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안~ 조금 전에 함정에 빠질 때 웃었지?)

‘아, 들켰나.’

에밀리까지 속이지는 못하리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이 누나를 불러서 저지했으면 금방 막았거든?)

‘그럴 필요가 없었을 뿐이야.’

일부러 걸려들었다.

애당초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상황은 엘시아 리올레이트와 동행할 경우, 일정 확률로 발생하는 이벤트 같은 것이다.

습격 자체는 귀찮았지만, 이 함정으로 도달할 장소에는 올 필요가 있었다.

(어딘지 아니?)

‘아주 잘 알지.’

장소도 특정해 두고 있다.

제도 인근 숲의 지하.

그 지하 동굴이라 불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동굴이었다.

엘시아 리올레이트와 관련된 이벤트 중 한 번은 겪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기 사냥감이 꽤 쏠쏠하거든.’

무척이나 귀한 사냥터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자력으로 입구를 찾아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무조건 엘시아 리올레이트 관련 이벤트 중 습격 이벤트를 거쳐야만 전이되는 장소.

미리 예상했고, 반쯤은 일어나길 기도했던 상황이기에 내가 당황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상하게 침착하군. 시안.”

한편 그런 나를 엘시아도 수상하게 여긴 것이겠지.

“대충 경험의 차이야.”

“경험이라니……. 대체 그동안 어떤 삶을 산 것이냐.”

게임을 하며 방송하는 삶.

“하여튼 구조는 글렀어. 보아하니 어딘가에 존재하는 동굴을 함정으로 삼은 모양인데, 그렇다면 차라리 출구를 찾아 움직이는 게 더 나을 거야.”

“안일하지 않은가?”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낫지. 일단은 상비해 둔 물자는 조금 있어.”

“……대비를 했다고? 대체 어떤 삶을 산 거지?”

살짝 질린 듯 같은 말을 되묻는다.

말해 줄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적당히 어깨만 으쓱하며 의미심장한 척 연기했다.

“엘시아 네 장비는? 단검 정도는 빌려줄 수 있다만.”

“시안 네 녀석 정도는 아니나 나름 방비는 해 두는 편이다.”

그리 말하며 엘시아가 허리춤에서 그녀의 손목 정도 길이의 막대를 꺼냈고, 그것은 곧 장창의 길이만큼 늘어난다.

“그렇게 휴대하는 장비인가. 시판품은 아니군.”

“자랑은 아니다만 특별히 주문한 것이다.”

“그럼 쓸 만하겠네.”

내 장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거기에다 겸사겸사 잘됐어.”

“잘됐다고? 이 상황이 말인가?”

경악하는 엘시아에게 나는 여유롭게 말했다.

“때로는 이런 경험도 필요하잖아.”

위기.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는 경험치.

“역시 이런 상황이 가장 좋은 경험을 쌓는 수단이 되거든.”

“……이걸 경험이라 치는 거냐.”

“이대로 이곳을 탐사해서 상황을 파악한 후 탈출하도록 하자.”

방침을 선언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이곳을 공략하기 위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숲의 지하 동굴.

이곳에 출몰하는 몬스터는 슬라임 계통.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는 슬라임을 비롯한 몬스터들에게 가장 적합한 서식 환경이다.

거기에다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곳에 자리 잡은 슬라임의 종류는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보다 성가신 개체들.

“데몬 슬라임.”

어쩐지 그리운 이름이다.

그러고 보면 원래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하자마자 부르려고 했던 게 저 친구들이었지.

새카만 광택을 발하는 점액질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어쩐지 아련한 기분에 잠겨 있자니.

“있잖니? 대체 저거에 누가 데몬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니? 악마랑 전혀 상관이 없잖아.”

에밀리는 진심으로 불만이라는 듯 투덜거리곤 슬라임들을 유도해 직접 마법으로 해치우고 있다.

왜 화풀이하는 거로 보이냐.

“말해 두는데 시안, 이제 와서 이런 거 데려가도 도움은 안 될 거야.”

“알고 있어. 설마 내가 슬라임 키우자고 조르겠냐. 꼬맹이도 아니고.”

아무래도 에밀리는 진짜 악마로서 이 슬라임의 명칭이 몹시 불쾌한 모양이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녀석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흑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블랙 프리즌.

“얼려버리는 게 확실하지.”

데몬 슬라임은 화염에 강하다. 물리적 대미지에도 내성이 높고.

반면에 빙결과 바람에는 약한 편.

검은 냉기가 휘몰아치며 흑의 얼음 결정이 데몬 슬라임을 덮치자 검은 점액질이 단단히 굳어지다가 부서진다.

“에밀리, 이렇게 얼려서 끝내.”

“흐음, 얼리는 건 영 성미에 안 맞는데.”

평소에 화염을 주로 쓰는 에밀리는 귀찮다는 듯 중얼거리면서도 냉기를 발산해 슬라임들을 해치운다.

“딱 좋게 어는군.”

그리고 냉각되어 부서진 점액질을 발끝으로 툭툭 굴리며 흡족하게 웃었다.

데몬 슬라임을 빙결 속성으로 해치우면 얼어 버린 점액질이 드롭되는데, 이게 꽤 값이 나가는 매각 아이템이걸랑.

그렇기에 누군가는 저 시커먼 녀석들을 로또 슬라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잘만 하면 금화 200~300개 정도의 매각 아이템을 쓸어 모을 기회인 셈.

“이 기회를 가져다준 저 아가씨께는 감사의 말을 전해 주고 싶지만 들을 여유가 없겠군.”

콧노래를 부르며 돈이 되는 슬라임들을 해치우는 나.

하지만 다른 한 명은 썩 여유롭지 않은 모양이다.

“허, 헉!”

십여 마리 정도의 슬라임을 해치운 엘시아가 숨을 거칠게 고르며 창을 휘두르자.

창에 실린 냉기에 갈라진 슬라임의 점액이 흩어지며 녹아 사라진다.

힘들겠지.

엘시아가 약한 게 아니라 여기의 몬스터는 상성적으로 그녀가 상대하기 버거운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빙결 속성 마법은?”

“안타깝게도 이 정도가 한계다.”

엘시아는 자신의 창에 인챈트를 걸어 속성을 부여하고는 다시 휘두른다.

하지만 속성 대미지는 충분치 못하기에 버겁겠지.

그래도 폐가 될 정도로 뒤처지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 쪽이 콧노래를 부르며 쓸어 담는 것에 반해 저 녀석은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인다는 차이가 있을 뿐.

“야, 엘시아. 무리할 필요는 없어. 뭣하면 뒤에서 지원이나 해.”

“신경 쓰지 마라.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다.”

명백하게 무리하고 있다.

나는 그녀의 분투를 일단은 일부러 보고도 방치했다.

“……조언 안 하니?”

“……지금은 아직 아니야.”

조금 더 구르게 둬야 한다.

한계에 부딪히고.

절실하게 한계를 타파할 수단을 원하고.

진정으로 잡생각을 할 겨를도 없을 때가 오기까지는 가능한 저대로 두는 게 좋겠지.

‘이 습격 이벤트의 목적은 엘시아의 시련을 겸하는 거니까.’

무엇보다.

이 시점에서 어느 정도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엘시아 리올레이트.

그녀는 높은 확률로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 *

엘시아 리올레이트.

리올레이트 공작가의 차녀.

육성 난이도는 상.

초반부에는 호감도를 쌓기 어려운 편이고, 하물며 그녀의 공략 이벤트는 특정 분기가 존재한다.

어느 시점에서 그릇된 선택을 하면 그녀를 히로인으로서 공략할 기회는 완전히 날아가 버리는 셈.

‘그 조건은 중간 평가 시점이 되기까지 습격 이벤트를 볼 것. 그리고 그 습격 이벤트에서 특정 행동을 취하게 할 것.’

이걸 놓치면 향후 공략을 할 수가 없다.

뭐, 그것만이라면 사실 나는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연애 가능 유무는 지금의 내게는 관심 밖의 일.

그러나 내가 끼어든 건 그 분기를 지나쳤을 때 시나리오상의 문제점 때문이다.

중간 평가 시점까지 특정 분기점을 놓쳐 버렸을 경우, 스토리에 관여하는 엘시아의 역할이 바뀌어 버린다.

‘악역으로 전향해 버리는 게 문제야.’

엘시아는 선역과 악역 어느 쪽이든 분기에 따라 전향해 버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악역 영애라는 거 알잖냐.

고뇌를 이기지 못하고 리올레이트가의 숙업에 따르게 되면 타락할 것이고.

나름의 해답을 깨달아 각성하면 선역으로 조력한다.

‘그래도 나보다는 낫지만.’

나 ‘시안’처럼 사망 전대에 가입하는 쾌거는 이루지 못하지만.

타락해도 그녀는 최종적으로는 살아남지만.

단, 어디까지나 게임에서의 이야기니까 마냥 맹신할 수는 없다.

‘굳이 내 인생의 적을 늘릴 필요가 없지.’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엘시아의 타락 플래그만 제거하는 것.

요컨대 폭탄 처리반!

폭발할 선만 뚝! 단선해 버리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게끔 놔둘 작정이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일단 굴려야지.’

자존심 센 아가씨를 빡세게 굴려서 있는 본심, 없는 본심 다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

* * *

고립되고 체감상 수 시간은 족히 지났을 것이다.

썩 긴 시간은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 가득한 몬스터를 상대로 쉴 새 없이 전투를 벌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허억……. 헉…….”

얘, 숨넘어가겠네.

누가 보아도 진즉에 체력의 한계를 맞은 저 자존심만 센 아가씨를 지켜보던 나는 결국 방치를 포기하고 말을 걸었다.

“좀 쉬지 그러냐.”

“걱정할 필요 없다. 이 정도쯤은 아직 버틸 만하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말하는 것도 숨을 골라 가면서 해야 하는 걸 보통 지쳤다고 말하는데.

‘하여간 쓸데없이 자존심만 강하군.’

이해는 한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허용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는 법을 모르니까.

이 아저씨 입장에서는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대충 한 시간 정도만 쉬자.”

“시안! 배려할 필요 따위는!”

“에밀리, 쟤 좀 뻗게 해.”

오기를 부리는 엘시아가 갑자기 힘 빠지는 비명을 내며 그대로 풀썩 뒤로 넘어간다.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에 그녀의 뒤로 이동한 에밀리가 단단히 받아 준다.

“……무슨 짓이냐. 악마!”

“시안의 말대로 지쳤잖니. 강한 척하는 아가씨. 이렇게 쉽게 걸려들고.”

내 지시로 에밀리가 엘시아에게 기습적으로 에너지 드레인을 걸어 남은 마나를 강탈한 것이다.

“후후, 자아~. 남은 마나도 내놓으렴. 옳지, 옳지.”

“시안! 이 악마 좀 말려라! 아니, 네가 명령을 내린 거지?”

나는 그저 시치미를 뗄 뿐.

“시안…….”

“어차피 쉬어야 해. 남은 마나는 약으로 보충하는 게 훨씬 더 빠르게 회복할 거다.”

좋은 회복용 포션을 나눠 주마. 내가 그리 말하자 결국엔 엘시아도 체념한 모양이다.

내가 꺼낸 포션과 물 그리고 적당히 체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휴대식량.

“완벽하군!”

“……어떻게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한 거지?”

“평소에 이 정도는 늘 상비하고 다녀.”

“그럴 필요가 있는 건가.”

학창 생활이란 이벤트의 연속이니까.

무사히 졸업하고 싶으면 물과 휴대식량 그리고 침구는 늘 가지고 다니는 게 좋답니다.

……대체 무슨 놈의 학창 생활인가.

“조금 냉정해진 것 같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는 잠시 머리에 열이 오른 모양이다.”

숨을 돌릴 기회를 얻어 이성을 되찾았는지 엘시아가 문득 그런 말을 꺼냈다.

“먼저 네게 미안하다고 해야 했거늘.”

“왜 사과를 하는데?”

“모르는 척하지 마라. 시안. 눈치챘지 않느냐. 이 상황은…… 네가 휘말린 거다.”

“아~. 그건 그렇겠군.”

부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녀도 알고 있겠지.

이 상황은 나를 노려서 발생한 이벤트가 아니다.

본래부터 그 습격자들이 노린 건 리올레이트가의 아가씨.

요컨대 엘시아.

그녀의 암살을 꾀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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