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122화
“너희 집은 어지간히 원한을 많이 샀나 보군. 하긴 귀족 나리한텐 신기한 일도 아닌가.”
“……할 말이 없군.”
“빈정거리는 건 아니야. 이런 괴롭힘은 일개 평민이나 귀한 집 아가씨나 똑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게 빈정거린 거 아닌가. 실은 화난 게 아닌가.”
그럴 리가.
웃고 있잖냐. 덕분에 적당한 매각 아이템을 잔뜩 얻어서 주머니가 두둑해졌거든.
“당연한 건 아니다……. 이건 아마 내가 리올레이트이기에 일어난 일이겠지.”
“흐음……. 리올레이트 공작가라.”
“좋은 소문은 듣지 않았겠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엘시아는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습격자가 말했던 악의 씨앗 어쩌고저쩌고.
그건 아마 리올레이트가를 두고 한 말이니.
제국 굴지의 명가.
하지만 그들이 쌓은 주춧돌이 영광만은 아니라는 걸 굳이 게임 지식을 아는 나뿐만이 아니라 어지간한 이들도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러 소문을 듣는 건 어렵지 않았어.”
사상에 찬동하지 않은 파벌의 가문에 누명을 씌워 실각시켰다.
매해 대량의 영지민이 실종되고 있고, 그 일에 리올레이트가의 가주가 관여하고 있다.
과거 아카데미의 어느 학생의 실종과 관련한 혐의가 있다.
기타 등등…….
여러 소문이 있다.
엘시아는 한숨을 쉬며 그 외에도 소문 한 가지를 입에 담았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리올레이트가의 아이는 늘 학년 수석을 쟁취했다.”
“뭐야? 자랑이야?”
“다만, 정당한 수단으로 쟁취한 아이는 없었다.”
“뒷돈이라도 찔러 줬나 보네. 부러워라.”
있는 집은 좋겠네.
나는 모르는 척 농담이라도 들은 양 말했다.
“하핫, 그 정도였으면 신경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어쩐지 자조적인 웃음소리.
“……시안, 네가 볼 때 내 힘은 정당한가?”
“뭐?”
“너를 보고 확신했다. ……내게는 힘이 없다. 수석이라고 해도 내 재능이 그에 걸맞은지 의문이 생겼다.”
재능의 의문.
분명 아카데미의 수업 평가만으로 따진다면 엘시아는 나름의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알게 되었다. 수업이면 모를까, 그 외의 것이라면 내가 당해 내지 못할 녀석들이 많다는 걸.”
마법이든 정령술이든 혹은 그 외의 것이든 각 클래스에는 그것에 특화된 천재들이 있다.
그렇다면 수석인 엘시아는 그들보다 강한가?
적어도 본인은 아니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무엇보다 나는 시안, 너보다 약할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명백하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엘시아는 내 실력을 전부 파악하지도 못한 시점이다.
“그게 네 초조함의 원인이야?”
“……강해져야 한다. 반드시 지금의 내 입장에 걸맞은 실력을 쌓아야 한다.”
어딘가 결연한 눈빛을 한 채 그 말을 입에 담는 엘시아.
목적은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지금은 필요가 없으니까.
“입장에 걸맞은 실력이라…….”
“강했으면 이런 상황에 처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미안하다. 시안.”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는 것이리라.
힘이 부족했기에 불합리한 상황에 처한다.
강해야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이루리라.
“하아아아암~ 헛소리군.”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하품을 하며 일축해 버렸다.
“……뭐라고?”
“덤빈 놈들이 바보 같았기 때문이야. 강하다고 이런 일이 없다? 그럴 일은 없거든.”
정작 나도 밤중에 습격을 받는뎁쇼.
“무엇보다 엘시아, 네가 재능이 부족하다고 한탄하는 건 너무 기가 차서 차마 들어 줄 수가 없겠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외면 중인 녀석의 불평은 배부른 소리라는 거야.”
“시안, 너…… 어떻게…….”
“너 제 실력을 낸 적이 없잖아.”
엘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그녀는 쓰지 않은 실력이 있다.
“혈목의 숲에서 네가 애들을 지휘했을 때의 일은 들었어. 그거면 모를 리 없잖아.”
“…….”
“강해지고 싶다? 그럼 다른 녀석들의 분야를 뒤쫓을 게 아니라 네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내세워라.”
하지 못할 것을 하라고 말하면 잔인하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는 것을 이미 아니까.
“가진 놈이 불평하지 마. 하물며 재능을 쓰지도 않으면서 투덜대는 건 더더욱 해선 안 되는 짓이야.”
나는 그녀가 무엇을 더 말하려는지 일부러 듣지 않고 일어섰다.
“슬슬 시간이군. 다시 출발하자.”
“……그래.”
엘시아는 주저하다가 일어났다.
내가 조금 전 한 말의 뜻을 생각하며.
하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 * *
이 지하 동굴에도 보스급 몬스터가 존재한다.
“슬슬 출구가 보일 때가 되었는데.”
“어떻게 확신하지?”
“대강 예상되는 면적을 토대로 추측하는 거야.”
근거는 게임 시절에 기억하는 맵.
다만 그걸 말할 수는 없으니 내가 입 밖으로 꺼낸 근거는 따로 있었다.
“전이 아티팩트의 마력량을 통해 날릴 수 있는 거를 계산해보면 아마 여긴 제도 인근의 숲이겠지.”
“……과연!”
“그럼 숲 아래에 이런 지하 동굴이 있다는 걸 가정하고 숲 지도 면적에 맞춰 계산하면 넓이는 대강 짐작이 가.”
“안일하면서도…… 그럴듯하군.”
개소리가 맞다.
그게 계산이 될 리가 없잖아.
하지만 자신 있게 말하고 실제로도 잘못된 길로 가는 것도 아니므로 수긍할 수밖에 없다.
(시안은 장래에 많은 이들을 속이는 애가 되는 게 아닐까 걱정되네.)
‘그거 악마가 걱정할 일이냐?’
(장래가 기대돼서 하는 걱정이란다. 좀 더 노력하면 능숙하게 속일 수도 있을 텐데.)
음, 조심은 해 두자.
“하여튼, 이런 곳이면 슬슬 출구가 딱 보일 거 같거든.”
“……그렇군.”
엘시아도 내가 무엇을 경고하려는지 이해한 모양이다.
“몬스터가 대량으로 무리 짓는 곳이면 반드시 그곳에는 우두머리가 있거든.”
필드 보스.
제도 인근의 숲에는 총 두 종류의 필드 보스가 있다.
하나는 지상. 일반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필드에서 일정 확률로 조우할 수 있는 필드 보스.
그리고 또 하나는 땅속. 이 지하 동굴에 자리 잡고 있는 터줏대감.
“저기 있군.”
마침 출구로 이어지는 통로가 보이는 구역에 도달하자 그 입구를 거대한 그림자가 가로막는다.
《데몬 슬라임 킹》
대량의 슬라임들의 진화체인 몬스터.
기억대로라면 추정 레벨이 35 정도인가.
족히 8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슬라임이다.
“저 정도로 크면 귀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군.”
“농담할 때가 아니다! 제도 인근에 이런 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거냐? 대체 어떻게?”
“인간의 눈을 피한 슬라임은 긴 세월 동안 증식하고 변이했겠지.”
“……과연.”
엘시아는 납득한 모양이지만, 실은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단순한 자연현상으로는 저런 괴물이 생겨나지 않는다.
환경도 중요하긴 하지만, 별개로 누군가의 수작이 가미되어야 한다는 것.
“통로를 저놈이 막고 있어. 슬라임은 기척에 민감해하니까 몰래 지나치진 못할 거야.”
“시안, 네 흑마법을 이용하여 속을 수 있지 않나?”
혼란이나 마비 수면 등 상태 이상을 부여하는 게 흑마법의 특기.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슬라임에게는 그거 거의 안 통해.”
게임 시절, 슬라임 계통의 가장 성가신 특징은 상태 이상에 완전 면역이라는 점이었다.
애초에 슬라임 자체는 생물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모호한 구석이 있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먹이를 분해·흡수만 하는 생물.
이성이 없으니 혼란이나 공포는 통하지도 않고.
감각이 없으니 마비 같은 게 먹히지도 않는다.
‘어? 그럼 슬라임은 엄청 무서운 존재가 아닌가.’
단지 얕잡아 보이는 건 슬라임 계통 몬스터의 종족 값이 낮기 때문일 뿐.
거기에다 속성 공격의 내성치가 약한 편이니까 약점 찌르기에도 쉽고.
그래도 데몬 슬라임 계통쯤 되면 꽤 높은 편이기에 무섭다.
괜히 과거에 내가 데몬 슬라임에게 눈독을 들였던 게 아니야.
“그래도 지금 우리에겐 한 끼의 경험치지.”
쓰러트릴 수 있다.
내가 장담하자 마치 그 말을 들은 것처럼 슬라임의 거대한 점액체가 부르르 떨린다.
“그렇군. 하긴 이쪽은 둘에 사역마가 하나다. 거대하다고 해도 충분히…….”
엘시아도 내 자신감에 수긍하며 말했지만, 곧 그녀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부르르 떨던 거대 슬라임이 옆으로 움직이자 깨닫게 된 것이다.
“……둘?”
“저게 한 마리라고 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 거대한 녀석의 뒤편에 또 한 마리의 동일한 슬라임이 대기하고 있다.
2 대 2.
한 마리라면 상대하기 가뿐하지만, 보스가 두 마리라면?
“파티를 맺는 건 인간만이 아니라는 건가.”
이 정도는 되어야 나름 보스전의 보스 구실이라도 한다는 것이겠지.
“자, 한 명당 한 마리 할당이야. 할 수 있겠지?”
“으, 으음! 못 한다고 할 리 없잖냐!”
까짓것 맡겨라!
엘시아는 반쯤 자포자기한 듯 외치며 슬라임에게 창을 겨누었다.
“우선은 저 두 마리를 따로 유도하자.”
유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와 엘시아는 바로 좌우로 나뉘어 각자의 방향에서 슬라임의 어그로를 끌기 위해 움직였다.
슬라임은 기척에 반응한다.
무엇보다 마나를 흘리면 그것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와라.”
간단한 불씨를 날리자, 그것에 맞은 슬라임이 거체를 질질 끌며 나를 향해 접근해 온다.
엘시아 쪽을 힐끗 보니 그녀도 비슷한 방식으로 유도하고 있는 모양.
“그럼 이제 일대일로 처리하면 되겠군.”
“어머, 이 누나는 숫자로 안 치니? 섭섭하네.”
불러낸 에밀리가 장난스레 묻는다.
“옛날부터 공식 시합 같은 게 아니면 사역마는 숫자로 안 쳐.”
몇 마리를 불러내든 일대일이야. 참 정정당당한 업계이고말고.
“놈의 약점 속성은 다른 녀석들과 다르지 않아. 에밀리, 넌 바람을 일으켜라.”
내 쪽은 빙결.
데몬 슬라임의 약점인 빙결과 바람을 둘 다 동시에 사용할 작정이다.
에밀리가 발산한 마기가 검은 흑풍이 되어 슬라임을 감싼다.
바람에 닿자 그것만으로도 절삭과 부식 효과가 있는지 슬라임의 점액체가 갈가리 찢기고 있다.
“효과는 좋군.”
하지만 덩치가 큰 만큼 피통이 큰 것인지 조금 더 힘을 보태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내 쪽은 빙결을 찌르도록 하지.”
-블랙 프리즌.
3서클 빙결 속성의 마법을 캐스팅한다.
놈은 몸집이 크니까 넉넉하게 서너 번을 연달아 쏴도 전부 맞겠군.
쩌저저적!
마기의 칼바람에 섞여 들어간 냉기가 예리한 얼음 바람이 되어 슬라임의 거구를 다시 한번 휩쓴다.
찢고 얼어붙게 만든다.
“슬라임은 비명을 못 지르는 게 아쉽군.”
몬스터의 처절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들뜬다.
공격이 확실하게 적의 약점을 찔렀을 때의 감각만큼이나 흡족한 경우는 많지 않다.
슬라임이 반격을 하고자 너덜너덜한 몸체를 부르르 떤다.
점액질의 거구에서 뻗어 나온 촉수들.
“공격 패턴은 알고 있어.”
내가 바닥을 가볍게 걷어차자, 곧바로 지면에서 솟은 골창들이 날아오는 촉수를 잘라 버린다.
절묘하게 마법을 날려 공격을 패링 한다. 최근에 익힌 테크닉이다.
“상대하긴 쉽군.”
거체의 공격 패턴도 확 눈에 들어온다.
이런 몬스터면 몇 마리나 몰려와도 열렬히 환영해 주고 싶을 정도군.
“끝인가.”
“끝이네.”
발악하던 슬라임의 거구가 움직임을 멈춘다.
서서히 얼어붙고 새카만 서리가 완전히 표면을 뒤덮는 순간.
“에잇.”
에밀리가 그 위에서 마기를 구현화하여 만들어 낸 채찍을 휘둘러 내리치자 그대로 부서져 내린다.
“우선 한 마리는 간단하군.”
기껏해야 단발성 이벤트에서 상대하는 보스니까.
역시 힘으로 압살할 수 있을 때가 가장 신이 나는 법이다.
“그럼 이제 저쪽도 슬슬 끝은…… 안 나겠군.”
남은 것은 엘시아가 상대하고 있는 두 번째 슬라임.
순식간에 끝낸 나와는 달리 그녀는 그 거대한 슬라임을 상대로 한창 분투 중에 있었다.
“……아직은 힘들겠군.”
몬스터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엘시아의 행동 패턴을 감상하며 대략적인 흐름을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게임 시절의 패턴을 근거로 하는 예상에 불과하지만 예측은 크게 다르지 않겠지.
“저래서는 고생하겠는데.”
내가 예측된 결과를 떠올리며 작게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까앙!
거칠게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
그것과 동시에 엘시아의 창이 부러졌다.
당연히 지금의 그녀라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게 내가 노리는 결과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