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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125화 (125/389)

제125화

125화

“말도 안 돼! 알아차릴 리가 없다!”

“믿어 줄 필요는 없어. 어차피 잡힌 몸이잖니. ……거기에다.”

나긋나긋하게 말을 걸어오던 에밀리의 기척에 변화가 느껴진 순간이었다.

“조금 전 너는 시안을 노렸지?”

실토할 리는 없지만, 발뺌할 수도 없으리라.

“대답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에밀리가 손을 까딱이자 레이린을 포박한 마기의 막에서 열기가 피어오른다.

마음만 먹으면 이대로 마기를 화염으로 바꾸어 태워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

레이린 역시 각오를 다진 순간이었다.

“……라고 말했지만 장난이야. 거기까지는 할 생각이 없단다.”

에밀리가 다시 평소 때의 태도로 돌아가자, 이내 열기가 사라진다.

“무슨 꿍꿍이지?”

“그것도 이 언니는 몰라요. 시안이 몇 번이고 당부했지 뭐야. 실수로라도 지켜보는 쥐새끼를 죽이지 말라고.”

무심코 울컥할 말이지만, 분명 도발이다.

레이린은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며 가장 크게 떠오르는 의문을 던졌다.

“무슨 생각이지? 대체 네 계약자는 무엇을 꾸미는 거냐!”

“그걸 네가 묻는 거니? 기가 막히네.”

에밀리는 진심으로 황당해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그럴 만도 하잖니. 저 아가씨…… 그리고 시안을 여기로 날린 건 네가 꾸민 짓이잖아.”

직접 실행한 건 다른 인물이지만 그것을 주도한 건 레이린, 혹은 그녀의 뒤에 있는 누군가.

레이린은 이를 갈며 다시 물었다.

“……그것도 네 계약자가 말한 것이냐.”

“거기까지는 듣지 못했어. 하지만 그 정도는 이 언니라도 눈치챈단다.”

“실수하는 거다.”

“누가? 여기에 처량하게 묶여 있는 네가 말이니?”

“네 계약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거기까지 해 두렴.”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레이린의 입을 추가로 휘감은 마기의 장막이 틀어막는다.

“이것만은 기억해 두렴. 숨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처량한 쥐새끼.”

명백하게 경멸하는 말투.

진심으로 이 하인을 한심하게 여기며, 에밀리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한창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곳.

“모르는 건 너란다. 우리 시안은 너 따위보다 훨씬 많은 걸 알고, 많은 것을 할 줄 아는 모양이거든.”

“……!!”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레이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잘 보고 깨달으렴.”

* * *

엘시아의 전용 스킬인 종언의 피의 설정상 원리는 전부 이해하고 있다.

“……그 스킬의 원리는 마나에 간섭하여 물질의 구조를 붕괴시키는 것이었던가.”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저 스킬에 닿은 것은 모두 부서져 재가 된다. 물질의 강도건 뭐건 상관없이.

“절대 닿지 않는 걸 전제 조건으로 두고 싸워야 했던가.”

-검은 진흙의 손.

시험 삼아 마기의 진흙으로 구성된 팔을 불러내어 포박을 꾀했지만.

“사라져라……. 리올레이트의 방해여.”

엘시아가 간단히 손을 뻗어 펼친 기운에 닿는 것만으로 마기의 진흙이 분해되어 버린다.

“그래, 상대의 방어 수치와 상관없이 대미지를 주는 스킬이었지.”

맞으면 위협적일지도 모른다.

그 위협적인 힘이 순식간에 내 흑마법을 붕괴시키고 뻗어 온다.

“그렇다면 피하면 그만이지.”

섀도우 무브를 발동.

그림자에 휘감겨 빠르게 옆으로 빠진 후,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흑염탄 두 발을 날린다.

“사각에서 오는 공격에는 어떻게 반응할 거지?”

엘시아를 휘감고 있는 검은 뱀이 방향을 틀어 아가리를 벌리자 흑염탄은 그것이 발산하는 파장에 부딪혀 사라진다.

“방어 능력도 충실하다 이거군?”

놀랄 것도 없다.

“그럼 계속 막는 데 집중해.”

나는 그녀를 중심으로 원을 돌며 질주한다.

현혹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달리는 족족 내 손이 닿는 곳은 바닥과 벽을 짚는다.

인챈트 캐스팅.

내가 지나간 곳에 생겨난 마법진에서 새겨 둔 흑마법이 바로 발동된다.

이것이 흑화 엘시아 공략법의 첫 번째.

“놈의 인식 우선순위는 마법 혹은 오러 등의 마나를 소비하는 스킬을 사용하는 존재.”

요컨대 생물의 마나 변동을 인식한다.

게임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스킬을 준비하는 중이거나 혹은 사용한 캐릭터에게 어그로가 쏠린다.

그걸 이용하면 공략은 의외로 간단했지.

물론 지금은 게임처럼 공략하는 게 불가능하니 어디까지나 녀석의 행동 패턴만을 고려하여 다른 방식으로 대응한다.

주변의 모든 사물에 심어 둔 마법진에 엘시아가 본능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붕괴의 마력을 발산하여 차례대로 내가 깔아 둔 마법진을 벽과 바닥째 파괴한다.

‘그래도 살벌하군…….’

저 빛에 닿으면 지금의 나는 운이 좋으면 빈사 혹은 즉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맞을 리스크는 적다고 판단했다.

그걸 가늠하기 위해서 앞서 엘시아를 도발하여 싸워서 능력의 차를 검증한 것이다.

이대로 계속 속행해도 위협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전혀 위협거리는 되지 않아.”

거만한 말을 중얼거리며 나는 기회를 엿본다.

앞서 깔아 둔 인챈트를 파괴하는 데에만 우선순위가 쏠려 있기에 녀석은 지금 아무런 마법도 캐스팅하지 않은 채 기척을 죽인 나를 인지하지 못한다.

“적어도 리올레이트가의 가주……. 그 아저씨는 다른 방법을 썼어야 했어.”

방법만 알면 공략하기 쉽지.

느긋하게 적당한 발소리까지 내면서 엘시아의 뒤 바로 수 미터 앞까지 도달하고도 전혀 나를 인식하지 못하는 꼴을 보며 조소했다.

거리를 여유롭게 좁힌다.

내 손이 닿을 정도.

“남은 건 끝을 내는 것뿐.”

방법은 이미 안다.

게임에서는 폭주 상태의 엘시아에게 대부분의 스킬은 유효하지 않았다.

효과가 있는 것은 크게 두 개.

하나는 신성력.

프리스트 클래스의 신성력과 관련된 스킬의 전반.

‘사실은 그게 가장 효과적이긴 한데……. 알피네를 불러내기에는 리스크가 좀 크단 말이지.’

설명하기도 난감하고.

그렇다고 내가 프리스트 클래스의 스킬을 습득할 이유가 없기도 하니 어렵다.

그러니 두 번째를 쓰자.

게임에서는 밸런스를 위해 신성력을 습득하지 못할 클래스를 찍은 녀석들을 위한 대체안이 있었거든.

‘흑마법 계통. 그중에서 사령술.’

설정상 엘시아를 조종하는 리올레이트가의 쐐기는 사령을 이용하여 가공한 것이라고 한다.

요컨대 지금 엘시아를 장악한 저 검은 뱀은 사령 그 자체.

비유하자면 귀신에 씐 것 같은 상태.

“그럼 흑마법사의 스킬도 충분히 유효타가 되고도 남지.”

무엇보다 이쪽이 더 전문이 아닌가.

나는 허리춤 벨트에 매달아 둔 병을 두 개 꺼내어 던졌다.

포션 병이 아니다.

보랏빛의 안개 같은 것이 갇혀 있는 병.

“사령을 보관해 둔 병이다.”

사령술을 습득한 흑마법사는 일정 수량의 사령을 채집하여 저장해 둘 수 있다.

나는 세 개까지 저장해 둘 수 있는 셈이고.

뭐, 사령술의 전문가들처럼 많은 걸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걸 소모해서 체력이나 마력을 회복시키거나 혹은.

“간단한 공격을 하든가.”

포물선을 그리며 아직도 이쪽을 인식하지 못한 엘시아를 향해 날아가던 사령의 병이 깨진다.

보랏빛 안개가 단숨에 불꽃으로 바뀌며 불탄다.

-도깨비불.

사령을 소모하여 화염 대미지와 약간의 저주 효과를 주는 스킬.

날아가는 두 개의 보랏빛 불덩이가 엘시아를 휘감고 있는 검은 뱀에 달라붙는다.

화르르르륵!

마치 그 검은 뱀에만 유효한 듯 녀석이 몸부림을 친다.

“다행히 통하네.”

대미지를 입자 그제야 녀석이 내 쪽을 인식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나는 남은 한 병을 더 던져 도깨비불을 일으켜 다시 대미지를 주며 녀석의 어그로를 끌었다.

“이 정도면 약해졌겠지?”

이대로 유효한 공격만을 골라 소모전으로 끌고 가면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것만이면 아깝지.

“모처럼 고생하는데, 기념품 정도는 챙겨 가야 하지 않겠냐.”

연이은 유효타에 몸부림치는 뱀의 오라를 향해 손을 뻗어.

그대로 움켜쥐었다.

설정상 이것은 사령 계통의 흑마법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지.

“그럼 마찬가지로 비슷한 계통의 이론을 쓰면 강탈할 수 있겠지?”

시험해 볼 필요는 있다.

실패해도 그때는 미련 없이 소멸시켜서 엘시아를 해방하면 그만이다.

어느 쪽이든 손해 볼 건 없다.

“와라.”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을 준다.

물리적으로 악력을 가한다고 의미가 있는 건 아니겠지.

어디까지나 가하는 것은 손아귀에 집중한 마기의 밀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엘시아를 제어 중인 쐐기, 즉 놈을 구성하는 본질인 사령에 간섭한다.

《사령 장악을 발동합니다.》

내 스킬의 숙련도로 가능할까, 하는 점이 불안했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다.

붙잡힌 검은 뱀은 별다른 반항조차 하지 못한다.

완전히 억눌려 있다.

아가미째 짓눌린 물고기처럼.

완전히 장악했다.

그렇다면.

“나와. 꼰대. 애먼 애들 괴롭히는 거 아니거든.”

장악하고 그대로 강제로 분리한다.

리올레이트가의 쐐기.

아직 미숙한 후손을 강제로 제어하여 가문의 사상에 물들게 하기 위한 리올레이트가의 가주의 교육 수단.

엘시아 공략 루트의 방해점 중 하나.

“요즘 애들은 이런 거 필요 없거든.”

그것을 강제로 떼어 낸다.

《사악의 쐐기를 획득합니다.》

떼어 낸 것을 마력을 차단하는 밀폐 조치가 된 특수한 병에 담아 보관한다.

파악하고 있는 지식대로라면 이것은 향후 가공하기에 따라 적절한 소재 아이템으로서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적당히 겸사겸사 챙기는 건 이 정도면 되겠고…….”

남은 것은 이것을 분리한 상태에서의 엘시아.

대답은 없다.

아직 분리한 영향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휘청거리던 엘시아가 그대로 주저앉는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

만일을 위해 에밀리에게 적당히 살펴보게 시키면 되겠지.

“……이걸로 플래그 하나는 뽑았다.”

엘시아에게서 발생하는 성가신 사건의 근원을 뿌리 뽑는다.

그것으로 일어날 상황 그리고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계산하며 코웃음 쳤다.

다른 건 몰라도.

“귀찮은 일 하나는 막겠지.”

* * *

계속 넋을 놓고 있으면 후려쳐서라도 깨울까? 진지하게 고려하던 때에 엘시아가 퍼뜩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읏?! 뭐…… 뭐가! 시안! 넌 대체…….”

“대충 기억은 하지?”

내가 아는 한, 그 상태의 엘시아는 완전히 의식이 나간 건 아니었다.

대충 저 멀리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는 감각이라고 묘사되었던가.

“……뭘 한 거지?”

“해결.”

간단히 답해 두었다.

“엘시아 네 의사와 반대로 그 힘이 멋대로 폭주할 일은 없을 거야.”

“그럴 리가…….”

“못 믿겠으면 시간을 들여서 검증해 봐. 당장 믿어 달라는 것도 아니니까.”

본래라면 좀 더 스토리를 진행하고 그녀와 주인공이 같이 해답을 찾아 도전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것을 이 자리에서 강제로 끌어내서 문제를 뜯어고쳐 버린 셈.

“……알았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기회에 하도록 하지. 그 전에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답해 다오.”

“궁금한 것도 많군. 뭔데?”

“그렇다면…… 넌 배신한 것이 아니냐?”

“딱히 배신하고 자시고 할 사이이기나 했나.”

“시안!”

“……농담이야. 적당히 그런 척했을 뿐. 그게 네 문제를 파악하는 데 확실하다고 여겼거든.”

쉽게 믿으라고 말하는 것은 무리겠지.

내색은 하지 않지만, 엘시아는 지금 경계하고 있었다.

그야 조금 전까지는 진심으로 내 손에 죽겠구나 하고 각오까지 했던 모양이니.

“아, 일단은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사과로 될 일이냐!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화를 내지도, 그 이상 추궁하지도 못하는 것은 지금 상황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리라.

앓던 이가 있다.

하지만 무서워서 치과도 가지 못하는 어린애.

그런데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웬 놈이 와서 멋대로 자기 입을 벌리고 그걸 빼 준다면?

‘……뉘신지 몰라도 미친놈이네.’

그런데 그게 나야.

이러니 제대로 판단이 되지 않겠지.

시간을 들여서 생각하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혹은 그대로 갈라져도 상관없고.’

지금도 엘시아는 나를 흘겨보다가 딴 곳을 보며 갈등하고 있다.

당장 이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만 해도 용하구먼.

“일단은 나가자고. 생각하는 것도 돌아가서 하는 게 낫잖냐.”

“그, 그래…….”

엘시아도 어서 이곳에서는 나가고 싶은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나가기만 하면 안내할 필요도 없을 거야. 아마 숲 밖으로 향하는 가도가 금방 보일 테니……. 뭐 해? 안 일어나고.”

그러나 어째서인지 엘시아는 도통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설마 다른 이상이라도 있나?

“뭐 해?”

“신경 쓰지 마라! 일어날 거다! 그래! ……으음.”

아…….

나라고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혹시 그거냐. 힘 안 들어가?”

“그럴 리가 있겠냐! 생각할 게 있을 뿐이다!”

조금 전까지 목숨을 위협받는다고 진심으로 여기며 긴장했고, 또한 그녀를 옭아매던 리올레이트가의 쐐기를 강제로 해방한 여파.

당연히 약간의 부작용이 있을 것이란 걸 나도 생각해야 했었나.

“업어 줄까?”

“헛소리 집어치워라! 만일 그 꼴을 누군가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냐!”

“……까다롭군. 그럼 얼른 일어나.”

나는 한숨을 쉬고는 대신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괜찮은지 잠시 주저하다가 엘시아는 내 손을 잡고 겨우겨우 일어섰다.

뭐, 이 정도면 당장은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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