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134화
목적은 시험.
확실하게 상대를 해치우는 실전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고 평가를 받는 것.
그렇다면.
‘확실한 퍼포먼스를 의식해야지.’
첫수는 대강 생각해 두었다.
애초에 공용 마법 클래스의 스킬로만 한정한다면 내가 쓸 수 있는 마법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1~2클래스 정도의 마법. 그것도 수업에서 써먹기 위해 연마하는 정도라 실전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하지만 시험 정도라면…….’
상관없겠지.
나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팔을 뻗었다.
윈드 샷.
공용 마법 클래스의 술식 중 내가 실전에서도 가끔 쓰는 것.
빠른 견제용이기에 첫 수단으로는 나름 적절하다.
“빨라…….”
감탄이 섞인 중얼거림.
실린은 내가 쏘아 낸 풍압의 탄환을 인식하고는 지팡이를 겨누었다.
파파팡!
허공에서 연달아 푸른 섬광이 마치 풍선이라도 터진 듯한 소음을 낸다.
마력을 펼쳐 작은 범위로 장벽처럼 만들어서 방어한 것이다.
“……짧은 시간에 그것도 3연발. 1서클의 마법이지만 꽤 능숙하네.”
“칭찬 감사하군요. 하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어디까지나 견제와 상대의 역량을 가늠하기 위해서다.
저 정도 반응 속도라면 아마 선배 기수들 중에서도 상당한 숙련자겠지.
‘그럼 작정하고 재주를 부려도 다치지는 않겠군.’
안심하고 팍팍 내 실력을 어필하자.
내가 추가로 캐스팅에 들어가려는 순간, 그 선배에게서 마력 상승의 기척이 느껴졌다.
첫수의 양보가 끝났으니 저쪽도 공격하려는 모양.
“플레어 윕.”
3서클의 화염 마법.
영창이 끝나자 그녀의 주변으로 마치 뱀이 똬리라도 틀 듯 붉은 화염의 채찍이 생겨난다.
“휘감아.”
그대로 지팡이로 나를 가리키자 화염의 채찍이 나를 향해 뻗어 온다.
‘빠르고 궤도도 복잡해……. 단순히 눈짐작으로는 피하지 못할 수단을 썼군.’
무심코 흑마법으로 대응할 뻔했을 정도로 능수능란한 캐스팅이었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니…….’
어떻게 대응할까.
빠르게 공격 패턴을 머릿속에서 굴리며 나는 곧바로 대응을 위한 마법에 들어갔다.
‘간단하지. 화염이라면 역시 물을 끼얹으면 될 테니.’
쫓아오는 채찍을 피하며 다음 마법을 완성한다.
워터 다트.
1서클에 해당하는 공격 마법.
약 15cm 정도의 물 다트가 생성되어 내 손에 달라붙듯 걸렸다.
교본만으로도 익히기 쉽고 화려하지도 않아서 기습용으로도 유효하다.
“상성은 정석대로네. 하지만 1서클로는 위력이 약해.”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단발의 위력으로 저 화염 채찍을 상쇄할 만한 공용 마법은 습득하지 못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약한 마법도 써먹기 나름이거든요.”
생성한 물의 다트를 정확히 던진다.
채찍이 그 다트를 분쇄하듯 쳐 내 곧바로 증발시킨다.
저 선배의 말대로 이것으로 상쇄하기에는 약하겠지.
하지만.
“그럼 물량을 좀 더 동원하면 될 뿐이죠.”
직접 던진 다트는 어디까지나 다음에 펼칠 수를 알아채지 못하게끔 일부러 보인 퍼포먼스.
“진짜는 이쪽.”
내가 바닥을 가리키자 이미 그곳에는 작은 마법진이 수십 개 펼쳐진 채 대기하고 있었다.
“……물체에 새기는 마법진.”
“들으셨나요?”
“아아, 소문의 그 재주를 부린 게 너였구나.”
인챈트 캐스팅.
아무래도 마법 좀 쓴다는 녀석들에게는 죄다 입소문을 탄 모양이군.
“이렇게 하면 1서클 마법도 여러 개를 펼쳐 대응할 수 있걸랑요.”
손가락을 튕기는 시늉을 한다.
바닥에 깔아 둔 마법진에서 워터 다트가 위를 향해 사출된다.
흡사 거꾸로 치솟는 소나기 처럼.
치이이이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여러 발의 워터 다트에 휩쓸린 불의 채찍이 허무하게 꺼져 버린다.
“그럼 다른 마법으로 대응하면 그만……. 윽.”
곧바로 다른 속성의 마법을 펼치려 했으나, 실린 선배는 지팡이를 급하게 휘둘러 내가 또다시 날린 윈드 샷을 막는다.
“아~! 이건 아깝네요. 그럼 계속 밀어붙이겠습니다. 조심하시길.”
정석으로 붙으면 공용 마법 스킬로 한정해야 하는 지금의 대결에서 당연히 내가 불리하다.
그렇다면?
“품위는 없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밀어붙여야죠.”
윈드 샷과 워터 다트를 번갈아 가며 연속해서 쏘아 낸다.
감각적으로 표현하자면 연발로 놓고 쏴 갈기는 느낌.
고작 1클래스의 마법이지만 충분히 연습만 한다면 뛰면서도 계속 반복하여 쏘아 낼 수 있다.
“하물며 마력의 양에도 여유가 넘치거든요.”
“이거…… 위험……해…….”
실린의 안색이 변한다.
입술을 꽉 다물고 힘과 정신력을 동원하는 게 보인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팡!
허공에서 터지는 소리의 템포가 점차 빨라진다.
실린이 본격적으로 마력으로 푸른 장벽을 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최고 속도로 1클래스 마법의 난사를 시작한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팡!
단단한 장벽을 상대로 나는 이제 더는 자제심도 두지 않고 마법을 마구 난사했다.
“대인 마법전의 철칙. 상대에게 영창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 최선.”
대인 마법전 교재의 첫 장에 새겨진 가르침.
“교묘한 전술뿐 아니라 이런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방법으로도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법이죠.”
아마 상대는 대답할 여유도 없을 것이다. 아니, 내가 말하는 것도 제대로 귀에 들리지 않겠지.
“선배가 방어에 돌리는 마력이 다할까요? 아니면 제가 쏘아 내는 물량이 먼저 한계를 맞을까요?”
지구력 싸움.
그리고 그 싸움에서 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으리라.
“……한계야.”
더는 안 되겠다는 듯 실린은 중얼거리며 지팡이를 힘껏 내리찍는 동작과 함께 마력이 급격히 팽창한다.
콰르르르릉.
그녀를 중심으로 부채꼴 형태로 번개를 실은 충격파가 전방을 향해 뻗어 나간다.
스파크 임팩트.
4서클 번개 속성의 마법.
부채꼴 모양의 범위에 번개를 내리쳐서 강력한 파괴력을 선사하는 마법.
“4서클. 실력을 발휘하셨나 보군요.”
기다렸다.
위력이 큰 마법을 캐스팅하면 반대로 그만큼의 탈력감이 찾아오기 마련.
“아…….”
낭패라는 듯 작은 탄식이 들렸으나, 나는 개의치 않고 그녀의 코앞까지 파고들어.
“그럼 끝을 내겠습니다.”
그대로 올려치듯 윈드 샷 다섯 발을 고속 영창을 하여 터트렸다.
“꺄악?!”
근거리에서 터트린 풍압에 휩쓸려 나가떨어진다.
가차 없는 짓이긴 하지만, 방호 효과가 있는 로브를 입고 있으니 상처는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 선배니 방치해 두는 건 좋지 않겠지.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그대로 멍하니 누워 있는 실린을 향해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잡고 일어났다.
“괜찮습니까?”
“방호 장비가 있으니까 문제없어. ……그보다 놀랐어. 정말로 신입생이야?”
“잔재주가 적당히 먹혔을 뿐입니다. 이런 짓은 실전이라면 안 하죠.”
으스대기보다는 점잖고 겸손하게 말하는 편이 더 낫겠지.
“그런데 이렇게 되면 평가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더할 나위 없어. ……아마 교수님도 별 이의는 없으실 거야.”
적어도 나쁘게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에는 흑마법도 사용해서 나랑 겨뤄 보지 않을래?”
“……언젠가 기회가 되면 사양 않고 그렇게 하죠.”
어쩐지 묘한 시선으로 찍힌 기분도 들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적당히 대꾸하고 시험장을 빠져 나가려던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폭음이 울린다.
뭐, 마법 전투를 시험하는 장소니 어지간한 소리에 반응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그 소리가 들린 게 이쪽이 아닌 다른 시험장.
“저쪽은 분명…… 오러 클래스 쪽인데.”
아마 오러 클래스도 비슷한 시험을 치를 터.
묘하게 신경이 쓰여서 나는 소음이 들린 시험장으로 내 멋대로 들어갔다.
딱히 내가 들어와도 신경 쓰는 녀석은 없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테니까.
“……저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아마 표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형체가 극히 일부분만 남고 재처럼 부서져 흩날리고 있었다.
“표적을 파괴하는 방식의 시험이라도 치르고 있었나…….”
아마 습득한 스킬을 동원하여 준비된 표적을 파괴하는 방식의 시험이겠지.
문제는 그것을 해낸 인물과 그 여파.
희미하게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학생들이 수군거린다.
그 앞에 있는 것은 낯익은 소녀.
“……엘시아였군.”
엘시아 리올레이트.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재처럼 탄화된 표적과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다는 듯 그 주변까지 불태운 듯한 검은 흔적이 보였다.
“……아하.”
이해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아직 이쪽이 구경 중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엘시아는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교수에게 차갑게 묻는다.
“이걸로 끝입니까?”
“그, 그래, 수고했어…….”
당황한 교수가 급히 엘시아의 시험이 끝났음을 알리고는 돌아가라고 지시한다.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나가는 엘시아.
그녀의 안색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태연한 척하지만, 혼란스러운 감정을 억누르고 있으리라.
‘과연……. 꽤 시달리고 있나 보군.’
좋은 징조는 아니리라.
본래 엘시아는 자신의 능력을 아카데미에서 태연히 쓰지 않는다.
그런데 심지어 시험에도 사용했다는 건.
‘흑화 루트에서 보던 전개였던가.’
좋지 않다는 뜻이겠지.
(어쩔 거니? 지금이라도 다시 참견하려고?)
‘아니, 지금은 아니야. ……일단은 시험에나 집중하자.’
치러야 할 시험이 많고, 나도 우선은 내 성적이 최우선인 상황.
(이제 두 번째는 당연히 흑마법 시험을 치를 거니?)
‘그럴 거야.’
원래부터 마법 클래스는 내가 주로 수련하는 계통이니 대응하기에 쉽다.
(나머지 시험은 어쩔 거니?)
규정상 전공 클래스 외에 타 클래스 시험을 두 개 더 치러야 한다.
그리고 나는 빌어먹을 교수들의 정치놀음 때문에 세 개로 늘었고.
그 하나로 공용 마법 클래스의 시험을 치렀지만, 두 과목을 더 정해야만 했다.
‘당연히 하나는 연금술 클래스야.’
그것만큼이나 적절한 것은 없다.
(하긴, 시안에게는 특기였으니까.)
에밀리도 이해하고, 나를 아는 다른 이들도 동의하겠지.
연금술 시험에서 필요한 조합식 아이템의 특성이라면 어지간한 건 다 꿰고 있다.
실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럼 마지막 하나는?)
‘실은 그게 문제였거든.’
꼼수 능력자인 나라도 세 개나 고르라면 조금 고민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오러 클래스라도 대충 시험을 치를까 했거든.’
(어머, 그것도 괜찮겠네. 주먹질은 잘하잖니.)
마법사가 무슨 무예 시험을 치르느냐고 하겠지만, 의외로 괜찮은 선택이다.
무난한 점수를 받는 게 목적이라면, 그리고 내 능력을 고려하면 타당한 선택.
하지만 어젯밤 레이린에게서 부탁을 받고 난 뒤 내 방침을 정하면서 선택이 바뀌었다.
‘수석을 노리려면 마지막 클래스 시험 신청을 바꿔야 했어.’
(정령술 시험이라도 치르려고?)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정령술 클래스에는 셀리디아라는 천재가 존재한다. 필기는 내가 위겠지만, 실기에서 어떻게 될지 솔직히 가늠이 안 돼.
다른 클래스도 마찬가지고.
‘프리스트 클래스는 논외야. 내가 신성력을 써먹을 수는 없으니까.’
(그 성녀 아가씨가 섭섭해했지?)
얼마 전에 진지하게 꼬드기더라. 프리스트 클래스 시험을 치르자고.
흑마법사가 그거 치러서 뭐하게?
하여튼 무난한 선택지로는 약발이 부족했다.
확실한 성과……. 아니, 그 이상을 보여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지.
하룻밤의 짧은 고민 끝에 나는 그 해답을 찾아냈다.
“실은 이 과목의 시험을 치르려고 했거든.”
에밀리에게 그 과목의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점…… 성술?)
정말로 생소해 보이고 존재감이 옅은 클래스의 이름에 에밀리의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과목이 있었니?)
‘있어. ……그리고 의외로 잘나가는 과목이래.’
왜 흑마법이 최약체 클래스인 걸까.
점성술 같은 게 흑마법보다 더 잘나가는 클래스라고?
‘정말 별의별 게 다 있는 학교란 말이지.’
하여튼 2일 차에 치를 시험은 이미 정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