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141화
아카데미의 자랑스러운 보물이라 일컫는 오색의 수정.
그 수를 세며 나는 무심코 떠오른 의문을 물었다.
“중앙의 투명한 수정은? 정작 수정은 여섯 개잖습니까.”
“저것만큼은 알려진 바가 없어요. 딱히 별 기능은 발견되지 않았고요.”
오색의 수정이라지만, 정작 그것에는 포함이 안 되어 있는 정체불명의 무색 수정.
나는 말없이 그것을 훑어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직은 저것을 조사할 때가 아니다.
“검은색의 수정은 최초의 흑마법사라 일컫는 위인을 상징하는 겁니까?”
“잘 아네요.”
“제국 역사는 조금 배웠습니다.”
겸손하게 말하며, 나는 검은색의 수정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흑마법을 수련하는 제가 볼일이 있는 건 이거겠네요.”
당장 볼일이 있는 건 이거니까.
내 파워업을 이끌어 줄 이벤트는 여기에 있다.
마지막 흑마법 클래스의 시험.
이것을 통해 확실하게 내 실력을 높인다.
다른 애들이 중간고사 과제 레벨을 풀 때.
나는 기말고사 레벨의 학습을 한다.
이것이 앞서 나가는 학습. 더러운 영재 교육이라는 놈이다.
* * *
이곳에서의 시련을 클리어하게 되면 각 전공 클래스의 능력을 보다 상승시켜 줄 패시브 스킬을 얻게 되리라.
그것이 나의 목적.
“정말로 할 건가요?”
“예. 후딱 끝내 버리죠.”
번복은 없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잘 알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실수할 일은 결단코 없으리라.
“그렇다면 이 선생님도 더는 말리지 않겠어요.”
다니엘 교수는 더는 말릴 수 없다고 체념했는지 마지막 승인을 위해 이 장소를 관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티팩트에 마력을 흘려 넣는다.
수정체가 기동한다.
내 클래스에 맞춰서 검은빛을 발하는 흑색의 수정체.
“이 앞에 열리는 길로 들어가면 돼요. 그곳에서 시험은 시작될 테니까요.”
“예.”
“혹시 실수해도 걱정 말아요. 기회는 두 번이나 더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본래 이 시련은 기말시험에 주어지는 퀘스트이지만, 설정상 3년 동안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는 녀석들이 많다고 했던가?
애초에 이건 기말 평가를 빙자한 별개의 목적을 가진 시험이니까.
“그러고 보니 교수님도 학생 시절 때 이 시험에 도전하셨나요?”
“물론이죠.”
“……개인적으로 궁금한데, 다니엘 교수님은 몇 번이나 성공하셨나요?”
정말로 별것 아닌 질문.
다니엘 교수님은 난처한 듯 조금 주저하다가 가르쳐 주었다.
“한 번. 그것도 졸업 직전의 마지막 해가 되어서야 겨우 통과했답니다.”
“……과연.”
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드디어 수정체 앞에 게이트가 출현한다.
시험이 치러질 별개의 공간으로 향하는 입구.
“그럼 후딱 갔다 오겠습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 * *
게이트를 통과하자 펼쳐진 장소는 마치 검투장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었다.
“오? 제대로 도착했네.”
다소 이른 시기라서 이 시련이 제대로 작동할까 걱정이었는데, 별상관이 없었나.
내가 아는 것 외의 다른 불안 요소는 없을까. 위화감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허공에서 에밀리가 멋대로 실체화하며 천천히 착지했다.
“별나네. 시험 한 번을 위해 이런 장소까지 준비해서 치르고……. 공들이는 걸 좋아하네.”
“지금 나오라고 부르지 않았다만.”
“뭐, 어떠니. 지금의 시험은 이 누나가 같이 나와도 이상할 건 없잖니.”
마치 시험 기간 동안 참견하지 못한 것이 아주 심심했다는 듯 에밀리는 일부러 내게 바싹 달라붙었다.
뭐, 그녀의 말대로 이 시련은 일반적인 평가 시험과는 별개의 퀘스트다.
무엇을 해도 조건만 충족하면 부정 따위는 없다.
뭐, 에밀리가 멋대로 튀어나온 건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저것을 앞에 두고 가만히 숨어 있을 수는 없지 뭐니.”
“아……. 눈치챘냐.”
하긴 감지력이라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악마니까.
내게 장난을 치면서도 에밀리의 시선은 한 곳을 경계하듯 줄곧 머물러 있었다.
“경계할 필요 없다. 고향의 동족. 네 계약자에게 간섭할 생각 따윈 없으니.”
목소리가 들린다.
시험장의 중심.
거기에는 접시 형태로 깎여 있는 검은 수정이 있었고, 그 위에 한 악마가 앉아 있었다.
살짝 탁한 음성.
사람의 목소리와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섞인 듯한, 그리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이행할 계약은 이곳을 방문한 이들에게 시련을 주는 것. 오로지 그뿐이다.”
“저 악마의 말대로야. ……이른바 저 녀석이 시험 감독관인 셈이지.”
오색의 수정에는 각 클래스별의 시련이 마련되어 있다.
흑마법 계열의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은 저기 저 커다란 접시에 앉아 있는 악마.
“게닐이라 부르라. 제국의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은 아이야.”
“시안이다. 흑마법 클래스. 당연한 소리지만, 여기 들어온 목적은.”
“그래, 계약대로 네 시험을 주관해 주마.”
게임 시절에서도 이 퀘스트를 주관하는 NPC로 등장했던 악마다.
“인간의 시련을 주도하는 게 동족이라니 영 믿기가 어려운데.”
악마의 본성은 악마가 안다. 에밀리는 여전히 경계심을 거두지 않고 빈정거린다.
“함부로 말하지 마라, 동족. 어디까지나 계약을 이행하고 있을 뿐.”
“어머? 계약? 누구랑?”
“……저 악마의 계약자는 검은 시조라 불리는 마법사. 그가 이곳을 마련할 때 거들면서 적당히 잡아 놓은 악마인 모양이더라.”
대강의 설정은 알고 있다.
시조와의 계약대로 저 악마는 아이들에게 시련을 내려 준다.
그것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계약의 대가는 나쁘지 않았으니. 합당한 일이다.”
“그렇겠지. 이런 종류의 계약을 성립시키려면 보통 조건으로는 어림도 없을 테니.”
하물며 계약자의 사후에도 유지되는 것이라면 아마 보통의 조건을 내건 것은 아닐 것이다.
에밀리도 이해했는지 그제야 그 악마에 대한 경계심을 거두었다.
“시험에 대해 설명을 듣겠는가?”
“듣도록 하지.”
파악은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걸러 들어서 실수라도 했다간 웃음거리도 못 된다.
내가 설명을 요구하자 악마 게닐은 천천히 그 갈라진 음성을 울리며 시험에 관해 말했다.
“이 시험에서 추구할 것은 너희 인간이 흑마법…… 나의 계약자가 명명한 너희 인간의 마법의 역량이다.”
“내가 뭘 하면 되지?”
“보여라. 그리고 그 역량을 증명하면 될 뿐이다.”
널찍한 시험장.
딱 보아도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시험을 치르라는 뜻은 아니다.
“싸우라는 거군.”
“혹시 저 동족이랑?”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지.”
에밀리의 질문에 모호한 대답을 하는 게닐.
“시험을 치를 상대는 나의 능력으로 구축된 결과물. 그것을 네 실력을 통해 넘어서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설명보다는 직접 보여 주는 게 빠르다.
게닐이 손짓하자, 녀석의 앞에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이내 사람의 형상을 갖춘다.
“……어머?”
에밀리가 흥미로운 얼굴을 한 채 놀란 소리를 낸다.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니 조금 묘한 기분이 든다.
녀석이 만들어 낸 것은 나였다.
나랑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시안.
“참 그럴듯한 시험이네.”
자주 있지 않은가.
말 그대로 넘어서야 할 것은 나 자신.
저 악마의 능력으로 나와 똑같이 생긴 분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설마 저 분신이 나보다 강한 건 아니겠지?”
“그럴 일은 없다. 이 그림자의 힘은 지금의 너와 동등하니.”
마력량, 스테이터스, 레벨.
모든 것이 똑같은 복제체.
“과연~! 똑같은 조건이라는 거군. 더럽게 공평해서 좋네.”
빈정거리는 게 아니라 예상대로라서 기뻐하는 것이다.
시험의 내용은 당연히 알고 있다.
흑마법 클래스의 시련은 플레이어가 육성하는 캐릭터와 동일 스펙의 적을 상대로 싸워 이기는 것.
‘다행히 이 조건에서도 같은 복제체라는 거구나.’
내가 이 퀘스트를 앞당길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은 상대가 어디까지나 내 복제체라는 점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복제체의 스펙은 시련 당시 플레이어의 레벨과 능력치를 기반으로 한다.
내가 50이면 딱 그만큼.
99라면 딱 99만큼.
‘그러니 당연히 지금 시험을 치러도 난이도는 변하지 않아.’
물론 아닐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때는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해야겠지.
“어머, 간단하네.”
의외로 쉽다고 말한 것은 에밀리가 먼저였다.
“야, 에밀리 넌 또 왜 갑자기 자신감이 넘쳐?”
“후후, 어디까지나 시안과 똑같이 생긴 시안을 귀여워해 주면 되는 거잖니.”
그럼 맡겨라.
“무엇보다 복사한 건 시안뿐이네. 그럼 이 누나가 끼면 간단히 압도하잖니?”
일리는 있군.
“아니면, 이 누나도 복사할 거니?”
“……그건 어렵군. 어디까지나 내 권능은 인간을 따라 하는 것.”
게닐은 사역마까지 복사하지는 못한다고 간단히 시인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없다는 점이 묘하게 거슬리는군.
“시험을 받아들이겠나?”
“당연하지.”
내가 최종적으로 동의하자, 게닐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험의 시작을 알린다.
“계약에 의거해 이 장소를 방문한 어린 흑마법사에게 시련을 부과한다.”
“…….”
“넘어야 할 것은 그대 자신의 벽. 이 자리에서 그 성장을 증명하여 자격을 얻어라.”
아마 저것은 저 악마의 대사가 아니라 녀석의 계약자의 전언이겠지.
게닐은 그대로 원반째로 허공에 떠서 상공으로 상승한다.
남은 것은 나와 나의 복제체.
《오색의 시련》
《흑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목표 : 역량을 증명하십시오.》
“오냐. 얼마든지.”
나는 바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상대의 스펙은 나와 동일하다.
그렇다면 굳이 깨작깨작 탐색전을 벌여 상대의 실력을 검증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나 자신이라면 쓸 패턴은 잘 알고 있으니까.’
게임 당시에도 복제체가 쓰는 스킬이나 행동 패턴은 해당 플레이어가 자주 쓰는 스킬을 토대로 구성되는 특징이 있었다.
그렇다는 건.
“…….”
복제체에서 마력이 끓어오른다.
녀석은 나와 같은 형태의 장비는 끼고 있지 않은 맨손이지만, 동일한 능력치라는 특성상 스펙은 동일하다.
요컨대.
“냅다 갈기겠지.”
예상대로 복제체는 나를 향해 검은 화염의 격류를 쏘아 낸다.
흑염 계열의 마법들.
“그래, 그래. 그거부터 써먹겠지. 자알~ 안다고!”
나 역시 준비해 둔 대응용 흑마법을 완성하여 전개한다.
블랙 프리즌.
지팡이의 흑마력 강화 효과로 더욱 싸늘해진 냉기가 몰아치며 흑빙의 벽이 치솟아 흑염을 받아 낸다.
열기와 냉기가 부딪히며 대량의 수증기가 휘몰아치자, 마침 에밀리가 예상했다는 듯 바람을 일으켜 그것을 위로 날려 버린다.
“잘했어. 시야가 가려지는 건 성가시거든.”
그와 동시에 나는 본 스피어를 캐스팅하여 사출하였다.
암반도 가볍게 꿰뚫을 위력의 뼈의 장창을 열 발.
그것을 쏘아 내자.
복제체 역시 동일한 양의 본 스피어를 쏘아 내서 받아친다.
“스펙이 동일하니 화력전으로만 싸우면…… 성가시긴 하군.”
소모전은 피해야 한다.
“압도하려면 힘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컨트롤로 승부해야겠지.”
뒤를 치자.
신속하게 섀도우 무브를 발동.
그림자를 이용한 이동 능력으로 복제체의 뒤로 돌아간다.
‘복제체의 단점은 사고 능력의 부재. 어디까지나 흉내 낸 패턴만을 이용하니까.’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된다.
녀석의 등 뒤에서 흑염을 일으켜 쏟아 내었다.
녀석이 조금 전 내가 막은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상쇄하려 하지만.
“그게 네가 안 되는 이유야. 가짜.”
걸렸구나.
나는 히죽 웃었다.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
조금 전에도 에밀리가 자신 있게 지적한 차이점.
“이건 어떻게 할 거지, 가짜?”
내가 히죽거리며 묻는 것과 동시에 내게만 인식이 팔린 복제체의 사각에서 에밀리가 재차 모습을 드러내며 기습을 가한다.
“시안과 똑같이 생겨서 조금 마음이 아프긴 한데……. 뭐, 원망은 마렴.”
아니, 왜 날 보면서 그런 말을 하는데.
찝찝한 농담을 던지고 에밀리는 그대로 마기를 칼날처럼 뻗어 내어 복제체를 양단하고자 했다.
복제체라고 해도 피격 판정은 인간의 구조와 동일했다.
인간에게 치명상에 해당하는 손상을 입히면 그걸로 충분하리라.
그렇게 승리를 확신하려던 순간.
“어머?”
그때 들린 건 어쩐지 의아해하는 에밀리의 목소리.
그리고…….
에밀리가 휘두른 마기의 칼날을 동일한 형상과 위력으로 전개하여 받아친 복제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귀찮게 됐군.”
그제야 시험을 시작하며 게닐이 사역마의 존재에 대해 별 상관없다는 식으로 넘어갔을 때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지금 내 복제체가 에밀리의 공격을 동일하게 받아친 능력.
그것은 내가 구사하는 재주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밀리의 능력.
요컨대.
“스펙은 나랑 똑같은데, 거기에 에밀리의 능력까지 추가했다는 거냐?”
2대 1이 아니다.
이쪽이 흑마법사와 사역마 둘이라면.
저쪽은 2인분 같은 1인이라는 뜻.
“사기 치고 있네!”
게임 시절보다 더 막 나가는군.
역시 현실이 더 망겜이란 말이 맞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