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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177화 (177/389)

제177화

177화

부회장 리니헨이 약해서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그녀 역시 맨손으로 철괴를 찢을 괴력의 소유자.

하지만 지금 휘두르는 저 회장의 방어력은 더욱 초월적.

순수 방어력만 따지자면,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맷집의 여왕.

신체 강화계 오러의 고수다운 추태로다.

“의외로 학생회는 들어가도 재밌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한 차례 소동이 끝나자.

“허억. 헉! ……이제 좀 깼냐?”

리니헨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놓자, 드디어 회장이었던 것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후아아아암~! 뭐야아? 이제 왔어? 어쩐지 목덜미가 좀 뻐근한데. ……잠을 잘못 잤나?”

“퍽이나 잘못 잤겠다. 그것보다 저 자식 데려왔어.”

“응? 누구? 아! 맞다. 데려오라고 했지. ……후아아아암.”

정작 회장은 이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손뼉을 친 후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잘 왔어. ……그러니까 이름이…… 시아?”

“시안입니다. 귀엽게 바꿔 부르면 서운합니다만, 회장님.”

“아~! 맞아, 시안. 시안.”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한 대화. 아마 본인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거 같은데.

“흐아아암! 리니헨. 그거 좀 갖고 올래? 많이 졸려서 말이야.”

“칫. 벌써 효과가 떨어진 거냐.”

부회장이 혀를 차며 책상 서랍에서 병을 하나 꺼내 넘겨준다.

레밀린은 그것을 들이키며.

“크으으으! 너무 써!”

“뭘 마시는 겁니까?”

“네가 공급한 그 에너지 포션인가 하는 거. 그거 다섯 병을 마법으로 압축한 거다.”

“우엑!”

알고는 있지만, 보기만 해도 속이 쓰리다.

보통 인간이면 바로 위장이 녹아 버리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에도 저딴 것을 마신 본인은 약간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는 정도.

“깬다아아아.”

“전혀 깨지 않으시는데요.”

“아냐. 깼어. ……그래서 시안? 네가 이걸 넘겨준 애지?”

반쯤은 취객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제야 말이 좀 통한다.

“예. 저입니다. 역시 그걸 드시는 건 회장님이셨군요.”

“조금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이게 없으면 꼼짝도 못 해. ……그 점에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과연.”

역시 내가 알던 대로였다.

학생회에서 왜 내게 대량의 에너지 포션을 얻기를 원했는가.

“단순한 잠꾸러기만은 아니신 모양이네요.”

“눈치챘어? 역시 평판대로네.”

회장. 레밀린은 태연하게 미소 짓는다. 내가 간파한 척 시늉을 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모든 사정을 밝힐 생각이었을 테니.

(묘한 마력이 얽매고 있네. ……저주. 그것도 꽤 성가신 패턴이네.)

‘역시 저주였나.’

에밀리의 분석대로 회장의 체내에서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이 잡힌다.

신체가 아니라 정신 쪽에 간섭하는 계열의 저주.

“회장님이 투병 중이라는 설이 있던데, 그게 가장 진실에 가까웠나 보군요.”

“그럴지도 모르겠네. ……뭐, 병이 아니라 저주이지만.”

역시나 하품을 하며 다시 휘청거리는 레밀린.

기면의 저주.

본래라면 걸리는 즉시 못 깰 저주겠지만, 그것을 그녀는 단순히 꾸벅 졸거나 잠깐 잠드는 정도로 그친다.

심지어 농축한 각성제로 버티는 시점에서 내성치가 얼마나 되는지 경이로울 따름.

“요컨대 지금 회장님의 상태는 기밀이겠군요.”

“맞아. 비밀로 해 줬으면 해. 교수님들 중에서도 극소수만 아시는 거걸랑.”

공표하지 못하는 회장의 현 상태.

“그럼 이야기를 해 볼까, 시안.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시간이란 게 다시 주무실 때를 말씀하시나 보군요.”

“……하하, 그런 거야.”

태연하게 말하지만, 웃을 일은 아니리라.

농축한 각성제로도 버티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뜻.

부회장의 무섭게 구겨진 얼굴만 봐도 바로 가늠이 된다.

“네게 부탁할 게 있어.”

“어느 쪽입니까? 지금 아카데미의 이상한 유행? 아니면 회장님의 저주 관련?”

“오오! ……얘 머리 잘 돌아가네.”

감탄하며 레밀린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휘청. 휘청.

조는 게 아니다.

두 번 다 긍정. 둘 다 맞는다는 뜻.

“학생회에서 네게 한 가지 의뢰를 할게.”

“의뢰라……. 하긴 그 방법이 있네요.”

“핑계로는 딱 적절한 시기이니까.”

아카데미의 제도 중 학생 의뢰라는 것이 있다.

신입생의 경우는 중간 평가가 끝날 시점부터 허가되는 제도.

게임에서 말하는 여러 잡다한 퀘스트를 해결하여 보상과 학점을 얻는 개념.

“이른바 푼돈으로 학생들의 노동력을 부려 먹는 멋진 제도죠.”

“아하하,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네.”

“……회장인 댁은 부정하셔야죠.”

“사실이잖아.”

덕분에 우리도 싸게싸게 부려 먹는답니다. 회장은 나른한 말투로 뻔뻔한 소리를 한다.

훌륭하다. 저 정도는 돼야 회장을 해 먹는군.

“그래서 저도 싸게 부려 먹으시겠다? 대가는?”

“감사의 마음과 약간의 빚?”

“……농담이죠?”

“농담이야.”

내가 게임으로 미리 설정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그 속내를 짐작하게 어려웠으리라.

바로 이 자리에서 등을 돌려서 떠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고.

“시안, 너는 지금부터 학생회의 의뢰로 나랑 어딘가로 가 주었으면 해.”

출장이군.

“어딥니까?”

“이닐스 백작이라는 인물이 다스리는 곳이야.”

“설마 줄렛 백작령?”

“역시 잘 아네.”

의뢰의 내용은 그곳까지 회장의 보조.

그리고 그 목적은.

“그곳의 영주 이닐스 줄렛이라는 사내의 주장을 묵살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 그리고…….”

“그리고.”

“나한테 이 저주를 건 게. ……아마 그 사람이니까. 그것도 해결해줬으면 하고.”

그래서 두 가지 목적을 전부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 영주가 하는 주장이란 게 역시 그겁니까?”

“응. 맞아. 아카데미의 평민 퇴학 요구.”

현재 귀족파가 주장하는 논리.

평민을 몰아내라.

그 주모자가 있는 곳이라는 뜻.

“그런데 그 사상과 회장 상태와의 관련은?”

“알면서 묻는 거지, 시안?”

“확인입니다. 뭐 뻔하긴 하죠.”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회장님 역시 귀족파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거군요. ……그런 회장님을 제거하려 한 거고.”

“정답.”

레밀린은 손뼉을 치면서 인정했다.

“그러니까 우리를 방해하는 못된 귀족을 쳐부수러 가자.”

그거 좋네요.

* * *

학생회장의 요청에 당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너무 값싸 보이니까. 조금이라도 고심하는 척은 해야지.

(실은 수락할 생각이지? 그 부탁.)

‘맞아.’

이미 결론은 내려 두었다.

받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그 줄렛 백작령에는 가야만 했어. ……구실은 적당히 둘러댈 생각이었는데.’

마찬가지로 학생 의뢰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딱 시기적절하게 건수가 떨어진 셈.

메인 시나리오 3장의 원인이 바로 그 백작령에 있다.

요컨대 그곳에 개입하면 3장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 짓밟아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서둘러서 가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어.’

(또 하나?)

‘……먼저 줄렛 백작령에 간 바보들이 있는 모양이야.’

내가 학생회를 뒤로하기 전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회장은 내 주머니에 뭔가 찔러 넣었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고작 쪽지였다.

어떤 정보를 적은 쪽지.

‘……회장이라는 작자, 은근히 능구렁이이더라고.’

(무어라 적혀 있길래 그러니?)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83기생과 82기생 정령술 클래스의 학생들이 그곳으로 향한 모양이야.’

(정령술 클래스라면……. 그렇구나. 그 고양이 귀 아가씨도?)

‘그런 모양이야.’

정령술 클래스의 수업 과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썩 귀찮은 예감이 든다.

‘지도상 줄렛 백작령이면 성가신 일이 추가로 일어날지도 모르겠는데.’

아마 감이 틀린 것은 아니겠지.

뭐, 겸사겸사 가서 살피면 그만이다.

‘내일쯤 학생회에 답을 보내자.’

그 전에 준비를 해 두자.

먼저 가야 할 건……. 그래, 흑마법 클래스의 교실이군.

다니엘 교수님께 보고도 해야 하고, 또 부탁해 둔 그 이론의 해석의 진척도도 묻고 싶다.

어쩌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 * *

“학생 의뢰라. 확실히 그럴 시기가 됐군요. ……그리워라. 그 시절에는 정말로 여기저기 다녔어야 했죠.”

내게서 간략한 이야기를 듣고, 다니엘 교수는 뭔가 아련한 듯 중얼거린다.

청춘을 그리워하는 심정은 이해가 가는군.

“그런고로 당분간은 아카데미를 떠나 있으려고 합니다만.”

“수업의 진척은 영향이 없고. ……솔직히 그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씀은 역시…….”

“최근 아카데미에서 이상한 소식만 계속 들리니까요. 귀족파인지 뭔지 한심한 소리죠.”

“그럼 허가는 내려 주셨으니 바로 준비를 하고 싶습니다만. ……그 전에 부탁드린 건 혹시.”

“앗! 그거! 그러고 보니 해석은 일단락되었어요! 내 정신 좀 봐!”

의외로 빨리 끝났네.

“암호 자체는 복잡한 편은 아니었으니까요. 기존의 흑마법의 어느 일파에서 쓰던 암호였죠.”

“그럼 그 마법을 바로 익힐 수 있는 겁니까?”

“……그거에 대해서 말인데요.”

“네?”

어째서인지 다니엘 교수님의 반응이 이상하다 싶었다.

“이 선생님은 그 수첩의 술식을 익힐 수 없었답니다.”

“……네?”

“정확히는 쓸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야겠네요.”

다니엘 교수님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면서 그 수첩의 원본과 해석본을 내게 돌려주었다.

“악마학. ……악마와 계약한 흑마법사라는 걸 전제 조건으로 계산된 이론이 아닐까 싶네요.”

사령술을 주로 파고든 다니엘 교수님은 그것을 시험할 수 없었다.

“그 선배의 악마학은 재학 당시에도 다소 난해한 구석이 있었으니까요. 단순히 술식 구성으로 이것이 뭘 의미하는 건지는 유감스럽게도 알지 못했답니다.”

“그럼 그것도 포함해서 제가 한번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조심하는 게 좋아요.”

“주의를 게을리 할 생각은 없습니다.”

조심하도록 단단히 새겨듣고는 그 해석본을 확인해 보았다.

‘어디 보자?’

《연구 수첩을 정독합니다.》

《해당 지식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합니다.》

《이해도 : 13%》

꽤 어렵군.

지금의 나라도 이것을 단번에 습득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 모양이다.

아마 시간을 들여서 몇 번이고 정독하면서 완전히 이해할 수밖에 없나.

‘프로젝트 D.D’

일단은 해독이 끝난 시점에서 이 수첩의 이론 첫 페이지의 개요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젝트 D.D

요컨대.

‘Desire Demon.’

악마를 갈망하다?

《연구 수첩의 정독이 완료되면 해당 스킬을 습득하게 될 것입니다.》

《흑마법 – 진마빙현제(眞魔憑顯祭)》

‘……알 수 없는 스킬이군.’

역시 낯선 이름이다.

이것의 효력은 나도 알지 못한다.

게임 시절, 각 클래스별 스킬의 입수 루트는 실로 다양했다.

단순히 레벨의 상승, 서클의 달성 혹은 특정 수업이나 교본을 통해 습득하는 스킬.

혹은 특정 인물에게 직접 전수받는 계통의 스킬.

그것도 아니면 아이템이나 마도서를 통해 주입받는 방식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습득이 가능하다.

‘습득 조건은 최소 5서클. ……그것도 상당한 양의 마기량을 포함해 기초 스테이터스가 필요한데?’

이렇게까지 조건을 요구하는 스킬은 드물었다.

그만큼 강력하다는 의미인가.

‘익힐 수 있다면 익혀 두는 게 좋겠지.’

습득한 뒤 효력을 검증하면 된다.

어지간한 스킬은 써먹을 구석이 있으리라. 그것은 내가 시안이 되고 나서 체감한 진리.

배우자.

“수상쩍은데 정말로 익힐 건가요?”

“일단은 조심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염려스러워하는 다니엘 교수님의 걱정에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는 그 해석본을 다시 펼쳐 보았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 해석본의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으니까.

[이 비술의 구상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시작하였다.]

[검은 시조조차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흑마법의 재능의 근간을 뜯어고칠 비술]

[그 기반이 될 이론을 구상하였다.]

……분명 이것이야말로 내게 필요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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