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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180화 (180/389)

제180화

180화

레밀린이 수배해 놓은 숙소에 도착하고 난 뒤.

약간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는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할 일을 이야기했다.

언제 다시 잠들지 모르기에 용건은 미리 말해 두고 싶은 모양이다.

“신입생. 우리가 할 일은 크게 두 가지.”

“압니다. 하나는…… 이닐스 백작. 그에 대한 조사. 혹은 실력 행사를 통한 저지이겠죠?”

뻔하다.

“역시 머리가 잘 돌아가네. 부려 먹는 보람이 있겠어.”

“머리 굴리고 자시고 간에 뻔하죠. 백작의 태도도 그렇고…….”

뭐,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나 역시 그 백작에 관한 설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메인 시나리오 3장의 악역.

내버려 두면, 3장의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 위험인물이니까.

“백작이 뭔가 꾀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해. 나뿐이 아니라…….”

“학장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거군요. ……그리고 그 위의 분도.”

학생회장이 움직인 건 본인 독단의 뜻만은 아닐 것이다. 일부 교수들, 특히 학과장과는 이미 논의가 끝난 일.

그렇지 않으면 학생회장이 직접 움직이진 않을 테니까.

“그래서? 그 양반이 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겁니까?”

“그걸 확인하는 게 먼저 우리가 할 일이지.”

“하긴…….”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 학생이 움직이진 않을 테니까.

학생이, 그것도 핑계까지 대서 이곳에 온 것은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상태라는 것.

‘그래야 제국의 실력자들이 개입하지 못하는 핑계가 될 테니.’

나로서는 의외라고 할 것도 없었다.

곤란하지도 않다. 이미 정보는 있다. 물론 그게 정말로 이곳에서도 재현되는지 검증은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갈피를 못 잡아 머리 아플 일은 없지 않을까.

“확인해서 혐의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할 겁니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 돼.”

“실력 행사도 가능하다는 거군요. 그건 좋네요.”

무사히 확보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유죄라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고 허락한 뜻.

“단, 확실하게 확인되었을 때. ……그 외에는 책임을 물어야 할 수 있어.”

“압니다.”

그 점은 걱정 없다.

“이닐스 백작은 현재 평민 제적을 건의하는 귀족파의 중심인물인 것만큼은 확실해.”

“귀족파의 애송이들이 몇 번이고 그자의 이름을 언급했으니까요.”

단순히 그릇된 사상을 주장했다고 그것만으로 처리할 명분은 부족하다.

어디까지나 주장만이라면.

“제국은 뭘 잡은 겁니까?”

“단순히 주장뿐이 아니라 무언가 행동을 할 징조.”

“징조라……. 테러나 그것과 비슷한 것?”

“속단은 아직 일러. ……어디까지나 기우였으면 하는데.”

레밀린은 느긋한 평소의 태도와는 달리 한탄하는 말투였다.

“그러고 보면 백작은 회장님을 알아보던데요.”

“내가 신입생이던 시절에 여기에 온 적이 있어…….”

“무슨 사고를 치셨는지 몰라도 꽤 밉보인 모양입니다만.”

“그럴지도. ……하긴, 좋게 볼 수는 없겠지.”

순순히 인정한다.

나는 일부러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럼 두 번째 해야 할 일은 회장님의 저주를 푸는 것이겠죠?”

현재 학생회장은 상태 이상. 기면의 저주 때문에 활동에 크나큰 제약을 받고 있다.

언제 고꾸라질지 몰라서 난감한 상태. 굳이 나를 끌고 온 것도 여차할 때의 호위도 겸해서.

“저주의 원인도 이곳과 관련이 있다고 하셨죠.”

“……맞아. 틀림없을 거야.”

그렇겠지.

내가 알고 있는 지식대로라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게임 때의 사양대로라면 회장의 저주는 메인 시나리오 3장의 종료 이후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곳에 와서 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학생회장에게서 받는 퀘스트.

‘그때는 3장 종료 이후라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아마 시기가 당겨지면서 겸사겸사 같이 진행하게 된 것이겠지.

큰 문제는 없다.

“보아하니 회장님의 저주는 그 효력이 외부에서 유지되고 있는 타입이군요.”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아, 그러고 보면 흑마법 클래스의 다니엘 교수님의 전공이.”

“대강 배운 지식입니다.”

반은 거짓말이다.

저주에 관해서는 게임 때 스킬 사양밖에 모른다. 그 외에는 수업으로 배운 지극히 기초적인 지식뿐.

저주 자체에 흥미가 있어 연구해 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묘하게 다니엘 교수님이 내게 가르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단 말이지.

“원인을 파괴하거나 그 저주를 다루는 인간을 처리해 버리면 바로 해결되겠죠.”

“역시…….”

“그 원인이 이 영지에 있다면 말입니다만.”

“……있을 거야.”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는 무책임한 긍정은 하지 않고 일단은 모르는 척 넘겼다.

“회장님의 문제 해결. 백작의 의혹 개입. 어느 쪽을 우선시하면 될까요?”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을 먼저 생각해.”

상황에 따라서 적당히 정해라.

‘개인적으로는 회장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싶은데…….’

그렇게 한다면 학생회장이라는 전력을 온전하게 써먹으며 메인 시나리오 3장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내 고생이 줄어든다는 소리.

‘문제는 그걸 찾으려면 백작과 바로 적대하게 될 거야.’

무턱대고 움직이진 않는다. 레밀린의 말마따나 제대로 건수를 발견하고 물고 늘어지는 게 우선.

“당연한 말이지만, 시안은 신입생이니까 위험하다 싶으면 발을 빼도 돼. ……실제로 움직이는 건 하아아암~. 내가 할 거니까아아.”

“졸려서 고개가 뒤로 넘어가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지금의 레밀린은 제대로 써먹을 수가 없다.

언제 행동 불능이 될지 모른다.

게임이었다면, 확률적으로 수면 상태에 빠져서 행동하지 못하는 캐릭터.

……망하지, 보통.

“이닐스 백작도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으니 노력해서 뭐라도 건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리는 안 해도 되는데.”

“제 아카데미 생활에 걸림돌이 될 거 같으니까요.”

평민 축출을 외치는 그나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의 제거 리스트 1순위에 누가 올라 있겠나.

아마 나일지 모른다.

“우선은 여기에 온 핑곗거리인 의뢰를 처리하는 시늉이나 하면서 살펴봐야겠네요.”

“그러는 게 좋을 거야.”

“의뢰는 뭐죠?”

이곳에서 활동할 근거로 적당히 받아들인 의뢰.

듣자 하니 어느 상인의 부탁인 모양이던데.

명목상 처리해야 하는 일이기에 후딱 정리해 두는 편이 좋다.

“의뢰주인 상인이 짐마차를 잃어버린 모양이야.”

“그걸 찾아 주면 되는 겁니까?”

“아마 몬스터의 서식지로 흘러들어 간 것 같고.”

“분실물 확보와 토벌이네요. 진짜 별것 없군요.”

지극히 평범한 퀘스트.

다만 약간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인데.

‘확인해 보면 알겠지.’

아마 게임 때 접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수행해 두는 편이 좋겠군.

“일단은 해야 할 일은 그게 전부야.”

“사실 가장 확실하고 빠른 게 하나 있습니다.”

“어? ……정말?”

레밀린도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 강한 흥미를 보이며 묻는다.

“백작의 성부터 날려 버리죠.”

“…….”

“적당히 몬스터 혹은 불순분자를 사칭해서 우선은 수상쩍은 백작의 성부터 날려 버리는 겁니다.”

“…….”

“물론 인명 피해는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죠. 대신 철저하게 박살 내면 그걸 핑계로 개입을 할 수도 있고, 뭐라도 건지겠죠.”

무엇보다 계획에 지장이 생긴다.

수상쩍으면 덮어놓고 박살을 내자.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책.

폭발이 답이다.

“아, 아니, 그건 좀…….”

당연히 레밀린은 잠을 완전히 깼다는 듯 눈을 크게 뜬 채 머뭇거렸다.

역시 동의하지는 않나.

“온건하게 활동하는 게 좋겠다는 거군요.”

“온건하고 뭐고 이전에 사람으로서 그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일단은 보류하겠습니다.”

“일단은 보류하는 게 아니라 절대 하면 안 돼.”

어째서인지 사람으로서 그럼 못쓴다고 훈계를 들었다.

왜일까.

그게 제일 확실한데.

원인이 확실하다면, 그것과 함께 날려 버린다.

폭격 해결이야말로 정답인데.

“역시 그게 가장 성실한 방법인데.”

“……요즘 애들이 말하는 성실함은 대체 뭘까.”

아니, 회장님? 댁도 아직은 요즘 애들에 속하는 나이입니다만.

* * *

우선은 의뢰를 먼저 처리하고자 하였다.

의뢰주는 틸진 상회에 속한 상인.

“틸진 상회라……. 처음 듣는군요.”

“이 일대에서 활동하는 중간 규모의 상회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기억에 없군. 아마 한두 번 등장하고 마는 놈들이겠지.

의뢰의 설명을 듣기 위해 틸진 상회의 소유 건물로 향했다.

상회의 일꾼에게 적당히 용건을 말하자, 흔쾌히 건물 내부로 안내를 받았다.

조금 기다리자 곧바로 의뢰주로 보이는 상인이 후다닥 달려오고는 넙죽 고개를 숙인다.

“정말로 잘 오셨습니다! ……아이고, 이거 반쯤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일단 숨부터 돌리고 말씀하시죠.”

적어도 절실함 하나는 느껴지는군.

아마 허둥대는 게 아니라 일부러 허술하게 보이려는 거겠지만.

“프닐스라고 합니다. 틸진 상회의 부점장을 맡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프닐스 씨? 부탁하고 싶은 일이란 게…… 의뢰서대로라면 토벌과 분실물 찾기 같습니다만.”

“잘 물어보셨습니다! 이게 어찌나 곤란하던지.”

상인 프닐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의뢰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약 한 달 전의 일이었습니다. 저희 상회 소속의 짐마차를 몬스터 따위에게 빼앗겼지 뭡니까.”

“몬스터에게?”

“예.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도적도 아니고 대체 몬스터가 짐마차를 강탈하는 건 무슨 짓인지…….”

그것도 한두 대가 아니었다.

이후에도 집요하게 상회의 짐마차를 강탈당한 것.

“몬스터 무리의 서식지는 확인했습니다만, 아무래도 토벌이 쉽지 않은 모양인지 용병 놈들은 콧방귀만 뀌지 뭡니까.”

“영지군의 파견은?”

“…….”

“과연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거군요.”

영지군이 몬스터의 토벌도 수행하긴 하지만 구석구석 들쑤시며 사냥을 해 대지는 않는다.

아마 서식지가 인근 마을이나 도시에서 멀기에 몬스터가 습격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내려서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이겠지.

그들도 한가하진 않으니.

“반쯤 기도하는 심정으로 제도에 의뢰서를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찾아오실 줄이야.”

정말로 될 대로 되라고 보낸 건 아닐 것이다.

학생에게 가는 몫이 형편없다는 거지 아카데미의 의뢰 중개 수수료는 만만치 않다.

“요컨대 찾아 달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짐이 무사합니까? 시간이 꽤 지난 모양인데.”

식료품이면 이미 썩어 버렸거나 먹어 치웠겠지.

“기이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할 리는 없습니다. 애초에 먹을 것도 아니기에.”

“먹을 게 아니다. 그런데도 몬스터에게 빼앗긴다? ……내용물이 정확히 뭡니까?”

“그, 그건…….”

조금 전에는 뭐라도 다 털어놓을 것 같던 상인의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말실수라도 했다는 느낌.

추궁해도 되겠지만, 일단 나는 거기서 흥미 없는 척했다.

“됐습니다. 짐 내용물은 흥미가 없으니까요. 다만 상품을 찾지 못하면 그냥 토벌로만 끝낼 겁니다만.”

“일단 찾아봐 주신다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 그래도 찾아 주신다면 개인적인 사례도…….”

“그 정도로 중요한 짐인가 보군요. 뭐, 성의를 보이시니 나름 신경은 써 보겠습니다.”

흔쾌히 수락. 하물며 성의에 관심을 보이는 티를 내며 적당히 의뢰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자리를 마무리했다.

상회의 건물을 나오자,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레밀린이 말한다.

“묘하게 협상이 익숙하네.”

“협상이고 자시고 할 게 있었나요? 저쪽에서 초조한 나머지 다 털어놓는데.”

본래는 레밀린이 주도해서 이야기할 생각이었겠지만, 적당히 지켜볼 겸 입을 다물고 있었나 보다.

실제로도 협상이 익숙하지는 않다. 단순히 게임에서 보고 기억한 스크립트를 적당히 흉내 낸 것뿐.

나머지는 흑마법사 특유의 불길함으로 적당히 위압만 주면 어지간한 겁쟁이들은 다 털어놓는다.

“회장님? 이 의뢰 어디까지 알고 받으신 겁니까?”

“아무거나 받은 건데? ……여기에 관련된 게 이것밖에 없었어.”

일단은 가능한 수상쩍은 건 받지 않으려고 주의했지만, 하고 덧붙였다.

나는 알겠다며 대충 끄덕였다.

“그럼 바로 해결하러 갈까요?”

“서두르진 않아도 될 텐데…….”

“아뇨. 그게 좋을 거 같거든요.”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었다. 정확히는 떠올렸다고 해야겠지.

이 퀘스트의 기시감.

분명 게임에서 본 적이 있는 퀘스트였다.

약간 내용이 달라지긴 했지만, 틀림없었다.

“잘만 하면 좋은 걸 손에 발견할 수 있을 거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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