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181화 (181/389)

제181화

181화

의뢰를 처리하기 위한 출발은 내일 하기로 결정하였다.

본래라면 좀 더 준비를 하고 나서는 게 상식이겠지만, 유난히 자신감을 보이는 나를 두고 뭔가 눈치챈 모양이다.

출발 때까지는 자유 시간.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나는 늦은 시간까지 잠들지 않은 채 조용히 그 연구 수첩의 사본을 읽어 내리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수첩을 넘기고.

다른 한 손으로는 빈 양피지를 꺼내 술식과 계산식을 고쳐 써 내려가고 있었다.

《정독률 75퍼센트》

《해당 연구 내용에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합니다.》

틈틈이 사본의 내용을 정독하면서 정독률을 높이고 있었다.

‘이 정도 페이스면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군.’

“의외네. 시안도 꽤 애를 먹다니. 그렇게 대단한 마법인 걸까?”

‘정확히는 술식의 내용보다 그 의도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는 거 같아.’

몇 번이고 읽고 분석함으로써 지금은 제법 이 비술에 대한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지금 이해한 건 이 마법은 자기 강화 계통의 것 같은데.’

그야 수첩 중간중간에 쓰여 있는 그 선배의 개인적인 서술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었으니까.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흑마법의 근간이 되는 학파는 역시 악마와 관련된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흑마법은 악마에게서 비롯된 것]

[그것은 흑마법을 수련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

[흑마법사의 자질은 그 인간의 성정이 얼마나 마(魔)에 가까운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흑마법사로서의 근본적인 재능이라…….’

이 연구 수첩의 본래 주인은 주로 흑마법을 다루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고찰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듯했다.

[정신과 육체가 심연에 빠져들 자질이 있는 자가 본질적인 흑마법을 추구하리라.]

[그럼 타고나지 않을 인간이 그 본질적인 마를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을 이해하면, 흑마법사의 재능의 근간을 바꿀 비술을 터득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 선배는 이 수첩에 기록해 놓은 술식의 기초를 통해서 그 해답을 얻은 모양이고.

[악마에게 익숙해져라.]

[악마와 소통하고, 기운과 본질에 적응하여 그들에게 결코 홀리지 않는 자신을 구축하라.]

[이 본질을 착각한다면 비술은 실패할 것이며, 되레 마에 집어삼켜 나락으로 떨어지겠지.]

[중요한 것은 흑마법의 근본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느냐를 인지하는 것.]

거기까지 읽자, 에밀리가 멋대로 달라붙는다.

내 등 뒤에서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인다.

“헤에, 어떻게 익숙해지는 게 좋을까.”

“헛소리 말고 떨어져. 나 집중하고 있거든.”

“흥, 여행까지 왔는데 멋을 모르는 게 아니니?”

에밀리는 투덜거리는 내게서 수첩을 낚아채고는 흔들었다.

다시 찾기 위해 손을 뻗자 간단히 붙잡아 침대 위에 밀어 넘어트린다.

“시안. 이런 것보다 다른 걸 보는 게 좋지 않겠니?”

나를 누르고 올라탄 에밀리는 어느샌가 나신을 드러낸 채 수첩을 흔든다.

빛이라고는 구석에 켜놓은 양초뿐인데도 여악마의 몸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 같은 느낌.

어느 쪽에 눈독을 들일지 재보라는 것 같군.

“어느 쪽이라.”

지금은 다른 게 신경 쓰이는군.

“어째 내가 이걸 읽는 걸 싫어하는 거 같은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내가 무엇을 수련하던 한마디 보태지 못해서 안달이 난 그녀가 방해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봐. 에밀리. 뭔가 아는 거 아냐?”

추궁하자 에밀리는 작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몰라. ……하지만 하나만은 직감하고 있단다.”

“직감?”

“그 수첩에서는 불길한 낌새가 느껴지고 있어.”

원본을 말하는 것이겠지.

“인간은 모를 거야. ……악마. 그것도 꽤 불쾌한 흔적이 느껴져.”

에밀리가 단순한 예감만으로 불길하다고 말할 정도.

“반대로 흥미로운데.”

“농담하는 게 아니야. ……조심하는 게 좋을걸? 악마와 관련된 걸 건드려서 좋은 꼴은 못 본단다?”

“악마한테 들으니 겁나네. 그 의견은 반영해볼게.”

충고는 듣겠다고 말하고, 나는 에밀리의 소환을 해제하였다.

침대 위에 떨어진 수첩을 다시 집어 들었다.

‘악마가 보장하는 불길함이라.’

관둘 생각은 없다.

어떤 방법으로 흑마법사의 재능을 뜯어고치느냐는 호기심이 들었으니까.

“뭐, 써 보면 알겠지.”

정독률의 진행을 보건대 습득 자체는 며칠 내로 성공할 듯싶었다.

“그럼 남은 시간은 적당히 산책이나 갔다 올까. ……잠은 아직 안 오니까.”

(후후, 밤놀이라도 하게?)

“하고 싶어도 할 게 없거든?”

여긴 관광이나 유흥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러고 보니 제국 북부에는 에밀리 네가 방금 말한 밤놀이로 유명한 곳이 있었지. ……나중에 가 볼까?”

(그거 좋겠네. 하지만 너무 빠지면 못쓴단다.)

“냅 두셔. 하여튼 오늘만큼은 놀러 나가는 건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내일을 위한 조사.

(이미 아는 거 아니니?)

“검증이 필요해. ……그리고 확인해 두고 싶고.”

(어디로 가려고?)

‘낯선 도시에 왔을 때 그곳의 물정을 가장 폭넓게 들을 수 있는 곳.’

간단히 여관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밤거리 특유의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주변을 보았다.

(……조용하네.)

‘밤이니까.’

제법 달이 밝게 뜬 밤.

그러나 에밀리의 말마따나 이 도시는 이 시간에 기이할 만큼 조용했다.

(시안, 모르는 소리 마렴. 밤이라도 어둠 나름의 활기는 있는 법이란다.)

‘하긴, 이런 시간에 돌아다닐 만한 사람이 너무 없긴 해.’

지나치게 거리가 텅 비었다.

취객, 하물며 기척을 숨기고 돌아다니는 불한당도 보이지 않는 거리.

드문드문 돌아다니는 제법 무거운 발소리 정도만 들렸다.

‘어지간히 치안이 안 좋은 거리도 이렇게까지 사람이 나오지 않는 일은 없긴 하지.’

(이유를 알고 있구나?)

‘별것 없어. 그야…….’

내가 그 원인이 되는 이 백작령의 기본 설정에 대해 말하려던 참이었다.

“멈춰라.”

얼마 되지 않는 기척들이 적개심 어린 명령을 하며 나를 불러 세운다.

갑옷을 입은 병사가 3인조.

이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다.

유감스럽게도 그다지 위협이 되지 못하는 상대.

“…….”

“듣지 못했나? 서라고 했을 텐데.”

무시해도 되지만, 충돌했다가 괜히 트집 잡히면 성가셔진다.

“……뭡니까?”

“이 일대는 허가된 자들 외에는 통금령이 내려져 있다. ……누구지? 못 보던 얼굴인데.”

수상쩍다는 듯 노려봐도 난처할 따름이지. 나만큼이나 선량한 소년이 어딨다고?

“……귀찮군.”

“수상쩍은 태도를 보일 생각은 마라. 영주님의 명으로 조금이라도 비협조적인 자는 바로 엄벌을 내릴 수 있으니.”

“그건 나랑은 상관없고. ……됐고, 조금 더 가까이 와 보셔.”

손을 까닥이며 그 병사에게 가까이 오라고 부른다.

제 딴에는 위압적으로 보이고 싶은 것인지 병사는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을 올리고는 거리를 좁힌다.

“됐고, 이거나 보라고요. 자, 여기.”

“뭐가 어쨌……. 윽?!”

병사가 기겁한 것은 내 교복에 새겨진 문양 때문.

제국인이 제국의 문양을 못 알아보는 경우는 없다. 하물며 병사라면 몇 가지 문양은 필시 외워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큰 실수를 저지를 테니.

“무슨 의미인지 아시죠?”

“……무, 물론입니다.”

병사의 태도가 급격히 공손해진다.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더라도 제국의 문장을 버젓이 옷에 새기고 다니는 녀석이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여긴 것이겠지.

잘못하다가는 목이 달아난다.

“대체 이 시간엔 무슨 일이십니까?”

“별거 아니니 신경 쓸 건 없습니다. 잠시 용무가 있어서 돌아다니는 중이니까요.”

“용무……. 아! 그렇군요. 영주님께서 초대하셨다는 그 제국 아카데미의 학생이셨군요.”

뭔가 멋대로 납득한다.

초대? 적어도 우리는 그 영주에게 고운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아마 다른 녀석과 착각한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리니아 벨튼이 영주의 성내를 돌아다니고 있었지.’

역시 단순히 놀러온 건 아닌가.

딱히 이 병사 앞에서 오해를 정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나는 적당히 장단에 맞춰서 대답하고는 병사에게 물러가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자 바로 도망치듯 자취를 감춘다.

‘도망치는 꼴을 보아하니 놈들한테 시비 걸릴 일은 없겠군.’

무엇보다 조금 전 병사와의 대화로 이 도시의 상황을 대강 확신했다.

병사가 조금 전 말한 통금.

그리고 허가된 자. 전부 눈에 익은 단어지.

남은 건 확신할 정보만 얻으면 된다.

그대로 내가 향한 곳은 이곳에서 정보를 듣기 가장 용이한 곳.

(……용병 길드?)

‘그래, 용병 길드. 여기가 이야기를 듣기 가장 좋은 곳이거든.’

용병.

말 그대로 고용되어 싸움을 하거나 몬스터를 퇴치하는 이들.

(헤에, 시안이 들어가면 말썽이 일어날 거 같은 곳이네.)

‘내가 무슨 피에 굶주린 맹수도 아니고. 이런 데서까지 소동은 안 일으켜. ……그리고 대처법은 숙지하고 있거든.’

보면 안다.

하여튼 이곳에 볼일이 있다.

다행히 사람이 기이할 정도로 드나들지 않는 이 시간대에도 길드 내에는 제법 인기척이 느껴진다.

대부분이 힘 좀 쓴다는 용병들이겠지.

나는 주저 없이 문을 열고 그곳에 발을 들였다.

이 시간에 누가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길드 안에는 정적이 감돌면서 수십 명은 될 법한 용병들이 이쪽을 탐색하듯 노려보고 있다.

“저 꼬맹이는 뭐야?”

“잠깐, 저 제복은…….”

“그러고 보니 영주가 제도에서 애송이들을 불러 모은 거 같던데.”

시시한 잡소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떤 녀석에게 캐물어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려나.’

대부분의 용병들은 말을 나눌 가치도 없는 삼류 중에 삼류.

문제는 내 눈도 옹이구멍이라 사람을 보는 눈은 솔직히 애매하단 말이지.

죄다 더럽고 칙칙한 아저씨들로밖에 안 보여.

뭐, 이럴 때 고민하지 않아도 알아서 도와주러 오는 손길이 있기 마련.

“이봐. 애송이. 뭐가 구경이 났다고 돌아다니냐? 하물며 아카데미의 귀하신 인재께서?”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며 시비를 거는 용병 사내가 있었다.

내 키의 두 배는 될 법한 신장과, 넘치는 근육.

‘칫, 삼류군. 자기 몸집밖에 믿을 게 없는 머저리인가.’

나는 놈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놈은 알아서 성질머리가 오르는지 내 어깨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내뻗는다.

“아저씨, 옷 구겨지니까 하지 말지? 하물며 더러운 손으로 붙잡으려고?”

대신 내가 그의 손목을 먼저 붙잡는다.

비웃던 그 삼류 용병의 이마에 곧 식은땀이 흐른다.

옴짝달싹하지 못할 테니까.

“뭐, 뭐야, 이 자식…….”

“얌전히 구석에서 술이나 홀짝이겠다면 놔줄 수 있는데? 어쩌나? 으응?”

“헛소리 집어치워!”

자존심 때문인지 그는 이를 악물며 내 손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지만,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겠지.

지금 확신한 건대, 저 용병의 레벨은 아마 15 정도가 아닐까 싶다.

10 이상 차이가 나더라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지금의 나라면 설사 그가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내질러도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는다.

“이봐, 아저씨. 혹시 못 들었어?”

“무슨 개소리를…….”

“이 바닥에선 노인이나 꼬맹이를 건드려서 좋은 꼴 본 녀석은 없다는 소리 말이야.”

“알게 뭐냐!”

“응, 그렇군. 그럼 여기서 보여 줄게.”

결국, 참지 못하고는 용병은 반대쪽 손으로 검을 뽑으려 한다.

족쳐도 된다는 뜻.

마침 잘됐지. 나는 싱긋 웃으며 그대로 녀석을 벽을 향해 내던졌다.

콰앙!

“오, 튼튼하네. 마법으로 강화가 되어 있나.”

살살 던졌다고 하지만, 고작 금이 가는 정도로 끝난다.

하물며 그 단단한 벽에 부딪힌 삼류 용병은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혼절.

“……역시 아카데미의 꼬맹이인가.”

“괴물이군.”

“저런 건 상대하지 않는 게 좋겠어.”

덕분에 더는 시비에 걸리지 않겠군.

조금 전 그 멍청한 용병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역시 얕보이지 않으려면 힘자랑이 제격이겠지.

이게 바로 보디랭귀지라는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