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182화
이제 누가 말을 걸까 기다리자니 곧 한 사내가 들으라는 느낌의 감탄을 터트리며 다가왔다.
“……맙소사, 마법을 3중으로 쳐서 강화한 벽인데, 그게 금이 가나?!”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말을 걸었다.
가죽 갑옷의 차림새에 허리춤에는 평범해 보이는 검이 한 자루.
“말도 안 되는 힘이군.”
“평소에 운동을 자주 했을 뿐입니다만.”
“고약한 농담은 관두게. 그런 식으로 강해진다면 칼밥 먹는 놈들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일을 때려치울 걸세. ……하물며 자네는 마법사이지 않은가.”
제법 눈썰미가 좋다.
“알아보시는군요.”
“마법사의 기척은 제법 눈에 익었지. ……그 제복. 역시 아카데미의 학생인가.”
“시안입니다. 필로스 아카데미 83기생. 용건이 있어서 이곳에 잠시 들렀습니다만.”
“한스라고 하네. 이놈으로 연명한 지는 조금 된 용병일 뿐이지.”
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제법 손을 탄 것 같은 검을 매만지며 싱긋 웃었다.
적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가.
“아카데미 학생이 여긴 무슨 볼일이지? 딱히 우리들의 일거리를 탐내는 건 아닐 테고?”
“그런 건 아닙니다. ……길드 쪽에서 요청하면 모르겠지만요.”
물론 아카데미 학생들 중에는 생활비나 용돈을 벌기 위해 길드에 등록을 하고 활동 중인 녀석도 종종 있다고 한다.
주로 오러 클래스의 녀석들이 활동하고 있다나.
“이 도시에 온 건 처음인데,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약간 탐문이나 하러 온 것입니다만.”
“……하긴 그럴 만도 하군. 처음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무엇이 신경 쓰이는지 눈치 못 챌 것도 없나.”
“이상할 정도로 밤거리에 사람이 없다는 점 말이죠.”
“그래, 외부에서 온 녀석들한테는 조금 이상하게 보이겠지.”
대화는 쉽게 이루어질 것 같았다.
어쭙잖은 갈등을 빚기보다는 나라는 위험인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고 얼른 내보내는 편이 더 낫다고 여긴 것일까.
흥정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만은 아닐 거네. 2년쯤 되었나? 영주님께서 엄격한 통금을 명하시는 바람에 말일세.”
“통금이라……. 병사와 마주쳤는데 그런 말은 들었죠.”
“용케도 험한 꼴은 안 봤군. 하긴, 그 제복을 보고 건드릴 병사는 없나.”
“엄벌이니 하는 말을 언급했던 거 같은데요.”
“위협은 아니네. 실제로 허가되지 않은 이가 별다른 사유 없이 해가 뜨지 않는 시간에 나서면 목을 벨 수 있네만.”
그는 농담이라도 하듯 목을 긋는 시늉을 한다. 하지만 눈매는 웃지 않는다.
……알고 있는 일이다.
“그 외에도 여러 제약이 붙어 있네. ……말하자면 밤이 샐지도 모르지, 자네의 입장이라면 곧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걸세.”
“여러분들은 여기서 잘도 술을 마시는 모양입니다만.”
“길드 소속이니 말이지. 영주가 제아무리 지독해도 우리는 길드의 인가를 받고 활동 중이네. ……돌아다니지는 말라고 잔소리는 듣네만.”
“그렇군요.”
백작이라도 길드와 척을 질 수는 없을 테니까.
“조금 전 말한 허가받은 자들은 누굽니까?”
“흔히 말하는, 있는 녀석들이지. 직위라든가 금화.”
평민 혹은 그 이하의 신분에게는 부당할 정도로 통금을 제한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제약이 붙어 있다고 하고.
“혹은 자네처럼 그런 제복을 입은 자들이겠지.”
“……그렇군. 역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사실 본래 듣고자 한 건 그게 아니고.
“이게 본제입니다만, 혹시 틸진 상회로부터 용병 길드 쪽에 의뢰를 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이, 이봐! 혹시 너희들 그런 적 있냐?”
다른 용병들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접수대 쪽을 보니 마찬가지로 두 손바닥을 겹쳐 엑스 자를 만든다.
“과연, 과연.”
“그런 게 왜 궁금하지?”
“아뇨. 간단한 사실 확인입니다. ……뭐, 알고 싶은 건 대강 알았네요.”
“그것뿐인가?”
“그 외에는 약간 잡다한 걸 묻고 싶습니다만. 아, 물론 사례는 하겠습니다.”
나는 적당히 은화 몇 개를 꺼내어 늘어놓았다.
“……뭘 물을 셈이지?”
“예를 들어서 혹시 이 영지의 숲 지리나 몬스터의 분포에 대해 빠삭하신 분이 계십니까?”
어디까지나 의뢰를 원활히 끝내기 위해 필요한 정보.
상세한 지리나 몬스터의 분포에 대한 정보를 듣고 원하는 답을 도출하기 위해서.
역시 이런 건 목숨을 걸고 현장에서 구르는 이들에게 듣는 게 가장 확실하니까.
* * *
아무래도 밤사이 돌아다닌 것을 레밀린이 눈치를 챈 모양이다.
“부럽네. 한창 좋을 때야. 밤에도 놀러 다니고.”
“놀러 다닌 거 아닌데요.”
“술 냄새.”
“냄새나는 아저씨들한테서 옮은 겁니다.”
정보나 물을까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아저씨들과 의기투합해 버리고 말았을 뿐이다.
“……흐응, 좋을 때니까. 이해해. 이해해.”
그건 학생회장으로서 어떨까 하는 반응인데.
부럽다는 말도 반은 본심인 거 같았다.
“밤늦게까지 놀러 다닌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해.”
“원래 나이를 먹으면 밤에 조금 힘이 딸리긴. 으앗?!”
농담 한마디 했다고 내 발치에 순간 푸른 불꽃이 튀었다.
“뭐. 라. 고?”
“아닙니다. 저주 때문인 거 알아요. 자, 진정하시고 의뢰나 하러 출발하죠. 자! 업무시간입니다!”
“내가 학생회장이라서 오해하는 모양인데. 아직 난 고작 열아홉일 뿐이야.”
“그러니까 농담이라니까요.”
뭐, 밤사이 돌아다닌 것에 대한 나름의 질책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신입생은 혼자 무엇을 묻고 다닌 걸까?”
“그냥 도시 내 근황이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영주가 무슨 정책을 펼쳤나 정도?”
지나치게 살벌한 통금령 외에도 이것저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의뢰를 위해서 이 일대 지리와 몬스터 분포도도 조금 들었을 뿐이고요.”
지도를 꺼내 보여 주었다. 어젯밤 용병들에게서 정보를 듣고 어느 정도 표시를 해 두었다.
내가 게임 시절 기억하는 몬스터 분포도와 크게 어긋나는 점은 없었다.
“착실하네. ……혹시 의외로 성실해?”
“의외가 아니라 매우 성실합니다. ……뭐, 겸사겸사 의뢰 자체가 신경 쓰이는 구석도 있었으니까요.”
어차피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 상회에서는 용병 길드에 의뢰를 한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역시 거짓말이었구나.”
어제 들은 설명과는 달랐다.
애초에 그는 용병 길드에 의뢰를 한 적이 없었고, 마찬가지로 영지의 기사단에도 별다른 상담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쟁이네. 못쓰겠어.”
“어차피 눈치 까고 있었으면서요.”
“별것 아닌 의뢰라고 생각했으니까. ……중요도는 낮았고.”
“글쎄요.”
나는 의미심장한 말투로 뜸을 들였다.
정보를 꿰고 있는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였다.
“그 분실물이라는 게 어째 신경 쓰이지 않나요?”
“……무슨 뜻?”
“무슨 뜻이고 자시고 간에 어쩌면 회장님의 목적과 부합될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만.”
레밀린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상인은 최근에 영지 바깥에서 무언가를 공수해 와서 영주에게 직접 납품을 한 모양이더라고요.”
“백작의 거래 상대일까?”
“드문 일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뭘 납품했을까 하는 겁니다만.”
답을 알고 있기에 남은 건 적당히 끼워 맞춰서 납득시키는 것뿐.
다행히 그 핑계가 될 건수는 충분히 수집했다.
“일단 영주에게 납품할 물건을 몬스터에게 뺏겼는데, 왜 숨기려 할까요?”
단순히 책임일까?
도적 따위에게 빼앗긴 것도 아니고 몬스터라면 거의 자연재해에 가까운 일이다.
하물며 상회의 마차를 급습할 정도로 몬스터가 난폭하다면?
그건 책임을 제쳐 두고서라도 병사를 움직여서라도 대응해야 하는 일.
“이상하게 초조해하는 것도 그렇고, 신경이 쓰이잖습니까.”
“일리는 있네. 그래서 신입생은 그 분실물이 우리가 찾는 거라고 생각한 거야?”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죠. 어차피 명목상 수행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이 의뢰를 우선시해야 할 이유를 적당히 끼워 맞춰 둘러대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다.
“아마 그 분실물을 먼저 확인하고 가로채면 증거 혹은 확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 분실물을 찾는 거 쉽지 않지 않겠어?”
“뭐, 그것도 역시 짚이는 곳을 좁혀 두었습니다.”
용병들에게 들은 지리 정보와 분포도.
그것만으로 무엇을 할까 싶지만, 나는 이미 게임을 통해서 이곳에서 있을 주요 퀘스트의 지점을 파악해 두고 있었다.
요컨대 어느 몬스터가 출몰하는 지점 근처라는 것만 알아 두면 게임 지식대로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를 확정 짓기는 쉽다.
“장소는 여기입니다.”
“……백작령의 경계쯤에 있는 숲이네.”
본래라면 며칠을 작정하고 쏘다니며 고생해야 할 안건이다.
그런데 내가 출발하기도 전에 바로 짚어 내자, 레밀린은 진심으로 놀랐다는 기색을 보였다.
“대단하네……. 정말 대단해.”
“대강 운과 감이 좋았을 뿐입니다.”
“이 일 끝나면 학생회로 들어올래? 우리 서기가 아마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텐데.”
“그건 사양합니다.”
“진심으로 싫어하니까 조금 서글퍼졌어.”
댁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
하여튼 설득도 끝났겠다. 우리는 바로 그 목적지로 향했다.
레밀린의 그리폰이 있으니 이동도 쉽기 마련.
다만.
그 목적지인 숲의 입구쯤에서 그리폰이 더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얘가 경계하고 있네. 아무래도 신입생이 말한 거 맞나 봐.”
감이 예민한 몬스터만 알 수 있는 게 있겠지.
“걸어서 진입하죠. ……공중에서 공격당하는 것도 성가시니까요.”
“그게 좋겠어.”
그녀도 동의했다.
그리폰은 어지간한 몬스터 따위보다 강력한 개체다.
이런 녀석이 들어가기를 꺼린다는 건 뭔가가 있다는 뜻.
“말해 두지만,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신입생은 바로 내빼도록 해.”
“회장님을 버리라는 뜻입니까?”
“괜찮으니까 버려. 나 혼자만이면 어지간한 건 괜찮으니까.”
책임과 자신감이 깃든 당부.
허세뿐인 소리는 아니리라.
“그럼 그때가 되면 주저 없이 버려 드리겠습니다.”
“……말 잘 들어서 기쁘긴 한데, 왠지 서운하게 들리는 건 왜일까.”
어느 정도 숲 안쪽에 진입하자 그런 농담도 더는 나누지 않고 조심하게 되었다.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 상인은…….”
“……역시 돌아가면 거기부터 엎어 버리는 게 좋을까.”
레밀린도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의 것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몬스터에게 빼앗기긴 개뿔…….”
짐마차는 곧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마차였던 것의 잔해.
천 조각하며 바퀴의 파편 같은 것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일부이지만, 아마 인간이었던 것의 흔적도.
아마 마부나 그 상회의 인부겠지.
“원인은 저거군요.”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도 이 이상 다가가면 들킬 거라고 확신한 우리가 발걸음을 멈춘 채 저 너머를 내다보았다.
다소 멀긴 해도 우리들의 신체 능력이라면 모습은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몬스터……. 그것도 보통 것이 아니네.”
레밀린은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보이는 것은 거대한 몬스터.
족히 크기만 30미터는 될 법한 괴물이 그곳에 있었다.
꿈틀거리는 뱀 같은 덩어리라고 표현해야겠지.
다만 뱀은 아니다.
눈이 없고, 어디까지나 존재하는 건 꾸물거리는 거대한 몸통과 구멍처럼 뚫려 있는 머리 부분.
웜 계통.
다만 특이한 건 하나의 몸통에 다수의 머리가 갈라져 있다는 것.
“저건 처음 봐.”
“히드라 웜인가 하는 걸 겁니다.”
“……박식하네. 신입생. 저런 건 나도 처음 보는 건데.”
게임에서 봤습니다.
역시나 이 퀘스트는 메인 시나리오 3장 이후에 수주 가능한 퀘스트와 같았다.
시점과 내용이 다르긴 하지만, 분명히 그 상인에게서 받은 부탁을 해결하다 보면 저 괴물과 만나게 되지.
“이걸로 그 상인이 뭔가 감추고 있다는 건 확실해졌네요.”
“신입생의 말대로네. 이런 걸 숨길 이유는 없으니까.”
그것뿐만은 아니겠지만, 설명하는 건 적어도 저 괴물을 처리한 다음이다.
“확보하려면 우선은 저걸 처리한 뒤여야 할 거 같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징그러워서 내키지 않는데. ……신입생, 그럼 보조해 줘.”
레밀린은 팔찌 형태의 아티팩트를 꺼내 손목에 걸면서 나보다 몇 걸음 앞에 나섰다.
아마 그녀의 짐을 수납해 놓은 아티팩트 일 것이다.
“회장님이 직접 하실 겁니까?”
“저런 괴물을 신입생한테 떠넘기면 두고두고 욕먹어. ……그리고 금방 끝나.”
노골적으로 자신감을 내비치는 우리의 학생회장.
“마침 지금은 상태가 좋거든. 이 회장님이 확실하게 해치울 거니까. 애송이는 구경이나 하고 있어.”
믿음직스러우면서 왠지 불안하네.
그야 이 바닥의 법칙을 너무 잘 알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