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190화
한스 씨에게 안내받아 향한 곳은 공동묘지.
그 흑마법사도 술식의 대상이 된 것인지 이곳도 함께 공간 전이가 된 것이다.
“있군.”
흑마법사가 침식은 물론이고 연구를 하기 위해 차려 놓는 공방의 위치 중 흔히 선호되는 곳이 공동묘지.
단순히 실험 재료가 풍부하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묘지기인가.”
“그러네. 묘지기로서는 제법 성실한 아이라고 생각하네만.”
묘한 말투로 말하는 한스.
흑마법사가 도시에서 가장 많이 고용되는 직종 중 하나가 바로 묘지기다.
“아이러니한 일이네. 과거에는 절대 묘 근처에도 가지 말라던 흑마법사에게 지금은 묘지를 맡기다니 말이야.”
“……시안, 자네가 할 소리인가.”
“농담입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 아닐까 싶지만, 의외로 최근에는 흑마법사에게 묘지기를 맡기는 일이 꽤 흔하다고 한다.
묘지는 언데드가 발생하기 가장 쉬운 곳이다.
가능한 장례를 치르고 방지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묘지에는 반드시 삿된 기운이 꼬인다.
과거에는 신성력을 보유한 사제들에게 비싼 돈을 주고 의뢰를 하여 주기적으로 정화를 시켰지만, 그 주기가 짧고 무엇보다 비용이 꽤 나간다.
그 결과, 제국에서 흑마법을 용인한 뒤부터는 사제 대신 흑마법사에게 묘지의 관리를 맡기는 발상을 하게 된다.
분명 흑마법사에게 묘지는 악용할 소재가 넘쳐나는 곳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악용을 막을 방법 또한 제일 잘 아는 인재니까.
즉 언데드가 발생할 확률을 제어할 수 있다는 뜻.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 있는 일이라고 들었네만.”
“그런 모양이더군요.”
거주지를 확보하고 가능한 사람들과의 접촉도 피할 수 있다.
하물며 많지는 않지만 정기적인 수입까지 있으니 흑마법사끼리도 경쟁률이 꽤 높다고 하던가.
“하지만 자네의 기준을 충족할 역량은 아니라고 생각되네만.”
“그건 보면 알겠죠. 그리고 역량 자체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최소한 자기 앞가림만 하면 되겠죠.”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뭐, 기본은 알고 있나.”
“시안?”
“한스 씨는 잠시 거기 멈춰 계시죠.”
그는 묻지 않고 순순히 지시대로 물러난다.
아는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마법사의 거처.
그럼 당연히 나름의 성의를 갖고 짓밟아 줘야지.
(해제할 수는 있는데, 어쩌겠니?)
‘내버려 둬. 최소한의 기선 제압은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으니까.’
이제부터 시킬 일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상하 관계는 확실히 머릿속에 새겨 주는 게 좋다.
‘내가 할 테니 에밀리 넌 참견하지 마.’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파사삭.
발치의 흙 아래에서 묘한 감촉이 느껴진다.
그 흙 아래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위화감. 물리적인 것이 아닌 마법적인 감각에 가까운 것.
“하긴, 함정은 기본 중 기본이지. ……허접하지만.”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뼈로 된 가시가 솟아오르더니 나를 향해 덮쳐든다.
본 트랩. 1서클에 해당하는 마법.
공격력은 낮지만, 상대의 이동 속도 저하와 약간의 출혈 효과를 볼 수 있는 덫.
“기초적이지만, 나쁘진 않군. ……평범한 도굴꾼이나 짐승을 상대로 한다면 효과는 있겠지.”
그러나 내게는 안 통한다.
“흥.”
코웃음을 치며 주변에 마기를 방사해 벽을 친다.
카가가가강!
내 주변에 치솟은 마기의 벽에 부딪힌 뼈의 가시들이 마치 사탕수수처럼 부러진다.
“그 외에도 덫이 있는 모양인데……. 뭐, 더 볼 필요도 없겠어.”
히죽, 보라는 듯 조소하며 펼친 마기를 주변을 향해 퍼트리며.
억누른다.
콰아아앙.
발아래에서 진동이 울리며 내가 펼친 마기가 그대로 주변의 함정을 죄다 짓눌러 망가트린다.
정교한 해제법이 아니라 오로지 힘과 무지막지한 마력으로 짓눌러 파훼하는 방식.
격의 차이를 보여 주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쓸모도 없는 덫은 해제했어. 어차피 여기선 이걸로 몸을 사리지도 않아. ……할 이야기가 있으니 어서 나와라.”
흑마법사가 숨어 있을 곳을 노려보며 말을 걸었다.
대답이 없음.
경계하나? 아니면 나에 대해서 정말로 모르나?
‘귀찮으니 강제로 끄집어낼까.’
어차피 다소 훈육은 필요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손을 뻗어 그 은신처를 간섭하려는 순간.
“……어?”
묘한 위화감.
내가 한발 물러나자, 땅속에서 솟은 가느다란 검은 번개가 치솟는다.
맞아도 아프지도 않겠지만.
“망가지지 않은 트랩인가.”
(튼튼한 술식이네. 시안의 마기 압력에도 고장 나지 않았을 줄이야.)
“의외로 기초는 쓸 만하겠군.”
적어도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수준은 아닌 것만은 확실하군.
“이제 슬슬 나오지? 그럴 생각이 없다면 조금 힘을 써야…….”
그 순간이었다.
퐁!
저 앞의 흙더미가 움찔거리더니 파묻혀 있는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묘지기의 은신처가 땅속이라는 것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터라 놀라지는 않았다.
“이제야 나오나. ……음?”
내 눈가가 움찔했던 이유는 그렇게 튀어나온 녀석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몬스터? 아니, 묘지기 본인인가.”
처음에 몬스터로 오인한 것은 그 묘지기의 차림새 때문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짐승의 해골.
스켈레톤인가 했는데, 곧 언데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단순히 짐승의 해골을 투구처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작군.’
내 명치에 닿을 정도의 낮은 신장.
소인?
아니, 그게 아니다.
“어린애?!”
“이곳의 묘지기는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최근에 어린 녀석이 맡게 되었지.”
“그런 건 좀 빨리 설명하시죠?”
미안하다며 껄껄 웃는 한스에게 반쯤 성을 내고 나는 다시 묘지기를 응시했다.
꼬마.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아이.
“이름은?”
“엔티.”
“네가 여기 묘지기냐?”
“……네. 저예요.”
고개를 끄덕인다.
(거짓말은 아니네. 게다가 조잡하지만 틀림없이 마기로 이루어진 서클도 갖고 있고.)
‘마기는 느껴지는데. ……혹시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어?’
(원은 두 개.)
‘……그렇군. 엔티라고?’
지금 막 한스에게서 저 어린 묘지기의 나이를 들었다.
열 살.
2년 전 이곳으로 흘러들어 와서 전임자 대신 묘지기를 맡고 있다는 어린 흑마법사.
“제대로 일하고 있어서 딱히 불만은 없었던 모양이더군.”
한스의 반응을 보니 이상한 일은 아닌 모양이다.
나 ‘시안’부터가 먹고살기 위해 흑마법의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어린 나이에 길드에서 수련을 시작하기도 했고.
“다른 흑마법사는?”
“어, 없어요. ……지금은 저 혼자예요.”
어쩐지 이 작은 흑마법사는 떨고 있었다.
해골 투구 때문에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아서 시선을 맞추기가 어렵군.
“죽이지 말아 주세요.”
“……뭔 소리래.”
“켈리 씨가 그랬어요! 공방에 침입한 자는 적이라고. ……들키면 산 채로 찢길 테니까 절대 나오면 안 된다고.”
“……어?”
“특히 같은 흑마법사라면 어린애는 산 채로 재료로 쓸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내가 그러겠냐?”
조금 섭섭하다.
“낡아 빠진 소리군. 그 소리를 한 것도 흑마법사냐?”
“전에 있던 사람이에요. 2년 전에 좋은 일거리가 생겼다고 영주님의 성으로 갔는데요.”
“영주? 이닐스 백작? ……아!”
왠지 짚이는 데가 있었다.
내가 백작의 성에서 처치했던 흑마법사. 레밀린을 약화시키기 위한 저주를 전담했던 노파.
‘아니, 설마? ……그러면 말하지 않는 게 좋으려나.’
설마 제자인가.
혹시나 싶어서 물어봤지만.
“전에 묘지기를 하던 분이에요. ……그러고 보니 그 할머니는 뭐 하고 있을까요?”
“……좋은 곳에 있겠지.”
저세상이라는 곳에 말이야.
딱히 가르쳐 줄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친밀한 관계도 아닌 모양이고.
“일단 진정해라. 꼬맹이. 널 죽이려고 은신처를 파헤친 건 아니니까.”
“저, 정말인가요?”
“속고만 살았나.”
“……전에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바로 뒤에 공격해서요.”
“속고만 살았군.”
이해는 한다.
“현 상황을 생각해. 전이 때문에 엉뚱한 곳에 날려 온 상황이야. 새삼 꼬맹이 하나 속여서 뭐에 써먹어?”
“잡아먹으려고요? 식량?”
“미쳤나.”
하지만 말하는 본인은 진지하게 숙고한 뒤 입에 올린 걸 보면 경험담일지도 모른다.
흑마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들은 어지간히 몰린 녀석들이 대부분이라는 설정이 떠올랐다.
“거짓말은 아니야. 저기 동행한 용병은 용병 길드 소속의 정식 용병이고. ……뭣보다 지금 위를 봐라.”
“하늘? ……어? 왜 하늘이?”
“몰랐던 거냐?”
아무래도 은신처에만 있다 보니 지금의 상황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이 세계의 특징은 밤이 없다.
“어두워져야 나오니까요.”
“제대로 주변을 확인하라고. 꼬맹아.”
나이 때문일까. 아니면 본인의 천성인가. 어딘가 살짝 엇나가 있군.
(시안과 비슷한 과네.)
‘난 저러지 않아.’
(주변 사람이 보기에는 비슷할지도 모를걸.)
‘재미없는 농담이군.’
나만큼 사회성이 발달하고 현명한 아이가 어디 있다고.
내 설명을 듣고 지금의 상황을 이해한 흑마법사 꼬맹이 엔티는 경계심이 다소 낮아진 듯했다.
“이런 상황이니 협조를 요청하지. 길드 규정에도 있는 부분이고. ……네 안전을 위해서도 낫지 않겠냐?”
“이해했어요.”
다행히 이야기를 듣고는 순순히 수긍하는 눈치다.
흑마법사 대부분이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 녀석들이 많다는 건 단순한 편견만은 아니니까.
“하지만…… 전 약한데요?”
“그래, 알아. 엄청 약하던데. 덫도 기껏해야 고블린 정도밖에 잡지 못할 위력이고.”
“……저 약하네요.”
어쩐지 시무룩해한다. 하지만 칭찬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걱정 마. 네가 더 형편없었더라도 상관없으니까.”
“……그러네요.”
더 시무룩해졌군.
(시안은 좀 더 친절하게 말하는 법을 익히는 게 어떨까?)
‘알 게 뭐야.’
친절해서 누가 떡 하나 더 주는 것도 아니고.
“바라는 건 여기서 나 대신 흑마법의 역량을 발휘할 사람이야.”
물론 이 꼬맹이는 약해 빠졌지만.
“네 지금의 실력은 상관없어. 고려할 가치도 없으니까.”
나는 차갑게 말하며 녀석의 경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2서클.
그것도 아마 거의 독학으로 익혔기에 상당히 불안한 수준.
세간의 평가는 삼류 중 삼류.
그러나.
“그러니 조금은 쓸 만하게 지도해 주마.”
나는 오히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꼬맹이여서 차라리 잘된 거라고.
* * *
이후 한 번 더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어린애라서 걱정하긴 했는데 의외로 침착하게 듣고 이해하는 면을 보인다.
내 협력 요청에 엔티는 거부하지 않기로 하였다.
“할게요. 살아야 하니까요. ……규정이고.”
“규정?”
흑마법 길드에는 비상시 위의 경지에 이른 이들의 지시를 우선시하라는 규정이 있다던가.
나는 정식 길드 소속은 아니나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 잠시 흑마법 길드에 맡겨진 적이 있었다.
게다가 5서클에 이른 몸이니 자연스레 명령할 정도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는 셈.
“다시 말하지만, 네게 기대하는 건 내가 없는 동안 혹은…… 내가 싸우는 동안 보조를 해 줄 정도의 역량이야.”
“없는데요. 그런 거.”
“솔직한 평가군.”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어설프게 자신감에 차 있는 것보다는 정확하게 자기 파악을 하고 있는 편이 더 다루기 쉽겠지.
“당연히 지도는 해 줄 거고, 부족한 역량을 메울 최소한의 지원도 해 줄 거다.”
“……지원이요?”
뭐, 그것만으로 혹할 리는 없겠지.
내가 훨씬 위의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라는 건 알아도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모를 테니까.
그러니까.
“최소한의 지도가 가능하다는 증거를 보여 주지.”
내가 손가락을 튕기는 시늉을 하며 데몬 스켈레톤 한 마리를 소환했다.
엔티는 언데드 계통을 다루는 흑마법에 특화된 것만은 분명했으니 이걸 보여 주는 게 좋으리라.
“어, 엄청 훌륭한 스켈레톤!”
해골 투구의 안쪽에서 안광이 반짝이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군.
“이런 건 처음 봐요! 세상에, 이 표면의 광택! 골격!”
“칭찬해 주니 고맙긴 하네. 일단 진정해 봐, 꼬맹아.”
“앗.”
이대로는 대화가 진행되지 않겠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 데몬 스켈레톤의 소환을 해제했다.
“하여튼, 내가 널 지도할 정도의 역량이 있다는 건 이해했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꼬맹이.
“방금 그거 정도는 아니어도 그 아래 단계의 것까지는 어떻게든 다룰 수 있도록 훈련해 주마.”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자신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흑마법사 꼬맹이. 그런 엔티를 보고 또 한 가지 확신을 품었다.
‘엔티…….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다 싶었는데. ……네크로맨서를 수련한 꼬맹이라면 틀림없겠지.’
아마 틀림없으리라.
게임 시절.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던 악역 중 한 명.
분명 그것이 이 꼬맹이의 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