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8화
198화
진마빙현제.
얼마 전 완성된 비술을 시험한다.
아니, 시험이라고도 하긴 뭐하군.
습득하자마자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이니.
‘역시 스킬의 효력을 확인하려면 한번 들이박아 봐야지.’
비술은 완전히 습득했다.
언제든지 발동 가능한 상태.
“시안? 그걸 여기서 쓰려고? 괜찮겠어?”
“시험해 보고 안 된다 싶으면 바로 튈 거야.”
다른 수단을 동원하여 싸워 봤자 시간 끌기밖에는 안 되리라.
그렇다면 한번 기대를 걸어 봐도 되지 않을까.
거기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면 저 노인을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고.
아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고.
“시안.”
“이상하다 싶으면 말해 줘. 바로 중단 할 테니.”
사용하자.
내 의지에 호응하듯 흑약의 나침반의 끝이 파르르 떨린다.
아티팩트 내부에 새겨진 마법진에 마기가 흘러 들어가고, 그 에너지가 순환하며 증폭된 기운이 흘러나온다.
“잔재주를 부리는가.”
로벨타스 역시 뭔가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다.
방해하는 건가 싶어 경계했지만, 의외로 내버려 두고 있군.
“호오……. 아티팩트를 거친 술식의 발동인가. 제법 재주를 부리려는 모양이군.”
관찰인가.
비록 흑마법이라고 해도 처음 보는 마법을 보고 방해하기보다는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보자는 호기심이 앞선 걸까.
전형적인 마법사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가 뭘 쓴다 싶으면 어떻게든 방해해야지.
“지금이라도 방해하는 게 좋지 않겠어? 영감님?”
“네놈이 어떤 사술을 쓰든 소용없다. 그러니 미련이 남지 않게끔 재주나 한번 부려 보거라.”
오만하군.
지금까지의 공방으로 상대의 능력의 깊이를 파악한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저 노인이 나를 훨씬 더 잘 파악한 거겠지.
“그래, 그럼 어디 내 재롱을 잘 지켜봐. ……그리고 후회하고 뒈지시든지.”
방해하지 않는다면 굳이 딴소리를 할 필요는 없다.
처음 쓰는 마법이니 가능한 집중하고 싶기도 했고.
나는 본격적으로 비술을 발동시켰다.
아티팩트 내부의 마법진이 발아래에 영사기처럼 투영되어 확장된다.
“예상되는 효과는 아마 강화 계통의 액티브 스킬.”
스펙의 상승은 지금보다 한 단계 위 정도의 힘을 끌어내지 않을까.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그럼, 기대한 값어치는 해라.”
나름의 기대감을 품고 비술을 발동시킨다.
마법진에서 심상치 않은 마기가 흘러나온다.
“……어?”
나의 것이 아니다.
지금 펼쳐진 진 어딘가와 연결된 것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
“설마, 이거…….”
그 대량의 마기가 내 주변을 뒤덮는다.
마법진과 연결된 것에서 흘러나온 기운을 토대로 강화하는 것인가?
꽤 정석적인 버프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음?!”
머릿속에 소리가 울렸다.
[마의 지식을 흉내 내는 인간.]
[그 갸륵한 갈망의 목소리는 틀림없이 도달하였다.]
목소리.
늘 듣던 사역마의 것이 아닌 악마의 의지가 담긴 것.
누구냐고 묻지 않는다.
상대 역시 밝히지 않는다.
필요 없다는 듯.
[그 부질없는 갈망을 뒤덮을 힘과 지식을 내려 주나니.]
[흑의 검을 통해 마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상흔을 남겨라.]
검은 검이 허공에 나타난다.
불길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검은 강철의 검.
“흑철의? ……설마?”
검이 마구잡이로 허공을 찢어발기자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피와도 같은 붉은 마기.
그것이 쏟아지며 내 발아래에 고인다.
발등까지 잠식할 정도의 불길한 기운이 스며들자 기이할 정도로 힘이 넘치기 시작한다.
[검이 찢어발긴 곳에는 세계의 피가 흐르니.]
[그 원망을 바라는 자에게 끓는 피와 같은 힘을 끼얹노라.]
[짐은 날카로운 철을 연마하여 세계에 상흔을 남기는 자.]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계속 들어서는 안 된다. 저것은 단순한 악마의 계약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침략에 가까운 것.
아마 계속 저 소리를 듣는 것을 허용한다면…….
그러나 힘에 잠식될수록 사고가 안일해진다.
‘……이대로 상관없지 않아?’
무심코 생각하는 순간.
시야의 색채가 어두워진다.
사물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의식은 불길한 어둠이 가리기 시작한다.
이대로 맡기면 되는 건가?
그렇게 된다면…….
(시안! 당장 그만둬! 그 말을…… 저주를 계속 들으면 안 돼!)
쿠웅!
충격이 느껴진다.
무언가가 흔든다.
억지로 잠에서 깨우는 듯.
외부에서 강제로 간섭해 오는 흔들림에 의식이 빠르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눈이 떠진다.
뇌에 주변의 사물이 인식되면서 주변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헛?! ……뭐, 뭐야!”
어째서인지 하늘이 보인다.
나는 왜 느긋하게 위나 쳐다보고 있는 거냐.
게다가 뭔가 좀 무겁다고 생각했더니, 어째서인지 억지로 일어나지 못하게끔 뭔가가 누르고 있다.
에밀리와 셀리디아였다.
“계속 붙잡아!”
“응. ……이걸로 돼?”
“괜찮아. 이제 그거의 간섭은 없어진 거 같아.”
“……너희, 뭐 하냐?”
왜 무겁나 싶었더니 무려 두 사람이 나를 강제로 깔아뭉개고 있네?
에밀리는 그렇다 치고, 어째서 셀리디아까지? 정령술 클래스의 애들을 데리고 먼저 도망가라고 하지 않았나?
걱정되어서 돌아온 건가?
“잠깐, 어떻게 된 거야……. 그 노인은? 설마 도망간 건가.”
“시안, 역시 기억을 못 하네.”
“그렇겠지. 아예 자각을 못 하고 있어. 역시 의식까지 잠식된 거구나.”
“……응? 대체 무슨 소리야?”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째서 이 둘은 이렇게 지쳐 있는지? 그리고 싸우고 있던 적은 어찌 되었는지.
왠지 성가실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명치 아래를 옥죄고 있다.
아, 이거 사고 쳤다.
“설마 마법이 실패했어?”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시안.”
“그게 낫다니……. 잠깐만, 주변은 왜?”
아직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상황 파악이 늦었다.
주변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광경과 달랐다.
한바탕 폭풍우라도 휩쓸고 지나간 듯한 풍경.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대한 맹수가 마구잡이로 할퀴고 지나갔다고 해야 하나.
지면은 마구잡이로 파헤쳐져 있었고, 주변에 성한 것이라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괴물이라도 나타났냐?
잠깐 의식이 날아간 사이 생겼다고는 믿기지 않는 참상에 할 말을 잃었다.
“에밀리, 이거 네가 한 거냐?”
“무슨 소리니? 이 누나는 이렇게 거칠게 싸우지 않거든.”
“……그런 거냐.”
그럼 물어볼 것도 없겠군.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는 시선을 옮겼다.
찾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된 건가.”
엉망진창이 된 풍경의 중심.
비유하자면, 이것이 폭풍이라면 그 중심에서 온전히 이 재해를 받아 내야 했을 대상.
마탑의 원로 로벨타스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한 몰골을 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지팡이는 부러지고, 걸치고 있던 아티팩트는 죄다 박살이 나 있었다.
오른팔과 왼쪽 다리는 완전히 끊어진 채 근처에 굴러다니고 있군.
전신에서 피를 쏟아 낸 채 간신히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7서클의 마법사를 빈사지경으로 만들어 버린 건가.
“설마 이게 그 비술의 효과야?”
“이걸 설명하기가 난감하네. ……그래, 차라리 이걸로 알게 하는 게 낫겠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셀리디아와 에밀리가 나를 이렇듯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지.
“잘 떠올려 보렴.”
에밀리는 조용히 내 목 뒤에 손가락을 대고는 기억을 흘려보낸다.
불과 몇 분 전.
그 짧은 사이에 에밀리가 본 흉악한 광경을.
* * *
시안의 계약 악마 에밀리가 가장 먼저 계약자의 이변을 알아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안?! 그 마기는!”
딱히 그녀이기에 알아챈 것은 아니었다.
악마라면 깨닫지 못할 리가 없는 기운.
이 세계에서는 이질적인 마기.
그러나 악마라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되레 이상할 만큼 당연한 기운.
“시안! 그 술식, 당장 중단하렴. 그건…….”
경고해도 이미 늦었으리라.
계약자의 상태는 이미 예의 주시하고 있었기에 알 수밖에 없었다.
벌써 들리지 않으리라.
“이건 이 누나의 생각보다 더 위험한데.”
다소 골치 아픈 계통의 비술일 거라고 예감은 했었다.
노골적으로 악마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아마 어떤 악마가 변덕을 부려 남겨 둔 지식일 거라고 생각하고 나름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결과는 그녀조차도 경악할 수준.
“들리지 않아. ……안 되겠네. 그럼 강제로라도.”
억지로라도 멈추게 하자. 만일의 경우 강제 간섭하여 중지시키는 건 처음부터 시안과 의논한 일이니.
그러나 에밀리가 시안에게 손을 대려 하는 순간.
파앗!
시안을 둘러싸기 시작한 핏빛의 마기가 에밀리를 강제로 밀어서 튕겨 내었다.
방해하지 말라는 듯.
“으윽?! 건방지게…….”
그녀를 거부한 것은 시안의 의지가 아니다. 저 붉은 마기와 연결된 본래 주인의 의사.
이렇게 되면 작정하고 개입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안에게 집중할 여유가 있을 상황 또한 아니었다.
“보아하니 그 흑마법은 실패한 모양이군. ……기운은 이질적이다만, 의도하지 않은 결과인가?”
원로 로벨타스는 이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통달한 것은 어디까지나 푸른 마나를 다루는 마법일 뿐.
마기를 다루는 흑마법에 관해서는 무지할 수밖에 없다.
“실패했다면, 하찮은 재주도 더 이상 보고 있을 필요가 없겠군.”
아무래도 그는 시안의 흑마법이 발동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전투를 다시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것도 없다. 단숨에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깨끗이 없애 주지.”
“닥치고 있어! 늙은 마법사! 지금 시안은…….”
“헛소리해도 소용없다, 사악한 것.”
당연히 적의 충고를 들을 리 만무했다.
“특히나 너 같은 악마의 말은 귀 기울여 들을 것도 없지.”
“칫. 서운한 말이네.”
에밀리도 딱히 저 늙은 마법사의 안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멍청한 선택을 하고 죽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지.
문제는 지금의 시안을 자극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끝을 내주지.”
로벨타스가 대량의 마나를 끌어내며 마법을 발동시킨다.
파지지짓!
그를 중심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번개가 휘몰아치더니 그것이 밀집되어 거대한 벼락의 창이 된다.
원로 로벨타스의 최대 역량을 발휘한 뇌격.
천벌의 뇌창.
그가 자랑하는 최고 위력의 마법이다.
“추악한 마기와 함께 사라져라. 애송이.”
로벨타스는 자신의 비기를 발휘하며 승리를 확신한 웃음을 짓는다.
이 경지에 이른 후 이 마법에 소멸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유일하게 단 하나, 그보다 위에 선 마탑의 주인을 제외하고는.
“……푸른 마력인가. ……거슬려.”
그러나 그의 마법을 앞둔 저 시안이라는 애송이의 모습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의 그 소년과는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금의 저 소년은 그의 마법 따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건방진 놈.”
젊은 놈의 오만한 객기 따위로 치부하고 비웃으려 했지만.
곧 눈을 부릅뜨고 경악한 것은 그 직후 보게 된 광경 때문이었다.
번개가 정지했다.
시안을 향해 떨어지던 거대한 낙뢰가 그 소년에게 채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딱 멈춘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음?! 마기라고?! 붉은 마기?!”
번개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엷게 펼친 마기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것이 마치 그물처럼 번개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것이다.
“있을 수 없다. 아니, 이 로벨타스의 마법이 고작 그런 재주 따위로…….”
이곳이 익숙지 못한 세계이기에 마법에 결점이 발생한 것이리라.
그는 애써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려 들었지만.
“흥.”
비웃는 소리.
정체 모를 마기를 두른 시안이 손을 내뻗는다.
그의 발치 아래에서 붉은 마기의 늪이 물감처럼 번지며 아래로 넓게 퍼져 나간다.
마치 피 웅덩이처럼.
“뭉개져라. 불쾌한 것.”
그 붉은 마기의 늪에서 뻗어 나온 것은 두 개의 거대한 팔.
그것이 로벨타스의 번개를 움켜쥐고 간단히 부숴 버린다.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저 소년이 무슨 수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조차도 경악할 만한 막대한 에너지를 다루고 있다.
대체 어디에서? 조금 전에 사용한 흑마법의 영향인가.
“그 힘은 위협적이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없애야 한다고 판단한 로벨타스는 재차 마법을 캐스팅하려고 한다.
“……같잖은 짓을.”
시안이 손짓하자, 펼쳐진 마기에 붙잡힌 로벨타스가 반항했으나 아무 소용도 없이 끌려 나온다.
“큭! 이놈!”
끌려 당겨지는 로벨타스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단 한 줄기의 마기의 채찍.
그것을.
마치 꿀밤이라도 때리는 것처럼 가볍게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앙!
마기의 채찍에 강타당한 로벨타스는 지축을 뒤흔드는 것 같은 엄청난 충격을 뒤집어쓴 채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갔다.
“크허어어억?! 커억!”
한순간 가능한 모든 방어 마법을 펼쳐 막았으나, 그것이 모조리 사라질 만큼의 충격.
5서클의 흑마법사가 낼 파괴력이 아니다.
“이 사악한 놈!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냐!”
대답 대신 시안은 눈짓으로 주변에 펼쳐진 마기를 재차 조작한다.
그 마기는 나가떨어진 로벨타스의 사지를 휘감는다.
“이, 이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기이한 악의를 깨달은 노인은 지금까지 지은 적 없던 절망적인표정을 지었고.
반대로 시안은 냉소적인 웃음을 짓는다.
그 순간.
“크아아아아악!”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로벨타스의 절규가 터져 나온다.
잡아 뜯은 것이다.
7서클 마법사를 마치 곤충의 날개를 떼어 내며 노는 어린애처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완전히 승패가 갈렸다.
“……이건 역시 안 좋아. 시안.”
그 잔혹한 승리를 지켜보며 에밀리는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틀림없이 힘으로 압도하고 있지만.
저 힘은 지금 저 소년의 온전한 역량이라고 할 수 없으니.
“완전히 빼앗겼구나.”
그것도 터무니없는 존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