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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204화 (204/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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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204화

“마왕의 힘을 강탈……. 꽤 대담한 생각을 했네?”

놀리는 것인지 감탄하는 것인지.

뭐, 내가 생각한 게 아니다.

나는 비술의 아이디어가 적힌 그 수첩의 원본을 꺼내 두드렸다.

“적어도 이 선배는 천재 아니면 엄청난 바보겠지.”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하는 이가 대체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 의도를 확신한 것은 단순한 추측만이 아니었다.

수첩의 거의 끝 페이지.

본래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지만.

“이론의 원본을 재차 검토하면서 원본을 다시 잘 살펴보려 할 때 이게 있더라.”

“헤에~, 참 귀여운 장난이네.”

백지였을 페이지에 새로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특정 성질의 마력에 반응하게 한 걸까?”

“아마 이 비술을 처음 쓰고 이것의 정체를 알아챘을 때 보라는 거겠지.”

지금 내 신체에 잠식한 혈마력의 잔재에 반응하여 글자가 떠오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비술을 완성하지 못한 것에 한탄하며]

[언젠가 이것을 보게 될 미래의 후배에게 마지막 조언을 남기겠다.]

정확히는 지식보다는 일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자신의 부족한 재능에 한탄하는 어느 흑마법사의 푸념…….”

그리고 그 흑마법사는 어느 날 어떤 악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평범한 악마가 아닌 자.

무려 마왕이 보낸 하수인.

[그자는 내게 지식과 힘을 약속했다.]

[그 대신 그자가 바라는 것은 본래 이곳에 발을 뻗지 못할 자가 그 일부라도 땅에 닿을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계약.]

흔하디흔한 수작질.

그리고 이 수첩의 본래 주인은 어떤 꾀를 생각해 낸 모양이다.

계약식의 변칙 운용.

그 마왕과 강제로 연결되는 라인을 만들어 기운을 내려받는 식의 비술 고안.

[그러나 나의 재주로는 그저 발상에 그치는 게 전부였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그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지 못했으니까.]

[악마와의 계약의 의의.]

[악마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진의를 깨닫는 것.]

[나에게는 늦었으니.]

[내게는 손을 잡아 줄 악마는 없었다.]

그 뒤에는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다니엘 교수님의 설명으로는 의외로 평범하게 졸업했다고 하니,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고 손을 뗀 건지도 모르겠다.

“의도를 알면 그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대강 윤곽은 잡혀.”

《진마빙현제의 지식을 추가로 이해했습니다.》

《해당 스킬에 대한 실마리를 깨닫게 됩니다.》

물론 순수한 내 역량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어떻게든 대체안은 생각했다는 뜻.”

짝짝짝. 나 스스로를 칭찬하자꾸나.

익살스레 손뼉을 치자, 당연히 에밀리는 이런 내 본심을 깨닫는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니?”

“개량 방향성은 알고……. 아마 성공할 거 같다는 확신도 들어.”

다만, 그 방법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어떤 의미로는 호랑이를 피해 여우 굴에 들어가는 방법.’

뭐, 숨겨 봐야 에밀리는 내 말의 뉘앙스만으로도 곧 깨닫겠지.

바로 말하는 게 낫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비술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어. ……하지만 다른 방법을 쓰면 되겠지.”

“그렇구나. 그 방법이란 게…….”

에밀리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지금의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 비술은 인간이 쓰는 걸 전제로 한 게 아니야.”

“즉, 이 누나보고 쓰라는 거니?”

“맞아.”

직접 캐스팅하는 것은 아니다.

계약한 악마가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발생하는 마왕의 마력을 그 악마가 제어하여 넘겨준다.

인간과 계약한 악마의 동시 습득이 전제되는 것.

‘비유하자면, 악마를 변환기로 쓰는 거지.’

수첩에서 악마의 이해를 운운하는 것도 그것을 의미하는 힌트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원본보다 출력은 낮아지더라도 정신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히 힘만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인간과 달리, 악마는 마왕의 마기에 정신적 혼란을 겪지는 않을 테니까.

‘아마 그 선배는 악마와 계약해도 이것을 악마에게 사용하게 할 순 없었을 것이야.’

신뢰하지 못하니까.

“흐으음? 시안? 당연히 알겠지? 그걸 넘기는 건…….”

“반대로 말하면, 마왕이 아니라 계약한 악마한테 말 고삐를 대신 쥐어 주는 거나 마찬가지지.”

배신의 위험성.

호랑이도 무섭지만, 여우라고 무섭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거기다 하필 에밀리는 본래 ‘시안’을 배신하는 역할이었지.’

반쯤 잊고 있었던 본래의 운명.

물론 그 찌질한 ‘시안’과 나는 사고방식부터 다른 인물이지만.

적어도 게임에서 ‘시안’의 파멸 이유를 생각한다면, 현재 에밀리가 변덕을 부려 나를 배신할 확률은 낮았다.

‘그걸 안다고 해도 에밀리에게 고삐를 맡기는 건 꽤 결단이 필요한 일이겠지.’

배신할 확률이 1%라고 가정해보자.

생각해 봐라. 그거 모바일 게임 가챠보다 높은 거다.

“시안? 어쩔 거니? ……아니, 이 누나를 믿을 수 있을까?”

“따지자면, 적어도 사람을 믿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

확률적인 문제이지만.

사람이 배신할 확률이 높으냐, 악마가 배신할 확률이 더 높으냐를 따지자면, 당연히 인간이잖아?

“후훗, 역시 비뚤어졌네.”

“그게 사실이고. 그리고 배신할 거면 진즉에 버렸을 거잖냐.”

냉정하게 판단해서 나는 에밀리에게 이 방법을 제안해도 괜찮다고 여겼다.

‘그래도 몇 마디 더 덧붙여야겠지.’

최소한 나를 붙들고 있을 목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

“다른 이야기?”

“내가 에밀리, 네게 처음 계약을 할 때 말했지? 악마의 비원을 달성할 방법을 안다고.”

“헤에? 이런 때에 그 이야기를 하는 거니?”

당연히 잊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도 될 때이니까.

“너희의 비원.”

“응. 말해 보렴, 시안.”

당시 에밀리는 내 발언을 반쯤은 허세로 여겼을 것이다.

그 비원의 실체를 아는 건 검은 시조라 불리는 흑마법사 외에는 없었으니까.

그는 후세에 이를 전하지 않았고, 설사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해도 후대의 마법사들은 믿지 않았을 테니.

“악마들이 바라는 것은 네 번째 마왕. ……아니, 진정한 마왕의 격에 도달한 악마의 탄생.”

“……근거는?”

“비밀.”

설정을 참고하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었지만, 지금 내가 말하기에는 부자연스러운 지식도 존재한다.

“시안, 네가 늘 말하는 앞날의 일과 관계된 거니?”

“비슷해. 내가 아는 미래에 반드시 그것과 관련된 일이 일어나거든.”

“……뭐, 정답이네.”

에밀리는 순순히 내가 말한 악마의 비원이 맞다고 인정했다.

“시안, 네 말대로 지금의 마왕님…… 아니, 마왕을 자처하는 악마는 네 번째 마왕의 탄생을 원해.”

마왕이 직접 주도하기 위해.

인간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것도 그 일환 중 하나일 것이다.

마계에서는 악마가 도달할 수 있는 성장 한계가 뚜렷하다. 숨겨진 자원도 더는 없고.

하지만 인간계에 진출한다면 다른 방향의 진화가 가능하리라고 여기는 것이겠지.

악마가 인간계에 오길 원하는 것은 강대한 존재에 도달할 힌트가 있다고 믿기에.

“에밀리, 너 역시 같은 것을 원하는 거야?”

“시안, 악마가 인간의 소환에 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니?”

“지식으로만.”

“그래. 지상에 불려오기 위해, 유일하게 허락된 제약을 뚫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마계에 두고 온단다.”

악마 계약의 설정.

그 어떤 강대한 악마도 계약식에 응하는 순간, 계약한 인간에 의해 그 능력에 제약이 발생한다.

그 말은 곧 지금 여기에 있는 음마 역시 제 고향에서라면 얼마나 강대한 힘을 가졌을지 알 수 없다는 말.

게임에서 ‘시안’은 자신의 사역마를 그저 하찮은 음마 따위라고 불평했다.

그러나 그것은 멍청한 ‘시안’의 시점에서의 서술.

끝내 녀석은 자신의 사역마에게 버림받았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깎고 무력한 존재 정도로 작아지면서까지 우리는 인간의 계약을 받아들여.”

“그 비원을 위해? 그게 그렇게 중요해?”

“시안, 네가 바라는 출세와 비슷할지도 몰라.”

“……그렇군.”

더욱 나아지기 위해서인가.

그거라면 공감하지 못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시안? 왜 이럴 때 그것을 말하는 거니?”

“간단해. 믿지만, 더욱 그럴 이유를 줘야 하니까.”

절대 배신하지 않을 근거.

어쭙잖은 믿음 따위를 주장할 만큼 나는 순진하지 않다.

그러니 타당한 이유라도 안겨 줘야지.

“그 비원은 내가 추구하는 길에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니 따라오라는 거니?”

“그래. 적어도 내가 아니면 그 기회를 얻을 악마는 없을 거야.”

“흐응~, 그때보다 더욱 수상쩍네.”

“확실한 근거라도 원하나?”

“시안, 번지르르한 입발림 소리 따위나 하는 아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

주장은 필요 없다.

“대신 그 증명을 확실히 해 주렴. ……만일 허튼소리라면?”

“허튼소리라면?”

“후훗, 그땐 기대하렴.”

가차 없이 배신하겠다는 거네.

그래, 확실해서 좋구먼.

“그럼, 이해관계는 서로 일치한 거로 간주하지.”

악마는 자기가 한 말을 쉽게 번복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런 설정이 있었던가…….

뭐, 아무래도 좋았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 망할 비술의 진짜 습득을 시작해 보자.”

나는 비술 전용 아티팩트인 흑약의 나침반을 꺼내며 말했다.

“우선은 신중하게 실험하자.”

그리고 잠시 후.

콰아아앙!

우리가 있는 곳에서 검은색 폭발이 일어났다.

……원래 시행착오에는 폭발이 따르는 법이지.

* * *

“역시 몇 번 더 연습이 필요하겠어.”

“별수 없잖니. 이런 방식의 제어는 이 누나도 생소하거든.”

몸에 묻은 검댕을 털어 내는 나. 그리고 쪼끄만 상태의 에밀리는 내 머리 위에 멋대로 앉은 채 마찬가지로 내 머리카락을 털어 준다.

“어디까지나 시행착오일 뿐이야.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어.”

대충 가닥은 잡혔다.

아마 조금 더 연습하면 목표로 한 비술의 제어는 성공하리라.

“계속 시도해 볼래?”

“아니. 지쳤으니 이론의 재검증만 하자. ……그리고 배도 고프고.”

유감스럽게도 녹의 정원에는 인간의 식량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행히 내가 비상시를 위해 가지고 다니는 음식이 조금 있었기에 걱정은 없었지만.

요컨대 결국 자신이 먹을 건 내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뜻.

“거기다 녹의 시조가 준 걸 먹고 싶지도 않고.”

“하긴, 꽤 개성 있는 걸 주려고 했지?”

인간계를 멀리하면서 그 망할 녹의 시조는 어딘가 맛이 간 게 틀림없었다.

처음에는 먹을 걸 대접해 준다고 해서 기대했더니 웬 녹색 점액 같은 것을 가져오더라.

“……극한의 경지에 이른 고수는 인간의 식사 활동도 잊는다는 거겠지.”

나는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하여튼, 식량을 가져온 내 철저한 준비성에 몇 번이고 내심 감탄하며 돌아오자니.

“응?”

내가 무심코 발걸음을 멈춘 순간이었다.

쿠웅!

저편에서 폭음이 울리더니 지축이 흔들린다.

“……아직도 훈련 중인가.”

그 소음의 정체는 알고 있기에 담담하게 중얼거리는 순간, 소리의 진원지로부터 뭔가 날아와 내 근처를 데구르르 구른다.

셀리디아 밀로닐.

“요즘 들어 잘 굴러다니네.”

“……본의가 아니야.”

어딘가 몹시 억울하다는 듯 말하는 셀리디아.

“꽤 고생하나 보네.”

“사기야. 저 시조인가 하는 사람.”

“당연하지 저래 보여도 최고위 정령사이니까.”

나는 녹의 시조에게 부탁해 셀리디아에게 한 수 전수해 달라고 말했다.

정확히는 어떤 비기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 것.

곤란해하면서도 승낙한 시조는 셀리디아를 데리고 훈련을 개시했다.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엄하게 다그치는 타입인가.

“저런, 괜찮니? ……조금 조절을 실수한 것 같네.”

걱정스러운 듯 외치며 나타난 녹의 시조의 모습을 본 나는 셀리디아의 고생이 바로 이해가 가서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괴물이긴 하군.”

그 청년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경악한 건 그가 거느리고 있는 존재들.

그가 계약한 대량의 정령.

정령 한 마리, 한 마리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밀도가 심상치 않았다.

저 정령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

“……정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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