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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악마 소환함-212화 (212/389)

제212화

212화

증오의 정령.

어둠의 정령의 권능 아래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뒤틀린 정령.

그 권능은 삼킨 원혼의 능력만큼 상승되었다.

산 자와 혼을 증오하고 잡아먹으며 존재하는 괴물이라는 뜻.

“……시작된다.”

형상이 점차 안정되어 간다.

슬라임과도 같던 액체 몸체가 점차 줄어들어 간다.

응축되는 것이다.

무작정 날뛰는 에너지를 제어하고 안정된 형태로 바꾸어 간다.

인간 소녀의 형상.

“아마 피레일 줄렛의 골격을 기반으로 해서 그런 거겠지.”

“흐음, 정령술만이 아니라 네크로맨서의 지식도 섞은 거려나.”

“아마 그럴걸.”

어둠의 정령은 갖가지 금기의 지식을 수집하였다고 했다.

그것은 정령술에 국한하지 않고 연금술, 흑마법, 공용 마법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다른 분야의 지식도 발상을 바꾸면 얼마든지 변조하여 적용할 수 있었기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태어나게 하는 것보다 인간의 사체와 원한을 이용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여긴 거겠지.”

정령의 탄생은 막대한 정령력과 그 속성의 기반이 되는 사물이 필요하다.

어둠의 정령은 그것을 인간의 사체와 죽은 자의 원혼으로 치환하는 방식을 택한 것.

“악랄하네.”

“그게 어떻게 정령이냐고? ……저것도 마찬가지고.”

증오의 정령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막 탄생하여 아직 자아조차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상태.

가장 먼저 싹튼 것은 생존 본능.

녀석이 이쪽을 본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온다.”

저 몸짓이 어떤 패턴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다.

내가 옆으로 내빼는 것과 동시에 증오의 정령이 마치 변덕이라도 부리듯 돌진해 온다.

급가속.

어느새 증오의 정령의 두 팔은 대검과 같은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막아!”

내가 옆으로 피하는 것과 동시에 내 지시대로 에밀리가 그 돌진을 가로막는다.

마기를 방출하여 그것을 날카로운 검으로 다듬어 증오의 정령이 내리치는 공격과 맞서는 에밀리.

“오래 버티긴 힘들 거 같은데?”

“잠깐이면 충분해.”

주의가 쏠린 틈에 나는 재빨리 공격용 흑마법을 캐스팅한다.

지팡이 두 개를 전부 꺼내서 잇달아 최고 속도로 흑마법을 만들어 낸다.

-흑염멸옥탄.

불과 수 초 만에 두 개의 지팡이를 기점으로 여섯 개의 흑염구를 만들었다.

“돌아와, 에밀리.”

에밀리가 실체화를 푸는 것과 동시에 흑염구를 떨어트렸다.

콰가가가가강!

집약된 흑염구가 열기를 팽창시키며 그대로 증오의 정령을 휩쓴다.

“효과가 있겠니?”

“글쎄, 애매할걸.”

다시 돌아온 에밀리에게 나는 반쯤 회의적인 말을 하였다.

흑염이 한순간에 꺼졌다.

흑마법에 직격당한 증오의 정령은 반신이 재가 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곧 재생한다.

“손실된 육체도 낫는구나.”

“기반 되는 건 정령이니 에너지가 남아 있으면 육체는 얼마든지 재생할 수 있겠지.”

물리 공격은 거의 듣지 않으리라.

높은 수준의 오러가 아니면 어림도 없겠지.

거기다 기존의 정령들이 꺼리는 흑마법에도 취약하지 않다.

‘약점이라고 한다면 지성. ……쉽게 어그로가 끌린다는 점이었지.’

그것은 조금 전 에밀리가 주의를 끈 것으로 확인했다.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탐색은 이쯤이면 됐어. 힘으로 밀어붙이자.”

흑약의 나침반을 꺼냈다.

“좀 더 간을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귀찮아져. 빠르게 처치하는 게 좋아.”

난이도가 높은 패턴을 구사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장 만만한 상태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최선이다.

“이번에는 로벨타스 때보다 마음껏 써도 되겠지?”

“걱정 마렴. 감을 익혔으니까.”

“그거 잘됐네.”

걱정 없이 쓸 수 있다.

곧바로 흑약의 나침반에 에밀리를 깃들게 하고는 비술을 사용한다.

-진마빙현제.

“이대로 힘으로 밀어붙여 주마.”

진마빙현제의 발현에 따라 기존의 검은 마기에 혈마력이 휘감기기 시작하며 힘이 차오른다.

에밀리의 말대로 저번보다 더욱 안정되었다.

증오의 정령이 고개를 떤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나. 내 힘의 변화를 알아채자마자 바로 공격을 시도한다.

정령이 양팔을 펼치자, 주변에 수십 개의 잔상이 생겨난다.

마법사들.

재료가 된 원혼의 주인의 힘.

그 마법사들이 캐스팅할 수 있는 마법을 전부 사용하여 퍼붓기 시작한다.

“그럼 맞서 주지.”

크리스털 스태프를 원격 조작하여 흑염탄을 난사하여 받아치게 한다.

전부 받아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뚫고 나갈 틈의 탄막을 상쇄해 주면 그만.

“너랑 원거리전을 펼칠 마음이 없거든.”

그 틈을 노려 혈마력으로 신체를 감싸고 뛰어든다.

상쇄하지 못한 마법을 적당히 마력으로 방어하고는 거리를 좁힌다.

“일단 한 대.”

후려칠 수 있는 거리까지 도달한 후 사멸의 스태프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마력을 씌워 강화한다.

물리적 대미지는 거의 먹히지 않지만, 오러나 강력한 마력 대미지를 주는 타격은 유효하다.

“……맞고 날아가라!”

콰앙!

온 힘을 다해 후려치자, 증오의 정령의 허리가 꺾이며 그대로 나뒹군다.

넉백으로 인해 녀석이 발동하고 있는 패턴이 깨진다.

소환된 마법사의 원령들이 전부 흩어지듯 사라진다.

“일어날 틈을 줄 생각은 없어.”

(역시 그거니?)

“그래, 일단 묶어.”

검은 진흙의 손.

낮은 클래스의 포박 마법이지만, 발동이 빠르고 또한 쓸 만한 디버프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기다 진마빙현제의 강화 효과 덕에 본래의 성능 이상의 효력을 낼 수 있다.

치솟은 진흙의 팔이 붉게 달아오른다.

그것들은 증오의 정령을 움켜쥐고 그대로 바닥을 향해 찍어 누른다.

불과 수 초 정도면 뿌리치고 일어나겠지만.

“충분해.”

(큰 거 두 개면 될까?)

“당연하지!”

지팡이 두 개를 동시에 허공에 띄운다.

-블랙 플라즈마 봄.

본래 에밀리의 마법 캐스팅 능력을 빌려야만 발휘되는 마법.

그것 역시 지금의 상태라면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쓸 수 있다.

거대한 두 개의 검은 플라즈마의 구체가 존재감을 발하고.

“가라.”

손짓과 함께 떨어진다.

검은 섬광과 함께 막대한 열량이 적을 삼켜 녹여 버리기 시작한다.

재생한다고 해도 가진 에너지를 소모하기 마련.

힘으로 찍어 누르면 한계가 오리라.

“네 능력은 지긋지긋하게 잘 알고 있어.”

비틀거리며 재생하는 증오의 정령을 나는 다시 마력을 실어 후려쳐서 공중으로 띄운다.

동시에 천장까지 치솟은 녀석을 향해 흑마법 공격을 쉼 없이 퍼붓는다.

콰가가가가강!

폭음이 연속적으로 울리며 일대가 뒤흔들린다.

(가차 없네.)

“봐주지 마. 공격을 허용하게 하면 성가셔.”

폭연을 뚫고 재생하면서 증오의 정령이 고속 이동을 하며 거리를 좁혀 온다.

원거리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근접전을 시도해 볼 모양이다.

“그게 더 어리석은 짓이야.”

코웃음을 치며 뻗쳐 오는 증오의 정령의 손을 가볍게 피한다.

무릎으로 쳐올리고 지팡이로 뒤이어 내리찍어 누른다.

바닥에 처박히게 함과 동시에 나는 재빠르게 뒤로 거리를 벌린다.

“거기 머리 위를 잘 봐.”

뒤로 빠지며 이미 캐스팅해 둔 마법을 발동시켜 두고 왔다.

녀석의 머리 위에서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응축된 열기의 구체.

-앱솔루트 플레어.

“터져라.”

신호와 함께 팽창하는 화염이 녀석을 집어삼키며 천장을 녹이고 치솟는다.

일방적인 농락.

‘솔직히 넌 내가 게임 때 잡아 본 보스 중 가장 쉬웠거든.’

난이도가 올라도 패턴이 변하지 않으면 결국 피통만 늘어난 샌드백.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

‘슬슬 한계겠지?’

(시안도 힘을 많이 썼어. 노는 것도 좋지만, 이만 끝내렴.)

‘알아.’

끝장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흑염멸아.

사방에서 생성된 흑염의 이빨 덫이 증오의 정령을 쫓아가 움직임을 막는다.

“끝이야.”

5서클에 해당하는 흑마법 중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기술을 보여 주마.

《스킬 포인트 : 15pt가 소모됩니다.》

《흑마법 – 흑마반력옥 습득하였습니다.》

《잔여 스킬 포인트 : 10pt》

이대로 짓눌러 없애주마.

-흑마반력옥.

순수 마력 대미지를 주는 5서클 흑마법.

고밀도의 마기를 집약시켜서 그 흐름을 강제로 엇나가게 하여 압착 시켜 끝내 붕괴시킨다.

육체와 정신에 대혼란과 마력 대미지를 주는 흑마법.

마력 대미지가 유효한 정령이기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마법인 셈이다.

증오의 정령이 마기의 구체에 갇힌다.

탈출하려는 듯 마구 날뛰지만, 내 마력이 더욱 견고하기에 뚫고 나올 수는 없으리라.

“사라져라.”

손가락을 튕기자, 마기의 구체가 빠르게 회전한다.

안정된 마기가 무너지고 그 내부에는 지독할 정도의 마기의 폭풍이 휘몰아칠 것이다.

그 압력에 짓눌린 끝에 임계점에 다다르면 붕괴한다.

증오의 정령이 짓눌리는 감각이 느껴진다.

점차 크기가 줄어든다.

이윽고 주먹 정도의 크기까지 줄어들자.

“흥.”

코웃음을 치는 순간, 마기의 구체가 수축하며 사라진다.

먼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증오의 정령을 토벌하였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47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레벨업 보너스 스킬 포인트 10pt를 획득합니다.》

《잔여 스킬 포인트 : 20pt》

《제1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어둠의 정령의 악의와 호기심에 의해 태어난 두 번째 사악한 정령은 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하고 소멸하였다.

“휴우……. 꽤 순조롭게 해치웠어.”

비술을 풀고 그 반동에 한숨을 내쉬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매복 같은 건 없어. 시안.”

“그건 그거대로 신경이 쓰이는데.”

“무슨 뜻이니?”

“그런 게 있어. ……그것보다 남은 건 이제 밀레이토스, 그 망할 녀석인데.”

기껏 탄생시킨 증오의 정령이 허무하게 소멸하는데도 녀석은 방해하러 이곳에 오지 못했다.

제대로 셀리디아에게 발이 묶여 있다는 뜻.

“조금 쉬고 도우러 가자.”

비술의 페널티가 가시자마자 지원하면 충분히 토벌할 수 있을 터.

아니, 어쩌면 셀리디아와 레밀린의 힘만으로 토벌할지도 모른다.

‘그럼 더 좋지.’

계획해 둔 대로다.

물론 생각한 대로 흘러갈 경우의 이야기이지만.

그리고 나는 반대의 경우도 상정하고 있었다.

‘이쪽에는 녀석이 없었어.’

내가 각오한 것은 3장의 보스 토벌의 난이도 따위가 아니었다.

높은 확률로 끼어들 어떤 방해꾼을 고려한 것.

하지만 이쪽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

“시안.”

“……하아, 그럼 그렇지.”

에밀리가 무언가 알아챘다.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는 어서 알려 달라며 말없이 재촉했다.

그리고 동시에 공략 상황을 알리는 메시지도 변한다.

“어둠의 정령의 기척이 변했어.”

《조건이 갱신됩니다.》

《제2조건 밀레이토스의 토벌》

《해당 조건이 변칙에 따라 변질됩니다.》

“변했다고?”

“저건 정령이라고 할 수 없겠네.”

에밀리가 무엇을 감지한 것인지 나는 이곳에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어둠을 삼키는 원령 – 밀레이토스의 토벌》

“……하필 이거냐.”

상정했던 변수들 중 가장 최악의 패턴이 터졌다.

그것도 절대 정상적인 흐름에서는 발생할 리가 없는 경우가.

“어떻게 된 걸까?”

“타락한 거야. 틀림없어.”

“타락? 이미 그런 존재가 아니었니?”

“아니, 어디까지나 그건 정령의 범주에 드는 존재였어. ……거기에 놈의 타락은 일반적인 정령의 변화랑 달라.”

밀레이토스는 애초에 그렇게 태어난 정령이다.

불이나 번개의 정령처럼 오로지 악의를 가지고 노는 것이 본질인 정령일 뿐.

자기 존재 의의에 충실했겠지.

“그런 녀석이 타락하며 존재 의의를 잃으면 더한 괴물로 변질되지.”

“그건 놀랍네.”

무엇보다 그것은 게임에서도 존재했던 사양 중 하나였다.

밀레이토스는 보스로서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하나는 고약한 어둠의 정령으로서의 면모.

‘일반적인 루트에서 토벌하게 되는 건 사악한 정령으로서의 그 녀석인데.’

그러나 녀석에게는 또 하나의 숨겨진 면이 존재한다.

특정 공략 조건을 충족할 경우.

녀석을 종장 시점까지 토벌하지 않은 채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면.

녀석은 고난도의 존재로 변질하게 된다.

일종의 도전만을 위한 히든 보스.

어둠을 삼키는 원령 – 밀레이토스.

난이도도 흉포함도 그 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레벨도 그 위험성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젠장! 서둘러야겠어!”

“쉬지 않을 거니? 아직 영향이 남아 있어.”

“그럴 틈이 없어. ……그리고 빨리 확인해야 해.”

정말로 그 괴물로 변질한 것이라면.

거기 있는 녀석들의 힘만으로는 절대 클리어할 수 없게 된다.

“절대 우연은 아닐 거야…….”

어둠의 정령의 타락은 우연히 일어날 수 없었다.

공략을 아는 나도 현시점에서는 절대 발생시킬 수 없는 짓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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